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서는 고대로부터 천사가 동정녀 마리아를 찾아와 하느님의 아들을 잉태하리라는 계시를 전한 일(성모 영보)을 기념해 왔는데, 복음서에 의하면, 천사 가브리엘은 하느님의 명령을 받아 마리아에게 나타나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루카 1, 28)라고 인사하며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루카 1, 31)라고 하느님의 말씀을 전해주게 되는데, 천사로부터 하느님의 계시를 전해 들은 마리아는 처음에는 몹시 놀랐으나 이내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 38)라고 응답하며 순명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어머니가 되었던 것입니다. 가브리엘 천사의 이 인사말은 훗날 가톨릭교회의 대표적인 기도 가운데 하나인 ‘성모송’의 유래가 되었습니다.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이라는 명칭과 관련하여 고대 로마 전례서에서도 이러한 이름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레고리오 성무 집전서》에는 3월 25일 목록에 '성 마리아 탄생 예고'라는 이름이, 《구 젤라시오 성무 집전서》에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 성 마리아의 예고'라는 이름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1570년 교황 비오 5세(재위: 1566~1572)에 의해 발간된 《로마 미사 경본》도 이러한 전통을 이어받아 '복되신 동정 마리아 예고 축일'이라는 이름을 기록하고 있는데, 《연대 교황표》와 《로마 복음 단락 목록》의 기록에서는 이 축제를 '주님의 탄생 예고’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후 1970년 《로마 미사 전례서》에서는 '주님의 탄생 예고'라는 이름으로 이 전통을 복원하게 됩니다. 한편, 파도바에서 발간된 《그레고리오 성무 집전서》와 8세기경의 《젤라시오 성무 집전서》는 이날을 '하느님의 거룩한 어머니 예고와 그분의 주님 수난'이라는 이름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의 기원에 대해서는 정확히 밝혀진 바가 없지만, 서기 561년 로마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1세(재위: 527~565년)는 예루살렘 교회에 쓴 편지에서 탄생 예고 축일은 하느님의 큰 은혜가 드러난 3월 25일에 성대하게 지내야 한다고 하면서, 콘스탄티노플에서는 550년부터 이 축일을 지냈다고 밝히고 있어 이 축일이 6세기 중엽에 콘스탄티노플에서 나타난 것으로 추정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동방의 교회들로 서서히 전파된 이 축일은 6세기 말에 ‘안티오키아’까지 전해져 축일로 기념하게 되었습니다. 한편, 예루살렘에서는 7세기 전반부터 기념한 것으로 여겨지는데, 예루살렘의 총대주교인 ‘소프로니오’(서기 550~638년)의 강론 중에 이날에 대한 언급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서방교회에의 기록은 서기 656년 톨레도 교회 회의 때 제정된 교회법에 처음으로 언급되고 있는데, 당시 교회법의 내용 중에 ‘교회는 주님 탄생 예고 사건을 축일로서 기념한다’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연대 교황 표》는 교황 세르지오 1세(재위: 687~701년)가 탄생 예고 축일을 포함하여 ‘성모 승천’, ‘천주의 성모 성탄’, ‘평생 동정이신 마리아와 시메온의 만남 축일’ 등, 로마에 4대 마리아 축일에 행렬을 도입하였다고 기록하고 있기도 합니다. 학자들은 교황 세르지오 1세가 7세기 말에 ‘콘스탄티노플’에서 이 축일의 행렬을 도입하였으며, 《구 젤라시오 성무 집전서》와 《그레고리오 성무 집전서》가 수록하고 있는 양식문은 7세기 중반에 이전의 자료를 갖고 만들었을 것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이처럼 이 축일의 기원에 대하여 여러 기록이 남아있으나 지역과 시대에 따라 내용에 차이가 있어 정확한 기원의 추정을 어렵게 하고 있습니다.
축일의 날짜와 관련하여, 에페소 아브라함의 증언에 따르면, 이 축일은 콘스탄티노플에서 3월 25일에 거행되었다고 하는데, 7세기에 출현한 로마의 탄생 예고 축일 역시 같은 3월 25일에 거행되었습니다. 다만 제10차 톨레도 교회 회의(서기 656년)는 이 축일이 스페인 여러 지역에서 다른 날에 거행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사순시기와 부활시기는 축제일로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로 12월 18일로 확정하게 됩니다. 그러나 10~11세기에 들어 스페인에 로마 전례가 도입되면서 탄생 예고 축일은 서방 지역에서 모두 3월 25일에 거행하게 되었습니다. 한편 3월 25일은 주님 탄생 예고 축일이 나타나기 오래전에 중요한 성서적 사건의 날로 여겨졌는데, 고대 율리우스력에서 이날은 춘분이었으며, 그리스도교의 상징적 해석의 전통에 따르면, 이날은 ‘주님 죽음의 날’, ‘주님의 영광스러운 부활의 날’, ‘동정녀 태중에 잉태되신 날’, ‘빛의 창조의 날’로 여겨지곤 했습니다.
4세기 아프리카 알제리와 이탈리아에서 활동한 기독교 신학자이자 주교로, 로마 가톨릭교회 등 서방 기독교에서 교부로 존경하는 사람인 아우구스티노(서기 354~430년)는 최초로 3월 25일을 주님의 잉태 날이라고 증언하였으며, 그리스도의 수난과 잉태에 대해서는 아우구스티노와 디오니시오(스콜라 철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5~6세기경 정체불명의 기독교 신학자이자 철학자) 등이 증언하였습니다. 한편 《파도바의 그레고리오 성무 집전서》와 《8세기 젤라시오 성무 집전서》들에 의하면, 3월 25일은 탄생 예고와 함께 수난의 날로도 기록되어 있는데, 이 날짜를 예고 축일 거행일로 선택한 이유는 분명치 않으나 오래전부터 지켜오던 12월 25일의 성탄절을 기준으로 주님 탄생 예고의 역사화 과정에서 9개월을 역산하여 3월 25일로 지정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년 10월 11일부터 1965년 9월 14일까지 4회기 동안 바티칸에서 개최된 가톨릭교회의 제21차 보편 공의회) 문헌들을 기초로 로마 예식의 전례와 전례력 개혁이 시작되었는데, 1969년 교황 바오로 6세(재위: 1963~1978년)는 <파스카 신비>(1969.2.14.)라는 교서를 통해 '로마 전례력'을 공포하면서 3월 25일의 축일에 ‘주님의 탄생 예고’라는 이름을 붙이고 대축일 등급으로 수록하게 됩니다. 이후 1974년에는 사도적 권고인 <마리아 공경>(1974.2.2)에서 교황은 이 대축일을 그리스도와 마리아 축일로 여겨야 한다고 피력했는데(6항), 이는 마리아 공경의 그리스도론적 특징을 강조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복되신 동정 마리아 태중에 육화한 사건은 사랑의 하느님이 주도한 파스카 신비의 서막으로, 하느님은 자신의 옛 약속을 실천하기 위하여 당신 백성은 물론 인류 전체에게 예언된 구세주이자 세상의 임금이시며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인간을 사랑하는 하느님은 사람의 협력을 통하여 이 구원 행위를 행하고자 하셨으며 이 때문에 나자렛의 마리아라는 젊은 여성을 선택하셨던 것입니다. 이는 동정녀 마리아 자신에게 비상한 은총이었음은 물론 야곱의 집안(온 인류)에게도 진정한 구원의 선물이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이라면 이 구원의 사건 앞에서 놀라움과 경배와 믿음의 고백 외에는 다른 태도가 있을 수 없으며, 하느님의 뜻에 순명한 성모 마리아와 같이 교만과 권세와 부유를 누리는 사람이 아니라 비천하고 겸손한 사람으로 오롯이 하느님 뜻에 맞게 살아가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