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00년~1800년대🌺 |
✿1798년 6월 4일, 전설의 호색가, 카사노바 사망
"나는 여자들을 미치도록 사랑했다. 그러나 자유를 더 사랑했다"던 베니스 출신의 카사노바(Giacomo Girolamo Casanova de Seingalt, 1725년 4월 2일~1798년 6월 4일)가 1798년 6월4일, 체코 프라하의 둑스성(城)에서 73세로 숨졌다.
죽기 전 자신의 인생을 파노라마처럼 펼친 자서전 `내 인생의 이야기`를 탈고, 자신의 존재를 후세 사람들에게 분명하게 알렸다. 자서전은 노골적인 사랑 묘사로 그의 생존 시 출간되지 못했다. | |
✿1886년 - 호머 헐버트(Homer Bezaleel Hulbert)가 달즐 벙커(Dalzell Adelbert Bunker) 및 조지 길모어(George William Gilmore) 부부와 함께 육영공원 설립을 위해 조선을 방문.
육영공원(育英公院)은 1886년(고종 23년) 9월 23일에 설립된 한국 최초의 근대적 명문귀족 공립 학교이다.
육영공원의 설립은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로 인해 영어를 구사하는 지식인이 필요해진 상황과 관련이 깊다. 1883년에 김윤식이 청나라의 동문관(同文館)을 본따 동문학이라는 외국어 교육 기관을 설치해 통역관을 양성한 것이 영어 교육의 효시이다. 그러나 동문학은 처음에는 중국인 교관을 초빙했고 이후 인계받은 영국인은 자질이 떨어지는 사람이라 학생들의 불만이 많았다.
이에 민영익이 보빙사로 미국에 다녀온 뒤 1882년에 영어를 본격적으로 가르칠 수 있는 근대식 교육 기관 설립을 계획했다. 1884년에 고종으로부터 육영공원 설치 허가는 받았으나, 갑신정변으로 인해 2년 뒤인 1886년에 일류 대학교 출신의 미국인 교사 3인을 초청하여 동문학을 대체하는 육영공원이 설립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주한미국공사관 무관이었던 포크의 노력이 크게 작용하였다. 또한 이 무렵 배재학당, 이화학당, 경신학교가 설립된 것도 공립 학교(또는 국립 학교)가 세워지는 한 배경이 된다. | |
| 🌱1900년대🌱 | |
| 🌳06년 최익현˙신돌석 등 태인에서 의병 일으킴. | |
🌳19년 미국 의회, 여성 참정권 수정 헌법 통과
1919년 6월 4일, 미국 의회는 여성 참정권을 보장하는 수정 헌법 제19조를 통과시켰습니다. 이 헌법은 여성들에게 투표권을 부여하며, 이후 1920년에 전면적으로 시행되었습니다. 여성 참정권 운동의 큰 승리였죠. 여성의 권리가 한층 더 확대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 |
🌳20년 봉오동 전투.∼7 일 🌳37년 보천보 전투 : 동북 항일 연합군 유격대원 80여 명이 국내 진공- 혜산 보천보 점령. | |
🌳42년 미드웨이 해전 (Battle of Midway)
6월 4일 새벽 4시 45분 일본 측 공격기가 날아오른다. 기함 아카기와 가가, 소류와 히류에서 총 108대의 항공기가 일제히 미드웨이로 향했다. 도모나가 대위가 지휘한 이 공격대는 한 시간 뒤 미군의 카탈리나기들에 발견되었고 미드웨이에서는 요란한 사이렌과 함께 본격 전투준비에 들어갔다.
이날 소류가 오후 7시 13분 제일 먼저 가라앉았고 12분 뒤 가가가 침몰한다. 유령선처럼 해상을 떠돌던 아카기는 다음날 새벽 새벽 4시 55분 자침 처리되고 히류도 5시 10분, 같은 운명에 처한다. 미드웨이 해전이 벌어진 6월 4일~7일 사이에 미군은 항모 1척 비행기 147대, 병력 307명을 잃었고 일본은 주력 항모 4척과 대형 수송선, 비행기 272대와 2,500명의 병력을 잃었다. 미국으로서는 승리의 해전이며 일본으로서는 패전의 시작이었다.
물론 미군기들은 교전 경험이 일천해서 지휘계통의 혼선, 기체 결함 등 아찔한 상황이 속출했지만 앞선 정보와 파일럿들과 일선 지휘관들의 순간의 결정에 충실함으로써 승리를 일구어내었다. 미드웨이해전에서 미군의 승리는 우연이 아닌 어찌 보면 지피지기의 당연한 결과였고 일본에겐 필패인 동시에 악몽의 시작, 대재앙의 날이었다. | |
🌳50년 상공은행 발족 🌳51년 민간항공기 광주선 개설 🌳61년 깡패 965명, 국토개발사업장에 작업 동원 🌳64년 서울과 부산, 광주, 목포, 인천, 춘천 등지에서 소규모 시위 발생 | |
🌳66년 장면 전 국무총리 사망(12일 국민장-67세)
1966년 6월 4일...장면 전 국무총리 사망. 6.12 국민장으로 장례식 거행.
제2공화국 총리였던 장면이 간염으로 작고했다. 1899년 인천에서 출생했고 호는 운석(雲石)이다. | |
🌳70년 연평도 서방서 해군 방송선(승무원 20명)이 북한 경비정에 피랍 납북 🌳80년 우리 나라 첫 태양광발전소 준공(경기도 강화군 아차도) 🌳80년 신라 최초의 비구니 사리 영흥사지 경주서 발견 🌳82년 보건사회부, 7월 1일부터 목포에 의약분업을 강제 실시하기로 🌳82년 조흥은행,5월19일 자살한 전 조흥은행 명동지점 차장 86억 원을 유용했다고 밝힘 🌳83년 나카소네 일본 수상, 사할린 잔류 한국인 교포 392명의 귀국을 희망한다고 언명 🌳84년 부산의 택시 운전사 1000여명, 사납금 인하를 요구하며 집단시위 🌳85년 이민우 신민당 총재·김대중·김영삼, 시국전반 협의하고 86년중 개헌 주장 🌳87년 제134회 임시국회 개회 민주당의 박철언 사건에 대한 국정조사권 발동요구에 공전 🌳87년 민주헌법국민운동본부, 민정당은 전당대회를 즉각 중지, 합의개헌에 응하라고 성명 🌳87년 동해에서 대규모 해상훈련. 국산 소형잠수함 첫선 보여 🌳87년 서울시경, 3개대학연합좌경단체 민민전 결성한 서울대생 임철봉 등 7명에 구속영장 🌳88년 치안본부 6·10 남북청년학생실무회담」을 불법집회로 간주, 학생대표 35명 수배 🌳88년 현대 하청업체 대표 700여 명, 중소기업 생존 권보장 궐기대회 🌳88년 숭실대 박내전 군 분신으로 스스로 목숨 끊음 | |
🌳89년 천안문사태 발생
1989년 6월 4일, 중국정부가 천안문 광장에서 민주화를 요구하던 학생들과 시민들을 무력으로 진압하면서 일어난 유혈참극 ‘천안문 사태’로 전 세계가 큰 충격에 빠졌다.
이를 천안문 사건 또는 6.4사건이라고 한다. 영어로는 Tiananmen Square protests, June Fourth Incident, '89 Democracy Movement 또는 Tiananmen Square Massacre 등 다양하게 명명되고 있다. | |
🌳90년 북한, 한반도군축과 관련 미국을 포함한 3자 협상을 열자고 주장 🌳90년 일본 노동성, 태평양전쟁중 강제징용된 한국인수는 66만7684명이라고 밝혀 🌳90년 한-소 정상회담, 샌프란시스코 에서 열려. 조속 수교·두 정상 교환방문 등 합의 🌳90년 서울시경, 부녀자 납치 폭행한 신종 오토바이 「폭주족」 검거 🌳91년 경찰, 정원식 총리 폭행사건 관련 외대생 374명을 연행한 후 364명을 훈방 16명을 수배. 🌳93년 과학1호」로켓 서해안에서 발사-오존층 측정 🌳93년 민주당, 김영삼 대통령의 `5·16쿠데타' 규정 발언과 관련해 김종필 대표의 사퇴 촉구. 🌳93년 정부 「5·8조치」를 6월말로 해제하고 재벌의 상용건물 취득 허용 발표. 🌳93년 3년 4개월만에 개기월식. 4일오후 8: 11~ 9:49 까지 달이 완전히 가려져 11:50 끝나. 🌳94년 김영삼 대통령ㆍ클린턴 미국 대통령ㆍ옐친 러시아 대통령, 유엔 안보리의 북핵 제재 결의안 지지 🌳96년 민주당, 이기택 상임고문을 총재로 선출 🌳96년 보건복지부, 35년만에 산아제한 폐지 🌳96년 재경원 한택수 국고국장 구속 🌳96년 국경경비대소속 상등병 우광빈(22), 북한 탈출후 중국서 전전하다 천인호로 밀항, 인천도착 귀순 🌳97년 김영삼 대통령, 아스카르 아카예비치 아카예프 키르기스스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서울) 🌳97년 한성기업, 스팀다리미의 스팀분종 압력용기의 파편과 고온 스팀 방출로 사망3, 부상2. 🌳97년 한총련 한양대시위 시민 1명 사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