집회 48,1-14; 마태 6,7-15
+ 찬미 예수님
그동안 우리는 제1독서에서 열왕기가 전한 엘리야와 엘리사 예언자에 대한 말씀을 들었는데요, 오늘은 집회서가 전하는 두 예언자에 대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집회서는 엘리야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은 정해진 때를 대비하여 주님의 분노가 터지기 전에 그것을 진정시키고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되돌리며 야곱의 지파들을 재건하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되돌린다”는 표현은 말라키 예언서(3,24)에도 나오고, 루카 복음(1,17)에도 나오는데요, 루카 복음은 “세례자 요한이 엘리야의 영과 힘을 지니고 와서 부모의 마음을 자녀에게 돌리게 한다”고 말합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되돌린다”는 말씀이 무슨 의미인지에 대해서는 여러 해석이 있습니다.
첫째, ‘가족과 이웃들이 서로 화해할 것이다’라는 해석(I. H. Marshall)이 있고요, 둘째, ‘아버지는 성조들을, 자식은 불순종하는 백성들을 가리킨다’는 해석(A. Loisy)도 있습니다. 셋째 해석은 이와 정반대로 ‘아버지는 불순종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자식들은 순종하는 이방인을 의미한다’고 봅니다.(R. E. Brown) 넷째, ‘아버지는 전통적 방식을 고수하고 있으면서 쇄신이 필요한 구세대를, 자식들은 하느님의 새로우심에 열려 있는 새로운 세대를 의미한다’는 해석도 있습니다.(E. Schweizer)
많은 학자들은, 이 네 번째 해석, 즉 ‘아버지는 쇄신이 필요한 불순종의 세대를, 자식은 하느님께 순종하는 세대를 가리킨다’는 해석에 동의합니다. 중요한 것은,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되돌려” 즉, 불순종의 세대가 벌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마음을 돌려 순종하게 하는 것이 엘리야 예언자의 역할이라는 것입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시는데요, 아시는 것처럼 주님의 기도는 7개의 청원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전반부의 세 개의 청원은 사실 같은 내용의 반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 하느님의 이름은 곧 하느님을 가리킵니다. 구약성경에서 하느님의 이름을 아는 것은, 하느님을 아는 것과 마찬가지(창세 32,28-29; 이사 52,6)였습니다. 모든 피조물이 하느님의 거룩하심을 선포하고 하느님의 거룩하심이 온 세상에 받아들여지는 것이 이 청원의 내용인데, 그것이 이루어지는 것은 하느님 나라입니다.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에서 우리는 하느님 나라가 오시기를 기도합니다.
이어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라고 기도하는데,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 역시 하느님 나라입니다. 즉 이 세 가지 청원은 모두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라는 청원을 반복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후반부의 네 개의 청원도 하느님 나라와 연관되어 있는데요,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라는 청원은, 약속의 땅으로 향하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만나를 주셨듯이, 우리에게 하느님 나라를 향해 가는데 필요한 양식, 즉 성체성사를 주십사는 기도입니다.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 이 청원은, 우리가 하느님 나라에 들기 위해 가장 어렵지만 필수적인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 줍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자비를 서로에게 베풀어야 합니다.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이 두 청원은 마지막 순간의 시험에서 저희를 보호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결국 앞의 세 가지 청원은 하느님 나라가 오시라는 기도이고, 뒤의 네 가지 청원은 우리가 하느님 나라에 합당한 사람이 되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유다인들은 긴 열여덟 가지 기도문을 하루에 세 번씩 외웠는데요, 예수님께서는 매우 짧은 일곱 개의 기도문을 하나로 묶어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이 기도 안에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내용이 다 담겨 있습니다.
주님의 기도는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기를 고대하는 자녀의 기도입니다. 우리 삶의 가치와 목표를 지금과 그날에, 현재와 마지막 날에, 이미 와 계신 하느님 나라와 장차 완성될 하느님 나라에 맞추어 살기를 청하는 기도입니다.
하느님 나라에 최상의 가치를 두고 사는 것이 너무나 이상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단 한 가지를 기억하면 그것은 현실이 됩니다. 오늘 복음 환호송에서 고백한 바와 같이 우리가 받은 성령께서 내 안에서 “아빠! 아버지!”하고 외치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느님은 우리 아버지시고, 우리는 형제자매입니다. 우리를 그 진리에로 인도하시는 성령의 이끄심을 받아들이는 것이, 내 안에 있는 불순종의 마음을 돌려 순종하는 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주의 창조주이시며 심판주이신 하느님을, 그분의 거룩하신 이름을 감히 이렇게 부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2024. 6. 16. 저녁. 노은동 성당 마당에서 바라 본 하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