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12월에 들어섰다.
이달의 절기상으로는 7일(음 10.25) 이 대설(大雪) 그리고 22일(음 11.10) 이 동지(冬至) 이다.
동지는 일 년 중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이다. 걸쭉한 동지팥죽이 떠 오른다.
예로부터 '동짓날'에는 팥을 고아 죽을 만들고 여기에 찹쌀로 단자(團子:새알만 한 크기의 새알심)를 만들어 팥죽을 쑤어 먹는 풍습이 있었는데, 팥의 붉은색이 귀신을 쫓아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라는 유래이다.
오늘날에는 동짓날 팥죽을 쑤어먹는 풍습들은 찾아보기 어려운 현실이다. 그저 옛날 어린 시절의 집단가족관계에서의 추억일 뿐이다.
한 해의 끝 무렵 연말이면 어김없이 챙겨보는 정산(精算)이라는 게 있다.
소득에 대한 정산으로 따져지는 개인별 소득세 신고와 납부, 환급과 관련된 정산을 비롯한 주어진 일들에 한 공과와 성과를 판단해 보는 평가 정산 그리고 한해
지지 부단했었던 일들에 대한 과오를 비롯한 크고 작은 남김들 일 것이다.
지난 11.29일 자승(慈乘)이라는 중의 자발적화장(自發的火葬) 입적(入寂)을 두고 소신공양(燒身供養)이다 아니다라며 설왕설래 야단법석이다.
우리나라 불교계 종단 내 최고의 실세로 알려진 자승이라는 분은 세간에 많이 알려진 낯익은 인물로서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승가 학원 이사장, 은정불교문화재단 이사장, 동국대학교 총재, 봉은사 화주 등등 그 이력 또한 화려하다.
이러한 스님의 입적을 두고 참여불교재가연대 교단자정센터가 조계종 스님들을 대상으로 긴급 설문조사를 한 결과,
'소신공양'에 대한 질문에 대해 '불자들을 깨우치고자 부처님께 공양 올린 소신공양'이라고 밝힌 응답은 6.9%에 그치고 반면 '막후 실권자에 대한 영웅 만들기 미사여구일 뿐이다'라는 응답은 93.1%로 압도적이었다고 한다.
또한 '종단 안정과 불교 중흥을 위해 노력한 큰 스님'(6.2%)이라는 답변보다는 '끝없는 정치적 욕망과 명예를 추구한 사람'이라는 응답이(93.8%) 절대적으로 많았다고 하니 망자에 대한 대단히 고약한 평판이다.
소신공양이란 무엇인가? 문자 그대로 진리를 위해 몸을 불태워 공양한다는 말이다.
생전에 자승스님과 관련하여 한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었던 종단 권력투쟁을 비롯한 밤샘도박사건, 룸살출입, 폭력, 성매매 및 은 처(비밀리에 숨겨둔 부인)의혹등 해외 도박행위까지 잇따른 폭로는 온갖 비리에 연계되어 숱한 논란이 되고 있었던 가운데 개인적 번뇌로 자살을 했는데 소신공양이라는 호도는 그 배경에 관심과 궁금증이 더 커지고 있다.
불교에서는 자신의 마음이 만드는 번뇌(煩惱)가 자신을 어렵게 만든다는 의미로 이를 자승자박(自繩自縛)이라고 한다.
'자신의 밧줄로 자신을 묶는다'라는 뜻으로 자신이 만든 함정이나 구조에 자기가 빠지는 것을 이르는 고사성어인 자승자박은 물리적인 것뿐만 아니라 자신의 논리나 주장에 오히려 자신의 다른 주장이 반박되거나 자신을 궁지에 몰아넣는 경우에도 자승자박이라 부른다고 한다.
부처님의 가르침인 자비(慈悲)는 크게 사랑하고 가엽게 여기는 마음으로 챙기려는 것보다는 비우라는 게 참뜻이라고 했다.
'내 것'이라고 생각한 것을 우연한 사고나 세월이 변함에 따라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을 때" 괴로움이 생긴다.
한때는 '내 것'이었던 것들도 언젠가는 '내 것'이 아니게 된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하는데 도를 닦고 수행하는 중들이 속세에 불미스러운 모습들을 내보이는 건
불제자로서 도리에 크게 어긋난 경을 치고도 남을 일이다.
종단 일부 개혁파 스님들의 주장에 따르면 재력 또한 천문학적인 숫자일 것일다라며 자승은 보기 드문 요승(妖僧)이자 권승(權僧)이다.
출가해서 공부는 하지 않고 권력에 눈멀어 조폭 두목처럼 살다가 허무하게 간 딱한 인생이다.
사찰 방화는 엄연한 방화범인데 소신공양이라고 훈장도 주는 미친 세상이다 등등 무성한 뒷얘기들 또한 나무아미타불이다..
오늘날 기독교나 불교나 세속적인 돈과 권력을 탐하는 데에는 어찌 보면 그 목적이 똑같아 보이기 일쑤이다.
언제쯤에서 부턴가 절에 가도
불경 염불소리는 커녕 중들의 모습도 찾아보기 어렵다.
그저 요사채 인근에 적나라하게 놓여있는 고급 승용차들만이 이들을 대신할 뿐이고
범생불사(凡生佛事)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어 보인 듯하다.
어느 사찰도 예외 없이 발길 닿는 곳마다 곳곳엔 어김없이 불전함들이 즐비해 보이고 온갖 수익사업 수완에는 어김없이 동원된 공양 보살들이 기여 지킴들이다.
기왓장 불사, 공양미, 기도 초 등등의 이른바 관셈보살을 미끼로 앵벌이 하는데 열혈 주저함들이 없어 보여 눈살을 찌푸리게 할 뿐만 아니라, 템플스테이는 날아갈수록 성업들이어서 크고 작은 사찰들도 너도나도 신축 공양에 앞다툼들이다.
종교의 본질인 진리를 찾아서 예수가 말하는 천국과 부처가 말하는 열반은 과연 무엇을 뜻함일까?
가졌다고 있는 게 아니다 없다는게 있는 것이다.
내 것도 네 것도 아무것도 없음이니라.
비워라, 지워라, 잊어라 그리고 망념(妄念)의 그늘에서 벗어나라!
제아무리 기도 기원한다고 세상만사가 네 것이 되더냐?
산다는 건 요행(僥倖)이고 죽는다는 건 원칙(原則)이다.
무엇을 찾아 그리도 해괴하게 살려 안달들 하는가?
차라리 건강한 육신으로 봉사와 배려로 참뜻을 헤아리며 살며 사랑하며 느껴본다면 이게 바로 남겨진 내 것 아닌가 싶다.
"생사가 없다 하나 생사 없는 곳이 없구나. 더 이상 구할 것이 없으니 인연 또한 사라지는구나."(자승스님 열반송)
깨달을 찾아 업보(業報)를 지우는 하루는 늘 건강과 함께 참다운 내 것으로 깨달음을 깨우쳤을 때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것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