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요계 큰 별 지다(손인호 선생 빈소에서)
또 하나의 필연 앞에 서서, 나는 오히려 망연자실해 있다. 원로 가수 손인호 선생이 소천(召天)한 것이다. 왜 필연이며 망연자실이라 하는지, 자신에게 확인해 가면서 써 보자.
나는 오늘 고인의 빈소에 다녀왔다. 단순한 팬으로서가 아니라, <실버넷 뉴스> 기자 신분으로…. 말하자면 유족들에게 몇 마디 위로의 말을 건네고, 그들로부터 고인의 생애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였다. 행여나 싶어 대한가수협회 회원증을 지갑에 넣고 집을 나섰던 것이다. 참, 내 열다섯 번째 수필집 <아둔패기 우덜거지 벗 삼고>도 챙겨 넣었었고, 거기엔 고인의 대표곡 중 하나인 ‘해운대 엘레지’에 관한 글도 있다.
김철 시인(선배)이 영역(英譯)한 ‘해운대 엘레지’ 가사도 있어서, 나부터 먼저 가슴이 뭉클했고말고. 내 씨디인들 왜 빠뜨리랴. 내가 일찍이 죽을 각오로-그럴 만한 사연이 있다.-취입한 ‘부산 노래’ 열아홉 곡이 수록된 거다. ‘함경도 사나이’의 의미가 새삼스럽게 다가올 줄 예전엔 몰랐었다.
어쨌거나 빈소에 들어서 고인에게 기독교식으로 고개를 숙였다. 제법 긴 시간이었던 듯 유족들이 의아하게 생각했다. 내 착각일까? 나는 가톨릭 신자니까 양해를 얻고 영정을 향해 절을 하고, 평소 방식대로 유족들에게 위로도 했다.
그런데, 상주 즉 장남이, 너무나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부의금 봉투 하나 안 내미는 나를, 그는 조금도 얕잡아(?)보지 않았다. 장례 위원장과 셋이서 반시간 정도 고인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는데, 상주 손동준 전(前) 가수는 겸손하고, 친절했다. 나는 손인호 선생과의 기나긴 인연 보따리를 풀어 놓았다. 그렇다. 그 속에 든 건 하나도 잃어 버려서는 안 되는 소중한 보따리다. 이 기가 막히는 인터뷰에서, 노래인들 어찌 아니 나오랴. 두어 마디씩 내가 부르기도 했다. 흥남부두 울며 헤진 눈보라 치던 그 날 밤…(함경도 사나이)/ 정든 백사장 정든 동백섬 안녕히 잘 있거라…(해운대 엘레지)/ 파도치는 등대 아래 이 밤도 둘이 앉아(청춘등대)/ 목인 메인(메는) 이별가를 물러야 옳은가…(비 내리는 호남선)
손인호 선생은 가요계의 큰 별이다. 그분의 영정이 팔 하나 뻗으면 닿을 곳에 자리 잡고 있는데, 아들 앞에서 몇 소절 노래가 나온다. 나도 참 간 큰 늙은이다 싶어 고소가 나왔다. 어쨌든 상주의 얼굴이며,즐비한 조화를 휴대 전화에 담고 돌아 나왔다. 만감이 가슴을 헤집는 가운데 지하철을 탔고, 내내 손인호에 묶여 있었다. 난 옴짝달싹할 수가 없었다.
나는 앞으로도 그분의 노래를 애창하리라, 목이 메게. 약속을 지킬 수밖에 없는 이유? 첫째, 나 자신이 너무나 좋아하는 곡이 많아서다. ‘물새야 왜 우느냐’ , ‘하룻밤 풋사랑’, ‘해운대 엘레지’, ‘청춘등대’, ‘한 많은 대동강’, ‘함경도 사나이’ ‘비 내리는 호남선’ 이들 노래는 지금 눈 감고도 내가 2절까지,박자 하나 음정 하나 안 틀리고 소화할 수 있다!
다음 이유는 손동준 전 가수의 사람 됨됨이에 반해서다. 촌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는 자체가 나는 경탄스러웠던 것이다. 그와 만나 고인의 히트 곡 중 위의 노래들을 제창하고 싶다. 어디 적당한 야외를 찾는다. 한 시간이면, 충분하리라. 같이 울어도 보고 싶은 게 내 심사다. 뺨을 때리는 이? 사람이 아니라 세월이다.
무려 25년 동안 노인학교에서 발을 못 뺐었다, 토요일 오후마다.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그 ‘세월’, 력을 지녔었다 하자. 돌이켜보면 그 사반세기에 우리는 손인호와 더불어 살아왔음에 틀림없다. 특히 위의 일고여덟 곡은 우리를 미치게 하고도 남았다. 그 사연을 다 적을 수 없으니 우선 두 개만 고르자.
‘청춘등대’, 대개가 혼자인 노인 생들이 왜 그걸 그렇게들 좋아하는지 지금도 아리송하다. 다만 남자는 죽을 때까지 남자고 여자는 죽을 때까지 여자라는, 신이 창조한 명제 때문이었으리라 어렴풋이 짐작한다. 배필 외엔 손 한 번 잡아보지 못한 그들이,이성을 그리워하는 가상의 세계에 자신을 밀어 넣는다? 그만 쓰고 1절 가사나 끝까지 적어 보자. 파도치는 등대 아래 이 밤도 둘이 앉아/ 바람에 검은 머리 휘날리면서/ 하모니카 내가 불고 그대는 노래 불러/ 항구에서 맺은 사랑 영원히 잊지 못해/ 아아아아, 밤은 깊어 가더라.……!
마치 몽환 속을 헤매는 것 같던 그 시절 그 현장이 그립다. 김광종 대한항공사우회 음악부장의 색소폰 반주에 맞춰, 한 시간 넘게 이 ‘청춘 등대’를 부르짖던 기억도 있다. 그 제자들은 이제 이 세상에 몇 안 남았다. 왜 손인호 가수냐? 내 대답은 바로 이 졸고 속에 들었다.
‘함경도 사나이’는 내 노인 학교가 무대가 아니다. 가끔은 중앙 성당 노인대학에 가서 수업을 했는데, 학생들의 상당수가 월남해서 국제 시장에서 포목 장사를 함으로써 일생을 보낸 사람들이다. 영화 국제 시장과 똑같다. 그들은 눈물을 줄줄 흘렸다. 나도 울었다. 이 노래 때문에, ‘함경도 사나이’! 흥남부두 울며 찾던 눈보라 치던 그날 밤/ 내 자식 내 아내 잃고 나만 외로이/ 한이 맺혀 설움이 맺혀 남한 땅에 왔건만/ 부산 항구 갈매기의 노래조차 슬프구나./ 영도다리 난간 위에 누구를 기다리나…!
그 손인호! 큰 별이 지고 없지만, 그래도 현장인 빈소에 갔다 돌아온 것이다. 어찌 쉬 잠이 오랴. 저승에서 날 기다리는, 먼저 간 그 많은 제자들의 얼굴을 떠올리기에도 바쁘다.
*13장
손인호가 취입한 노래 중에 가톨릭 신자들의 눈길을 끄는 곡,' '성당'이 나오는 게 있다. '이별의 성당 고개'! 바로 이 노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