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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8년 1월 거제도 표류왜선4척 부산방면으로 릴레이 호송한 「장계(狀啓)」> 해암(海巖) 고영화(高永和)
이번 편에는 앞서 소개한 1847년 12월 거제도 앞바다에 표류해 온 대마도 사신선 4척을 안전하게 나포·조사하고, 인도적 구호를 취한 후 보고한 「장계(狀啓)」에 이어, 통제사가 1848년 1월 7일에 올린 ‘거제도 표류왜선 4척을 조선 수군이 구역별로 밀착 감시하며 부산 방면으로 릴레이 호송한 작전 보고서 즉, 「장계(狀啓)」’를 소개하겠다. 앞서 언급했듯이 여러 편의 표류왜선(漂倭船)에 관한 문건들을 소개한 바가 있다. 특히 일본과 마주하던 최전방 거제도에는 워낙 표왜선(漂倭船)에 관한 다양한 문건이 많지만, 이번 장계는 앞서 소개한 사건에 이어진 문건이라 소개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에 이 글은 1848년(헌종 14년) 1월, 거제도 동남부 일대 지세포, 구조라, 도장포에 정박하여 조사를 마친 대마도 표류 왜선(일본 사신선) 4척을 조선 수군이 구역별로 밀착 감시하며 부산 방면으로 날씨와 사투를 벌이면서 릴레이 호송한 작전 보고서를 담고 있다.
○ 내용을 간략히 요약하면, 이 글은 이미 거제도에서 표왜선(漂倭船) 조사를 마친 4척의 일본 배를 부산 왜관으로 호송하고 난 후의 결과를 보고한 ‘호송 작전 장계’다.
**릴레이 호송 : 율포 권관(지세포 강구에서 인계) ➔ 지세포 만호(양주암에서 인계) ➔ 조라포 만호(외포에서 인계) ➔ 장목포 가장(假將) (각도에서 인계) ➔ 천성 만호(가덕도, 병산도 마거리, 율구미) ➔ 안골포 만호(진해 안골미, 다대포 앞바다) ➔ 부산 다대포 만호(왜관 선창) ➔ 부산 초량 왜관으로 신속하게 인계됨.
① 처음 거제도 주변(지세포·율포 등)에 왜선 4척(큰 배 2척, 빠른 배 2척)이 정박하자 조선 수군이 즉각 감시 및 문초를 시작했고 이어 ② 부산 왜관까지 릴레이 호송이 시작되었다. 거제도의 각 구역 책임자들(율포 ➔ 지세포 ➔ 조라포 ➔ 장목포 ➔ 가덕도 천성)이 바통을 넘기듯 왜선들을 밀착 마크하며 가덕도(천성)를 거쳐 진해(안골포)까지 안전하게 압송했다. ③ 당시 날씨와의 사투를 벌였다. 한겨울 밤낮으로 몰아치는 거센 맞바람과 조류 때문에 배가 전진하지 못해, 매일 밤 주변 강구에 왜선들을 묶어두고 밤샘 감시를 이어갔다. ④ 결국 우여곡절 끝에 왜선 4척 모두 경상좌도(부산 다대포) 수군에 무사히 인계 완료했다. ⑤ 지휘관들의 시련과 처벌은 피할 수 없었다. 호송을 마친 수군 지휘관들은 복귀 길에 겨울철 폭풍(북서풍)을 만나 돛이 부러진 채 2~3일간 바다를 표류하는 목숨 건 사투를 벌였다. 그러나 왜선들이 순풍을 타고 외양으로 직항하는 것을 통제하지 못해 중간 인계 규정(군율)을 어겼다는 이유로, 살아 돌아온 옥포 만호와 조라포 만호는 결국 체포되어 곤장형을 받게 되었다. 물론 갑작스런 날씨 변화로 인한 억울한 면도 있겠지만 군율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조치였다.
* 덧붙여 이번 「1848년 1월7일(음) 장계(狀啓)」는 승정원에 보고된 실전 군사 행정 문서로, 발신자가 통제사(統制使) 서상오(徐相五)이고 수신자는 승정원(承政院)이며, 출전은 『각사등록(各司謄錄)』과 『통제영계록(統制營啓錄)』이다.
○ 이번 「장계(狀啓)」는 거제도 일대(지세포, 율포, 구조라포 등)에 정박한 표류왜선 4척(큰 배 2척, 빠른 배 2척)을 조선 수군이 밀착 감시하며, 관할 밖으로 안전하게 이동하도록 구역별로 인계 호송하는 상황 보고서다.
이러한 사료의 지리적 배경에는 거제도의 수군 진보의 특징이 드러난다. 이 글에 등장하는 지명들(지세포, 율포, 조라포, 옥포, 도장포)은 모두 경상도 거제도 주변의 핵심 수군 기지(진보) 또는 주요 항구들이다. 왜선들이 거제도 해안을 따라 이동하자, 각 구역의 책임자들(율포 권관 ➔ 지세포 만호 ➔ 조라포, 옥포 만호)이 릴레이 형식으로 바통을 넘기며 영해 밖으로 호송하는 작전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또한 철저한 시간대별 보고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군사 행정의 치밀함을 알 수 있다. 미시(13~15시), 사시(9~11시), 신시(15~17시), 술시(19~21시), 해시(21~23시) 등 왜선의 출발, 인계, 악천후로 인한 정박 시간이 분 단위처럼 꼼꼼하게 기록되어 조선 수군의 보고 체계가 매우 신속하고 정밀했음을 보여준다. 당시 항해의 한계를 반영하고 있다. "바람과 조류가 모두 거스르고 밤이 어두워짐(風水俱逆 且値夜暗)"이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 당시 돛과 노에 의존하던 전선들은 맞바람이나 야간 항해가 불가능하여 인근 진보 앞바다에 왜선들을 묶어두고 밤샘 감시를 지시하는 현실적인 군사 작전이 드러난다. 그리고 당시 선박의 기동성 차이를 파악할 수 있다. "배들의 빠르고 둔함이 현격하게 다름(同船疾鈍懸殊)"라는 대목에서 조선 수군이 왜선의 종류(대선과 빠른 비선)에 따른 기동성 차이를 인지하고, 군관을 추가 배치하여 분리 호송하는 유연한 대처 능력을 볼 수 있다.
○ 이어서 거제도 동남부 해상에서 거제도 동쪽 해안을 거쳐 부산 가덕도 및 진해(안골포) 방면으로 북상하는 호송 경로가 매우 구체적으로 그려졌다. 이는 조선 수군들이 구역별로 철저하게 바통을 터치하며 왜선들을 호송(영호)하는 군사 행정 기록이다. 최초 1847년 12월 12일 표류왜선은 지세포(知世浦) 강구에 왜대선(倭大船) 1척, 같은 진(鎭) 관할인 구조라포(舊助羅浦)에 왜비선(倭飛船, 빠른 배) 2척, 율포(栗浦) 관할인 도장포(陶藏浦)에 왜대선 1척 등 도합 4척이 정박하였다. 이후 16일~25일 사이에 릴레이 호송이 시작되었다.
① 구조라포(舊助羅浦) 정박 왜비선 2척(빠른 배) : 지세포 만호(양주암에서 인계) ➔ 조라포 만호(외포에서 인계) ➔ 장목포 가장(假將) (각도에서 인계) ➔ 천성 만호(가덕도, 병산도 마거리) ➔ 안골포 만호(진해 안골미) ➔ 부산 다대포 만호로 신속하게 인계되었다.
② 지세포 정박 왜대선 1척(큰 배) : 지세포 강구에서 출발했으나 느린 속도와 맞바람 때문에 옥포(능포)를 거쳐 옥포 강구에 묶여 있는 상태나, 곧 호송을 할 것이다.
③ 도장포 왜대선 1척(큰 배) : 율포 만호가 지세포 강구에서 지세포 만호에게 인계, 이어 곧 호송하여 양주암에서 조라포 만호에게 인계 예정임.
○ 조선 수군의 방어선과 왜선의 이동 경로 : 지세포 만호 (양주암) ➔ 조라포 만호 (외포) ➔ 장목포 가장(假將) 각도(거제 북단) ➔ 가덕도 천성진(병산도, 마거리, 율구미) ➔ 진해 안골포 만호. 이는 거제도를 동쪽으로 돌아서 남해안에서 부산(좌도)·경상우도 수군 관할의 경계선(가덕도, 안골포)으로 나가는 표준 항로다. 조선 수군이 이들을 영해 밖이나 지정된 통로로 안전하게 '압송'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기후(바람)의 절대적인 영향] 이번 문서에서도 "갑자기 북서풍이 휘몰아침(西北風不時遽起)", "맞바람이 불고 밤이 어두워짐(風逆夜暗)" 등의 표현이 반복된다. 특히 옥포 만호의 보고를 보면, 26일 낮에 바람이 잠깐 멈추어 출발하려 했으나 불시의 북서풍(역풍)을 만나 결국 한 걸음도 못 나가고 원래 자리인 옥포 강구로 되돌아와 밤샘 감시를 한다. 돛과 노에 의존하는 대선(큰 배)의 항해 한계가 아주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인물들의 직책(가장, 권관, 만호)] 정식 만호(종4품 수군 무관) 외에도 장목포 가장(假將) 김인성이 등장한다. '가장'은 정식 지휘관이 공석이거나 자리를 비웠을 때 임시로 임명된 지휘관이다. 군사 요충지인 장목포를 임시 지휘관이 책임지면서도 한 치의 오차 없이 인계 호송 임무를 수행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 장계 마지막 부분은 거제도를 거쳐 북상하던 왜선 4척의 호송 작전이 어떻게 최종 마무리되었는지 보여주는 결말부다. 특히 문서의 가장 마지막에 ‘도광 28년(道光 二十八年) 1월 7일(正月初七日)’이라는 정확한 연도가 등장한다. 청나라 도광 28년은 조선 헌종 14년, 즉 1848년 1월 7일이다. 이 글은 1847년 12월 말부터 1848년 1월 초까지 통제영 통제사가 왕에게 올린 최종 종합 보고서다.
*[최종 호송 결과] 왜선 4척(대선 2척, 비선 2척) 모두 무사히 경상좌도(부산 다대포)로 넘겨 보냈다. 호송을 마친 수군 지휘관들이 복귀하던 중 겨울철 극심한 북서풍(계절풍)을 만나 돛이 부러지고 며칠씩 바다를 표류하는 사투를 벌였다. 사건이 마무리되면서 왜선들이 정해진 중간 기장(앞 수군진영)을 거치지 않고 순풍을 타고 외양으로 질러가게 방치했다는 이유로, 옥포만호와 조라포만호가 체포되어 곤장을 맞게 되었다.
○ [사료 해설 및 역사적 의미] 이번 호송 사건은 조선 후기 헌종 시대인 1848년 1월 초 겨울에 일어난 사건이다. 한겨울 남해안의 날씨가 얼마나 혹독했는지, 당시 수군들이 겨울철 북서풍과의 사투를 벌이는 고초가 생생하게 담겨 있다. 안골 만호는 부산 다대포에 왜선을 넘겨주고 복귀하다가 북서풍에 밀려 장림포까지 떠내려갔다. 특히 옥포만호 전득관과 조라포만호 조원의 복귀 과정은 처절하다. 한겨울 갑자기 터진 북서풍(겨울 계절풍)에 돛이 다 부러진 채(鴟帆俱折) 바다 한가운데서 사흘 밤낮, 이틀 밤낮을 표류했다. 이들은 오직 군사들이 손으로 노를 젓는 고역(櫓役寸寸前進)을 치르며 간신히 목숨만 건져 복귀했다.
*[왜선들의 영악함과 조선의 엄격한 군율(변례 위반)] 호송 중이던 왜대선들은 바다 한가운데로 나가자마자 순풍을 만나자, 조선 수군의 통제를 무시하고 돛을 높이 달아 외양(바깥 바다)으로 쾌속 질주해 다대포로 직행했다. 조선 수군의 배는 돛이 부러져 표류할 정도로 성능이 떨어졌기에, 순풍을 탄 왜선을 물리적으로 막아서거나 통제할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 왜선 4척을 다대포까지 무사히 압송하는 임무는 완수했으나, 조선 조정의 군율은 냉혹했다. 규정상 거제도에서 부산으로 갈 때 거쳐야 하는 중간 기지(앞 수군진영)들을 패스하고 왜선들이 마음대로 직항하게 방치했다는 이유로, 바다에서 목숨을 걸고 살아 돌아온 옥포만호와 조라포만호는 결국 체포되어 곤장형(拿致臣營 嚴棍懲礪)을 받게 된다. 변방 통제의 군율이 조선 후기까지 얼마나 엄격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1848년 1월 거제도 표류왜선 4척 부산 방면으로 릴레이 호송한 「장계(狀啓)」>
승정원(承政院)에서 열어 보십시오. 지난달 12일, 지세포(知世浦) 강구에 왜대선(倭大船) 1척, 같은 진(鎭) 관할인 구조라포(舊助羅浦)에 왜비선(倭飛船, 빠른 배) 2척, 율포(栗浦) 관할인 도장포(陶藏浦)에 왜대선 1척 등 도합 4척이 정박하였습니다. 이들의 정황을 차례로 문초(問情)한 연유는 이미 급히 장계를 올린 바 있습니다.[1847년 12월12일]
*[16일 : 율포에서 지세포 관할(구조라포)로 인계] 16일 해시(오후 9시~11시)에 작성되어 도달한 율포 권관(栗浦權管) 박종욱(朴宗郁)의 보고에 따르면, "본 진(鎭) 관할 도장포에 정박했던 왜대선 1척이 당일 미시(오후 1시~3시)에 출발하였습니다. 이에 권관이 직접 이끌고 호송(領護)하여 지세포 관할인 구조라포 내도(內島) 앞바다까지 전진하였고, 당일 술시(오후 7시~9시)에 그곳의 영호장(領護將) 김광종(金光宗)에게 관례에 따라 인계한 뒤 본 진으로 돌아왔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16일 밤 : 악천후로 지세포 정박] 추가로 같은 날 같은 시간에 도달한 지세포 만호(知世浦萬戶) 김득조(金得祖)의 보고와, 당일 같은 시간에 도달한 본 진 영호장 김광종의 보고에 따르면, "왜대선 1척을 당일 술시에 율포 권관이 이끌고 와서 인계해 주었습니다. 이에 호송하여 전진하려 했으나, 바람과 조류가 모두 거스르고 밤이 어두워져 도저히 전진할 길이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당일 해시(오후 9시~11시)에 지세포 강구 앞바다로 이동해 정박시켰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먼저 정박해 있던 왜비선 2척과 함께 지키도록 수호장(守護將) 김용이(金龍伊)에게 엄히 신칙(명령)하였습니다.
*[18일 : 왜비선 2척의 이동] 추가로 18일 해시에 작성되어 도달한 지세포 만호의 보고와, 당일 같은 시간에 도달한 수호장 김용이의 보고에 따르면, "구조라포 강구에 정박해 있던 왜비선 2척이 당일 미시에 출발하였습니다. 호송하여 전진하려 했으나 바람이 거스르고 해가 저물어 전진할 길이 없었기에, 겨우겨우 끌고 와서 당일 해시에 본 진 강구 앞바다로 이동시켜 정박했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먼저 정박해 있던 왜대선 1척과 나중에 이동해 온 왜비선 2척을 계속 지키게 하였습니다. 또한 구조라포 강구에 뒤처져 남은 왜대선 1척을 특별히 감시하라는 뜻을 수호장 김광종에게 엄히 지시하였습니다.
*[24일~25일 : 옥포 관할로 최종 인계 및 복귀] 추가로 25일 자시(오전 11시~오전 1시)에 작성되어 도달한 지세포 만호 김득조의 보고에 따르면, "본 진 강구에 먼저 정박했던 왜대선 1척과 나중에 이동해 온 왜비선 2척 등 도합 3척이 24일 사시(오전 9시~11시)에 동시에 출발하였습니다. 만호가 직접 이끌고 호송하여 전진하는데, 배들의 속도(빠르고 둔함) 차이가 너무 심해 왜대선 1척이 뒤처졌습니다. 이에 군관 박인찬(朴仁贊)을 영호장으로 임명하여 그 배를 호송하게 하고, 속도가 빠른 비선 2척을 먼저 전진시켰습니다. 만호가 비선들을 이끌고 옥포(玉浦) 관할인 양주암(楊洲巖) 앞바다에 도착하여 당일 신시(오후 3시~5시)에 조라포 만호에게 인계한 뒤 본 진으로 돌아오려는데, 거센 조류와 바람을 만나 이제야 간신히 복귀하였습니다. 그리고 구조라포 강구로 이동해 있는 (나머지) 왜대선 1척을 마저 감시하기 위해 즉시 다시 그곳으로 달려가는 중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동시에 도달한 본 진 영호장 박인찬의 보고에 따르면, "뒤처진 왜대선 1척을 잘 이끌고 옥포 관할 양주암 앞바다에 도착하여, 당일 유시(오후 5시~7시)에 옥포 만호에게 인계한 뒤 이제 막 돌아왔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24일 : 왜비선 2척과 왜대선 1척의 분리 인계] 연유를 급히 보고하였습니다. 추가로 24일 술시(오후 7시~9시)에 작성되어 도달한 조라포 만호(助羅浦萬戶) 조원(趙洹)의 보고에 따르면, "왜비선 2척을 당일 신시(오후 3시~5시)에 지세포 만호가 이끌고 와서 인계해주었습니다. 이에 만호가 직접 이끌고 호송하여 전진하려 했으나, 맞바람이 불고 밤이 어두워져 도저히 전진할 길이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당일 같은 시간에 거제도 경계 외곽인 외포(外浦) 강구로 이동시켜 정박하고 감시하였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추가로 같은 날 같은 시간에 도달한 옥포 만호(玉浦萬戶) 전득관(全得寬)의 보고에 따르면, "왜대선(느려서 뒤처졌던 배) 1척을 당일 유시(오후 5~7시)에 지세포 영호장이 이끌고 와서 인계해주었습니다. 이에 호송하여 전진하려 했으나 맞바람이 불고 밤이 어두워져 형세상 전진하기 어려웠으므로, 당일 술시에 본 진 관할인 능포(凌浦) 앞바다에 닻을 내리게 하고 감시하였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26일 : 옥포의 왜대선 이동 지연] 추가로 26일 유시(오후 5시~7시)에 작성되어 도달한 옥포 만호의 보고에 따르면, "능포 앞바다에 닻을 내렸던 왜대선 1척은 아무 탈 없이 밤을 보낸 뒤, 당일 미시(오후 1시~3시)에 바람과 조류가 잠시 가라앉았습니다. 이에 닻을 올리고 호송하여 전진하려는데, 북서풍이 갑자기 세차게 일어나 도저히 전진할 길이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당일 같은 시간에 본 진(옥포) 강구 앞바다로 이동시켜 정박하고 감시하였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27일 : 지세포에 남았던 나머지 왜대선 1척의 이동] 추가로 27일 유시(오후 5시~7시)에 작성되어 도달한 지세포 만호 김득조(金得祖)의 보고에 따르면, "본 진 관할 구조라포 강구 앞바다에 뒤처져 남아 있던 왜대선 1척이 당일 오시(오전 11시~오후 1시)에 출발하였습니다. 만호가 이끌고 호송하려 했으나 맞바람이 불고 밤이 어두워져 도저히 전진할 길이 없었으므로, 당일 같은 시간(밤이 된 시간)에 본 진 강구 앞바다로 이동시켜 정박하고 감시하였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26일~27일 : 왜비선 2척의 가덕도 방면 쾌속 이동] 추가로 27일 미시(오후 1시~3시)에 작성되어 도달한 조라포 만호 조원의 보고에 따르면, "외포에 정박해 있던 왜비선 2척이 26일 오시에 출발하였습니다. 이에 만호가 이끌고 장목포(長木浦) 관할인 각도(角島) 앞바다에 도착하여, 당일 신시에 그곳의 가장(假將, 임시 지휘관)에게 인계한 뒤 본 진으로 돌아오려는데, 거센 조류와 바람을 만나 이제야 겨우 돌아왔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추가로 27일 인시(오전 3시~5시)에 작성되어 도달한 장목포 가장 김인성(金寅聲)의 보고에 따르면, "왜비선 2척을 26일 신시에 조라포 만호가 이끌고 와서 인계해주었습니다. 이에 가장이 이끌고 천성(天城, 가덕도 천성진) 관할인 병산도(竝山島) 앞바다에 도착하여, 당일 술시에 천성보 만호에게 인계한 뒤 복귀하려는데, 거센 조류와 바람을 만나 이제야 간신히 복귀하였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추가로 26일 해시(오후 9시~11시)에 작성되어 도달한 천성 만호(天城萬戶) 김성옥(金聲玉)의 보고에 따르면, "왜비선 2척을 당일 술시에 장목포 가장이 이끌고 와서 인계해주었습니다. 만호가 이끌고 호송하여 전진하려 했으나 바람과 조류가 모두 거슬러, 당일 같은 시간에 본 보(堡) 관할인 마거리(磨巨里) 앞바다로 이동시켜 정박하고 감시하였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추가로 27일 오시에 작성되어 도달한 천성 만호의 보고에 따르면, "마거리에 정박해 있던 왜비선 2척이 당일 사시(오전 9시~11시)에 출발하였습니다. 만호가 이끌고 가덕(加德) 관할인 율구미(栗仇味) 앞바다에 도착하여, 호송장인 안골 만호(安骨萬戶)에게 인계한 뒤 본 진으로 돌아왔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추가로 28일 유시에 작성되어 도달한 안골 만호 양학선(梁學善)의 보고에 따르면, "왜비선 2척을 27일 오시에 천성 만호가 이끌고 와서 인계해주었습니다...“
*[안골만호의 보고 마무리 : 왜비선 2척 다대포 인계] 그리하여 탈 없이 잘 이끌고 호송하여, 당일 유시(오후 5시~7시)에 관례에 따라 다대포(多大浦)에 인계하였습니다. 그러나 본 진으로 돌아오려 할 때 갑자기 북서풍이 크게 몰아쳐, 바람을 따라 다대포 관할인 장림포(長林浦)까지 떠밀려 가 밤을 지새운 뒤 이제야 간신히 복귀하였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12월 29일 : 옥포만호의 왜대선 1척 호송과 표류 시련] 추가로 올해(1848년) 정월 초이틀(1월2일) 진시(오전 7시~9시)에 작성되어 도달한 옥포 만호(玉浦萬戶) 전득관(全得寬)의 보고에 따르면, "본 진 강구 앞바다에 이동해 정박해 있던 왜대선 1척이 지난 12월 29일 미시(오후 1시~3시)에 출발하였습니다. 이에 만호가 직접 이끌고 호송하여 전진했는데, 바다 한가운데에 이르자 저 왜선이 순풍을 만나 돛을 달고 외양을 통해 경상좌도 방면으로 곧장 건너가 버렸습니다. 이에 형세상 붙잡아 세우기 어려워 그대로 이끌고 다대포에 도착하여 당일 술시(오후 7시~9시)에 인계하였습니다. 그러나 복귀할 때 갑자기 북서풍이 크게 몰아쳐 솔개돛(치범)이 모두 부러지고 거친 바다에 표류하게 되었습니다. 사흘 밤낮을 경과하면서 노를 젓는 고역을 치르며 한 치 한 치 전진한 끝에 이제야 겨우 본 진으로 돌아왔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12월 29일~정월 3일 : 지세포에 남았던 마지막 왜대선 1척의 이동] 추가로 같은 날 해시(오후 9시~11시)에 작성되어 도달한 지세포 만호(知世浦萬戶) 김득조(金得祖)의 보고에 따르면, "본 진 강구 앞바다에 정박해 있던 왜대선 1척이 당일 미시에 출발하였습니다. 만호가 이끌고 호송하려 했으나 맞바람이 불고 밤이 어두워져 도저히 전진할 길이 없었으므로, 당일 해시에 옥포 관할인 옥면포(玉面浦) 강구 앞바다로 이동시켜 정박하고 감시하였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추가로 정월 초사흘(1월3일) 자시(오전 11시~오전 1시)에 작성되어 도달한 지세포 만호의 보고에 따르면, "옥면포 강구에 정박했던 왜대선 1척이 초삼일 미시에 출발하였습니다. 이에 만호가 이끌고 옥포 관할 양주암(楊洲巖) 앞바다에 도착하여, 당일 신시(오후 3시~5시)에 조라포 만호에게 인계한 뒤 복귀하려는데 역풍과 거센 조류를 만나 이제야 겨우 돌아왔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정월 3일 : 조라포 만호의 마지막 왜대선 호송과 표류 시련] 추가로 정월 초닷새 해시에 작성되어 도달한 조라포 만호(助羅浦萬戶) 조원(趙洹)의 보고에 따르면, "왜대선 1척을 초삼일 신시에 지세포 만호가 이끌고 와서 인계해주었습니다. 이에 만호가 이끌고 호송하였는데, 바다 한가운데에 이르자 저 왜선이 순풍을 만나 돛을 달고 외양을 통해 경상좌도 방면으로 곧장 건너가 버렸습니다. 이에 형세상 붙잡아 세우기 어려워 그대로 이끌고 부산 다대포에 도착하여 초사흘 인시(오전 3시~5시)에 인계하였습니다. 그러나 복귀할 때 갑자기 북서풍이 휘몰아쳐 거친 바다에 표류하게 되었고, 이틀 밤낮을 경과하며 노를 젓는 고역을 치르며 한 치 한 치 전진한 끝에 이제야 겨우 돌아왔습니다"라고 보고하였습니다.
*[종합 결론 및 지휘관 처벌 부문] 이와 같은 연유들로 치보(급한 보고)가 도착하였습니다. 위 항의 지세포 강구에 정박했던 왜대선 1척, 같은 진 관할 구조라포에 정박했던 왜비선 2척, 율포 관할 도장포에 정박했던 왜대선 1척 등 도합 4척은 이제 차례대로 모두 (경상좌도로) 넘겨보냈습니다. 그러나 호송할 때 바로 앞의 기장(前站, 중간 인계 구역들)에 제대로 인계하지 않고, 왜선들이 마음대로 외양을 통해 경상좌도로 곧장 건너가게 내버려 둔 것은 변방의 군사 규례(邊例)를 위반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호송 책임 장수인 옥포 만호 전득관과 조라포 만호 조원을 신(臣)의 군영으로 잡아 와, 엄하게 곤장을 쳐서(嚴棍) 처벌하고 경계(懲礪)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러한 연유를 급히 장계로 올리니, 차례를 갖추어 임금님께 잘 보고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도광 28년(1848년) 정월 초일곱일(1월7일).
[承政院開拆. 去月十二日知世浦江口止泊倭大船一隻 同鎭境舊助羅浦止泊倭飛船二隻, 栗浦境陶藏浦止泊倭大船一隻 合四隻 次第問情 緣由已爲馳啓爲白有在果節到. 付十六日亥時成貼栗浦權管朴宗郁馳報內 本鎭境陶藏浦止泊倭大船一隻 當日未時離發. 故權管領護前進于知世浦境 舊助羅浦內島前洋 同日戌時同鎭領護將金光宗處 依例交付後, 還鎭是如爲白有旀. 追于到付同日同時成貼知世浦萬戶金得祖馳報內 同日同時到付本鎭領護將金光宗馳報內 倭大船一隻 當日戌時栗浦權管領來交付. 故領護前進之際 風水俱逆 且値夜暗 萬無前進之路 同日亥時同浦江口前洋移泊是如爲乎等以. 與先爲止泊倭飛船二隻, 同爲守護之意, 守護將金龍伊處申飭是如爲白有旀. 追于到付十八日亥時成貼同萬戶馳報內 同日 時到付守護將金龍伊馳報內 舊助羅浦江口止泊倭飛船二隻, 當日未時離發. 故領護前進之際, 風逆日暮 無前進之路 僅僅領曳 同日亥時本鎭江口前洋移泊是如爲乎等以. 先爲止泊倭大船一隻, 後爲移泊倭飛二隻, 仍爲守護爲乎旀. 舊助羅浦江口落後倭大船一隻, 各別守護之意 守護將金光宗處申飭是如爲白有旀. 追于到付二十五日子時成貼知世浦萬戶金得祖馳報內 本鎭江口先爲止泊倭大船一隻, 後爲移泊倭飛船二隻 合三隻, 二十四日巳時同爲離發. 故萬戶領護前進之際, 同船疾鈍懸殊, 倭大船一隻段落後 故軍官朴仁贊 定領護將 使之領護是遣, 飛船二隻段, 先爲前進. 故萬戶領到于玉浦境楊洲巖前洋 同日申時助羅浦萬〈戶〉處交付後 還鎭之際, 逢逆水風, 今僅還鎭, 而舊助羅浦江口移泊倭大船一隻守護次 仍爲馳往爲乎旀. 一時到付本鎭領護將朴仁贊馳報內, 落後倭大船一隻, 逢授領到于玉浦境楊洲巖前洋, 同日酉時同浦萬戶處交付後, 今纔還歸是如爲乎等以緣由馳報是如爲白有旀. 追于到付二十四日戌時成貼助羅浦萬戶趙洹馳報內 倭飛船二隻, 當日申時知世浦萬戶領來交付. 故萬戶領護前進之際, 風逆夜暗, 萬無前進之路 同日同時巨濟境外浦江口移泊守護是如爲白有旀. 追于到付同日同時成貼玉浦萬戶全得寬馳報內, 倭大船一隻 同日酉時知世浦領護將領來交付, 故領護前進之際, 風逆夜暗, 勢難前進, 同日戌時本鎭境凌浦前洋下碇守護是如爲白有旀. 追于到付二十六日酉時成貼同萬戶馳報內 凌浦前洋下碇倭大船一隻 無弊經夜後, 當日未時風水暫歇. 故擧碇領護之際 西北風不時遽起, 萬無前進之路, 同日同時本鎭江口前洋移泊守護是如爲白有旀. 追于到付二十七日酉時成貼知世浦萬戶金得祖馳報內, 本鎭境舊助羅浦江口前洋落後倭大船一隻 當日午時離發, 故萬戶領護之際, 風逆夜暗, 萬無前進之路 同日同時本鎭江口前洋移泊守護是如爲白有旀. 追于到付同日未時成貼助羅浦萬戶趙洹馳報內, 外浦移泊倭飛船二隻 二十六日午時離發. 故萬戶領到于長木浦境角島前洋, 同日申時同鎭假將處交付後, 還鎭之際, 逢逆水風, 今纔還鎭是如爲白有旀. 追于到付同日寅時成貼長木浦假將金寅聲馳報內 倭飛船二隻 二十六日申時助羅浦萬戶領來交付. 故假將領到于天城境, 竝山島前洋, 同日戌時同堡萬戶處交付後 還鎭之際 逢逆水風, 今纔還鎭是如爲白有旀. 追于到付二十六日亥時成貼天城萬戶金聲玉馳報內, 倭飛船二隻, 同日戌時長木浦假將領來交付. 故萬戶領護前進之際 風水俱逆 同日同時本堡境磨巨里前洋移泊守護是如爲白有旀. 追于到付二十七日午時成貼同萬戶馳報內, 磨巨里移泊倭飛船二隻 當日巳時離發. 故萬戶領到于加德境栗仇味前洋 護送將安骨萬戶處交付後, 還鎭是如爲白有旀. 追于到付二十八日酉時成貼安骨萬戶梁學善馳報內 倭飛船二隻, 二十七日午時天城萬戶領來交付. 故無弊領護, 同日酉時依例多大浦交付後 還鎭之際, 西北風不時大作, 從風轉漂于多大境長林浦, 經夜後, 今僅還鎭是如爲白有旀. 追于到付今正月初二日辰時成貼玉浦萬戶全得寬馳報內, 本鎭江口前洋移泊倭大船一隻 去十二月二十九日時. 離發. 故萬戶領護前進, 及到半洋, 同船逢順風掛帆, 以外洋直渡左道. 故勢難挽執 仍爲領到于多大浦, 同日戌時交付後 還鎭之際 西北風不時大作 鴟帆俱折, 漂盪大洋, 經過三晝夜 以櫓役寸寸前進 今纔還鎭是如爲白有旀. 追于到付同日亥時成貼知世浦萬戶金得祖馳報內 本鎭江口前洋移泊倭大船一隻 當日未時離發. 故萬戶領護之際 風逆夜暗 萬無前進之路 同日亥時玉浦境玉面浦江口前洋 移泊守護是如爲白有旀追于到付初四日子時成貼同萬戶馳報內, 玉面浦江口移泊倭大船一隻, 初三日未時離發. 故萬戶領到. 于玉浦境楊洲巖前洋 同日申時助羅浦萬戶處交付後 逢逆水風 今纔還鎭是如爲白有旀. 追于到付初五日亥時成貼助羅浦萬戶趙洹馳報內 倭大船一隻 初三日申時知世浦萬戶領來交付. 故萬戶領護是如乎, 及到半洋, 同船逢順風掛帆 由外洋直渡在[左]道. 故勢難挽執 仍爲領到于多大浦 初四日寅時交付後 還鎭之際 西北風遽起 漂盪大洋 經過二晝夜 以櫓役寸寸前進 今纔還鎭是如. 爲等如馳報是白置有亦 右項知世浦江口止泊倭大船一隻 同鎭境舊助羅浦止泊倭飛船二隻 栗浦境陶藏浦止泊倭大船一隻 合四隻, 今已次第越送是白在果, 護送之際 不能交付前站 任其直渡左道者 有違邊例是白乎等以. 護送將玉浦萬戶全得寬 助羅浦萬戶趙洹 拿致臣營 嚴棍懲礪爲白乎旀. 緣由馳啓爲白臥乎事是白良厼 詮次善啓向敎是事. 道光二十八年正月初七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