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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6장 27-34절. 바울이 간수에게 전도함.
27절.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생각하고 칼을 빼어 자결하려 하거늘
New American Standard Bible: When the jailer awoke and saw the prison doors opened, he drew his sword and was about to kill himself, supposing that the prisoners had escaped.
간수가 자다가 깨어
ἔξυπνος δὲ γενόμενος ὁ δεσμοφύλαξ,
awaken then having been the jailer,
직역하면 ‘간수가 깨게 되어서’란 뜻입니다.
‘깨게 되어서’에서 ‘깨게’(ἔξυπνος, awaken)는 형용사이고, ‘되어서’(γενόμενος)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been) 갑자기 확 깨게 된 것을 가리킵니다.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καὶ ἰδὼν ἀνεῳγμένας τὰς θύρας τῆς φυλακῆς,
and having seen having been opened the doors of the prison
‘열린’(ἀνεῳγμένας)은 완료분사 수동태로서(having been opened) 이미 열린 상태를 가리키고, ‘보고’(ἰδὼν)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seen) 확실히 본 것을 가리킵니다.
칼을 빼어 자결하려 하거늘
σπασάμενος τὴν μάχαιραν, ἤμελλεν ἑαυτὸν ἀναιρεῖν,
having drawn the sword, he was about himself to kill
직역하면 ‘칼을 빼어, 그가 자신을 죽이려고 했다’는 뜻입니다.
‘빼어’(σπασάμενος)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drawn) 칼을 확 빼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죽이려고’(ἀναιρεῖν)는 부정사형 동사이고(to kill) ‘하거늘’(ἤμελλεν)은 미완료과거로서(he was about) 의도하는 것을 표현한 것입니다(expressing intention).
죄수들이 도망한 줄 생각하고
νομίζων ἐκπεφευγέναι τοὺς δεσμίους.
supposing to have escaped the prisoners
‘도망한 줄’(ἐκπεφευγέναι)은 완료 부정사형 동사로서(to have escaped) 이미 도망한 것으로 생각한 것을 가리킵니다.
‘생각하고’(νομίζων)는 현재분사로서(supposing) 생각하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1. 간수가 자다가 깨어
간수가 자다가 깨었습니다.
이 간수는 감옥의 책임자였습니다.
요즘 우리나라의 교도소장과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간수들이 죄수들을 지키는 동안 교도소장은 잠을 잤던 것이지요.
어쨌든 이 간수는 자다가 잠을 깼습니다.
2.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감옥의 간수들은 자기가 맡은 죄수 하나가 탈옥을 하면 자기가 대신 사형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죄수를 차라리 죽일지언정 도망은 못 가게 막습니다(행 27:42).
그런데 감옥 문이 열린 것을 보았으니, 모든 죄수가 다 도망간 줄 알고 자다가 깨어서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3. 죄수들이 도망한 줄 알고 칼을 빼어 자결하려 하거늘
죄수 하나만 도망을 가도 사형인데, 죄수들이 모두 도망했다면 얼마나 극한 형벌을 받겠습니까?
그러니 차라리 자결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래야 가족들은 살 것이 아닙니까?
그렇지 않고, 오랫동안 감옥 생활을 하다가 사형을 당하면, 가족들도 다 못 살게 되니까요.
그래서 간수가 바울에게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물었을 때, 바울은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 뿐만 아니라 네 집이 모두 구원을 얻으리라>고 말해주었습니다.
28절. 바울이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하니
New American Standard Bible: But Paul cried out with a loud voice, saying, "Do not harm yourself, for we are all here!"
바울이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ἐφώνησεν δὲ Παῦλος μεγάλῃ φωνῇ, λέγων
Called out but Paul loud in voice, saying
직역하면 ‘그러나 바울이 큰 소리로 불러서, 이르되’란 뜻입니다.
‘불러서’(ἐφώνησεν)은 부정과거로서(Called out) 즉시 크게 부른 모습을 가리키고, ‘이르되’(λέγων)는 현재분사로서(saying) 말하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하니
Μηδὲν πράξῃς σεαυτῷ κακόν, ἅπαντες γάρ ἐσμεν ἐνθάδε.
not should do to yourself harm, all for we are here
직역하면 ‘네 자신을 상하게 하지 말라, 왜냐하면 우리가 다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는 뜻입니다.
‘하지 말라’에서 동사(πράξῃς)는 부정과거 가정법 동사로서(should do) 절대 상하게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있노라’(ἐσμεν)는 현재형으로서(we are) 현재 있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1. 바울이 간수가 자살하려는 것을 보고 큰 소리로 간수에게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다>고 했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간수가 자살하게 내버려 두었을 것입니다.
원수 같은 간수가 자살하게 두고, 죄수들은 도망가게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간수가 자살하지 못 하게 하고 죄수들이 도망을 못 가게 했습니다.
정말 성자가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원수를 용서하고 사랑하고 구원하는 예수님의 마음인 것입니다.
로마서 5장 8-10절에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죄인이고 원수 되었을 때에 아들 예수님을 우리 대신 죽게 하심으로 우리를 사랑하셨다”고 했습니다.
바울이 이 놀라운 사랑을 실천한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 전도요 목회입니다.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피난 갈 수 있는데 안 가고, 이익을 챙길 수 있는데 챙기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원수 같은 간수를 구원했습니다.
오직 사나 죽으나 주님이 존귀하게 여김 받기를 원하는 바울의 복음 정신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 편지하면서, 이 때를 회상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기를 원한다>고 말했습니다.
빌립보서 1:20.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29절.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리고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nd he called for lights and rushed in, and trembling with fear he fell down before Paul and Silas,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
αἰτήσας δὲ φῶτα, εἰσεπήδησεν,
Having called for now light, he rushed in,
직역하면 ‘그가 등불을 요구하고, 뛰어 들어갔다’는 뜻입니다.
‘달라고 하며’(αἰτήσας)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called for) 급하게 등불을 달라고 요구하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뛰어 들어가’(εἰσεπήδησεν)는 부정과거로서(he rushed in) 급하게 뛰어들어간 모습을 가리킵니다.
무서워 떨며
καὶ ἔντρομος γενόμενος,
and terrified having become,
직역하면 ‘두렵게 되어’란 뜻입니다.
여기 동사 ‘되어’(γενόμενος)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become) 간수가 큰 두려움에 빠진 상태를 가리킵니다.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리고
προσέπεσεν τῷ Παύλῳ καὶ Σιλᾷ,
he fell down before the Paul and Silas
‘엎드리고’(προσέπεσεν)는 부정과거로서(he fell down) 납작 엎드린 것을 가리킵니다.
1.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갔습니다.
이처럼 등불을 달라고 해서 뛰어 들어간 것은 과연 바울의 말대로 죄수들이 도망을 가지 않았는가 알아보기 위해서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기들이 무지막지하게 개 패듯 때렸던 바울과 실라가 과연 어떤 사람인가 알아보기 위해서 등불을 가지고 뛰어 들어갔습니다.
2.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리고
간수는 지진이 나고 옥터가 움직이고 옥문이 다 열리고 쇠사슬이 모두 벗겨진 기적 사건을 확인해보고, 세상 법과 이해타산이 아니라, 어떤 신적인 경외심이 생겨서, 바울과 실라 앞에 꿇어 엎드렸습니다.
마치 모세가 호렙산에서 가시 떨기나무가 불에 타지 않는 것을 보고, 경외심을 가지고 발에 신을 벗은 것과 같습니다(출 3:1-5).
요한복음 4장의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을 유대 남자로 알았다가, 자기의 과거를 다 알아맞히는 것을 보고, 경외심이 생겨서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과 메시야에 대한 이야기로 화제를 돌리는 것과 같습니다.
누가복음 5장에서 베드로가 예수님이 기적적으로 많은 고기를 잡게 하신 것을 체험하고, 예수님 앞에 엎드려 나는 죄인이라고 고백한 것과 같습니다.
이처럼 우리들도 살면서 놀라운 사건을 만날 때 하나님의 임재와 섭리에 대한 경외심을 가져야 합니다.
예컨대 교통사고를 당해도 하나님의 손길을 생각하고, 갑자기 아파도 하나님을 생각하고, 갑자기 좋은 일을 만나도 하나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우연히 그런 일이 생겼다고 하면, 이것은 간수보다도 더 무지몽매한 불신자의 모습일 것입니다.
30절. 그들을 데리고 나가 이르되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nd after he brought them out, he said, "Sirs, what must I do to be saved?"
그들을 데리고 나가 이르되
καὶ προαγαγὼν αὐτοὺς ἔξω, ἔφη
and having brought them out, he was saying
‘데리고 나가’(προαγαγὼν)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brought out) 지극히 겸손한 모습으로 데리고 나가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르되’(ἔφη)는 미완료과거로서(he was saying) 계속 분명한 말로 말하는 모습을 가리키고, 원형(φημί)은 ‘말하다, 선포하다’(say, declare)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
Κύριοι, τί με δεῖ ποιεῖν, ἵνα σωθῶ;
Sirs, what of me is necessary to do, so that I may be saved ?
직역하면 ‘선생들이여, 내가 구원받기 위해서는 마땅히 무엇을 할 필요가 있습니까’란 뜻입니다.
‘구원받기 위해서는’(σωθῶ)은 부정과거 가정법 수동태 동사로서(I may be saved) ‘확실히 구원받기 위해서는’이란 뜻이고, ‘하여야’(ποιεῖν)는 현재부정사형 동사이고(to do), ‘마땅히 필요가 있습니까’(δεῖ)는 현재형입니다(is necessary).
1. 그들을 데리고 나가
간수는 바울과 실라를 죄수로 더 이상 감옥에 넣어두지 않고 감옥에서 데리고 나갔습니다.
왜냐하면 바울과 실라는 도망갈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간수는 자기 살기 위해서 바울과 실라를 계속 감옥에 넣어두지 않았습니다.
자기를 살려준 바울과 실라, 하나님이 해방시켜주었는데도, 도망가지 않은 바울과 실라를 감옥에서 석방시켰습니다.
스스로 도망갈 수 있었으나 도망가지 않은 사람을 더 이상 감옥에 넣어둘 필요가 없었습니다.
언제든지 자기 발로 감옥에 다시 들어가려면 들어갈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2.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맏으리이까
간수는 바울과 실라를 선생님이라고 호칭했습니다.
관계가 변하면 호칭부터 달라집니다.
존경하면 선생님이라고 하고 친해지면 말을 놓기도 합니다.
3. 여기서 구원이란 간수가 이제는 더 이상 법적인 문제나 감옥에 대한 문제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아주 심각한 일을 만나면 결국 종교적으로 돌아갑니다.
가정도 심각한 문제를 닥치면, 하나님을 찾든지 하나님을 원망하든지 합니다.
국가도 돈이나 군사력이나 정치나 과학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부딪히면 결국 종교적으로 돌아갑니다.
여기 간수는 법이나 과학을 뛰어넘는 상황에 이르러 종교적 구원을 묻게 되었습니다.
내가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31절.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New American Standard Bible: They said, "Believe in the Lord Jesus, and you will be saved, you and your household."
이르되
οἱ δὲ εἶπαν,
- and they said,
직역하면 ‘그러자 그들이 말했다’는 뜻입니다.
‘말했다’(εἶπαν)는 부정과거로서(they said) 단호하게 말한 것을 뜻합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Πίστευσον ἐπὶ τὸν Κύριον Ἰησοῦν,
Believe in the Lord Jesus
‘믿으라’(Πίστευσον)는 부정과거 명령형으로서(Believe) 단호하고 확실하게 믿으라는 뜻입니다.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καὶ σωθήσῃ, σὺ καὶ ὁ οἶκός σου.
and you will be saved, you and the household of you
‘구원을 받으리라’(σωθήσῃ)는 미래수동태입니다(you will be saved).
1. 감옥의 기적 사건이 전혀 다른 주제와 연결되고 있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어쩌면 간수는 죄 없는 바울을 매질하고 투옥시킨 죄를 어떻게 용서받을 수 있느냐고 물은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 죄 용서의 문제를 영적인 차원으로 승격시켰습니다.
그래서 주 예수를 믿으면, 죄 용서를 받고 영생 천국 구원을 얻는다고 말한 것입니다.
국가가 커다란 문제에 봉착했어도, 궁극적인 해답은 ‘주 예수를 믿으라’입니다.
교육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 심각한 고민이 될 때도 해답은 주 예수를 믿으라 입니다.
가정에서도 부부 문제에 심각한 상황이 되었을 때도 궁극적인 해답은 ‘주 예수를 믿으라’입니다.
자녀 문제로 심각한 고민이 생겼을 때도 궁극적인 해답은 ‘주 예수를 믿으라’입니다.
교회에서 심각한 문제에 봉착했을 때도 궁극적인 해답은 각자가 ‘주 예수를 믿고 주 예수님만 잘 섬기라’입니다.
2.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이처럼 주 예수님만 믿고 신뢰하고 섬기면, 나 자신 뿐만 아니라 가족들도 모두 구원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구원의 두 차원을 봅니다.
나만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내가 구원을 받으면 내 가족이 모두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더 확대하면 내가 구원받게 되면 우리의 사회가 구원을 받게 됩니다.
또한 내가 구원을 받게 되면 우리 민족도 구원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너와 네 자손을 축복하겠고 너를 통하여 네 민족을 축복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구원은 나로부터 다른 사람에게로 파급되는 효과를 가져다줍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것을 누룩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즉 누룩은 적은 것이로되 서 말 전체를 발효시키는 파급효과를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3:33.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갈라디아서 5:9.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느니라.
32절.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nd they spoke the word of the Lord to him together with all who were in his house.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전하더라.
καὶ ἐλάλησαν αὐτῷ τὸν λόγον τοῦ Θεοῦ
and they spoke to him the word of the God
원문이 ‘하나님의 말씀’(τὸν λόγον τοῦ Θεοῦ)으로 되어 있는 사본이 있고(Nestle, Westcott and Hort), ‘주의 말씀’(τὸν λόγον τοῦ κυρίου)으로 되어 있는 사본이 있습니다(Byzantine, Orthodox).
‘전하더라’(ἐλάλησαν)는 부정과거로서(they spoke) 확실하게 말했다는 뜻입니다.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σὺν πᾶσιν τοῖς ἐν τῇ οἰκίᾳ αὐτοῦ.
with all those in the house of him
1. 바울은 간수의 집에 들어가 밤중에 간수와 그 집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지금 간수와 온 집안 식구들은 하나님께서 기적을 베푸셨기 때문에, 바울을 하나님의 종으로 존중하고 바울에게서 하나님의 말씀을 온 마음으로 믿음으로 받으며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얼마나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기만 하면 그대로 믿고 받아들이니 얼마나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겠습니까?
얼마 전에 중국 성도들이 국가적인 핍박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기회가 없었는데, 한국에서 목사나 선교사가 들어가서 말씀을 전하면, 그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것이 진짜 부흥사경회입니다.
듣는 사람들이 마음을 다해서 듣기 때문에 전하는 사람도 최선을 다해서 전하고 있는 부흥회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 전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최우선이었습니다.
그 다음에 바울의 맞은 자리를 치료해주고, 음식 대접도 했습니다.
우리는 먼저 치료해주고 음식 대접부터 하려고 하지만, 실상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듣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회자를 가장 잘 대접해주는 것은 말씀 대접을 잘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도들에게 가장 대접을 잘해드리는 것도 역시 말씀을 잘 전해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장 소중히 대접해야 합니다.
33절. 그 밤 그 시각에 간수가 그들을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어 주고 자기와 그 온 가족이 다 세례를 받은 후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nd he took them that very hour of the night and washed their wounds, and immediately he was baptized, he and all his household.
그 밤 그 시각에 간수가 그들을 데려다가
καὶ παραλαβὼν αὐτοὺς ἐν ἐκείνῃ τῇ ὥρᾳ τῆς νυκτὸς
and having taken them in that of the hour of the night
한글성경에 ‘간수가’란 말은 의미상 추가한 말입니다.
‘데려다가’(παραλαβὼν)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taken) 정성스럽게 데리고 가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그 맞은 자리를 씻어 주고
ἔλουσεν ἀπὸ τῶν πληγῶν,
he washed [them] from the wounds
‘씻어주고’(ἔλουσεν)는 부정과거로서(he washed) 확실히 정성껏 잘 씻어준 것을 가리킵니다.
자기와 그 온 가족이 다 세례를 받은 후
καὶ ἐβαπτίσθη, αὐτὸς καὶ οἱ αὐτοῦ ἅπαντες παραχρῆμα,
and he was baptized, he and those of him all immediately
직역하면 ‘그와 그의 사람들이 모두 즉시 세례를 받았다’는 뜻입니다.
‘세례를 받은 후’(ἐβαπτίσθη)는 부정과거 수동태로서(he was baptized) 확실히 세례받은 것을 가리킵니다.
1. 말씀을 전하는 것이 첫째였고, 그 다음에 맞은 자리를 치료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세례를 받았고 그 다음에 음식을 먹었습니다.
2. 방금 전까지는 간수가 바울을 때리고 욕하고 감옥에 가두었으나, 이제는 간수가 바울을 씻어주고 맞은 자리를 치료해주었습니다.
이 때 간수는 얼마나 죄송한 마음을 가졌겠습니까?
하나님의 종을 몰라보고 욕하고 때렸으니 말입니다.
간수는 눈물로 정성으로 바울을 씻기도 치료해주었을 것입니다.
3. 그리고 바울은 즉석에서 간수와 가족들에게 세례를 주었습니다.
너무도 확실하게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교회 나온 지 6개월 만에 학습을 주고 학습을 준 지 6개월이 지나야 세례를 줍니다.
과연 확실하게 예수님을 믿었는지를 확인해보고, 또 교회에서 세례 교인으로서 의무를 다하는가를 확인해보는 절차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한국교회 초기에는 세례 교인의 의무를 엄격히 규정하여 술 담배, 노름(겨울철 술집 노름방), 마약(양귀비, 대마초), 우상 제사, 축첩 등을 끊어야 세례를 주었습니다.
그러나 이 간수는 극적으로 예수님을 믿고, 너무도 죄스러운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길 것이기 때문에, 즉석에서 세례를 주었습니다.
빌립도 구스 내시에게 즉석에서 세례를 주었습니다.
사도행전 8:38. 이에 명하여 병거를 머물고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에 내려가 빌립이 세례를 주고
34절. 그들을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 주고 그와 온 집안이 하나님을 믿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nd he brought them into his house and set food before them, and rejoiced greatly, having believed in God with his whole household.
그들을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ἀναγαγών τε αὐτοὺς εἰς τὸν οἶκον,
Having brought then them to the house
‘데리고 올라가서’(ἀναγαγών)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brought) 간수가 사도들을 집에 데리고 간 확실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음식을 차려 주고
παρέθηκεν τράπεζαν,
he laid table [for them]
직역하면 ‘식탁을 차려주었다’는 뜻입니다.
‘차려주고’(παρέθηκεν)는 부정과거로서(he laid) 식탁을 차려준 과거의 확실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그와 온 집안이 하나님을 믿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
καὶ ἠγαλλιάσατο πανοικεὶ, πεπιστευκὼς τῷ Θεῷ.
and he rejoiced with all [his] household, having believed in the God
직역하면 ‘하나님을 믿었으므로, 그가 온 집 사람과 함께 기뻐했다’는 뜻입니다.
‘믿으므로’(πεπιστευκὼς)는 완료분사로서(having believed) 이미 믿은 사실을 가리킵니다.
‘기뻐하니라’(ἠγαλλιάσατο)는 부정과거로서(he rejoiced) 참으로 대단히 기뻐한 것을 가리킵니다.
1. 간수는 바울과 실라를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갔습니다.
원래 간수는 죄수들을 자기 집에 데리고 가지 않습니다.
군대에서도 지휘관은 졸병들을 자기 집에 데리고 가지 않습니다.
엄격하게 차별을 합니다.
그런데 간수가 바울과 실라를 자기 집에 데리고 올라간 것은 이제는 바울과 실라를 죄수 취급한 것이 아니고, 마치 성도들이 목사를 자기 집에 심방 오도록 초청한 것과 같습니다.
이처럼 참으로 구원받은 성도는 목사에 대한 태도가 달라집니다.
그러나 아직 믿지 않는 사람은 목사를 권력이 없고 가난한 사람으로 무시합니다.
이처럼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존경심은 하나님의 종인 목사에 대한 태도와 비례합니다.
2. 음식을 차려주고
마치 성도들이 목사를 초대해서 기도를 받고 음식을 대접하는 것과 같습니다.
더구나 이 때 바울과 실라는 종일 얻어맞고 밥을 한 끼도 못 먹고 굶었습니다.
그래서 한밤중인데도 간수는 바울과 실라에게 음식을 대접했습니다.
이처럼 목사는 성도들에게 영적인 양식을 제공하고, 성도들은 목사에게 육신적인 양식을 제공합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9장 11절에 “우리가 너희에게 신령한 것을 뿌렸은즉 너희 육신의 것을 거두기로 과하다 하겠느냐”고 했으며, 로마서 15장 27절에도 “신령한 것을 나눠 가졌으면 육신의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고 했습니다.
3. 저와 온 집에 하나님을 믿었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
만복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믿고 가정에 모시면 큰 기쁨과 행복감이 생깁니다.
그러나 귀신을 모시고 섬기면, 큰 근심과 고통이 생깁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0장 10절에 “예수님이 오신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 함이나, 마귀가 온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이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목사는 성도들에게 유익을 주고 섬기고 잘 보살피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단자는 성도들을 억압하고, 약탈하고, 멸망시키려고 합니다.
황수관 박사는 예수님을 믿은 후에는 항상 기뻐하는 삶을 살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 말씀대로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오늘 본문에서 빌립보 간수가 예수 믿고 큰 기쁨을 가졌는데,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빌립보서 4장 4절에서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혀 있는 것 때문에 근심하지 말고, 항상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바울은 51년에 빌립보 감옥을 통해서 간수 가정을 구원하는 결실을 얻었는데, 63년에 로마 감옥을 통해서는 자기를 지키는 원로원 자녀들을 구원하는 결실을 얻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역경속에서도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양해서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고, 복된 결실을 맺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면서 주님과 동행하는 복된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