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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우리 할렐루야 귀한 은혜의 찬양 너무 감사합니다.
오늘은 2025년 1월 둘째 주일을 맞이했습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라는 말씀의 제목입니다.
우리는 누구라고요? 네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무엇인가 그리스도인이 무엇인가에 대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여러 가지로 설명할 수 있겠습니다만 그리스도는 무엇인가 한마디로 하면 그리스도인의 정신을 가진 사람이다. 그리스도인의 무엇을 가진다고요? 정신을 가진 자다.
제가 오래전에 군 생활을 하면서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저는 군 생활을 28사단 철책 철책서 GOP에서 근무를 했습니다. 별로 안 놀라시네요. 지금 이맘때 쯤은 제가 GOP에서 근무를 빡시게 섰던 기억이 납니다.
이 군대에서 항상 들었던 얘기가 군대에서는 듣고 또 듣고 닳도록 들은 것이 뭔지 아십니까?
이 군인 정신입니다. 이 군인 정신 너희는 민간인이 아니다. 군인이다. 군인은 군인 정신을 가지고 살아야 된다. 군인답게 행동을 해야 된다. 이 말을 귀가 따갑게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저는 아직도 이 군번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제 생일은 잘 몰라도 2 3 3 4 1034 그만큼 이 군인에 대한 철저하게 이 군인에 대한 길을 가고 군가를 부르고 훈련받고 그래서 군인이 되었습니다. 정말 그때는 군인이 군인이었습니다. 군복을 입었다고 군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정말 군인 정신이 나와야 군인인 것입니다. 군인 정신이 나오면 군인들의 어떤 군인의 삶이 나오거든요.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정신이 있어야 됩니다. 뭐가 있어야 된다고요? 그리스도의 정신이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의 의식이 의식이 있어야 됩니다.
여러분 그리스도 의식이 뭘까요? 그리스도인의 의식이란 그리스도 안에서 생각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행동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계획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시작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생활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되고 할렐루야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부터 출발이 되고 과정을 이끌어가고 마지막까지 도달할 수 있는 게 바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잘 잊어버립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때로는 생활한 것 같은데도 어느 순간인가 내가 그리스도인이 맞는지 그렇지 않을 때 고민할 때가 있습니다. 형식은 모양은 그리스도인인데 그 내용은 전혀 그리스도인답지 않는 그런 모습이 나올 때가 있습니다. 교회 다니는 것을 보면 그리스도인이 맞는데 행동하는 것을 보면 그리스도인이 아닌 경우들도 있습니다. 예배 시에 기도와 찬송을 드리는 것을 보면 그리스도인이 맞는데 그 삶에는 그리스도인이 아닌 모습들도 있습니다.
혹 이것이 우리의 모습이 아닙니까? 그래서 우리 예수님은 바리새인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뭘 조심하라고요? 바리새인의 누룩이라고 했습니다. 바리새인의 누룩이 뭘까요? 여러분 누가복음 11장 39절 말씀을 한번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 방신이는 지금 산과 대전에 거쳐 지 않아. 너희 속에는 탐욕과 악동이 가득하도다.
아멘,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 바리새인은 지금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나, 너희 속에는 무엇과 무엇이 가득하도다.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도다. 겉으로 보면 모양은 번듯하고 모양은 있는데 그 속에는 경건의 능력이 없다는 겁니다. 그게 바리새인의 누룩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혹 이런 모습이 우리의 삶일 수도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의 삶과 우리 교회 밖에서의 삶이 달라진다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 여러분 한 주간은 내 멋대로 살다가 주일이 되면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다가 다시 세상으로 가 들어가서 자기 마음대로 살다가 또 주일이 되면 다시 교회로 들어옵니다.
이런 사람을 성경은 선데 크리스천이라고 말합니다. 주일만 그리스도인이라는 겁니다. 주일만 여러분 일주일에 한 번만 나오면 안 됩니다.
물론 횟수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 교회가 우리 달성 교회가 지금 잘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이 새벽 기도가 굉장히 열정적으로 새벽을 찾습니다. 이 새벽에 나와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말씀 읽고 묵상하면서 하루를 시작하는 삶 그것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것인지 아십니까?
우리가 매일매일 주님을 인정하고 고백한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꼭 주일만 일 그건 아니겠죠. 그런데 우리는 늘 언제나 주일 하루만 봉사하고 섬기고 교회에 나오면 다 끝났다.
여러분 그것이 신앙일까요? 그것이 그리스도인일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2025년도 지난주 새해를 출발했고 오늘은 두 번째 주일을 맞이했습니다. 오늘 이 시간은 내가 정말 그리스도인이 맞는지 아닌지를 한번 점검을 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냥 우리가 교회만 다니는 사람이 아니라 정말 내 속에 내 안에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마음 그 중심에 있는지를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모양만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정말 내 속에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마음, 그리스도의 은혜, 그리스도의 능력이 있는지를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분 우리 안에 예수님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그리스도로 가득 채워져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과 말과 일과 행동, 그래서 이 모든 것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출발이 되어지고 그리스도 안에서 마감되어질 수 있는 그러한 삶으로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2절에 보니까 그리스도 안에서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리스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4절 말씀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5절 말씀에도 이는 너희가 그 안에서 여러분 이 사도 바울의 바울의 서신을 보면 그 내용 가운데 가장 많이 나오는 내용이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 안에서 주 안에서 이 말씀이 얼마나 많이 나오는지 모릅니다.
이 말씀을 한마디로 하면 이 앤 그리스도라고 합니다. 그리스도 그리스도 안에 아웃 그리스도 그리스도 밖에가 아니라 엔 그리스도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앤 그리스도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께 속한 자, 그리스도의 다스림을 받는 자,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 앤 그리스도 그게 그 말의 뜻입니다.
그러니 그리스도 안에서 이 말은 바울의 인생 그 자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늘 언제나 고백하기를 내가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나니 사나 죽으나 누구의 것이다 주의 것이다 그런 고백이 나오는 것이거든요. 그리스도 안에서 살다 보니까 내가 사는 것도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것이고, 죽는 것조차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해서 죽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살아도 죽어도 그리스도를 위한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떠나지 않는 그런 믿음의 삶을 살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바울은 자신이 사도가 된 것도 그리스도 안에서 내가 사도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어디에 사도가 되었다고요? 그리스도 안에 사도가 되었다 이 사도가 된 것은 세상에 준 직분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게 주신 직분이었다는 것을 말하는 겁니다.
여러분 여기에서 사명감이 나오지 않겠습니까? 이 직분을 누가 주었다고요? 그리스도께서 주셨어 그러니까 이 직분이 소중한 것이죠.
여러분 내가 목사가 되고 장로가 되고 권사가 되고 집사가 된 것도 교회가 준 것 아닙니다.
목사가 준 것이 아닙니다. 누가 준 것이죠? 그리스도께서 주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직분이 귀하고 소중한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고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도 그리스도 안에 지어진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만 그리스도 안에 지어진 것일까요? 우리 성도들 중에 같이 교제하는 것도 그리스도 안에고요. 또 일도 주신 일도 그리스도 안에서 하는 것이고, 우리의 사업도 그리스도 안에서 하는 것이고, 인간관계도 그리스도 안에서 하는 것이고 믿음과 사랑, 소망 모든 것도 다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로 채워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의 모습인 것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인이란 무엇일까요?
이 그리스도인 그리스도라는 이름이 제일 먼저 일어난 곳이 바로 안디옥 교회였습니다. 안디옥 교회에서 세상 사람들이 볼 때 그리스도 예수 믿는 사람들이 그 모습이 너무나 보기 좋았습니다. 자기들은 세상에서 흥청망청 살고 제화 가운데 사는데 안디옥 교회 교인들을 보니까 찬송을 부르고 기도하고 서로 협력하고 도와주고 그 모습이 너무나 좋아 보였던 것이죠.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안디옥 교회를 보면서 저분들은 그리스도인이구나 그리스도인이구나 그렇게 정말 좋게 그렇게 여겨졌던 것입니다.
저분이 예수 믿는 사람이야 정말 그리스도인이야.
여러분 우리 한국 교회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우리가 한국 교회가 처음에 복음이 전파되고 70년 80년 90년 그 당시에는 정말 교회가 부응하고 성장했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사람들이 예수 믿는 사람들이 정말 좋아 보인다. 그래서 자기는 교회에 못 나온다 할지라도 아이들을 교회로 다 보냈습니다. 교회 가면 좋은 걸 배우고 새로운 사람이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많이 보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 시대는 어떻습니까? 세상 사람들이 교회 다니는 것을 싫어합니다. 자기 자녀들 교회 안 보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럴 때일수록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한번 찾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교회가 부흥하고 성장하고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고 우리가 정말 그리스도 안에 있는지, 내가 정말 예수 믿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그것이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이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의식과 그리스도의 생각, 그리스도의 마음, 그리스도의 방법으로 살아가는 자, 이런 사람들은 바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 그리스도께 속해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 사람이 누구일까요? 바로 사도 바울입니다. 그는 사도이기 전에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를 만남으로 자신을 완전히 새롭게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만나기 전과 예수님을 만난 이후의 삶이 그는 완전히 달랐다고 했습니다.
예수를 만나기 전에는 사도바울은 자기를 신뢰했던 사람이 자기 육체를 믿었던 사람입니다. 쉽게 얘기하면 자기 자랑거리가 많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자기는 8일 만에 할례를 받았고, 이스라엘 족속이고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흠이 없는 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기는 로마 시민권을 가진 자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 자신이 굉장히 좋은 사람으로 훌륭한 사람으로 대단한 사람으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그가 예수님을 만나게 되니까 예수님을 만나게 되니까 그 자신이 얼마나 자신이 내가 교만했던 사람이오 사악한 자였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가리켜서 고백하기를 나는 죄인 중에 횟수입니다. 그런 고백을 하게 됩니다. 나는 죄인 중에 횟수입니다.
여러분 한 번 놀랍지 않습니까? 그 잘난 사람이 그 훌륭한 사람이 어떻게 예수님을 만나니까 내가 저인 중에 개수라는 그런 고백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면서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으면서 이런 고백을 합니다.
여러분 갈라디아서 2장 20절 말씀을 같이 한번 읽겠습니다. 시작
내가 그리스도 십자가에 그런 적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안의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아닌 죄가 된다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시. 하나님의 아들 믿음 안에서 잘 있는 것이다.
아멘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어디에 못 박혔다고요? 십자가에 못 박혔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오. 오직 내 안에 누가 사는 것이라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사는 것은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해서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다.
이 말씀을 한마디로 말하면 이 완전히 소속이 달라져 버렸잖아요.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내가 제일 잘난 줄 알았습니다. 또 내 자랑을 많이 했습니다. 내 고집대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나고 보니까 내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아버리니까 이제는 내가 세상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 믿음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이제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다. 그것을 한마디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할렐루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생각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행동하는 그의 삶이 변화가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행동의 변화는 나의 의지와 노력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계시면 예수 그리스도의 그 생명의 역사가 있으면 나를 통해서 하나님의 선한 역사가 일어나는 줄을 믿습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바로 기뻐하며 감사하는 사람이 됩니다. 오늘 사도 바울이 놀라운 고백을 하게 되는데요. 빌립보서 4장 4절 말씀을 한번 읽도록 하겠습니다.
그 안에서 항상 하 내가 다시 나 기뻐하라.
아멘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이 말씀을 바울은 어디에서 기록을 했을까요? 예 빌립보 감옥 안에서 했습니다. 빌립보 감옥 안에서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해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해라.
어디에서 기뻐하라고요? 주 안에서 바울은 지금 육신은 감옥 안에 있지만 그는 지금 어디 안에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주 안에 있습니다. 그 감옥 안이라 할지라도 그 감옥 안을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내가 주 안에 있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환경을 뛰어넘고 우리의 상황을 뛰어넘고 이 감옥 안이라 할지라도 내가 주 안에 있으니까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역사가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주 안에 있으니까 또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권면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주 안에 있다는 것은 굉장히 놀라운 고백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구약에 보면 다윗이 이 사울에게 쫓겨 다닐 때 그때 시편 16편의 말씀을 기록을 했거든요. 그 쫓겨다니면서 다윗이 어떻게 고백을 했습니까?
우리 시편 16편 8절에서 11절 말씀도 한번 읽겠습니다. 시작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고치며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고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그러므로 나의 마음이 기쁘고 나의 욕도 즐거워하며 내 인체도 완전히 살리니 이는 주께서 내 영혼을 소홀해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나를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입니다.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아멘 자 보시면 내가 여호와를 항상 어디에 모셨다고요? 어디에 모셨다고요?
내 앞에 모셨다. 여러분 이 고백은 정말 대단한 고백입니다. 하나님이 여호와를 내 앞에 모시니까 하나님 아버지께서 나를 도와주시고 또 내게 생명의 길을 보여주셨고 또 내 안에 기쁨을 주시니 너무나 감사하다는 겁니다.
바로 주 앞에 모시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가 내 안에 계십니다. 다윗은 여호와를 내 앞에 모십니다. 이 믿어 믿음이야말로 최고의 믿음이 아닙니까? 우리는 때로는 하나님을 내 안에 내 앞에 모시기보다는 내 뒤에 모실 때가 참 많습니다.
하나님 제가 할 테니까 하나님 가만히 지켜보세요. 제가 하겠습니다. 그러다가 어떤 문제나 큰일이 닥치면 그때서야 하나님 도와주세요. 대부분 성도들이 그렇게 살아가지 않습니까?
그런데 여러분 우리는 이 다윗과 바울처럼 하나님을 내 앞에 모시고 내가 주님 안에 있다는 것은 나의 어떤 판단과 나의 어떤 고집과 아집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 나의 삶을 이끌어 주십시오.
주님 내가 할 말이 무엇일까요? 내가 마땅히 해야 될 말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이런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주님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될까요?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성도의 모습이 아닙니까? 하나님을 내 앞에 모시는 자의 모습이 아닙니까? 그런데 우리는 다 잊어버리고 내 혈기대로 내 욕심대로 실컷 살다가 그냥 아무 때나 딸리게 되고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그때서야 주님 나를 도와주십시오.
여러분 그런 믿음은 좋은 믿음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시작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행동하고 이게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 시작이 되고 그리스도 안에서 끝나야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을 어디에 모으십니까? 여러분 중심에 지금 그리스도를 모으시고 사십니까? 여기에 아멘이라고 한다면 여러분 가장 행복한 사람일 것입니다. 적어도 성령의 말씀이 그렇습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내가 예수님 앞에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 가장 귀한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에서도 가장 귀한 고백이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믿음의 사람이 아니더라도 연인들이라도 할지라도 세상에서 가장 귀한 고백이 뭔지 아십니까?
니가 내 안에 있다. 별로 감동이 없는 것 같아 니가 내 안에 있다.
여러분 살아가면서 가장 제가 볼 때는 제일 아름다운 말이 내가 널 사랑한다 뭐 좋아한다 이런 말보다도 니가 내 안에 있다. 앞으로 결혼할 사람들은 그 마음이 꼭 있어야지 결혼을 할 수가 있습니다. 니가 내 안에 있다.
그렇다면 우리 성도들에게 있어서 예수 믿는 사람에게 가장 아름다운 말이 있다면 뭘까요?
예수님이 내 안에 있다.
여러분 이런 성도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입니다. 정말 내 속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줄 수 있는 성도, 이런 성도라고 한다면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지 않겠습니까?
오늘 이 고백이 여러분의 평생의 고백이 되기를 원합니다. 이게 말씀의 결론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세상이 굉장히 혼탁합니다. 어지럽습니다. 정말 제가 봐도 좌우가 얼마나 팽배한지,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모르는 시대 속에서 살아갑니다. 이 말 한마디,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는, 정말 한 치 앞도 바라보지 못하는 그런 시대를 살아갑니다.
하지만 이런 시대일수록 우리가 생각해 보고 되새겨 봐야 할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내가 어디에 있느냐 내가 어디에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다른 곳에 있다면 우리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주님 안으로 들어와야 합니다. 우리가 바라보고 소망해야 될 분은 오직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의 바람은 언제나 불었습니다. 지금만 부는 게 아닙니다. 과거에도 불었고 앞으로도 많이 불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바람을 타면 안 됩니다. 바람이 부는 대로 휩쓸려서도 안 됩니다. 우리가 구해야 되고 우리가 생각하고 우리가 중심을 잡아야 될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뿐인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생각하고 말하고 고백할 수 있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그리스도로 산다는 것보다 더 행복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분 안에 거하고 그분의 다스림을 받고 그분의 보호하심을 받는 성도라고 한다면, 가장 행복한 사람 다윗은 여호와를 내 앞에 모셨다고 했고,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시작했을 때 하나님 아버지께서 도와주시고 역사하여 주셨고 그를 붙잡아 주셨습니다.
오늘 2025년 한 해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