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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 적 소 굴 ● 스크랩 지난 세월(9) - 내게도 사랑이
산적(주정필) 추천 0 조회 12 15.12.17 19:26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지난 세월(9) - 내게도 사랑이


사태( 당시 권력층에서 주장하던 표현 )가 마무리 되고 짓눌린 가슴을 떨쳐내 버리기

힘들어 2년동안 몸 담았던 무등산 목장에 잠시 쉬러 올라 갔다.

일주일 동안 머물며 열흘 정도 겪었던 수많은 일들을 잊으려 했지만 꿈속에서도 나타나 

마음을 추스리기 힘들었다.


언젠가 100 년전의 프랑스 식민지였던 멕시코 부근의 COLONY 에서 벌어진 사건을 영문 

소설로 읽은 적이 있었다. 영화 빠삐용 처럼 큰 죄가 아닌 배고파 빵을 훔친 죄로 남미 외

딴섬으로 유배되어 그곳에서도 조금만 잘못하면 무지 막지한 죄목을 씌워 발가 벗긴채로

나무에 묶여 채찍질을 당한다. 


열대 지방이기에 그대로 방치하면... 피 냄새를 맡고 나타난 개미 군단들.

살점 하나 하나를 뜯어 가는 통에 사흘 밤낮을 비명을 지르다 결국 숨을 거두고 마는 죄인

아닌 죄인들 애기였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애기를 누가 했더라...

우리네 역사는 유럽이나 미국처럼 민중과 국가 권력간의 치열한 싸움이 일천하기에 우리

가 선진국이라 일컫는 나라들이 이미 겪었던 문제들을 다 겪어야만 성숙할수 있다는 결론

이다. 타산지석은 교훈에나 나오는 애기일 뿐이라는 거다.




무등산에서 일주일 지낸후 제일 먼저 긴머리 아가씨를 찾았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애기를 들려 주었다.

당시 내가 근무했던 서점에도 또다른 긴머리 아가씨가 있었는데 서점에 출근도 하지않고

연락이 두절 되어 걱정된 나머지 물어 물어 나를 찾아 왔더랜다.


신군부는 과외 교습을 없앤다며 학원의 재학생 출입금지령을 내렸다.

학원 뿐만 아니라 학원 주변 상가들이 죄다 망하는 길에 들어 섰다.


마침 전라남도 공무원 임용 시험 공고가 나왔다.

당시는 전라남도 광주시 였을 때 였다.

나는 서점에 출근해서 두어달 밀린 봉급 대신 공무원 수험 서적을 달라했다.

서점 사장님은 흔쾌히 승낙했고 당시 5급 을( 지금 9급 ) 공무원 시험에 필요한 책들을 몽땅

가지고 와서 한달 동안의 시험 공부에 돌입했다.


내 목표는 하루 한자루의 볼펜을 닳아 뜨리는 것이었다.

16절지 갱지 9~10 장을 앞뒷면으로 까맣게 될 정도로 쓰고 또 쓰면서 공부를 시작했다.

하루 너냇시간 자면서 시험 공부를 하며 각 과목마다 세번씩 다 보고 막판에 내가 잘 틀리는

문제들만 집중적으로 훑어 보고 시험에 응시했다.




웬걸~? 내가 다 아는 문제만 나왔다.

다만 조심해야 할것은 4지 선다형이 아닌 5지 선다형이다.

정답같은 문항이 두어개가 항상 뒤따른다.

토씨 하나 하나 잘 점검하며 시험을 치르고 나왔고 보기 좋게 합격했다.


당시 긴머리 아가씨는 나이가 찬 만큼 주변에서 맞선 보자는 주문이 많아 자주 선을 보곤 했다.

그때만 해도 여자들의 결혼 적령기가 23 무렵이었고 남자들도 27 정도 되었던 시절이다.

나는 두살 연상을 극복하기 힘들어 선을 보러 간다는 아가씨의 뒷모습만 물끄러미 바라보곤

했었다.


대신 서점에서 만났던 제 2의 긴머리 아가씨와 한동안 열애한다는 생각을 했으나...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줄 알았는데~( 누구 노래 가사드라~? )


제 2의 긴머리 아가씨와 우여곡절 끝에 헤어지고 처음의 긴머리 아가씨에게 대쉬를 했다.

우린 그당시 무렵의 어느 소설가 표현 처럼 어느 순간 2층이 되었다.

수퍼 마켓에 달려 있는 골방은 우리 차지가 되었고...





해가 바뀌어 나는 공무원 발령장을 받았다.

전라남도 광주시 동구 남금동으로 발령이 난거다.


전남에서 노른자위는 광주, 광주의 노른자위는 동구, 동구의 노른자위는 당시 전남 도청 소재지인

남금동이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현역 제대하면 평균 가산점 3점이고 방위 제대자에게는 가산

점이 없던 시절인데 가산점 혜택 없이 내가 수석 합격 했단다.


한달동안 선거인명부를 작성했다.

4부를 함께 작성해야 해서 먹지 석장 넣고 볼펜으로 쓰려면 어지간한 힘으로 눌러 쓰지 않으면

마지막 장이 보이질 않는다.


다행인것은 공무원 시험 공부 하며 하루 한자루 볼펜 닳아 뜨리던 실력이 통했다.

선거가 끝나자 마자 공무원 교육원에 입소하란다.


당시 매곡동에 있던 공무원 교육원에서 6박 7일간 합숙하고 토요일은 외박이 되고 일요일 저녁에

다시 입소해야 했다. 꼬박 두달간의 교육이었는데 내 마음은 콩밭에 가있었다.

한달쯤 지나자 요령이 터득 되었다.


함께 기숙사를 쓰던 친구들에게 미리 귀띰을 하고 야간 점호가 끝나면 훈련복을 입은채 기숙사를

벗어나 택시 타고 산수동의 긴머리 아가씨에게 달려간거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 아침 구보 행렬에 슬그머니 끼어 합류하곤 했다.

그것도 자주 할수는 없었고 일주일에 한번 수요일쯤 빠져 나와 나의 님과 꿈결같은 밤을 지샌거다.


2달간 공무원 연수 마지막에 선진지 시찰이라는 명목으로 경주, 울산 등지로 여행을 떠났다.

중 고등학교 시절에 수학 여행 한번도 가보지 못했지만 처음으로 불국사를 가볼수 있었다.


저조한 성적으로( 당시 광주시에서는 내게 기대를 많이 걸었단다. ) 연수를 마치고 복귀하니 

기다리는건 징병검사 통지서가 잔뜩...


지금처럼 전산화 되어 있지 않았고 만 17살때 신고하는 제 1 국민역 신고서의 주소를 기초로 해서 

본적지에서 발송하는 징병검사 통지서.


당시 주민등록 담당은 전출입 대장을 관리 하고 있었는데 그것을 조회하며 이사 간곳을 확인해서 전달

해야 하는 징병검사 통지서.

하루 한 두장 전달하기 힘들었다. 광주 일원은 자전거 타고 안가본곳이 없을 정도로 쏘다니며 통지서

전달을 했다.




나와 긴머리 아가씨는 수퍼 마켓의 골방에서 달콤한 사랑을 속삭였고 꼬리가 길면 밟힌다는 옛 속담

처럼 어느 일요일 아침 출근 부담없이 늦잠을 즐기기다 아가씨의 아버님께 들켜버렸다.


그날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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