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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한잔의 여유 인요한 박사가 생각하는 한국인의 힘
노베 추천 3 조회 237 23.10.29 16:00 댓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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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23.10.29 16:07

    첫댓글 인요한

    인요한의 진외증조부 유진 벨은 스코틀랜드계 미국인이며 미국 남장로회 선교사로 1895년 4월 8일 한국에 파송되어 광주·목포 지역에서 활동하며 학교와 병원을 설립한다. 그의 딸 샬롯 벨[12]은 인요한의 친할아버지 윌리엄 린튼[13]과 결혼한다. 윌리엄 린튼은 미국 앨라배마주에서 태어났으며 22세 때 한국에 와서 48년간 전주와 군산 일대에서 선교와 교육, 의료봉사를 해왔다. 백범 김구 선생의 주치의 역할을 하기도 하였고 3.1 운동 당시에는 기미독립선언서 작성 참여와 운동의 지원, 해외에 홍보를 하는 역할을 맡았다고 한다. 이후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를 거부하였다는 이유로 고초를 겪은 적 있는데, 그 공로가 인정되어 2010년에 3.1 운동 91주년 때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

    아버지 휴 린튼은 윌리엄 린튼의 3남이다. 할아버지의 선교활동 영향으로 전라북도 군산에서 출생하였으며, 미국으로 건너가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태평양 전역에서 포로로 잡힌 한국인 노무자들을 돌보기도 했다. 이후 신학대학을 다니던 중 한국전쟁 소식을 듣고 해군장교로 복귀해 인천상륙작전에 참전하였다.

  • 작성자 23.10.29 16:07

    이후 자신의 아버지인 윌리엄 린튼의 한국 선교활동을 이어받았다. 어머니 로이스 린튼은 미국 플로리다 출생의 미국인이며 신학대를 졸업하고 결혼을 통하여 남편을 따라 한국으로 이주했고 현재도 한국에 거주 중이다.

    둘째형 스티브 린튼은 북한 어린이에게 의약품을 보내는 유진 벨 재단#을 운영하고 있다. 80회 이상 방북했으며 김일성 북한 주석과도 두 차례 만났다.

    4대째인 그는 2012년에 한국사회에 끼친 공로를 인정받아 특별귀화를 통해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하였다.

    그의 형 스티브 린튼(인세반), 5대째인 조카 데이비드 조나단 린튼(인대위), 조카 레이첼 조이 린튼도 독립유공자의 자손에게 부여하는 대한민국 국적을 수여받고 복수국적을 허용받았다.

    https://namu.wiki/w/%EC%9D%B8%EC%9A%94%ED%95%9C

  • 23.10.29 16:56

    @노베 저분들의 가족관계를 파악하는 것이 곧 한국교회사 공부가 됩니다^^

  • 작성자 23.10.29 16:09

    한남대학교

    1956년 미국 남장로회 한국 선교회 유지 재단(대표자 윌리엄 린튼이 건립한 대전기독학관이 시초로, 1959년에 4년제 대전대학으로 개편(초대 학장에 윌리엄 린튼, 과는 성문, 영문, 화학, 수물학과로 정원 480명)하였다. 1970년 9월, 재단의 결정 때문에 설립 목적과 이념이 같은 서울 소재 숭실대학교와 통합하면서 1982년까지 숭전대학교로 교명이 변경 한국 최초의 양 캠퍼스(서울+대전)체제로 운영되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숭전대 총장들이 숭전대 대전캠퍼스에 관심을 별로 가지지 않았다며 한남대 원로 교수들이 불만을 토로할 정도로 서울캠(숭실대) 편애가 심했고, 숭실대와 분리를 추진한다. 이후 우여곡절을 거쳐 1980년 4월, 숭전대 이사회에서 대전 교정 재분리안이 통과되었으나, 그 사이 대전대학이라는 이름은 다른 학교 재단이 차지한지 오래였고[13], 결국 공모전을 거쳐 '한남대학'으로 개칭(초대총장에 이원설 박사)해 오늘날에 이르렀다.

    https://namu.wiki/w/%ED%95%9C%EB%82%A8%EB%8C%80%ED%95%99%EA%B5%90

  • 23.10.29 16:55

    숭전대학교의 유래를 이제 확실히 알겠습니다. 대전캠이 현재의 한남대학교가 된 것이네요.

  • 작성자 23.10.29 16:12

    개항 후 우리나라에 정착한 서양 이주민 가운데 롤모델 집안을 꼽으라면 언더우드와 린튼 가문이 맨 앞자리를 다툰다. 그들은 모두 미국에서 선교사로 건너와 근대교육과 근대의학의 기틀을 다지고 이들 가문 모두 대대로 한국에 봉사하는 삶을 살아왔다.

    https://www.yna.co.kr/view/AKR20200731073800371?input=1179m

  • 23.10.29 16:58

    수많은 내한선교사들보다 인요한 박사 가문이 친근한 것은 한국에 깊이 뿌리 내렸기 때문입니다.

  • 23.10.29 16:59

    동영상 중간에 나온 손양원 목사님의 사랑과 순교 이야기도 아울러 감동적입니다.

  • 작성자 23.10.30 15:22

    네, 저도 그랬습니다. 감동적이었습니다.

  • 23.10.30 23:51

    네. 그렇습니다. 인 박사님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손양원 목사라고 하였는데, 과연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8년씩이나 옥고를 치렀다니 너무 놀랍습니다. 불의에 굴하지 않는 믿음과 지조가 순교로까지 나가게 된 것 같습니다. 타협하고 싶은 욕구도 분명히 있었을 텐데 그것을 다 참고 견디다니... 아무나 순교자가 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요한 박사 가문의 활동에 감사의 마음을 전해 드리고 싶습니다.
    교육, 협치하는 수준 높은 정치 등과, 아랫목 교육을 살려서 아이들이 어른들과 같이 보내는 시간이 많도록 하라는 조언들이 참 좋군요. 제대로 잘 보신 것 같습니다.
    좋은 영상 잘 보았습니다.
    참고하고 배울 만한 부분들이 많이 있으니 시청을 추천합니다.

  • 23.11.03 09:02

    @코람데오 풍성한 댓글에 저도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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