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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산악회 A 코스인 '병사교 → 병사골 탐방센터 → 장군봉 → 갓바위 → 신선봉 → 큰배재 → 남매탑 → 삼불봉 → 자연성릉 → 관음봉 → 은선폭포 → 동학사 → 천장 탐방지원센터 → 동학사 주차장'의 12km 구간을 6시간 30분 동안 탐방할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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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산[鷄龍山]
높이: 847m
위치: 충남 공주시 계룡면
계룡산은 주봉인 천왕봉에서 쌀개봉, 삼불봉으로 이어진 능선이 흡사 닭 볏을 한 용의 형상이라는 데서 생긴 이름이다. 지리산, 경중에 이어 3번째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계룡산은 수려한 산세와 울창한 숲을 지닌 데다 교통의 요지인 대전 가까이 있어 전국적으로 많은 이들이 즐겨 찾는다.
계룡산은 조용한 산줄기 곳곳에 암봉, 기암절벽, 울창한 수림과 층암절벽 등 경관이 수려고 아름다운 자태와 더불어 고찰과 충절을 기리는 사당을 지닌 것으로도 이름 높다.
동쪽의 동학사, 서북쪽의 갑사, 서남쪽의 신원사, 동남쪽의 용화사 등 4대 고찰과 아울러 고려말 삼은을 모신 삼은각, 매월당 김시습이 사육신의 초혼제를 지낸 숙모전, 신라 충신 박제상의 제사를 지내는 동학사 등이 그것이다.
계룡산은 흔히 봄 동학사, 가을 갑사로 불릴 만큼 이 두 절을 잇는 계곡과 능선 등 산세의 아름다움은 널리 알려져 있다.
갑사 계곡은 계룡산 국립공원의 7개 계곡 중 "춘마곡 추갑사(봄에는 마곡 계곡, 가을에는 갑사계곡)"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단풍이 빼어난 곳이다. 5리 숲이라고도 부르는 갑사 진입로는 특히 장관이다. 갑사를 중심으로 철 당간지주, 사리탑 등 불교 유적이 많다.
특히 갑사 계곡 아홉 명소 중 하나인 용문폭포는 아무리 심한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고 흐르는 영험함 때문에 기우제나 산제 등 무속행사의 장소로 주목을 받는 곳이다.
계룡산은 사계절 산행지로 봄에는 동학사 진입로 변의 벚꽃 터널, 여름에는 동학사 계곡의 신록, 가을에는 갑사와 용문폭포 주위의 단풍, 겨울에는 삼불봉과 자연성릉의 설경이 장관을 이룬다.
계룡 8경 중 제2경인 삼불봉의 설화는 겨울 계룡산 최고의 풍광으로 꼽힌다. 계룡산 겨울 산행의 백미는 관음봉에서 삼불봉에 이르는 1.8㎞의 자연성릉 구간이다. 자연스러운 성곽의 능선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한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협소한 길목이 자주 나타나 변화무쌍한 코스다.
특히 함박눈이 내린 다음 날 햇살에 살짝 녹아 얼음이 반짝이는 설경은 일품이다. 날씨가 맑은 날 삼불봉 정상에 서면 남서 방향으로 구불구불 용의 형상을 한 능선을 타고 관음봉과 문필봉, 연천봉, 그리고 쌀개봉과 천왕봉의 위용이 한눈에 들어온다.
주봉인 천왕봉의 일출은 계룡산 최고의 비경으로 꼽히지만, 등산객의 접근이 쉽지 않다.
계룡 팔경
천왕봉에서 바라본 일출 광경
삼불봉을 하얗게 덮어버린 겨울의 흰 눈
연천봉의 낙조
관음봉을 싸안고 한가롭게 떠도는 구름
한여름 동학사 계곡의 숲
가을 갑사 계곡을 온통 붉은색으로 수놓은 듯한 단풍
은선폭포가 낙수 되면서 하얗게 물거품을 일구어내는 물안개
남매탑에 반쯤 걸린 달의 모습
갑사
계룡산 서북쪽 기슭 해묵은 노송과 느티나무 숲이 우거진 곳에 자리한 갑사는 화엄종 10대 사찰의 하나이며 5개의 암자를 거느리고 있다.
고구려의 구이신왕 원년(420년) 고승 아도화상이 신라에 불교를 전하고 귀국길에 계룡산을 지나다가 이곳 배석대에 주춧돌을 놓았다는 설화가 있다. 경내에는 대웅전, 사적 원지인 대숙전, 천불전 등 10여 채의 건물들이 있고 부도와 당간지주 월인석보 판본 등 문화재가 있다.
동학사
신라 중엽 때 사원 선사가 창건했다는 설과 백제 때 회의 화상이 창건했다는 설이 있다. 이 절은 마곡사의 말사이자 비구니들의 전문 강원이나 고려조에 와서 도선국사가 중수했으며 태조의 원찰로 삼아 국태민안을 빌었고, 그 뒤 순조대와 고종 원년(1864년)에 크게 중건 개수되었다.
이 절의 법등은 주로 비구니들에 의해서 지켜져 왔으며 지금도 전국 비구니들의 불법가원으로 경내에는 대웅전 숙모전 삼은각 동학사 등 청아한 불각과 3층 석탑 부도 등이 있으며 가까이에 있는 오뉘탑(남매탑)에는 불사다운 전설이 얽혀 있다.
남매탑
동학사에서 갑사로 넘어가는 중간지점에 탑2기가 다정하게 서 있다. 충남 지방문화재 제1호인 남매탑은 청량사가 있던 자리라 하여 청량사지 쌍탑이라 고도 불리며 불사다운 전설이 얽혀 있다.
인기 명산 [8위]
국립공원 계룡산은 주 능선의 층암절벽인 자연성릉과 동학사 및 갑사의 울창한 수림으로 가을 단풍이 절경이고 봄에는 동학사에 이르는 도로변의 벚꽃 또한 볼 만하다.
단풍이 절정인 10월과 벚꽃이 만개하는 4월 순으로 많이 찾지만, 지리적 접근이 편리하고 삼불봉의 겨울 설경도 아름다워 사계절 두루 인기 있다.
산림청 선정 100대 명산
에로부터 신라 5악의 하나인 서악(西岳)으로 지칭되었고, 조선시대에는 3악 중 중악(中岳)으로 불린 산으로서 국립공원으로 지정(1968년)된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되었다.
산 능선이 마치 닭의 볏을 쓴 용의 모습과 닮았다고 하여 계룡산이라는 이름이 유래되었으며, `정감록(鄭鑑錄)'에 언급된 십승지지(十勝之地) 중 하나임. 신라 성덕왕 2년(724년) 회의 화상이 창건한 동학사(東鶴寺)와 백제 구이신왕(420년) 때 고구려의 아도화상에 의하여 창건된 갑사(甲寺)가 있다. - 한국의 산하
이번 주 일요일은 안내산악회와 함께 김해 무척산, 신어산 1일 2 산행을 할 예정이었으나, 주말 눈. 비와 한파에 신청자 중 많은 수가 취소하는 바람에 산행 자체가 취소되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해서 그 대안으로 떠오른 산행이 설악산 서북 능선, 덕유산 안성 탐방센터, 계룡산이나, 이 중 설악산은 한계령에서 코스를 각자 알아서 선택하는 산행이다. 당연히 눈 소식에 몰린 등산객이 주로 달리는 구간은 대청을 거쳐 공룡이라, 서북 능선 방향으로 가는 산꾼은 내가 유일할 확률이 높다. 폭설 속 서북 능선에서 홀로 러셀 하며 종주 하는 건 체력적으로 불가능해 포기했다. 와중에 대설주의보 발령으로 설악산이 통제되는 바람에 산행 자체가 취소됐지만. 그리고 덕유산은 안내산악회 당 2~4대의 버스가 동원되는 호황이라, 오죽하면 덕유산 국립공원공단에서 곤돌라 대기에 2시간 이상 걸리니, 이에 대비하라는 공지를 올렸을 정도라 포기했다.
고로 하나 남은 게 계룡산인데, 안내산악회의 산행계획을 보니, 상봉을 뺀 장군봉 코스 산행이라 이 역시 폐기하고, 가까운 북한산에나 갈까 하다가 무언가 이상해 계룡산에 관해 찾아보니, 정상은 군부대가 차지하고 있어, 갈 수 없었다. 물론 그걸 뚫고 가는 산꾼이 있기는 했으나, 계룡산은 2012년 4월 두 친구와 오른 게 처음이자 마지막이라 기억이 전혀 없다. 해서 정상은 갈 수 없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럼, 상황이 달라졌다. 해서 바로 계룡산행을 신청해 일요일 가게 됐다. 계룡산행을 망설인 것 중 하나인, 비는 산행 직전에 눈으로 바뀐다는 예보라 문제될 건 없다. 그리고 산악회 계획이 12km 구간에 소요 시간을 6시간 30분으로 책정해, 하산 후 늦은 점심도 가능하다고 판단, 일단 준비는 평소와 같이 하나, 다른 산행과 같이 1시간 이상의 하산주 시간을 확보하는 게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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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5시 50분 마을버스를 타고, 불광역에서 5시 57분 오금행 지하철로 양재역에 도착한 시각이 6시 40분경이라, 산악회 버스 출발 시각인 7시까지 허비하는 시간이 너무 많았다는 게 평소 생각이다. 해서, 몇 번 그다음 버스는 어떨까 고민하다가 이번 기회에 시험해 보기로 하고, 평소보다 10분 늦은 5시 10분에 기상해 평소와 다름없이 모든 과정을 마치고 5시 55분에 준비해둔 배낭을 둘러메고 집을 나섰다. 그런데, 비가 내린다. 계룡산에 비가 내린다는 건 며칠 전부터 산악날씨를 확인했으니, 알고 있었으나, 막상 서울에 비가 내린다는 건 모르고 있는 자신을 향해 쓴웃음을 지어주었다. 그리고 배낭에서 레인 커버를 꺼내 씌우고, 보조 파우치에 들어 있던 우산도 꺼냈다. 그런데 바람에 흩날리는 가랑비는 굳이 우산을 펴지 않아도 바람막이 모자를 둘러쓰면 문제없어 보여(사실은 귀차니즘), 그렇게 하고 정류장으로 가 5시 59분에 도착한 마을버스를 탔다.
6시 4분경 불광역에 도착해 6시 6분 오금행 열차를 타고 나서야 그동안 내가 왜 5시 57분 열차를 탔는지 기억이 났다. 57분 열차는 기점이 구파발, 6분 열차는 대화라, 57분 열차는 널널하지만, 6분 열차는 휴일임에도 빈자리가 없을 정도라 피해 왔다. 역시 나는 잘 잊는다! 어쨌든 다행히 빈자리를 발견해 앉아서 양재역까지 달려, 적당한 시각인 6시 49분경 도착했다. 승차장에서 개찰구로 올라가자, 많은 등산객이 추위를 피하려고 또는 일행을 기다리기 위해 밖으로 나가지 않고 역 구내에서 서성이고 있다. 그들을 뒤로하고 국립외교원 앞으로 가기 위해 12번 출구 계단을 올라가는데, 입구에 많은 등산객이 서성이는 게 보인다. 볼 것도 없이 비 때문이다. 위로 올라가 보니, 바람막이로 막을 수준이 아니다. 그래서 많은 등산객이 입구에서 망설였다. 그나마 다행은 집에서 나올 때 우산을 배낭에 넣지 않고 바람막이 주머니에 넣었다는 거.
바람막이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우산을 꺼내 쓰고, 국립외교원 앞으로 가며 보니, 다른 산악회 버스의 경유지인 마을버스 정류장도 등산객으로 가득 찼다. 설악산, 오대산 등은 입산을 통제할 정도로 눈이 내린다는 예보와 산악회의 광고로, 안내산악회의 규모를 불문하고 산악회별로, 적게는 2대 많게는 5대의 버스가 눈꽃으로 유명한, 덕유산, 소백산, 선자령 등으로 출발한다. 고로 고속도로로 직전의 경유지인 양재역 주변은 비가 내리는 와중에도 등산객으로 인산인해다. 당연히 국립외교원 앞은 다른 곳에 비해 서너 배는 많은 사람으로 정신없다. 그들과는 멀찍이 떨어져 계룡산행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선자령행 1호차를 선두로 버스가 속속 도착한다.
비가 내려 우중충한 가운데, 평소의 세 배 이상의 버스가 도착하니, 그 인파를 뚫고 버스를 찾는 것도 쉽지 않다. 1열로 늘어선 버스 행렬이 경부고속도로 나들목까지 이어졌고, 갈림길이라 진입하지 못한 버스는 건너편에서 앞선 버스가 빠지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버스를 찾아 외교원 앞에서 경부고속도로 나들목까지 내려왔는데, 계룡산행 버스는 없다. 행렬의 중간에 빠져나간 자리로 들어가는 버스도 있어, 버스를 찾아 외교원까지 다시 올라가야 하는데, 그 시간도 만만치 않아, 인솔 대장에게 도착했는지 전화해보니, 아직 도착 전이란다. 이미 출발 시각인 7시에서 7~8분이 지났으나, 아직 도착하지 않다는 말에 기쁨을 느낄 정도로 혼잡했다. 그렇게 나들목 주변에서 버스를 기다려, 7시 10분경 거의 끝으로 계룡산행 버스가 도착했다. 다행히, 28인승 버스에 인솔 대장 포함 승객이 27명으로 한 자리가 비는데, 그 자리가 마침, 내 옆자리라, 배낭을 짐칸에 넣는 수고를 하지 않고, 짊어진 그대로 버스에 탔다.
버스에 탄 후 빗물이 뚝뚝 떨어지는 배낭을 의자에 놓을 수는 없어, 옆자리 바닥에 우산과 같이 내려놓고, 바람막이를 벗어, 옷걸이에 걸었다. 그리고 슬리퍼로 갈아 신은 후 가장 편한 자세로 앉아 책을 보기 시작했다. 원래 이 버스는 사당을 기점으로 양재, 동천, 죽전, 신갈을 거쳐 들머리로 갈 예정인데, 어쩐 일인지 동천, 죽전 승객이 없었다. 해서 인솔 대장이 그중 여덟 명의 단체 승객에게 동천, 죽전 승객이 없다는 걸 다시 확인하고, 동천과 죽전 간이 정류장은 지나쳐 신갈에서 승객을 태웠다. 만약 동천이나, 죽전에서 승객을 태웠다면 양재에서 겪었던 일을 반복해야 했으나, 그 과정이 없어, 다른 버스에 비해 빠르게 들머리로 갈 수 있었다. 버스에서 책을 보다가 졸기를 반복하는데, 인솔 대장이 정안휴게소에서 20분간 휴식한다고 공지한다.
가랑비가 내리는 휴게소에 내려 볼일 보고 나와, 관광 버스가 주차한 곳으로 가 목적지가 어딘지 일일이 살펴봤다. 눈이 온다는 소식에 출발한 버스라면 선자령, 태백산, 소백산, 덕유산 등으로 가는 게 정상인데, 충남이나, 전남으로 향하는 휴게소에 주차했으니, 그 목적지가 어딘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안내산악회 버스는 내가 탄 차가 유일했고, 나머지는 폐쇄 산악회가 전세 낸 버스로 LED에는 목적지가 아니라, 산악회 이름만 반짝이고 있다. 도대체 어디로 가는 궁금했는데, 목적지를 알 수 없어 실망하고 버스로 돌아가, 자리에 앉아, 출발을 기다렸다. 그런데 여대생으로 보이는 내 앞자리의 승객 둘이 자리에 앉으며 하는 대화 소리가 들린다. 익숙한 언어가 아니라서, 귀를 기울여 보니, 중국 말로, 여덟 명 단체 중 둘이다. 관광객은 아니고, 유학생 같다. 코로나 시기 전에는 국적을 불문하고 다양한 외국인과 같이 신에 다녔느데, 산행도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왔다!
휴식이 끝나고 버스가 출발하자, 인솔 대장이 이번 산행의 코스와 주의 사항에 관해 설명을 시작했다. 다들 젊으니 말을 잘 알아들을 거라고 얘기를 꺼내, 코스에 관해 설명하고, 들머리인 병사교에 9시 16분경 도착 예정이니, 책정된 소요 시간 6시간 30분을 더해 3시 50분이 마감이라고 공지했다. 그리고 최소 10분 전인 3시 40분까지는 버스로 오라는 말로 얘기를 끝냈다. 8시 45분에 정안 휴게소를 떠난 버스는 9시경 고속도로를 벗어나, 국도로 들어서더니, 9시 17분에 들머리인 병사교에 도착했다. 우산 유무는 산행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먼저 버스 안에서 그 지역의 기상 상황을 확인했다. 휴게소까지만 해도 가랑비가 내리고 있었는데, 싸락눈으로 바뀌어, 비가 눈으로 바뀔 거라는 일기예보가 맞았다. 해서 우산을 펼쳐 의자 아래에서 두고, 바람막이의 모자를 덮어쓰고 버스에서 내렸다. 그런데, 허허벌판의 버스 정류장으로 계룡산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려주는 어떠한 정보도 없다. 그래서인지 대장이 차에서 내리기 전 버스 진행 방향 오른쪽으로 들어가라고 강조했던 거 같다. 대장의 지시대로 오른쪽을 보니, 비구름에 가린 봉우리가 보이는데, 오늘의 첫 번째 목표로, 탐방센터에서 1km 거리의 장군봉으로 보여 기록으로 남겼다.
2 – 2
가야 할 목표를 확인한 후 등산 앱으로 현 위치의 고도를 확인해 보니, 131m다. 산행 계획을 세우기 위해 국제신문에서 만든 지도에서 본 바에 의하면 장군봉의 높이가 500m가 넘고, 오를 수 있는 최고봉인 관음봉의 높이가 800m가 넘어, 들머리의 높이가 최소 200m는 넘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그보다 한참 낮다. 고로 표고차가 650m가 넘는 꽤 힘든 산행을 예고하고 있다. 이 정도 높이는 올라야 산행하는 재미가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대장의 지시대로 도로를 따라 200여 미터를 가자, 갈림길이다. 물론 이정표 따위는 없다. 앞선 대여섯의 등산객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주저하고, 대장이 오기를 기다리며 뒤를 힐끔거리고 있다. 대장은 버스가 B 코스 들머리인 동학사 주차장으로 출발하는 걸 보고, 다른 등산객 너덧 명과 이제 막 정류장을 떠나, 도착하려면 아직 멀었다. 그런데, 누구도 지도를 확인할 생각을 안 한다. 해서 핸드폰을 꺼내 등산 앱의 지도를 확인해 보니, 우회전해야 하고, 정규 등산로는 우리로부터 꽤 먼 거리에 있는 게, 농로를 따라 많이 가야 했다. 그 사실을 주변의 등산객에게 알려주고, 우회전해서 농로를 따라 들머리를 향해 갔다
농로를 따라 9분 정도 가자, 작은 초소가 보인다. 계룡산 국립공원 병사골 탐방지원센터로 장군봉 들머리다. 그런데, 센터가 아주 애매한 곳에 있음에도 도로에서 센터로 향하는 어떠한 정보도 없는 걸 보면, 장군봉은 등산객이 잘 찾지 않는 봉우리로 생각됐다. 어쨌든 탐방센터 앞에 있는 지도를 기록으로 남기고, 국립공원답게 잘 정비된 등산로를 따라 1km 거리의 장군봉을 향해, 본격적인 계룡산 국립공원 산행을 시작했다. 그런데 앞선 등산객이 탐방지원센터에서 등산 준비를 하거나, 화장실을 다녀오는 바람에, 버스에서 내릴 때 모든 준비가 끝난 내가 선두가 돼, 외롭게 올라가며, 가끔 따라오고 있는지, 뒤를 힐끔거렸는데, 우산을 든 인솔 대장만 보인다. 이 인솔 대장은 역시 우중 산행이었던 2022년 3월 용봉산, 덕숭산행을 같이 했다[산행기]. 우리 둘은 우중 산행에 인연이 있어 보인다.
9시 32분에 '장군봉 0.9km' 이정표를 지나, 병사골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기도 하며, 암릉으로 위로 오르자 첫 번째 전망대가 나타났다. 그래봐야, 온 세상이 눈구름에 싸여 있어 보이는 게 거의 없으나, 그래도 뭔가를 남겨야 할 거 같아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다시 군데군데 설치된 철 계단을 따라 10여 분을 올라가자, 두 번째 전망대가 등산로에서 벗어나, 툭 튀어 나가 있다. 무언가가 보일 거라는 기대는 없었으나, 그래도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등산로를 떠나 전망대로 가 보았으나, 예상대로라, 암릉만 기록으로 남겼다. 와중에 뒤따라오던 대장이 나를 추월해 선두가 됐다. 전망대를 떠나, 대장의 20여 미터 뒤에서 암릉을 따라가, 9시 48분에 탐방지원센터와 장군봉의 중간지점에 있는 이정표에 도착했다. 해발 285m! 꽤 올라왔다고 생각했는데, 기껏 150m 정도다!
보이는 게 없으니, 찍을 것도 없어, 그저 앞만 보고, 장군봉으로 향하는데, 암릉과 암봉이라 산행 재미는 좋다. 싸락눈이 내리기는 하나, 눈이 쌓인 게 아니라, 아이젠을 착용하고는 산행이 힘든 상태의 등산로라, 아이젠은 배낭에서 꺼내지도 않았는데, 암릉 중간중간 미끄러운 구간도 있다. 물론 그 구간이 짧아, 굳이 아이젠을 꺼낼 이유가 없다. 그렇게 앞만 보고 올라가는데, 10시 11분에 등산 앱이 반경 50m 내에 고지가 있음을 음성으로 알려준다. 해서 동영상을 찍으며 장군봉으로 향해, 10시 14분에 봉우리 정상이라는 생각되는 곳에 도착했는데, 어디에도 장군봉이라는 표지가 없고, 정상에서 벗어난 아래 전망대에 안내도가 보인다. 해서 전망대로 갔는데, 안내도 외에는 장군봉임을 알려주는 어떠한 표지도 없다. 일단 안내도를 기록으로 남기고, 다시 정상이라 생각되는 곳으로 돌아와 이정표를 기록으로 남기며 보니, 기둥 아래에 '장군봉' 명패가 붙어 있다. 그런데, 동영상을 찍을 때는 몰랐는데, 산행 후 영상을 검토해 보니, 명패가 찍혔다. 이래서 사진이든 동영상이든 찍는다. 내가 미처 못 본 걸 나중에 확인하기 위해!
인솔 대장 포함 4명이 장군봉 정상과 전망대에 있었으나, 장군봉 표지가 이정표에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없어 보이고, 싸락눈에 만사가 귀찮은 상황에 인증을 부탁하는 건 무리라, 이정표를 배경으로 셀카를 남기는 것에 만족했다. 그리고 10시 15분에 장군본을 떠나, 남매탑을 향해 우회전하자, 왼쪽으로 전망대가 보인다. 날씨가 맑았다면 어떤 조망을 보여줄지 기대되는 전망대나, 현재는 눈구름 속이라 보이는 게 아무것도 없는 걸 아쉬워하며 계속 가자, 데크 계단이다. 결과적인 얘기나, 계룡산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계단지옥’이라 불러도 될 정도로, 등산로의 50% 이상이 계단이라는 느낌이다. 계단을 내려서면, 거친 돌길 아니면 암릉이라, 산행이 쉽지 않았다. 와중에 왼쪽 등산화가 이상해 살펴보니, 뒤꿈치 부분의 밑창이 떨어져 달랑거린다. 구두수선소에서 나온 후 두 번째 산행에서 다시 떨어졌다. 다행히 현재까지 오른쪽은 이상 없다. 당장 할 수 있는 조치는 더 벌어지지 않게 끈으로 묶는 건데, 아직 그 정도는 아니라 발걸음을 조심하며 계속 갔다.
10시 25분에 남매탑 3.7km 거리의 이정표를 통과해, 10시 30분에 또 다른 전망대를 발견했으나, 보이는 게 없어, 전망대를 기록으로 남기고 계속 남매탑으로 향했다. 이번 산행에서 계룡산이 악산이라는 걸 확인했는데, 그런 만큼 곳곳이 전망대다. 눈구름 속이라 보이는 게 없어, 기묘한 바위나, 나무, 이정표 또는 전망대 자체를 사진으로 남겨야 하는 아쉬운 산행이다. 등산화 밑창이 더 벌어지지 않게 조심하며, 앞만 보고 몇 개인지 모를 계단과 밧줄이 걸린 암벽을 오르내리고 있는데, 문자가 도착했음을 알리는 핸드폰 알림음이 들린다. 해서 핸드폰을 꺼내 확인해 보니, 수요일 심야에 출발 예정인 백두대간 동대산 구간이 취소자가 많아 5월로 연기한다는 안내다. 애초 2022년 11일 9일 출발할 예정이었으나, 산불 통제 기간이라, 1월 18일로 연기한 건데, 이번에는 성원을 채우지 못해 5월 17일로 연기한다는 거다. 계룡산으로 떠나오기 전 성원을 간신히 채운 상태라, 연기될 확률이 70% 이상이라 여기고 있던 산행이라, 놀랍지는 않다. 다만, 천고지 응복산, 약수산, 백두대간 진고개에서 구룡령까지 연결이 쉽지 않아 한탄할 뿐이다.
올 게 왔다고 생각하며, 이런 경우를 대비해 Plan B로 생각하고 있던, 속리산 국립공원 백악산행을 바로 신청했다. 그 산행을 발견했을 당신 빈자리가 4개에 불과해, 나와 같은 경우에 처한 대간꾼이 최소 14명이라, 동대산행을 연기한다는 안내를 받자마자 바로 신청했다. 해서, 이번 목요일에는 속리산 국립공원 백악산에 간다. 물론 초행이다. 산행 중 핸드폰으로 산악회 사이트에 들어가 몇 가지 조치를 하고 나자 배가 고파온다. 이제 11시인데, 요즘은 산에서 배가 쉬 고픈 데, 추위에 열을 많이 발산해서 그런 게 아닐까? 어쨌든 점심으로 가져온 컵라면을 먹기에는 이른 시간이라, 이런 때를 대비해 배낭 허리띠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에너지바를 꺼내 먹으며 남매탑으로 향해, 11시 10분에 ‘지석골’ 갈림길에 도착했다. 남매탑까지 남은 거리는 2.3km, 장군봉에서 꽤 왔다고 생각했는데, 고작 1.5km 정도 왔을 뿐이다.
쉼터가 있는 지석골 갈림길에는 장군봉 방향으로, '장군봉을 거쳐 병사골 탐방지원센터까지는 길이 매우 험하여 체력 소모가 많은 구간이니 우회하라'는 안내문이 서 있었다. 그 안내문을 보자, 2km/h 정도의 속도를 유지한 게 내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그리고 지석골 갈림길에서 주변을 관찰하고 있는데, 그 방향에서 한 명의 등산객이 올라와 남매탑 방향으로 향해, 기록을 마치고 그 뒤를 따라가는데, 등산 앱이 고지에 도착했음을 알린다. '응? 뭐지?'하고 핸드폰을 꺼내 확인해 보니, ‘갓바위봉(임금봉)’이다. 오른쪽 위의 능선에 있는 바위에서 갓의 모습을 찾으며, 앞서간 등산객을 추월해 능선에 올라섰는데, 능선 우로 바위는 있으나, 갓을 닮아 보이지는 않고, 진행 방향인 좌 또한 마찬가지다. 물론 정상석이나, 표지, 이정표도 없어, 갓바위봉이 어딘지 알 수가 없었다. 다만, 진행 방향 반대의 큰 바위를 가리키는 게 아닌가 생각할 뿐이다.
갓바위봉을 지나, 남매탑으로 향하는데, 오른쪽 등산화의 느낌이 이상해 살펴보니, 오른쪽도 밑창이 너덜거린다. 왼쪽이 너덜거려, 오른발 위주로 산행한 결과다. 고로 이제는 두 쪽 다 밑창이 떨어져 나가지 않도록 조치해야 할 상황이다. 그리고 11시 30분이 지나, 점심을 먹어야 한다. 해서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붓고 그게 부는 동안, 등산화 비상조치를 하기로 하고, 적당한 장소를 찾으며 전진하는데, 좌우가 다 바위나 젖어있어 앉기가 좋지 않았다. 와중에 그중 한 바위에 올라갔다가 마음에 들지 않아 조심스럽게 내려오다가 미끄러져 급하게 왼손을 짚었으나, 엉덩방아를 찧는 걸 막지는 못했다. 그나마 다행은 왼손을 다치지 않았다는 거에 만족했다. 그런데 하루가 지나고 스마트 워치의 줄의 느낌이 이상해 살펴보니, 끝이 약간 찢어져 있다. 손 대신 시곗줄을 계룡산신에게 줬다. 어쨌든 아픈 엉덩이를 주무르며, 식당을 찾아 조금 더 가자 등산로 왼쪽 거대한 바위 뒤에 평평한 공간이 있어 그리로 가 자리를 펴고 앉아, 컵라면으로 점심을 먹었다. 물론, 이런 때를 대비해서 가지고 다니는 밧줄을 잘라, 등산화의 뒤꿈치 부분의 밑창이 더 떨어지지 않게 묶는 걸 잊지 않았다.
컵라면으로 점심을 먹고, 양쪽 등산화 밑창도 끈으로 응급조치를 한 이후 식당을 깨끗이 정리하고 떠나, 12시 정각에 남매탑 1.5km 이정표를 지났다. 그런데, 응급조치한 끈이 거의 500m마다 빠져 다시 끼우고 가야 했다. 어쨌든 이정표에서 17분가량 간, 12시 17분에 등산 앱이 반경 50m 내에 고지가 있음을 음성으로 알려준다. 웬만한 산에는 하나씩 있는 신선봉이다. 역시 동영상을 촬영하며 정상으로 향해 12시 20분에 도착했다. 메시지를 듣고 3분 내에 도착했으니 그나마 많이 걸린 건 아니다. 정상은 울퉁불퉁한 바위로 그 가운데 낮게 자란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어, 그 주변에서 정상석을 찾았으나, 없다! 해서 표지라도 있을까? 여기저기를 유심히 살피다가 뒤로 돌아보니, 소나무 가지에 ‘ACE club’에서 매단 '신선봉 649m' 명패가 있다. 옆에 서너 명의 등산객이 있던 장군봉에서도 셀카를 찍었으니, 아무도 없는 여기야 두말할 나위도 없어, 셀카로 인증하고, 바로 다음 목표를 향해 출발했다.
신선봉을 떠나자 여기까지 오는 동안 보지 못했던, 상고대가 보이기 시작한다. 고도가 높아지고, 찬 바람이 강하게 부는 지역이라 볼 수 있는 절경이다. 등산화에 주의하며 전진하는데, 앞서가던 인솔 대장이 먼저 가라고 길을 양보하며, 혹시 키가 작은 여성을 보지 못했는지 묻는다. 대장 말대로 신선봉에 도착했을 때 분명 검정 옷을 입은 등산객이 내려가는 걸 본 거 같은데, 안 보여 무척 빠른 사람이구나 감탄하고 오다가, 등산로에서 약간 벗어난 한적한 곳에 자리 잡고 앉아 있는 여성을 발견했다. 대장이 묻는 그 여성이다. 해서, 식사하는 중이라고 얘기해 줬다. 그리고 대장과는 작년 우중 용봉산, 덕숭산 이후 두 번째라고 얘기하자, 기억이 나는 듯한 표정이다. 용봉산에는 정상으로 가는 중에 우산이 거치적거려, 바위 위에 두고 갔었는데, 돌아오며 보니, 없어 당황했는데, 대장이 들고 간 거였다. 이런 해프닝이 있어, 기억하는 건지도. 어쨌든 대장의 분위기로 봐서 A 코스로 끝까지 갈 생각은 없어 보이고, ‘큰 배재’나 ‘남매탑’에서 탈출할 거 같다. 해서 먼저 간다고 인사하고 가자, 대장이 A 코스가 사실상 계룡산 종주라, 쉽지 않으니, 체력 안배를 잘하라고 알려준다.
대장과 헤어져 데크 계단을 오르내리기를 수차례, 12시 31분에 동학사 주차장으로 탈출할 수 있는 '큰 배재'에 도착했다. 작은 배재, 큰 배재라는 이름으로 봐서, 타는 배와 관련이 있는 거 같은데, 이것도 대한민국의 큰 산에는 다 있는 과거 대홍수의 흔적인가? 어쨌든 '큰 배 고개'는 갈림길로, 오른쪽은 동학사 주차장, 왼쪽은 남매탑이다. 직진하는 등산로도 있는데 막아놨다. 결과적인 얘기나, 직진은 봉우리를 넘어 남매탑으로, 이정표가 가리키는 왼쪽의 남매탑은 우회하는 등산로다. 우회든 직진이든 남매탑까지 남은 거리는 0.5km! 큰 배재를 떠나, 6분가량 가자, 남매탑까지 0.2km가 남은 ‘남매탑 고개’다. 큰 배재에서 직진하면 여기다. 왜 막았을까? 그리고 다시 4분가량 가자, 남매탑 삼거리다. 직진은 남매탑을 거쳐 삼불봉으로, 우회전은 동학사 주차장이다. 이번에 병사교에서 같이한 예닐곱의 등산객 중 반 이상이 여기서 탈출할 거라는 게 내 예상이다. 어쨌든 큰 배재에서 삼거리까지 500m를 오는 데 10분이나 걸렸다. 그런데 아직 남매탑은 보이지 않는다.
병사교에서 출발해 장군봉과 갓바위봉, 신선봉을 거치는 동안 우리 일행을 제외하고, 작은 배재에서 유일하게 다른 등산객을 만났고, 큰 배재에서 서너 명을 만났을 뿐이다. 그런데 남매탑 고개를 넘는 순간 앞이 시끌벅적하다. 남매탑 삼거리가 가까워지자, 경 읽는 소리에 등산객, 관광객의 소음으로 시장통이다. 이 분위기는 삼불봉을 거쳐, 금잔디 고개 갈림길까지 이어진다. 돌계단을 따라 위로 올라가자, 스피커를 통해 염불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눈구름에 쌓인 두 개의 탑이 보이기 시작하고, 왼쪽 위에도 수많은 등산객이 모여 있는 게 보인다. 계단에 다 올라서자, 높이가 다른 탑 두 개가 나란히 서 있고, 그 너머로는 복원 중인 상원암이 있다. 그런데 부부탑, 형제탑, 자매탑도 아니고 남매탑인 이유가 궁금해 소개 글을 읽어봤다. 북한산의 효자리 전설도 그렇고, 역시 호랑이는 의리의 동물이라는 걸 다시 확인했다.
남매탑에 도착해 이것저것 기록을 남기는 동안 왼쪽의 널찍한 공터에 모여 있는 일군의 등산객이 돌계단으로 위로 올라가는 모습을 봤는데, 남매탑을 떠나, 그들의 뒤를 따라가며 배낭에 달린 명패와 리본이 대구를 근거지로 하는 처음 보는 산악회다. 그런데, 뭉쳐 다니는 등산객으로 봐선, 그 산악회만 있는 게 아니라, 우리를 포함 최소 4개 이상의 산악회가 계룡산으로 왔다. 다들 눈꽃 보러, 선자령, 소백산, 태백산, 덕유산으로 달려갈 때 계룡산으로 달려온 산꾼에게 감탄할 뿐이다. 0.5km 거리에 불과한 삼불봉에 오르기 위해, 계단 지옥 중 하나인 돌계단을 헉헉대며 올라, 12시 56분에 삼불봉 고개에 도착했다. 갈림길로 직진은 갑사로 하산, 오른쪽이 삼불봉으로 올라간다. 삼불봉까지 남은 거리는 0.2km! 11분 동안 고작 300m 올라왔다!
국립공원에서 세운 표지목에 의하면 현 위치 고도 726m, 삼불봉 높이 777m, 고로 수직으로 51m만 올라가면 정상이다. 좌회전해 삼불봉으로 향해 80여 미터 올라가자, 갈림길로 직진은 삼불봉, 오른쪽은 삼불봉을 우회해 관음봉으로 바로 가는 길이다. 여기까지 와서 삼불봉을 우회할 이유가 있나? 당연히 직진으로 다시 70여 미터를 올라간 12시 59분에 등산 앱이 반경 50m 내에 삼불봉이 있음을 음성으로 알려준다. 그리고 수직에 가까운 철계단이 반겨준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찾았으면, 하산용과 등산용 두 개다! 오른쪽 등산용 철계단으로 거의 줄 서다시피 해서 위로 올라가며 보니, 중간 철계단 쉼터에서 뒤로 돌아 사진 찍는 등산객이 보여, 뒤로 돌아보니, 눈구름에 쌓인 봉우리가 있다. 삼(三)불봉 중 첫 번째 같아, 기록으로 남겼다. 그리고 다시 계단을 헉헉대고 올라, 1시 4분에 정상에 도착했다. 고로 음성 메시지가 나오고, 5분이 걸렸다. 도상 거리 50m와 실거리의 차이다!
정상에는 남매탑에 도착했을 때, 삼불봉으로 향했던 산악회가 정상석을 장악하고 줄 서서 인증을 남기고 있다. 사진사는 인솔 대장! 줄의 뒤에 섰다가는 하산이 많이 늦어질 분위기라, 인증 대상이 바뀌는 순간을 이용해 정상석 사진을 찍고, 인증에 방해되지 않게, 한쪽 구석으로 벗어나 셀카로 인증을 남긴 후 정상 주변을 둘러봤다. 정상석 외에 두 개의 안내문이 서 있는데, 하나는 삼불봉에서 보이는 조망 안내 사진으로, 시야가 10m가 될까 말까 한 오늘은 필요 없고, 다른 하나는 제목이 '삼불봉 설화'다. 처음에는 '설화?' 삼불봉에 얽힌 전설이 있나 했다가, 괄호 안 한자 '雪花'를 보고 쓴 웃음을 지었다. 만약 한자가 없었다면, 그 글을 다 읽고, 욕을 한바탕 퍼부었을 거다. '눈꽃' 하면 될 걸 굳이 설화가 뭐냐! 오늘은 설화든 눈꽃이든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정상석을 배경으로 인증한 산악회원이 반대쪽으로 내려가려는 순간, 인솔 대장이 아이젠을 착용하라고 종용해, 다들 아이젠을 꺼내 착용하느라 지체하는 동안 재빨리, 반대편으로 내려갔다. 만약 이들과 같이 자연성능에 들어섰다가는 하산 시간을 많이 지체해 하산주 시간 확보에 실패할 우려가 있어서다. 이름이 자연능선(自然稜線)이 아닌, 자연성능(自然城稜)인 건 자연이 만든 성벽이라는 뜻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말인즉 칼바위 능선이라는 거다. 거기서 다른 등산객과 얽히면 대책이 없다. 해서 서둘러 내려가서 보니, 갈림길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데, 관음봉 갈림길이다. 그리고 그 산악회는 관음봉이 아니라, 오른쪽의 '금잔디 고개'로 향한다. 그 산악회가 아니라도, 날 제외하고 관음봉으로 향하는 등산객이 없다. 갈림길에서 관음봉 방향으로 암릉에 올라서자, 서너 명의 등산객을 만났고, 이후 관음봉까지 반대편에서 오는 등산객 두 명을 더 만났을 뿐이다. 삼불봉 찍고 갑사로 하산하는 게 정석인가? 내가 알기로 까만 소 인증은 삼불봉이 아니라 관음봉인데?! 까만 소 인기가 전만 못한가?
자연성능으로 들어서자 등산 앱이 고지에 도착했음을 알린다. 1.2km 칼바위 능선에 봉우리가 있었나? 궁금해하며, 폰을 꺼내 확인해 보니, 자연성릉이다. 뭐 굳이 칼바위 능선까지. 국립공원의 칼바위 능선답게, 전체 거리의 90% 이상이 데크 길 아니면, 계단이다. 데크가 없는 암릉에는 철봉을 박고, 그 사이를 다시 철봉으로 연결한 안전시설이 있다. 고로 재미가 없다! 그나마 관음봉까지 가는 길목 곳곳에 상고대가 아쉬움을 달래줄 뿐이다. 칼바위 능선을 따라 관음봉으로 향하는데, 높낮이가 심한 건 아니나, 기복이 많고, 바위 곳곳이 얇게 얼어 체력 소모가 좀 있다. 해서 아이젠을 착용할까 하다가, 계속되는 암릉이라, 포기했다. 와중에 등산화도 말썽이고. 그리고 암봉에 걸쳐 있는 마지막으로 보이는 계단을 올라갈 때는 섬뜩함을 느낄 정도로, 그 밑을 보며, 과거에는 여기를 어떻게 올라다녔는지 궁금하기까지 했다. 이거로 계단은 끝일 거로 생각했는데, 칼바위 능선이 이어져, 그걸 따라가는데, 등산 앱이 관음봉 반경 50m 내에 도착했음을 알려준 시각이 1시 53분이다. 상황을 보니, 입산 금지인 상봉 대신 관음봉이 정상 역할을 하는 거 같다.
동영상을 찍으며 정상으로 향하는데, 역시 끝없는 계단 지옥이다.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정자다. 암봉 정상에 정자가 있고, 그 안에는 남녀 한 쌍이 무언가를 먹고 있다. 해서 정자 주변에서 정상석을 찾았는데, 없다. 계룡산의 정상에 정상석이 없다니 말이 안 되는 상황이라, 다시 주변을 두리번거리니, 정자 옆으로 작은 암봉이 있고 그 위에 돌비석이 보인다. 관음봉 정상석이다. 그런데, 높이가 800m가 넘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766m로 777m인 삼불봉보다 낮다. 800m가 넘는 거로 알고 있었던 이유가 뭘까? 지도를 보고 다른 봉우리와 착각했나? 어쨌든 당연히 셀카로 인증을 남기고, 주변을 둘러봤으나, 눈구름 속이라, 보이는 게 없어, 하산주를 위해 서둘러 내려갔다. 정상에서 100m가량 내려오자, 갈림길 쉼터로 임시 대피소도 있다. 오른쪽은 연천봉, 왼쪽이 동학사로, 2.3km 남았다. 동학사로 내려가는 등산로를 힐끗 보니, 급경사의 돌계단이다. 그렇다고 잡고 갈 수 있는 안전시설도 없다. 이건 그냥 내려갔다가는 대형 사고다. 해서 그동안 꼭꼭 감춰뒀던 아이젠을 꺼내 착용했다.
쉼터 갈림길을 떠나, 조심조심 돌계단으로 동학사로 향하는데, 저 앞에 두 아가씨가 내려가는 게 보인다, 아무래도 내 앞자리의 두 중국 여성으로 보이는데, 아이젠이 없다. 그런데, 동학사에 도착할 때까지 그 두 여성의 일행으로 보이는 젊은 친구들을 더 추월했는데, 아이젠을 착용한 사람이 하나도 없어, 과거 우리 학창 시절의 겨울 등산 모습을 보는 듯했다. 그들이 무사하기를 빌며 서둘러 내려가 2시 25분에 '동학사 1.4km' 이정표를 통과했다. 2시 3분에 쉼터에서 떠났으니, 900m 내려오는데, 22분이 걸렸다. 동학사에서 상가가 있는 주차장까지의 거리는 모르나, 이 상태라면 하산주를 포기해야 한다. 해서 일단 3시까지 상가에 도착하는 거로 목표를 수정했다. 그리고 고도가 많이 낮아졌고, 햇볕이 잘 드는 지역이라, 눈이 거의 없어, 하산에 방해가 되는 아이젠을 벗었다. 결국 아이젠은 쉼터에서 은선폭포 상단까지 900m만 착용했다.
동학사까지 등산로 상태가 어떤지 모르는 상황에서 빠른 속도를 위해 아이젠까지 벗어 손에 들고 내려가고 있는데, 왼쪽으로 요란한 물소리와 함께 흰 비단이 아래로 펼쳐진 게 보인다. 은선폭포다! "은선(銀線)" 참 잘 지은 이름이다. 비록 하산주를 포기하는 일이 있어도 폭포를 지나칠 수는 없어, 은선폭포 전망대로 가 그 모습을 사진과 동영상으로 남겼다. 당연히 감탄을 자아내는 맞은편 암봉도. 그런데 전망대에 있는 '은선폭포(隱仙瀑布)' 소개 글을 보니, 내가 생각한 "은색 선"이 아니라, "隱仙" 숨은 신선이다. 꿈보다 해몽이다. 숨은 신선이든 은색 선이든 폭포의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고 서둘러, 동학사로 향하는데, 역시 한국 산은 모른다. 아래로 내려가도 시원찮을 판에 위로 올라간다. 아주 돌아버린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고개에 올라서자, 묘다! 그 옆으로 난 등산로를 따라가자, 저 아래로 동학사의 전경이 보인다. 상가로 보이는 지역은 동학사에서 멀어도 너무 멀다. 그 시각이 2시 44분으로 3시까지 상가 도착은 힘들다!
이제는 사진이고 뭐고 없다. 그저 서둘러 내려가야 하는데, 앞에 쌀개봉으로 보이는 봉우리를 그냥 지나치는 건 예의가 아니다. 그리고 아래로 내리꽂는 데크 계단도. 대학생으로 보이는 젊은 친구들을 추월해 뛰다시피 계단을 내려가, 2시 49분에 계곡 옆 동학사 0.6km 이정표에 도착했다. 이제부터는 거의 임도 수준의 등산로고 계단은 없다. 그 이정표 옆 공터에는 십여 명의 등산객이 모여 앉아, 무언가를 조리하며 한잔하고 있다. 처음에는 B 코스로 간 우리 일행인가 했는데, 아니다. 그들을 뒤로하고 서둘러 내려가 2시 55분경 동학사 앞을 지났다. 하산주를 포기하고 동학사 본존불에게 신고할까 고민하다가 좀 늦기는 했으나, 하산주를 포기하기는 이르다는 생각에 다음 기회에 신고하기로 하고, 개천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고 상가로 향해, 3시 11분에 동학사 일주문을 지났다. 그리고 15분경 상가 입구에 도착했으나, 주차장을 확인해야 해 계속 내려가 상가 끝 대형 주차장에 서 있는 빨간 버스를 발견한 시각이 3시 20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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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가로 내려오는 동안, 왼쪽 등산화가 이상해 아래를 보니, 밑창을 묶었던 끈이 닳아 끊어졌다. 시간이나 상황이나 하산주할 때가 아니라, 바로 버스에 탔다. 예상대로 버스에서 기다리고 있는 인솔 대장에게 묵례하고, 내 자리로 가 배낭을 바닥에 내려놓고, 등산화를 벗고, 슬리퍼로 갈아 신었다. 물론 눈에 젖은 바람막이도 벗어 옷걸이에 걸고, 배낭에서 패딩 조끼를 꺼내 입었다. 그리고 컵라면에 붓고 남은 뜨거운 물로 만든 녹차 두 잔으로 허기를 채웠다. 확실히 추위에 버티기 위해 열량 소모를 많이 해서인지 금방 허기진다. 사실 배낭에 귤을 비롯해 밤 등 먹을 게 많이 있음에도 귀차니즘에 뜨거운 차로 만족했다.
추월한 젊은이들이 있어, 공지한 마감 시각에 출발하지 못할 거로 생각했는데, 정확히 그보다 3분 늦은 3시 53분에 버스는 동학사 주차장을 떠나 서울로 향했다. 출발하자 창밖을 관찰했는데, 우리가 내렸던 병사교를 지나는 순간 전체적인 그림이 머릿속으로 그려졌다. 사실상 동학사 주차장을 기점이자 종점으로 한 환 종주 산행이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추위와 허기에 지쳐 잠이 들었다가 깨어 보니, 버스는 여전히 고속도로가 아니라, 국도를 달리고 있다. 그리고 고속도로에 들어서자마자 실내등이 들어오고, 대장이 급한 볼일만 보고 오라고 한다. 뭐라도 먹을까 했는데, 그것도 틀렸다. 도대체 여기가 어딘가 궁금해 버스에서 내려 보니, 천안삼거리 휴게소다. 현재 시각 4시 51분. 6시면 양재에 도착한다는 얘기고, 늦어도 7시면 집에 도착할 수 있다는 거다. 예상대로 5시 55분에 양재 국립외교원 앞에 도착하고, 7시 전에 집에 도착해 빨갱이와 삼겹살로 하산주를 하며 11년 만의 계룡산행을 마감했다.
안내산악회 계획 A 코스인 '병사교 → 병사골 탐방센터 → 장군봉 → 갓바위 → 신선봉 → 큰배재 → 남매탑 → 삼불봉 → 자연성릉 → 관음봉 → 은선폭포 → 동학사 → 천장 탐방지원센터 → 동학사 주차장'의 13.09km(트랭글) 종주 구간을 6시간 10분 동안 달렸다. 이동 5시간 48분, 휴식 22분!
2012년 4월 두 친구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갑사 코스로 오른 후 11년 만에 오른 산행으로 모든 게 새로워 좋았다.
등산화가 말썽을 부려 생각보다 하산이 늦어지는 바람에 하산주를 못 한 게 아쉬운 산행이다.
눈구름 속이라 조망이 좋지 않아 아쉬웠으나, 기대하지 않았던 상고대가 그 아쉬움을 해소해 준 산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