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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샘통신 3/190906]건축 미담(美談)들과 현판식 하이라이트
3주간 거의 매일 출근하다시피한 늙수그레한 대목아저씨(인테리어대목이라고 부른단다)가 “사장님은 세상을 참 잘 사셨는 모양”이라고 말했다. “예? 무슨 말씀이세요?” “아니, 요즘 세상에 친구가 집을 고친다고 서울 등에서 친구들이 찾아오고, 이 무더운 날에 무너진 담장을 쌓아주려고 남원 하고도 운봉에서 거의 열흘을 왕래한 친구, 상량(上樑)을 써주는 친구들이 있는 것 보니까 하는 말입니다” “아, 예. 제가 좀 인복(人福)이 많지요잉” 그렇다. 나는 확실히 인복이 많다. 그들에게 ‘보답’하는 의미로라도 확실한 미담(美談) 두 꼭지와 etc. 그리고 친구 20여명과 함께 한 ‘구경재(久敬齋)’ 현판식 하이라이트만은 꼭 기록해 놓아야 할 의무(義務)가 있다.
# 세상에 42km나 떨어진 곳에서 친구네 무너진 담 7m를 예쁘게 쌓아주겠다며 1t 트럭에 칼라블록과 소소한 장비들을 싣고 달려온 친구가 어디 흔할까? 더구나 거동이 불편하신 80대 중반 아버지를 세 끼 봉양해야 할 형편이 아니던가. 참으로 무던하다. 덩치는 삼국지의 장비(張飛)같이 호랑이만한데 감수성까지 예민하여 어찌 보면 소녀같은 친구로 기억하며 서울에서 막역(莫逆)하게 지냈다. 국민의 지팡이 경찰공무원으로 근무, 2년여 전에 정년퇴직하여 고향에 정착하여 부지런히 살고 있는데, 내가 집을 고친다니까 열일을 제치고 달려와 재능기부(才能寄附)를 해주겠다고 하여 나를 감격시켰다. 해도, 이렇게까지 자기 일처럼, 어쩌면 자기 일보다 더 열성(熱誠)을 다하다니, 이래도 되는 것인가? 그저 아름다운 우정(友情)이라고 치부해도 되는 것인가? 눈썰미가 있고 ‘일머리’가 있는지라 자기집 행랑채를 헐고 1년에 걸쳐 손수 지었다지 않는가? 아마추어이긴 해도 노하우가 확실히 남달랐다. 기소를 하고 수평을 봐가며 8단까지 쌓은 담은 보기에 심히 좋았다. 황당하고 가슴 철렁한 사건도 있었다. 맨홀에 쑤욱 빠지듯, 오래된 정화조에 빠진 것이다. 말하자면 똥통인데, 얼마나 놀랐던지, 친구의 안위(安危)에 어쩔 줄을 몰랐는데, 정작 당사자는 별것 아니었다는 듯 늠름한 모습으로 나를 안심시켰다. 유도 유단자의 경력을 발휘했다며 사람좋게 웃어주는 친구가 너무 고마웠다. 밖에 있는 우물가를 시멘트로 공구리했는데, 그 위에 타일을 입히면 좋겠다며 나섰는가 하면, 토방에도 ‘돌 옷’을 입히면 집이 뽀다구가 날 것이라며 재촉했다. 불감청고소원(不敢請固所願)이 이런 경우인가. 외부까지 치장을 하고나니 집이 확실히 다르게 보였다. 한마디로 ‘고급졌다’. 더운 여름날 열흘이 넘게 출근하며 정말 고생이 많았다. 심지어는 자기집 야산의 좋은 흙을 1t 가까이 실고 오기도 했다. 이 ‘웬수’를 어떻게 갚을꼬?
# 유명 건설사에서 오랫 동안 해외근무한 후 정년퇴직하여 고향에 아담한 집을 짓고 정착하여 알록달록 사는 부부가 있다. 이 친구는 고교 3학년때 같은 반이었고 서울에서 대학을 다닐 때에도 종종 만나는 등 친하게 지냈다. 붓글씨를 잘 쓴다는 소문을 우연히 들었다. 한옥집 천장을 뜯으니 상량(上樑)이 나왔다. 단열 때문에도 그대로 노출을 시킬 수 없으므로 그 아래에 ‘가짜 상량’과 ‘가짜 연자(椽子·써가래)’를 다는 게 한옥 리모델링 트렌드이다. 하여, 친구에게 상량을 써달라는 무리한 부탁을 했는데, ‘잘 못쓴다’는 겸양과 함께 흔연히 수락을 한다. 7월 29일 상량 목재가 도착하자마자 남원에서 생활한복에 밀짚모자를 쓰고 달려와 5m쯤 되는 목재에 걸터앉아 땀을 뻘뻘 흘리며 한 자 한 자 쓰기 시작한다. 잘은 몰라도 필체가 아주 좋다. 알고 보니 취미로 붓글씨를 배우다 특기가 되었다한다. 이런저런 대회에서 입상 경력도 많다. 어디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내공이 만만찮아 보여 더욱 기분이 좋았다. 날마다 친구가 써준 상량을 거실에서 누워 볼 수 있다니, 이런 행운이 어디 있을까? 상량의 형식은 이렇다. 한쪽 면에는 맨 앞과 맨 끝에 ‘거북 구(龜)’자와 ‘용 룡(龍)’자를 쓰고 그 사이에 상량을 올리는 날짜를 쓴다. “龜 檀紀四三五4二年己亥七月二十九日午時改築上樑 龍”(원래는 ’龜 應天上之三光 備人間之五福 繼繼承承 子子孫孫 地得吉人 人得吉地 辛坐乙向 龍‘라고 쓰여 있었는데 너무 장황해 줄였다). 반대편에는 ‘새 봉(鳳)’자와 ‘기린 린(麟)’자를 크게 쓰고 그 사이에 “鳳 心誠伏願 立春花發文章樹 麟”(원래는 鳳 心誠伏願 立春花發文章樹 建陽日出壯元峰 災殃秋葉霜前落 富貴春花雨後紅 麟’라고 쓰여 있었는데, 역시 글자수를 줄였다). 뜻은 이렇다. ‘정성스런 마음으로 원합니다. 입춘날 꽃은 문장나무에서 피고, 건양에 해는 장원봉에 솟으며 재앙과 가을잎은 서리 앞에 떨어지고 부귀와 봄꽃은 비온 뒤에 붉게 핀다. 잘은 몰라도 좋은 말일 것이다. 이 집안에 주는 최고의 덕담(德談)이지 않는가. 장장 3시간여만에 상량 글씨가 완성되었다. 얼마나 멋지던지. 친구는 “좋은 마음, 깨끗한 마음으로 썼으니 모든 것이 다 잘 될거야”라고 카톡문자를 보냈다. 이렇게 멋을 아는 친구가 재능 기부를 하였으니, 띵호아(頂好)! 애썼다. 고맙다. 친구야. 기억하지 않으려 해도 거실생활을 하니 늘상 볼 친구의 글씨. 한없이 자랑스러웠다.
# 광주에서 해창막걸리 4병(검색해 보시라. 얼마나 독특하고 비싼 막걸리인지. 인터넷 주문으로만 가능, 1병에 12,000원)과 팍 싹힌 홍어회 2접시를 사갖고 위문공연을 왔다. 운봉친구와 내가 뻘뻘 고생을 하니, 가만히 있을 수 있나? 공병대 출신답게 노가다도 잘 한다. 형수가 술과 안주를 사주며 가보라고 했다고 한다.
# 우리 동창회의 ’명물 놀이꾼‘ 사무총장이 고향 꾀복쟁이 친구와 들러 격려와 응원을 하고 갔다. 역시 총장답게 인증샷을 찍고 어깨를 두들겨주며 “열심히 해!” 던진다. 작은 체구에 카리스마로 똘똘 뭉쳐 있다. 그 한마디에 힘이 솟다.
# 남양주시에 동창들의 힐링쉼터를 제공한 우리의 ‘손 큰’ 친구가 미국에서 유수한 약학대학을 다니는 두 딸과 젊고 예쁜 형수를 모시고 나타났다. 패밀리 방문이라니? 뱀사골 가는 길에 들렀다지만, 쉽지 않은 여정에 가족과 함께 위문을 해준 친구도 오래도록 잊지 못할 일.
# 2019년 연례 정기행사인 천렵(川獵)을 자기 집에서 성대하게 치르느라 애쓴 친구는 몇 차례나 아이스크림과 물 몇 박스를 댔다. 일꾼들이 감격해 하다. 우리 친구들은 어쩌면 그렇게 모두 모두 ‘배려(配慮)의 화신(化身)’같을까. 대한민국에 고등학교가 300개쯤 된다고 한들, 이런 고등학교 눈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다. 전라고 파이팅!
*마지막으로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우천 최영록의 고향집 리모델링 공사 끝마무리 하이라이트를 빼놓을 수 없다. 우연하게도 천렵장소와 고향집이 2km정도 떨어져 있다. 광복절 다음날 오전 11시, 천렵행사를 해피하게 치른 친구 20여명이 고향집에 들이닥쳤다. 명목은 ‘구경재’ 현판식. 흰 종이로 가려놓은 편액을 처음 공개하는 것. 마침맞게 고향집에 오신 구순의 우천 아버지, 이강춘 회장 그리고 본인이 하나둘 구호에 맞춰 종이를 내리자 예서(隸書)로 정갈하게 쓰여진 ‘구경재’가 드러나다. 일동 모두 박수로 축하해 주다. 이어서 모두 거실로 들어가 앉아 혼불문학관 전문해설가가 10여분 설명을 하는 시간도 가졌다. 생각해 보라. 언제 동창 20여명이 우리 고향집 거실에 앉아 있겠는가. 2019년 여름은 행복했다. 우리 친구들은 우천이 2019년 여름 무엇을 했는지 다 알고 있다. 흐흐. 우천은 참 인복도 많다. 대목아저씨가 말한 대로 세상을 잘 산 때문이겠지. 그렇겠지? 밤이 깊었다. 1시 47분. 내일을 위해서라도 눈을 좀 붙여야 할 터인데. 인터넷바둑을 내리 세 판 지자 6단에서 5단으로 추락. 멋지고 고마운 친구들을 생각하며 화를 삼키고 잠을 청한다.
첫댓글 잘 읽어보았습니다. 축하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