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 한 편에 텃밭이 있다. 서너 평이나 될까 한 자투리땅이다. 전에는 화단으로 사용하던 곳인데 주인이 관리하기 까다로워지니 꽃과 나무를 베어버린 곳이다. 꽃나무들이 사라진 화단에 동네를 배회하는 길고양이들이 대놓고 배설을 해 댄다. 바람이 불면 악취가 밀려왔다. 가만히 살펴보니 고양이들은 잡풀이나 푸성귀가 심어진 곳이 아닌 비어있는 흙바닥에 꼭, 배설을 했다. 겨울에는 별 상관이 없었으나 날이 더워지면서 악취나 파리로 인한, 역겨움을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빈 땅을 없애는 것이었다. 겨우내 비워진 텃밭에 무언가를 심으면 어슬렁대는 녀석들이 더이상 냄새를 피우지 못할 것이다. 빈틈없이 꼭꼭 상추씨를 뿌리자.
며칠 뒤부터 깨끗이 정리하여 씨를 뿌려 둔 텃밭에 참새들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발길 소리를 들은 참새들이 놀고 있다가 호로로 날아오기 시작했다. 흙 속에서 씨앗이나 벌레라도 찾고 있었나 보다. 한 그루 남은 목단나무 아래를 보니 종지를 엎은 듯 오목하게 패인 구덩이가 서넛 보인다. 고양이들이 빈둥이 짓을 한 흔적인지 참새들이 놀다간 자리인지 분명하지가 않다. 해적질 된 좁은 땅을 다시 살짝 쓸어 덮어 두고 건너편 비어버린 은행나무 자리를 본다.
곱던 풍경이 하나가 사라졌다. 어저께까지 사무실 건너 안쪽 골목에 키 큰 은행나무 한 그루가 초록 잎을 올리고 있었다. 사무실에서 보면 주택에 가려 밑둥은 보이지 않았지만, 나무의 상부만 보여도 계절의 변화를 한눈에 보여주는 표지목이었다. 봄이면 연둣빛 잎들이 새의 부리마냥 조근하게 달싹이고, 여름이면 녹음이 청청한 시원함을 주었다. 가을이면 날리는 노란 잎들에 외로움을 더했고 겨울이면 버리지 않고서는 새로운 잎들을 달 수 없다고 빈 나무가 말하는 듯했다. 그리고 사시사철 저녁 어스름이 나무에 걸리면 참새들 수십 마리가 모여 동네가 시끄럽도록 재잘거리고 포동포동 거렸다. 이제 새들은 어디서 지친 하루를 쉬어가야 하는 걸까. 남은 것이라고는 영양부족의 석류나무 한 그루, 반신불수의 감나무가 하나, 목을 뺀 목련 나무 한 그루가 전부이다. 모두 그곳에서 쉬어갈 수 있을까. 저녁 무렵 내 눈길이 머물 곳은 어디인가.
도시에서 봄은 서둘러 지나간다. 유월의 어느 날 길을 걷다 신기한 장면을 보았다. 대로변 가까이 있는 자동차정비소 앞길, 도로가 움푹 파여 있었다. 구덩이는 깨끗한 흙이나 모래가 아니라 아스팔트 부스러기와 바람에 실린 시커먼 흙먼지들이 담긴 오물통과 같았다. 지나가는 자동차가 뿜어내는 매연과 소음 속에서 참새들이 파인 구덩이에서, 목욕을 하고 있었다. 날개를 파닥이면서 등을 부비고 부리로 매무시를 다잡는, 공들여 하는 목욕이었다. 기생충이나 오물들을 털어내기 위한 참새들의 본능은 차들이 연이어 지나가도 계속되었다.
며칠 뒤에는 요구르트 아줌마가 출근길에 미장원 앞에 쓰러진 참새 한 마리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미장원 유리문에 부딪혀 떨어진 것 같았다. 아직 체온이 따스한 그놈을 아주머니는 한 쪽에 놓으며 살아날까하고 물었다.
로드 킬로 죽는 동물들도 수없이 많지만, 고층 건물의 유리창에 비친 나무나 구름, 하늘을 자연의 일부로 알고 날아들어 죽는 새들도 헤아릴 수없이 많다. 개체 수가 줄어드는 희귀종이나 천연기념물을 가리지 않고 많은 동물들이 죽어간다는 뉴스를 접할 때면 안타까운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
인간이 한 발씩 자신들의 영역을 넓힐 때마다 동물들은 그만큼 자신들의 영토를 잃는다. 국도나 고속도로가 생기면서 끊겨진 생명의 길로 인해 도로를 내달리고 민가로 내려와 먹을거리를 찾는다.새 들은 배관이나 환풍구에서 새끼를 키우고 고양이들은 자신의 배설물을 숨길 모래 한 줌을 찾지 못해 아무 곳에나 볼일을 봐 원성을 쌓는, 악순환을 일으킨다.
아스팔트로 뒤덮인 땅에서는 작은 몸의 참새 한 마리가 목욕할 한 줌의 흙조차 없다. 흙이 없는 곳에서 사람의 자식인들 바르게 자랄 수 있을까. 아이들은 인조잔디로 꾸며진 운동장에서 뛰고 달린다. 고무 분말이 날리는 운동장을 뛰며 납과 카드뮴 등의 유해성 물질이 뒤법벅이 된 공기를 마신다. 아파트 놀이터에도 흙 한 줌 없기는 마찬가지다. 시설은 좋을지 몰라도 모래 장난 한번 못하고 지렁이 한 마리 만져보지 못하고 자란 아이들이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야 함을 알기나 할까.
은행나무가 사라진 허공을 쳐다본다. 오래된 주택의 낡은 지붕만 보인다. 은행나무가 사라진 원인을 알고 보니 동네 사람들이 쓰레기를 나무 밑에 버리는 통에 누군가가 민원을 제기하여 주인이 아예 나무를 싹 베어낸 것이라 한다. 그것만이 최선의, 방법이었을까. 나무는 일단 베어버리면 수십 년의 녹색 서비스도 사라져 버린다. 은행나무가 사라진 마을에는 새들이 무리 지어 짹짹대던 생기 있던 풍경도 덩달아 사라졌다.
참새들이 흙 목욕 중이다. 봄날 내가 보았던 텃밭의 오목 구덩이는 참새들의 욕조였다. 여름이 되자 빈 땅은 참새들의 가족탕이 되었다. 상추가 장마에 녹아내려 자라지 않는 맨땅은 새들이나 고양이들에게는 놀이터가 되었다. 고양이는 시원하게 볼일 본후 뒤처리를 하고 시치미를 딱 잡아떼고 내 옆을 어슬렁거리고 참새들도 흙 목욕으로 즐겁게 재잘댄다.
그나마 함께하는 하루가 꽤 괜찮은 풍경으로 다가올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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