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일자, 2020, 9, 2,
"성북동 별서"<城北洞 別墅>는 조선 후기의 별장으로 별칭은 "성락장"<城樂莊>이라고 합니다 ~
"신선이 사는 도심속 정원" 이라는 "성북동 별서" 관람은 특별 개방을해야 빗장을 해제하므로 명 짧은 사람은 언감생심..?
그리하여 얻은 또다른 별칭은.. "비밀의 정원" <秘密 庭園>..?
정문을 통과해 정원 진입부에 들어서면 처음 만나게되는 "쌍류동천" <雙流洞天>입니다 !!
"별서" <別墅>구조는.. 앞뜰인 "전원" <前園>과 "용두가산" / 안뜰인 "내원" <內園> 그리고 뒤뜰 후원 <後園>의 ~
두줄기 계류가 전원 <前園>인 "쌍류동천" 에서 합류해.. 삼선교를 경유.. 한강을 향해 슬라이딩 한다네요..?
이곳은 명승 35 호 로 지정된 성락원 이었는데.. 별장주로 알려진 "심상웅" 이 철종때 이조판서도 지낸적 없는..?
실존 인물이 아닌.. 가상의 인물로 판명돼 명승 지정이 해지 됐는데.. 수년간 많은 학자들이 지적을 했건만..?
2019 년 국회에서 문제를 삼자.. 그제서야 문헌고증을 거쳐 해지했다고 합니다..?
누가 무슨 의도로.. 유령 역사인물을 내세워.. 이 건물을 세탁했는지. 문화재를 사유화 하려 했던건 아닌지..?
우리 문화재가 "삼정의 문란" "매관매직" "족보세탁" 등을 거치는 동안 "명의 세탁자" "권력자" ~
적발안된 도굴꾼 등에 의한.. 왜곡이 있었을까.. 심히 걱정이라는 겁니다..?
"인공조산" <人工造山>인 "용두가산" <龍頭假山>은 밖에서 보이지 않게 조성을 했구요 ~
내원<內園>은 계곡의 자연을 이용해 그대로 만든.. 전형적인 "계원" <溪園>으로 "산수" <山水>가 아름다워 ~
선비들이 즐겨찾던 곳이며.. 정갈한 운치는.. 대원군의 별장이었던 "석파정" <石坡亭>과 더불어 ~
"성북동 별서" 는 서울에 남아있는 대표적인 "정원 유적" <庭園 遺跡>이라고 합니다 ~
내원 바위에 새겨진 "청산일조" <靑山壹條> 암각은.. 이곳이 울창한 소나무로 뒤덮여 있는 ~
아름다운 산세를 표현한 글이라고 하며.. 그 옆에 앙증스럽지만 "폭포" <瀑布>맞고요..?
서쪽 바위에는 "장빙가"<墻氷家 >라 새겨진 암각이 있는데 이는 겨울에 고드름이 달려있는 집이라는 의미로..?
"완당"<阮堂>이라는 호가 새겨져있어 "추사 김정희" <秋史 金正喜>선생의 글임을 알수있다고 합니다 ~
성북동 별서는 별서 조성 이전에도 경승지로 널리 이용되었으며.. 고종때의 내관인 ~
"황윤명" <黃允命 1844 ~ 1916 >이 조성하여 갑신정변 당시 "명성황후" 가 피난처로 사용하기도 했다네요 ~
얼마 남아있지 않은 조선시대 "민가정원" <民家庭圓>으로.. 보존 연구의 가치가 높다고 합니다 !!
전통미 <傳統美>를 살린 한옥 <韓屋>은.. 한국의 미를 음미하게 하구요 ~
"뒤뜰" 후원에 있는 "송석정"<松石亭>은 해방후인 1953 년에 지은 정자로 별서의 주인이 몇차레 바뀌면서 변형<變形>이 일어난게 아닌가 한답니다..?
내부는 고풍<古風>을 살린 넓은 공간을 확보했으며.. 선비 문화의 색채가 녹아든 모습이구요 ~
하부는 공간을 띄워.. 습기를 막고.. 통풍을 하기 위함이겠죠..?
"송석" <松石>이라 새겨진.. 암각문입니다 !!
"성북동 별서" 는.. 서울 도심에 있는 별서정원<別墅庭園>으로는 비교적 옛날 모습이 많이 남아있는 ~
"고 정원"<古 庭園>이며.. 또한 자연 "계류"<溪流>와 "지형"<地形> "암석"<岩石>등이 잘 어우러져 ~
공간 구성밎 연출등의 측면에서 한국 전통 정원으로서의 미학<美學>이 살아있다고 합니다 !!
옛 문헌과 그림.. 지도를 보면 도성안에 있던 별서정원은 거의 훼손되었고 ~
특히나 인왕산 자락의 "옥호정"<玉壺亭>을 비롯.. 빼어난 동천은 모두 사라졌다니 안타까운 현상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