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본문: 갈 1:6~10
제목: 그리스도의 복음 이외 다른 복음은 없다
● 기독교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확실히 정착하고 다른 복음에 의하려 교란되지 않는 견고한 신앙입니다. 아래 말씀은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 지역의 신자들에게 보낸 편지 중 아주 강력하고 단호한 어조가 담긴 대목입니다.
| 갈1:6.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 7.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
위 성경 구절이 담고 있는 핵심적인 의미와 배경을 간단히 짚어 드리겠습니다. “다른 복음은 없나니”, 이 말씀은 바울이 복음의 유일성을 강조한 것입니다. 당시 갈라디아 교회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 외에 유대교의 율법(할례 등)을 지켜야 구원을 받는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들어왔습니다. 바울은 이를 진리에서 벗어난 가짜의 ‘다른 복음’이라고 못 박은 것입니다. “너희를 교란하여”, 여기서 ‘교란하다’라는 표현은 단순히 마음을 복잡하게 하는 수준을 넘어, 기초를 흔들어 뒤엎으려 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공동체의 신앙적 정체성을 혼란에 빠뜨리는 외부의 영향을 경계하는 것이죠. 이 교란을 다른 번역으로 보면 느낌이 더 구체적일 것입니다.
공동번역) 사실 다른 복음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다만 어떤 사람들이 여러분의 마음을 뒤흔들고(NIV: throwing you into confusion)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질시키려(pervert the gospel of Christ)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새번역) 실제로 다른 복음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몇몇 사람이 여러분을 교란시켜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왜곡(distort)시키려고 할 뿐입니다. 현대인의성경) 사실 다른 복음이란 있을 수가 없습니다. 다만 어떤 사람들이 여러분을 혼란 가운데 빠뜨리고(KJV: trouble you, NASB: disturbing you)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질시키려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
교란하는 것은 마음을 뒤흔들고 혼란 가운데 빠뜨리는 것입니다. 누군가 기독교를 표방하며 여러분에게 어떤 주장을 하는데 그걸 듣고 마음이 뒤흔들리고 혼란이 생긴다면 100% 이단이거나 다른 복음입니다. 그러한 교란이 느껴지는 것은 성령이 주시는 분별력이고 주님의 음성을 들어온 결과입니다. 성도는 하루 중 상당한 시간을 성경 읽기와 묵상에 투자해야 합니다.
| 요10:27.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28.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snatch…out of my hand) |
우리의 참 목자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을 들었고 현재도 성령으로 듣는 양들인 참 성도는 잠시의 교란을 받을지라도 마음과 신앙을 다른 복음에게 빼앗기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복음의 본질은 인간의 행위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에 있습니다. 바울은 여기에 무언가를 덧붙이거나 수정하는 행위 자체가 복음의 순수성을 훼손하고 완전히 다른 것으로 변질시키는 위험한 시도라고 보았습니다. 우리가 믿는 것조차도 우리의 행위로만 보아서는 안 됩니다. 믿음조차도 궁극적으로는 우리 인간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믿음은 선물로 받은 겁니다.
| 엡2:8.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not from yourselves) 하나님의 선물이라 9.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
갈1:6~7 말씀은 현대에도 믿음과 복음의 본질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분별하게 만듭니다. 수많은 정보와 가치관이 섞여 있는 세상에서, 내가 붙들고 있는 ‘변하지 않는 진리’가 무엇인지 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는 말씀입니다.
● 갈라디아서1장6, 7절 말씀은 기독교 역사 전반에서 이단(Heresy)을 정의하고 경계하는 가장 강력한 성경적 근거 중 하나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이 구절이 이단 문제와 어떻게 직결되는지 세 가지 측면에서 정리해 드릴게요. 다른 복음은 '본질'의 왜곡과 복음에 가감(加減)하는 수작을 부립니다. 기독교계 이단은 아예 새로운 종교를 만들기보다, 기존의 복음에 무언가를 더하거나(Plus) 중요한 것을 빼버리는(Minus) 특징이 있습니다. 당시 상황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할례와 율법 준수’를 더해야 구원을 얻는다는 주장이 있었다고 합니다. 오늘날의 이단들 역시 ‘예수만으로는 부족하다’며 특정 교주의 가르침, 특별한 체험, 혹은 자신들만의 교리를 덧붙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본질이 변개된 것을 ‘다른 복음’이나 이단의 가르침으로 보았습니다. 하와의 사례를 보면 복음이 변개되는 패턴이 보입니다.
| 창2:16.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17.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surely die) 하시니라 |
| 창3:2.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3.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you will die) 하셨느니라 |
하와는 아담이 들은 말씀과 같은 듯하지만 조금 다르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단이나 다른 복음의 ‘교란’은 공동체의 질서를 무너뜨리고 파괴합니다. 이들의 교란, 파괴행위는 1차적으로 교회의 신앙공동체를 해치지만 2차적으로는 가정 공동체를 파괴하고 심지어는 사회와 국가 공동체를 혼란하게 합니다. 이단 때문에 가정불화와 이혼이 생기는 것은 애교이고 약과에 불과합니다. 세월호 사건, 코로나 대란 때 이단과 신비주의 교회의 어처구니없던 망동, 신촌쥐와 툉일교의 정교유착을 보시지 않았습니까? 성경에서 예수님은 이들을 양의 옷을 입은 이리에 비유하기도 하는데, 외형은 비슷하지만 결과적으로 공동체를 해체하는 이단의 속성을 정확히 짚어내고 있습니다.
| 마7:15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현대인의성경: 속은 굶주린 이리떼와 같다) |
선지자인 척 하지만 실제로는 거짓 선지자들인 악당들이 도처에 있습니다.
● 기독교는 이웃을 사랑하는 관용성과 다른 복음을 내치는 배타성이 함께 하는 신앙입니다. 바울은 ‘다른 복음은 없나니’라고 선언하며 진리에 대한 타협 없는 태도를 보여줍니다. 다른 복음에 대해서는 저주를 퍼붓습니다.
| 갈1:8.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9.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공동번역: 받아 마땅합니다) |
현대 사회에서는 다양성과 포용만이 미덕이지만, 기독교 신앙의 영역에서 위 구절은 진리의 유일성을 수호하는 기준이 됩니다. 진리와 교리의 기준(Standard)이 명확하면 무엇이 가짜(Counterfeit)인지 판별할 수 있습니다. 갈라디아서의 이 선언은 이단을 구별해내는 ‘위조지폐 감별기’같은 역할과 경고를 합니다. 이단은 교묘하지만 진짜 화폐가 아닌데요. 기독교 언론 등을 살펴보고 이단 판별의 일반적인 기준점을 도표화 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 구분 | 정통 복음 | 이단의 가르침 (다른 복음) |
| 구원의 근거 |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 교주의 성경해석, 이단교회 소속 |
| 성경의 권위 | 성경 66권 전체의 조화 | 특정 구절 짜깁기, 교주의 계시나 목사의 해석 강조점이 우선 |
| 사회 관계 | 보편적이고 건강한 사회생활 | 사회적 고립, 가정 파괴, 폐쇄성 |
오늘 읽은 본문을 요약하면, ‘복음의 순수성을 지키지 못하면 그것은 더 이상 복음이 아니며, 사람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영혼을 혼란에 빠뜨린다’는 것이고, 현대판 다른 복음인 이단들에 대한 경계의 핵심 원리입니다. 이단이나 신비주의가 정통 교리보다 사람들의 마음을 잘 휘어잡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단이 초기에 주는 유혹과 달콤함이 환심과 호감을 받아서입니다.
| 갈1:10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please men, 공동번역: 호감, 새번역: 환심)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공: 일꾼)이 아니니라 |
우리는 하나님께 좋게 하는 참 자녀와 성도들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첫댓글 즐거운 주말, 기쁜 주일 되세요!
이 포스팅은, 초신자나 시간이 없는 분들은 묵상 본문만 읽으셔도 충분합니다. 아래의 댓글과 주석은 시간이 많은 분들께 다양한 이해를 제공하기 위함입니다.
네, 알겠습니다.
<호크마 주석: 갈라디아서>
=====1:6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 - '부르신 이'는 3절에 나오는 '우리 하나님아버지'이시다. 구속 사역에 있어서 성부 하나님 구원의 계획을 세우시며(엡 1:3-5;벧전 1:2) 또한 계획하신 대로 당신의 백성을 부르시는 분이시다(고전 1:9). 바울은 이처럼 당신의 자녀를 부르시는 분이 삼위 중에 제일 위격인 성부 하나님이라는 것을 여러번 강조했다(15절;롬 8:30;9:24;고전 7:15, 19;살전 2:12 등). 하나님이 성도를 부르시는 것은 명백한 계획으로 되었고 그 계획은 완전하며 하나님의 의지에 속하는 것으로 분명한 목적과 의도를 갖는다. 그러면 성부 하나님이 성도들을 부르시는 목적은 무엇인가? (1)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교제케 하기 위해서 부르셨다(고전1:9). (2) 성도들로 하여금 부정한 가운데 있지 아니하고 거룩한 삶을 살도록 부르셨다(살전 4:7). (3) 평화를 위하여 부르셨다(고전 7:15;골 3:15). (4)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영광을 위해서 부르셨다(살전 2:12). (5)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얻게 하기 위하여 부르셨다(살후 2:13).
이와 같이 성부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을 부르셔서 구원을 얻게하셨다. 그러나 갈라디아 교회에는 부르신 하나님으로부터 떠나는 자들이 있었다. 당시갈라디아 교회에는 거짓된 유대주의자들이 하나님을 빙자(憑藉)하여 율법의 교훈들을 가르침으로 성도들을 미혹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같이 속히 떠나 - '이같이'(* , 후토스)라는 말속에는 바울의 깊은 탄식과 안타까움이 있으며 '속히'(* , 타케오스)라는 표현 속에는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상황이 갈라디아 교회에서 일어났음을 보여준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이 거짓 복음을 좇은 것도 이상한데, 상상외로 빠르게 복음을 떠나는 모습들을 보았을 때 더욱 의아해 하고,안타까워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갈라디아 교인들 중 유대주의를 추종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떠나 그리스도와의 교제를 잃어버리고 하나님께서 부르신 거룩한 삶과 하나님 나라의 영광과 진리를 버리고 구원에서 떠나는 자들이 되었을 것이다.
=====1:7
다른 복음은 없나니 - '다른'(* , 알로)은 6절에 사용된 '다른'(* ,헤테론)과 차이가 있다. 즉 '알로'는 많은 것들이 있는 가운데 다른 것을 지칭하고,'헤테론'은 단 두 가지 중에 하나를 가리킨다(TDNT).
이렇게 볼 때 본절에 '헤테론'대신 '알로'가 사용된 것은 복음의 절대성과 유일성을 강조하려는 시도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6절의 '다른 복음'은 '또 하나의 복음'이 아니라 왜곡된 복음을 의미한다(Cole). 왜곡되어 그릇된 복음은 이미 복음이 아니다. 왜냐하면 복음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완전하기 때문이다.
너희를 요란케 하여 - 헬라어 '타랏손테스'(* )는 문자적으로 '소란케 하는 자들'을 의미하며 여기서는 '거짓 교사들'을 가리킨다. 이 단어는 행17:8에서 바울을 시기하는 데살로니가의 유대인들이 소요를 일으켰던 일에 사용되기도 했다. 거짓 교사들이 교회를 소란케 하는 내용은 (1) 복음을 변질시키며, (2) 교회의 질서를 혼란시키는 것이다.
=====1:8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 갈라디아 교회의 율법주의자들은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거짓의 율법을 강조하면서 천사에 대해서도 가르쳤는지 모른다(Cole). 유대인들은 일반적으로 천사를 율법의 중보자(仲保者)로 생각했다. 특히 이러한 사상은 후기 유대교의 이단들에게서 부각되었다. 아무튼 바울은 그릇된 사상을 가지고 복음을 왜곡시키려는 것은 도무지 용납될 수 없음을 단호하게 설명한다
=====1:9
누구든지...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 바울은 8절에 이어 저주를 반복한다. '저주'의 헬라어 '아나데마'(* )는 하나님께로부터 버림받는 것으로 우상이 파멸되는 것과 갈은 저주를 뜻한다(신 7:26). 바울은 이 단어를 같은 의미를 가진 '카타라'(* )와 구분하여 사용하였다. '카타라'는 3:10, 13에서율법의 요구를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관련하여 사용되었다. 주께서 십자가위에서 받았던 저주는 율법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저주를 대신 지신 것이다. 이제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 받은 저주를 부인하고 다시 율법의 저주 아래로 들어가려고 하는자는 우상의 파괴와 같은 멸망을 받게 될 것이다. 한편 '누구든지'라는 말은 '다른 복음을 전하는 모든 자들'을 의미하는바 앞절의 '어떤 사람들'(7절), '하늘로부터 온 천사들'(8절), 심지어는 사도 바울 자신까지 포함하는 모든 자들을 의미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부인(否認)하는 자는 누구를 막론하고 저주를 받을 것임을 바울은 극령하게 보여준다.
=====1:10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 갈라디아 교회의 유대주의자들은 율법적인 배경을
갖지 못하면 그리스도의 십자가도 헛된 것에 불과하다고 가르쳤던 것 같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증거한 바울의 가르침은 사람의 환심을 사려고 율법의 요구들을 포기한 것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바울은 이에 대해 자신을 추종하는 세력을 얻으려는 인간적 야심을 결코 갖지 않았다고 분명하게 선언한다.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 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종'(* , 둘로스)은 한 주인에 대한 절대적 복종을 의미하는 용어이다. 바울은 유대인으로서 율법에 열심을 가진 자였으나 이제 율법의 완성자이신 그리스도에게 철저히 복종한다.
공감합니다. 현대 교회의 이단은 대부분 율법주의적 태도를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요10:27
<호크마 주석>
이 귀절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양(택한 백성)의 성질이 어떠함을 밝혀준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음성(하나님 말씀)을 알아 듣고 따른다(닮는다)는 것이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음성을 안다는 것은 그리스도에게 대한 그들의 편애(偏愛)가 아니고,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먼저 택하신 사실에서 일어난 반응이다. 그것은, "나는 저희를 알며"란 말씀이 밝혀 준다.
먼저 택하신 것에 대한 반응에 매우 공감합니다!
<호크마 주석: 에베소서>
====2:8
개역성경에는 '가르'(* , '왜냐하면')가 생략되어 있다. 이것은 본절이 앞절에서 언급된 그리스도인에 대한 하나님의 지극히 풍성하신 은혜를 다시 한번 강조함을 시사한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 본절은 5절에서 언급한 것을 반복한 것이지만 5절과 두 가지 차이점을 갖는다. (1) 5절의 은혜에는 관사가 없으나 본절에서는 관사 '테'(* )가 있다. 이것은 앞절에서(7절) 언급한 '은혜'와 동일한 것임을 시사한다(Lincoln). (2) 5절에는 '믿음으로 말미암아'가 없으나 본절에서는 나타난다. '믿음'은 스스로 자신을 의롭게 하려는 행위를 포기하고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기대하는 것으로 구원이 인간에게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수단이다(Wood, Bruce, Foulkes, Lincoln).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신 구속의 은총(恩寵)을 받아들이고 응답함으로 구원을 얻게 된다.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 '이것'이 가리키는 것에 대해서 두 가지 견해가 있다. (1) 혹자는 이것이 '믿음'이라고
주장한다 (Bengel,Beza, Hodge, Chird, Westcott). (2) 혹자는 구원의 과정 전체라고 주장한다(Lincoln,Wood, Abbott, Gnilka, Schlier, Mitton). 두 견해 중 후자가 더 타당하다. 왜냐하면 '이것'에 해당하는 헬라어 '투토'(* )는 중성으로 믿음의 성(性)인 여성과 맞지 않으며, 문맥상 본절의 내용이 믿음에 대한 내용이 아니기 때문이다(Bruce,Foulkes).
====2: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에 해당하는 헬라어 '우크 엑스 에르곤'(* )에서 '엑스'는 기원이나 원인 혹은 근거를 나타내는 것으로 구원이 행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님을 시사한다(롬 3:20, 28;4:1-5; 갈 2:16; 딛 3:5). 바울은 이 행위를 율법과 관련시켜서 언급하지 않는다. 본절의 행위는 율법을 지키는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 행하는 인간의 윤리적인 노력을 의미한다(Wood, Lincoln). 인간의 행위로 구원을 얻을 수 없는 것은 인간의 행위가 하나님을 완전히 충족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인간은 그것에 대해 더 이상 자랑할 수 없다(롬3:27;4:2).
아멘!
창3:3
<호크마 주석>
만지지도 말라 - 하나님의 금지 명령과는 차이가 있는(2:17) 과장된 표현이다. 이는(1) 하나님의 명령이 하와에게 있어선 너무 엄격한 것으로 비쳤다는 점과 (2) 하나님께 대한 그녀의 신뢰와 사랑이 흔들리기 시작했다는 점을 드러내 준다.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 직역하면 '너희가 죽지 않으려거든', 앞 구절과는 달리 하나님의 절대 명령(2:7)을 약화시킨 표현이다. 이처럼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그 결과 그녀가 악의 유혹에 넘어진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마 14:27-32).
마 7:15
<호크마 주석>
거짓 선지자.- 이것은 거짓 선생을 의미하는 바 위에서 말한 대로 사람을 좁은 길로 인도하지 않고 넓은 길로 사람을 꾀어 이끄는 자들이다. 양의 옷을 입고....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 그들이 외식으로는 겸손하며 사랑도 있고 모든 이익을 그들이 교훈에서 약속하니 그것이 양의 옷과 같고, 그들의 마음속에는 생명이 성령님이 없고 다만 자기들을 위하는 야욕만이 가득하였다. 그것이 곧, 하나님의 교회를 "노략질하는 이리"와 같은 것이다.
경각심을 주는 설명에 공감합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된 것으로, 여기에 더해서 율법이나 할례를 받아야 된다고 말한 유대 율법주의자들과 이후의 모든 이단들의 복음의 왜곡과 교란은 중대한 잘못을 범한 것이라는 기본 원칙을 잘 설명해 주셨습니다.
이 세상에는 복음을 정확히 이해하는 그리스도인들보다는 오해하고 왜곡하고 가감하여서 점점 괴이해지고 반사회적으로 변하고 폐쇄성으로 망해가는 이단 사이비들이 점점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순수 혈통을 유지하는 진돗개는 훌륭한 외양을 유지하여서 대접을 받지만, 믹스견은 못나고 초라한 외양으로 유기되고 미움을 받는 이치를 떠올려 봅니다.
갈 2장에서 바울이 3년+14년의 긴 세월을 통해 충분히 자신이 전하는 복음에 대해서 사도들, 유명한 자들로부터 검증을 받았던 사실과, 베드로가 비유대인 기독교인들과 허물 없이 지내면서도 야고보에게서 온 유대인 기독교인들을 두려워하여 식사 자리를 피했던 것을 두고 바울이 위선자라고 나무라며 복음의 본질을 설파하는 내용을 잘 생각해봐야 하겠습니다.
순수한 복음은 그리스도와 삼위일체 하나님께로 모든 것이 귀결되게 하지만, 이단과 사술은 그리스도를 위한다 하지만 멀어지게 합니다.
진도개 믹스견 비유에 위트와 통찰력이 풍부합니다^^ 매우 공감합니다.
사실 다른 복음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다만 어떤 사람들이 여러분의 마음을 뒤흔들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질시키려 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그 악한 자들은 특졀한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회개하지 못하고 지옥에 갈 것입니다.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라고 성경에 명문화 되어 있는 선언을 읽고도 그 짓을 하는 악인들은 현실적으로 구제불능입니다.
매우 공감합니다.
그리스도보다는 교주와 자신들의 공동체를 우선하면서 보편성을 상실하고 사회생활도 못하게 만들어버립니다. 기성 사회와 교회, 신학자, 목회자들이 하나같이 잘못됐고 타락했다면서 아예 귀를 막아버리게 하며 우습게 여기죠. 무당들이 일반인들을 무시하면서 반말로 이래라 저래라며 명령하듯이 그런 마음 상태로 살아 가죠.
그러므로 이렇게 악화되기 전에 미리미리 자신의 상태를 잘 점검해보고, 내가 확신하는 내용에 문제는 없는지 보편적으로 수용되고 있는 교리나 신학서적을 잘 공부해봐야 합니다. 그리고 성경을 다시 잘 읽어보면서 말씀을 깨닫고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은혜 받은 심령은 부드러워져서 말씀의 씨앗이 다시 뿌리를 내릴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여 점검을 받고 교정을 받아나가야 합니다. 이러한 과정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죽을 때까지 유지해야 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지당하신 말씀이세요. 공감합니다!
공감합니다22
분별과 복음이 가득한 좋은 묵상을 올려 주셔서 잘 배우고 감사합니다.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