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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스트레스를 ‘따갚되’ 하시려는 분들이 참 많습니다. 사실 저도 회사 다닐 때는 그랬습니다. 한창 회사 일에 치여 사는 동안에는 여유시간을 가질 엄두를 못 냈습니다. 그저 회사-집-회사-집만 반복하는 겁니다. 기껏 퇴근해 봐야 뭐 할 게 있겠습니까. 씻고 밥 먹고 집 정리 좀 하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밤 9시~10시고, 그러니 유튜브나 뒤적거리다 잠들 수밖에요. 하지만 이대로는 미칠 것 같으니 틈틈이 ‘일탈’ 생각이라도 해보는 거죠.
나중에, 내가, 진짜로, 돈 펑펑 쓰면서, 실컷, 재미나게 놀아줄 테다.
퇴사하고 해외여행이나 몇 달 다녀올 거다.
그러나 만약 저처럼 생각하고 계신 분들이 있다면 스트레스 관리에 대해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께서는 소위 ‘따갚되'(따서 갚으면 되잖아)식 스트레스 풀기를 생각하고 계신 건데요(뭐, 비유가 적절한지에 대해 너무 자세히 지적하지는 말아 주세요), 어쨌든 묵힌 스트레스를 강력한 일탈 한 방으로 화끈하게 날리겠다는 계획, 그런 것들이 사실 스트레스 관리에는 별로 효율적이지 않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명절증후군이라는 말, 아마 들어보셨을 것 같습니다. 명절 등 장기간의 휴식을 보낸 뒤에 찾아오는 신체적, 심리적 고통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물론 명절을 어떻게 보냈느냐에 따라 명절증후군의 의미는 다릅니다. 명절에도 전 부치랴, 친척 만나러 이동하랴 바쁘고 힘드셨을 분들은, ‘명절임에도 제대로 못 쉬어서’ 힘든 것일 테지요. 그런데 명절을 맞아 실컷 집에서 뒹굴었거나 어디 해외여행이라도 길게 다녀오신 분들은 명절증후군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장기간의 일탈, 휴가 그 자체가 스트레스원(stressor)이 되기도 합니다. 오랜 휴가를 즐기고 일상에 복귀하기 전날의 기분을 여러분은 느껴보신 적이 있나요? 달콤한 휴가의 여운에 잠겨 있어도 모자랄 판에 당장 내일부터 출근할 생각에 한숨이 푹푹 나고, 내일이면 마주칠, 평소 나를 괴롭게 하던 상사 얼굴을 볼 생각에 마음이 우울해지고, 이제 또 언제 이만큼 길게 놀러 갔다 와보나 싶은 생각에 ‘절망감’마저 들게 되는 그, 일상 복귀 전날의 심란함을 말입니다.
스트레스를 푸는 두 가지 방식
- 조금씩 따서 갚는다.
- 한방에 ‘따갚되’ 한다.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그날그날의 스트레스를 조금씩 풀어가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일할 때는 죽어라 일만 하다가 한 방에 엄청난 여가, 지출, 일탈 등으로 스트레스를 날려버리려는 사람들이 있죠.
심리학자들은 후자의 방법을 그리 권장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스트레스가 조금씩 쌓일 때마다 ‘마냥 참지 말고’ 여유로운 산책을 가든, 맛집을 찾아가든, 주변에 고민 상담을 요청하든, 돈 들여 짧게 취미생활을 하든 아무튼 뭐라도 하면서 풀어가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말하죠.
스트레스를 한방에 ‘따갚되’하면 안 되는 이유
- 쌓이는 동안 내 몸과 마음을 좀먹는다.
- 잔여물이 남는다.
- 진한 ‘현타’가 온다.
첫 번째 이유부터 볼까요. 스트레스라는 놈은 우리 마음속에 저장될 때 그냥 얌전히 있어주지 않습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차츰차츰 우리의 몸과 마음을 좀먹기 시작합니다. 왠지 자도 자도 피곤하고, 개운치 않고, 힘이 잘 나지 않는다든지, 아무리 재미있는 걸 봐도 웃음이 나지 않는다든지.
하루에 받는 스트레스 양 자체가 적더라도 그걸 해소하지 않고 계속 쌓아갈 경우, 장기적으로 몸과 마음에 부담을 주게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이미 상한 몸과 마음은 짜릿한 일탈을 통해 스트레스를 날린다 해도 이전 상태로 회복되지 않습니다.
두 번째, 일탈은 완벽한 치료제가 아닙니다. 이미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스트레스를 쌓았다면 제 아무리 멋진 휴가를 다녀오더라도 미처 해소되지 못한 스트레스는 남게 됩니다. 그리고 스트레스 대처 방략(stress coping strategy)이라고 해서, 스트레스를 연구하는 심리학자들은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진정 바람직한 전략은 바로 ‘문제해결’, 즉 정공법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일탈적인 휴가는 스트레스 관리의 최우선 대안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재미있게 놀고 쉬다 오면 뭐 하나요, 언젠가는 일상에 복귀해야 하고 다시 일터에 나가면 나를 괴롭게 하던 업무, 대인관계는 모두 그대로인데요.
세 번째, 앞서 명절증후군에 대해 이야기했죠? 왜 괜히 ‘명절증후군’이라는 단어까지 생겼겠습니까. 진한 휴식 뒤에 오는 심리적/신체적 고통이 결코 가볍지 않음을 방증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일탈의 쾌감이 클수록, 우리는 더욱 우울하고 한숨 나오는 일상과의 진한 괴리를 경험하기 쉽습니다. 마음은 롤러코스터 꼭대기에서 추락하듯 울렁울렁하죠. 이 어마무시한 ‘현타’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더욱더 길고 짜릿하고 일탈적인 ‘다음 휴가’를 계획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 이후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더 강력한 한 방을 즐길수록 그 뒤에는 더욱 처절한 우울감이 기다리고 있겠죠.
결론: 둘 다 하세요
일 년에 두세 번만 찾아오는 휴가에 목숨을 거는 인생은 고달픕니다.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고 했습니다. 자주 오지도 않을 명절, 긴 연휴만 기다리는 삶은 딱 그 기간만 제외하면 모조리 불행합니다. 그래서야 마음이 건강하게 유지되기 어렵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내 인생의 최대 휴가, 일탈, 이벤트를 계획하고 있다면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어쩌면 그렇게 강력한 한 방이 필요할 정도로, 일상에서는 내가 스트레스를 효과적으로 풀어낼 수단을 단 하나도 제대로 가지지 못한 게 아닌지 스스로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출근 전에, 그리고 회사 안에서, 그리고 퇴근 후에 단 몇 시간이라도 즐겁게 보낼 수 있도록 다양한 스트레스 해소 수단들을 많이 만들어 둬야 합니다. 산책이든, 운동이든, 먹는 것이든, 만나는 것이든, 만드는 것이든, 아무튼 뭐든지요.
그렇게 하루하루 조금씩 스트레스를 풀며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관리하며 기다리다가 휴가철이 오면 또 신나게 놀러 갔다 오자고요. 그렇게 한다고 해서 휴가가 재미없는 건 분명 아닐 겁니다. 얼마든지 재미있게 휴가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대신 긴 휴가 뒤에 찾아오는 ‘현타’는 절반 이하가 될 겁니다. 이제 내일부터 회사에 가야 한다는 압박감 대신, 즐거웠던 휴가의 여운에 잠들 수 있는, 그런 여유를 갖게 될 겁니다.
원문: 허용회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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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요약: 스트레스 한방에 풀지 마세요. 매일 조금씩 풀어야 합니다. 그러다 가끔 휴가 가서 완벽하게 스트레스를 씻어내세요.>>
마지막 요약글이 맘에 듭니다, 한번에 하려말고 조금씩 해나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