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가는 수필] - 남홍숙의 수필세계
고통에의 동참, 향기로운 삶터
권대근
문학박사,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
1.
인간이란 원래 자신의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역사적 시대적 상황에 대해 일체 무관심하거나 초연한 상태로 살아가기가 어려운 존재다. 왜냐하면 인간의 존재 그 자체가 역사적 시대적 상황의 한 부분이며, 그것이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역사적 시대적 상황의 영향을 받으며 그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것이 곧 인간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어항 속에 들어와 있는 물이 역사적 시대적 상황이라면 그 속에서 살아가는 물고기와도 같은 존재가 바로 인간인 것이다. 남홍숙의 수필 <라이브>는 바로 인간의 존재 조건, 실존을 겨냥하고 있는 수필이라는 데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작가는 2007년에 자녀 셋과 호주 브리즈번으로 건너가 살면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작가다. 무엇보다도 수필의 문학적 성취는 문학적으로 가치 있는 재료를 선택하는 데서 좌우된다. 이런 차원에서 작가가 선택한 네 편의 삽화는 작가의 인식처럼 독자로 하여금 세상과 소통하는 존재방식에 대해 되짚어보게 하는 호소력이 짙은 작품이다. 작가의 시선은 이름도 빛도 없이 따스한 온기를 향기처럼 퍼뜨려 세상을 꽃피우는 사람들을 향하고 있어, 더욱 이 수필의 가치를 드높이게 한다.
세계화 시대를 맞아, 삶의 양식도 세계성의 징후를 보이고 있는 현실이다. 자녀들의 학업 문제로 외국에 나가 사는 경우가 적지 않다. 남홍숙도 아마 추측컨대 취업, 자녀들의 학업 등을 이유로 해서 외국에 일시 거주하는 경우에 해당할 것이다. 이 수필을 통해 봤을 때, 남홍숙은 이렇게 외국에 나가 다른 나라의 선진 문화를 접하면서 사물들을 보는 시야도 한결 넓어지고 견해나 사고방식 등도 보다 폭넓고 다양해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말하자면 우물 안에서 우물의 안쪽과 우물 밖으로 보이는 바깥 세상만을 바라보던 좁은 시각에서 우물 밖으로 나가 우물 바깥에 펼쳐져 있는 넓은 세계를 보면서 세상을 바라다보는 시야와 사고방식 등이 크게 확장된 것이다. 지구가 평평한 원반 같다고 생각한 그리스시대의 시각으로서가 아니라 세계시민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수필의 네 가지 삽화를 읽고 나면, 객관적이고 정확한, 외부로부터 ‘나’를 살피는 성찰과 동시에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게 된 시각의 변화 그리고 타인들의 고통에 동참하는 인간의 아름다운 정신이 작품 속을 관통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II.
사실 문학은 인간의 고통스러운 삶을 극복하는 데 있어서 크다란 위안과 힘이 되어준다. 뿐만 아니라 정신적 물질적으로 결핍된 삶 속에서의 구원의 등불과도 같은 희망이 되며, 꿈을 갖게 하고, 영적인 충만감을 통해 결핍된 것들을 채우는 역할을 한다. 남홍숙의 수필은 이런 문학적 가치를 정확히 향유하고 있다. 네 가지 이야기 중 첫번째 삽화는 수필적 사건의 특성이기도 한 화해해결구도를 갖는다. 한 여고생의 고통스런 삶이 아름다운 한 가족에 의해서 안정을 찾게 된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여고생인 C는 공부만을 강요하는 부모와의 갈등 속에서 스트레스를 받다가 동맥을 긋게 되었는데, 이때 심리치료 자원봉사자 가족이 C를 따뜻하게 돌봐주어서 C가 삶을 복원하는 데 성공했다는 아름답고 따뜻한 휴머니즘 이야기는 전체 삽화와의 유기적 관계 속에서 전략적으로 구축되어 구도미학을 형성하고 있다.
(ㄱ) 정情이 메마른 부모의 욕망 덩어리 속에 c의 평화가 석상처럼 고립되어 있던 차에, 미지의 한 가족이 c의 마음에 초록의 싹을 틔워 주기로 했다.
두 번째 이야기는 신호등에 기대어 붕대를 하얗게 감고 있는 자전거가 보이고, 사고를 낸 자전거 위에는 꽃 뭉치가 몇 다발 안겨 있는 도로변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호주에서는 사고가 난 신호등 주변에서 꽃 뭉치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작가는 매일 아침 이곳을 지나며 딸의 나이에 죽어 간 미지의 청년을 상상하면서, 그 부모의 정신적 통증을 느낀다. 그러면서 맥박 뛰는 아들의 살갗이 만져보고 싶을 부모의 통증을 헤아린다. 작가는 꽃이 시들어 갈 때마다 자신의 가슴에서 바삭거리는 소리를 듣는다. 시든 꽃을 노란 데이지로 바꾸어 놓은 것을 보고, 이에 뒤질세라 작가는 다림질용 투명 분무기에 담아간 물을 뿌려주기도 한다. 이 사건에서 중요한 문학적 장치는 그 꽃에 맺힌 물방울을 그 사고자 부모나 첫 번째 이야기 속 주인공 c의 푸른 눈물로 환기시키는 대목에서 발견할 수 있다.
(ㄴ) 숨은 애써 끊으려하지 않아도 명이 다하면 끊기는 것인데, 하며 c의 마음에 참 평화가 피어나기를 빌어보았다.
이 수필의 문학적 가치는 사건의 유기적 연결성에서 나온다. 제1사건과 제2사건이 다른 체험인데도 작가는 두 이야기 속의 공통적 인자, 즉 고통을 치유하는 인정을 하나로 연결시키는 데 성공하여 공감을 자아내게 만든다. 이를 테면 망자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누군가가 두고 간 꽃 위에 분무기로 물을 뿌리자 맺히는 물방울에서 C의 눈물을 보고 있다는 것은 서사 구조를 탄탄하게 하는 중요한 표현이다. (ㄴ)의 인용문에서 보듯이 C의 영혼을 위해 하는 기도 역시, 아름다운 작가의 영혼이 독자에게 전달된다는 차원에서 바람직하다 하겠다. 이 수필은 그것이 어떠한 형태이든 고통의 칼날은 언제나 우리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작가는 삶에 있어서 필연적으로 따르기 마련인 이런 고통의 실상을 당연히 수필 작품 속에 반영할 수밖에 없는 존재다. 수필은 우리 삶의 진솔한 반영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위대성은 그 고통이 개인적인 것이든 사회적인 것이든 간에 관계없이 작가가 그것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영적으로 성장하며 각성된 의식을 갖게 된다는 데 있다.
(ㄷ) 그 면밀한 숨결로 자전거 청년의 목숨도 되살릴 수 있었으면…….
위 인용문 (ㄷ)은 세 번째 이야기의 마지막 문장이다. 이 수필의 제3사건은 작가가 글로리아 산길을 걸으면서 집채만 한 나무가 폭우에 쓰러져서 오솔길이 막혔다는 데서 출발한다. 며칠 후 산길에 누워있던 나무의 몸체가 통나무계단이 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늪에 빠져있던 벗이 구사일생한 듯 작가 자신이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는 이야기인데, 이 사건은 작가가 이야기를 앞의 사건 2와 그대로 연결시켜 한 수필 속의 각기 다른 삽화가 전체적인 유기체 속에서 관련성을 맺도록 전략적으로 구성했다는 데서 문학적 성취를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남홍숙은 자신의 삶 속으로 들어오는 가슴 아픈 사연들을 외면하지 못하고 이를 자신의 수필 작품 속에 투입시켜 문학적으로 구체화하는 데서 탁월한 재능을 발휘하고 있다. 그러면서 나름대로 갖고 있는 자신의 타자의식과 인간관을 잘 반영하고 있어 형식과 내용면에서 모두 감동을 안겨준다.
(ㄹ) c의 여울 진 눈망울, 붕대감은 자전거, 숲속의 쓰러진 거목이 하늘을 배경으로 오버랩 되고 있었고
마지막 문단은 결말부로서 수필의 표제와 관련하여, 경비행기 한 대가 파란 하늘을 돌며 LIVE 란 단어를 그리고 있는 것을 보는 데서 시작된다. 작가는 하늘에 그려지는 ‘삶’이란 단어를 보면서 모든 이웃의 맥박과 호흡이 소중하게 다가옴을 느낀다. 이 부분은 주제의식이 상상화된 대목으로서 문학적 효과를 극대화하는 데 기여했다. 그러면서 ‘어제의 누군가가 살고 싶어 갈망하던 오늘의 삶, Live’를 반추함으로써 독자와의 공감을 꾀하는 데도 성공하고 있다. 인용된 예문 (ㄹ)에서 보는 바와 같이 작가는 마지막 문단에서 사건1, 사건2, 사건3의 핵심 인자를 종합해서 나열하며, 결속성을 통해 개별적인 사건을 하나의 연속적 사건으로 승화시켜낸다. 그러면서 작가는 마지막으로 ‘행복한 참사람은 타인을 위해 기꺼이 시간을 바칠 수 있는, 내적 자유를 지닌 여유 있는 사람’이라는 걸 깨닫는다. 아울러 영화감독 타르코프스키의 “안락한 생활 속에 자신의 삶을 방치하지 않는, 항상 깨어 있는 불안한 양심”의 차원으로, 현재의 삶에 징한 풍요를 누리고 싶은 욕구를 쏟아내는 것으로 글을 마무리하고 있다. 전자와 후자는 주제의식의 의미화에 이어 주제의식을 상상화하는 것으로서 이런 깨달음과 다짐이 수필의 손맛과 향기를 더해 주었다고 하겠다.
III.
이 수필은 호주 사람들의 인정어린 삶의 진경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작가가 실제적으로 보고 있는 것은 그곳 사람들의 삶에 투영된 선한 인간의 모습이다. 한 자원봉사자의 선행을 접하고, 이웃의 어려움에 무관심하며 살아온 자신을 왜소하게 느끼고 있는 데서 이 수필은 향기도 낸다. 이런 깨달음의 낮은 자리에서 작가가 우리 사회의 각박함 속으로, 타인의 행적을 빌어서라도 향기로운 삶의 필터를 제공하고 싶어 한다는 것은 작가정신의 발로다. 이런 자각은 작가에게 새로운 삶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것은 외국생활이 가져다 준 자기 확인의 결과라 하겠다. 소리 없이 세상을 세워가는 이타주의자의 손길, 그들의 삶을 예사롭지 않게 보게 된 계기는 사는 것에 대하여 자기 안의 자신에게 묻는 반성적 성찰의 힘이다. “세상은 다차원이다. 즐김과 힘듦은 특정인에게 귀속되는 게 아니라 우리 모두가 나누어 갖는 거다.”라는 메시지를 문학적으로 형상화하는 데 성공했다.
“죽은 청년을 추모하고 교통사고를 줄이기 위하여 붕대 감은 자전거를 길가에 세워둔 손길, 썩어갈 수밖에 없는 숲속나무에 새 생명을 부여한 창의적 헌신, 동트는 하늘 위에서 누군가 띄운 Live라는 글자의 상징성, 이 모든 퍼포먼스들이 작가에게 생명으로 다가갔기에, 작가는 향기 나는 주변 모습을 라이브로 생중계하는 수필”을 쓸 수 있었다. 이 수필 속의 사건과 관련하여 삽입된 사진은 작가의 의도대로 리얼리티를 잘 살려 주었다. 이 작품에서 작가가 외국에서 본 외국인들의 아름다운 모습에서 잊고 있었던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는 것은 중요한 수필적 의미를 갖는다. 고통 받는 이웃에 관심을 보이는 모습을 접하면서 의식의 영역이 넓어지고, ‘밖에서 안을 들여다 보는 법’을 배운 것이다. 따라서 이 수필은 안에서 안을 바라다보는 것보다도 밖에서 안을 들여다볼 때 그 안에 있는 모습들이 더 객관적으로 정확히 살필 수 있음을 보여준 좋은 문학작품이라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