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을 찾으셨나요?
우리에게 기억나는 일들 가운데 영종대교에서의 106대 자동차의 연쇄추돌 사고는 땅 넓은 큰 나라에서나 일어나는 줄 알았습니다. 300여명의 인명을 앗아간 6천 톤급의 세월 호 침몰사고도 거친 대양에서나 일어나는 사고 인줄 알았고, 이태원의 압사 사고로 159명이 사망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 아파트를 건축하면서 철근을 빼먹어 붕괴되는 사고가 빈번히 일어나고 있는데 이것 또한 후진국에서나 일어날 법 한 것 같은데 그렇습니다. 신림동에서 칼부림 하던 범인은 여러 역사를 다니면서 많게는 100여명까지 살해 하겠다는 예고를 했었고, 이어 성남 분당 등 곳곳에서 묻지마 칼부림 사건이 일어나고 있는데 이것 역시 우리나라와는 상관없는 것인 줄 알았습니다. 얼마 전 폭우로 말미암아 일어난 지하차도 침수와 산사태로 41명이나 목숨을 잃었는데, 지금 새만금에는 세계 잼버리 대회에 158개국 4만 여명이 모여 있습니다. 걱정이 됩니다.
정부는 이런 사고가 일어 날 때마다 안전을 되풀이 하고 방안을 강구한다고 하지만 어처구니없는 사고와 재난이 계속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소 잃고 외양간 고치듯’행정안전부가 있지만 그 효용성에 의심이들 정도로 국민의 생활은 전천후로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1990년대 중반에도 그런 사고가 되풀이 되었습니다. 그 때에 시중에는‘무서운 개그’가 유행하였고, 꼬리에 꼬리를 물었습니다. 불안한 사회심리를 반영한 내용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가장 무서운 전쟁은‘무서워’(war)이고, 가장 무서운 소년은‘무섭군’(君), 가장 무서운 소녀는‘무서울걸’(girl), 가장 오랫동안 무서운 것은‘무섭지롱’(long), 이런 식입니다. 불안한 세상이 무섭도록 불안한 허무를 낳았습니다. 무서움을 이런 방식으로나마 조롱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렇듯 여전히 일어나는 후진국 형 사고가 반복되는 것을 보면 그 때나 지금이나 별로 상황이 달라진 것이 없어 보입니다. 다만 사람들은 점점 더 중증의 불감증을 앓게 되는 것, 그것이 정말 무서운 이유입니다.
가슴에 맺혀있는 온갖 사건사고와 인재든 관재든 재난들을 통해 예방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장차 올 재앙도 그런 재앙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를 보호하는 것은 사고만 터지면 대안처럼 등장하는 ‘사후’약방문이 아닙니다. 2중 3중으로 두텁게 형성된‘사전’안전망과 함께 바르게 사는 방법, 정직하고 정의로운 삶의 방식을 포함한 공적시스템이 필요합니다. 만약 이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다면 우리 공동체는 언제나 또 다른 공포에서 벗아 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큰 사고를 겪을 때마다 번번이 전국이 들썩일 정도로 호들갑을 떨다가도 조금 지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식으로 둔감하고, 무감각해지는 모습을 보여 왔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위험천만한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있어 개인의 안전을 넘어 공동체의 평화에 대한 소중함을 모르기에 치유가 어려운 중증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제 설마와 우연을 가장한 것을 안전으로 살기에 사람들은 너무 지쳤습니다. 앞으로도 설마는 끝없이 사람을 잡을 것이고, 우연처럼 보이는 현상이 쌓이고 쌓여 필연적으로 재난법칙이 될 것입니다. 과연 안정된 삶을 살 수 는 있는 것일까요? 밤새 안녕하셨습니까? 인사 보다 어떤 구체적인 안전보호가 훨씬 실감나게 느껴지는 오늘입니다.
오늘도 우리에게 평안을 허락하시는 주님께 건강과 행복을 소원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