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02. 사기 / 태사공서(史記 / 太史公書)
사기의 구성
사기(史記)
"흩어진 천하의 옛 이야기들을 망라하되, 왕들이 일어난 그 처음과 끝을 탐구하고 그 흥망성쇠를 관찰하며 사실 진행에 따라 고증해 간략히 삼대의 사실을 추구하고 진나라와 한나라의 사실을 기록했는데, 위로는 헌원으로부터 아래로는 지금에 이르기까지를 12본기로 기록하되, 모두 조목별로 나누어 설명했다.
사적에는 시대가 같은 것도 있고 다른 것도 있어 연대의 차이가 분명하지 않으므로 10표를 만들었다.
예악의 증감, 법률과 역법의 개정, 병권, 산천, 귀신, 하늘과 인간의 관계, 시대와 세상에 따라 변화하는 것에 대한 내용으로 8서를 지었다.
별자리 28수가 북극성을 중심으로 돌고 있고, 30개의 바퀴살이 모두 하나의 바퀴통에 집중되어 있어 끝없이 돌고 도는 것처럼, 천자를 보필하는 신하들을 이에 비유해 그들이 충신의 도리로서 천자를 받드는 모습을 내용으로 30세가를 지었다.
의로움을 따르고 재능이 빼어나, 때를 놓치지 않고 천하에 공명을 떨친 사람들의 일들을 내용으로 70열전을 지었다.
합해 130편, 526,500자이고, 이를 《태사공서(太史公書)》라고 부른다."
《사기》 태사공자서
본기(本紀)
중화 세계를 지배한 통일 국가와 천자에 대한 기록이다. 항우와 여태후가 본기에 들어 있는 것이 특이점. 명분과 신분보다 그 인물이 끼친 영향력과 업적을 중시한 사마천이기에 위의 두 인물이 편입될 수 있었다.
삼황본기(三皇本紀): 삼황오제 중 '삼황'에 대한 기록이다. 그러나 사마천은 동이족 태호 복희로 시작하는 삼황을 허구로 단정하여, 삼황에 대해서는 쓰지 않았기 때문에 사마천이 쓴 정식 12본기는 아니며, 당나라 때 사마정이 《보사기(補史記)》를 쓰면서 추가한 것이다. 천황, 지황, 태황(인황), 그 외에 복희, 여와, 신농, 축융, 황제 등이 삼황으로 꼽힌다.
오제본기(五帝本紀): 삼황오제 중 '오제'에 대한 기록으로, 사마천이 쓴 정식 12본기 중 첫 번째 기록이다. 오제가 누구인지는 여러 설이 있지만 이 본기에서의 오제는 황제, 전욱, 제곡, 요, 순이다. 다만 현재의 오제본기는 사마천 당대의 것이 아니라 당나라 때 그 이전에 소실되어 버린 해당 부분을 재판한 것이다. 후대의 주석에서는 소호(금천)를 5제에 넣기도 한다.
하본기(夏本紀): 선조인 황제부터 곤(鯀)까지의 가계 및 1대 우왕에서 17대 걸왕까지의 역사를 기록. 대부분 《서경(書經)》의 <하서>를 배낀 것이지만, 여기서 더 나아가 《서경》의 각 편이 어떤 이유로 편찬되었는지도 기록되어 있다.
은본기(殷本紀): 시조 설(契)이 성씨를 하사 받은 일로부터 시작하여, 1대 탕왕에서 30대 주왕까지의 역사를 기록. 이 또한 《서경》의 <상서>를 베낀 것이다. 역시 각 편의 편찬 이유도 기록.
주본기(周本紀): 시조인 후직 이후의 가계 및 고공단보의 건국, 1대 무왕에서 37대 난왕까지의 역사를 기록.
진본기(秦本紀): 선조인 전욱부터 이어지는 가계 및 1대 양공에서 30대 장양왕까지의 진의 역사를 기록. 진시황 이후는 <진시황본기>로 따로 편찬했다.
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 진이 중국을 통일한 시기의 역사로, 시황제, 이세황제, 진의 멸망까지를 기록하고 있다.
항우본기(項羽本紀): 패왕으로 불렸던 항우의 일대기. 황제가 되지 못한 항우를 황제처럼 본기에 넣었다. 사기의 특수성을 보여주는 기록이다.
고조본기(高祖本紀): 한고조 유방의 일대기. 유방이 거병하기 전 시절부터 중국을 재통일하고 사망하기까지의 과정을 다루고 있다.
여태후본기(呂太后本紀): 유방 사후 즉위한 혜제, 두 명의 소제 시대에 실권을 장악한 여태후의 일대기. 정식 황제가 아닌 실권자를 본기에 기록한 특수한 기록이다.
효문본기(孝文本紀): 여태후 사후 즉위한 효문제 유항의 일대기. 유항의 대왕(代王)시절부터를 기록하고 있다.
효경본기(孝景本紀): 문제의 뒤를 이은 효경제 유계의 일대기. 원본이 소실되었기에 후대의 어느 인물에 의해서 보충한 것이 전해온다.
효무본기(孝武本紀): 경제의 뒤를 이은 효무제 유철의 일대기. 사기 태사공자서의 해제에는 <금상본기(今上本紀)>라고 되어 있다. '효무'는 무제가 죽은 뒤에 붙여진 시호이고 사마천은 한무제 시절에 사기를 완성했으니 금상본기라고 칭하는 것이 올바른 표현인데, 이렇게 된 것에는 여러 설이 있다. 사마천이 직접 만든 금상본기가 없어져 버렸기 때문에 후세 사람들이 가필한 것이라는 설도 있고, 일부러 이렇게 제작했다는 설도 있다. 어쨌든 현전하는 사기의 효무본기는 저소손이 서의 <봉선서> 일부에서 내용을 보충한 것으로 보인다.
서(書)
당시의 생활상이나 제도, 풍속 등을 기록한 사회사 기록. 후대 역사서들의 지(志)에 해당된다. 내용 손실이 극심하였는지, 사마천이 쓴 목록과 현재 남은 목록이 비율상 가장 다르다고 볼 수 있는 부분이다. 현재 남은 부분은 후대에 자료를 수집해서 채우고, 자료가 없는 경우에는 아예 새로 쓴 것들이다. 원래는 <예서>, <악서>, <병서>, <율력서>, <천관서>, <하거서>, <봉선서>, <평준서>의 순서대로 있었는데, 예서, 악서, 병서는 망실된 뒤 예서와 악서는 다른 자료들을 토대로 다시 만들어졌으나 병서는 끝내 복원되지 못했다. 또한 율력서가 율서와 역서로 쪼개져 8서 체제를 갖춘다.
예서(禮書): 예의범절이나 이와 관련한 풍속 기록을 담고 있는데, 《사기지의(史記志疑)》에서는 <예서>는 《순자》의 <예론>과 <의병>편의 내용을 참조하여 후대에 새로 쓴 것으로 본다.
악서(樂書): 음악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사기지의(史記志疑)》에서는 현전 <악서>를 《예기》의 <악기> 편을 참조해 후대에 새로 쓴 것으로 본다.
율서(律書): 병법이나 군사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어, 사라진 병서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으나, 후반부는 음률(音律)에 대한 내용들을 다루고 있어 후대에 재구성된 것임을 보여준다.
역서(暦書): 역법과 관련된 기록으로, 특히 한무제 연간의 역법 개정에 대해서도 상세히 다루고 있다.
천관서(天官書): 천문과 관련된 내용을 다루고 있는데, 이 당시 천문은 인간의 길흉화복을 점치는 것은 물론, 당시 성행하던 '천인감응(天人感應)'의 개념과 맞물려, 하늘과 인간의 관계를 사상적으로 규명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봉선서(封禪書): 종묘나 제사 관련 내용으로 무제 시기의 내용은 <효무본기>의 내용과 동일하다.
하거서(河渠書): 치수(治水) 사업 관련된 내용을 다루고 있다. 이는 《한서》의 구혁지(溝洫志), 《송사》, 《금사》, 《원사》, 《명사》의 <하거지(河渠志)>로 이어졌다.
평준서(平準書): 재정, 경제 관련 내용을 담고 있으며, 이는 《한서》 <식화지(食貨志)>로 이어져, 이후 정사들이 다루는 <식화지>의 모범이 되었다.
세가(世家)
춘추전국시대의 유명 제후들 및 전한의 황족, 제후들과 고관들의 기록. 여기에 공자와 진승이 포함된 것이 특이한 점이다. 오, 초, 월의 경우 이리저리 윤색을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이민족 국가였을 가능성이 높다. 사기를 본따 만든 《삼국사기》에는 제후국이 따로 없었던 만큼 세가가 없으며, 중국의 정사 또한 한 이후 중앙 집권 체제가 된 관계로 제후가 독립적 통치 권한이 없는 작위에 불과하게 되어 대부분 세가를 생략했다.
오태백세가(吳太伯世家)
주문왕의 아버지이자 자신들의 아우 계력에게 자리를 양보하기 위해 스스로 머리를 깎고 문신을 새겨 남방 오랑캐 땅으로 들어간 태백, 중옹 형제가 세운 오나라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자손이 없던 태백의 뒤를 이은 중옹부터 부차까지의 오나라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제태공세가(齊太公世家): 강태공이 분봉 받은 제나라, 일명 강제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으며 태공 때부터 강공 때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노주공세가(魯周公世家): 주문왕의 아들 주공단이 분봉받은 노나라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으며 주공부터 경공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연소공세가(燕召公世家): 주문왕의 아들 소공석이 분봉받은 연나라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으며 소공석부터 연왕 희, 태자 단 부자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관채세가(管蔡世家)
주문왕의 아들 관숙선과 채숙도가 분봉받은 관나라, 채나라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관숙선과 채숙도는 주문왕의 아들이자 곽나라에 분봉 받은 곽숙처, 은나라 주왕의 아들 무경과 삼감의 난을 일으켰다. 주모자 관숙선과 무경은 처형당하고 참여는 했지만 애매한 포지션이던 채숙도는 유배, 말 그대로 참여하고 행동은 안 한 곽숙처는 면직되었다. 관숙선은 자손이 없어서 관나라는 폐지되었고 채나라는 채숙도가 유배지에서 사망한 후 아들 채중호가 다시 분봉받아 이어나갔다. 관나라의 역사 기록은 분봉 후 삼감의 난을 일으켰다가 관숙선이 피살되고 자손이 없어서 나라가 폐지된 기록뿐이지만 채나라의 기록은 채숙도부터 채후 제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주문왕의 아들 숙진탁의 나라인 조(曹)의 역사도 별도의 세가 없이 이 관채세가 끝에 기록되어 숙진탁부터 조백 양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진기세가(陳杞世家)
순 임금의 후손 호공이 분봉 받은 진나라와 우 임금의 후손 동루공이 분봉 받은 기나라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진나라의 경우는 호공 때부터 민공, 기나라의 경우는 동루공부터 간공 때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위강숙세가(衛康叔世家)
주문왕의 아들 위강숙이 분봉받은 위나라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으며 위강숙 때부터 군 각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송미자세가(宋微子世家)
은나라 주왕의 형 미자계가 분봉 받은 송나라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으며 미자계가 자손이 없어 그의 아우 미중연 때부터 강왕 때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진세가(晉世家): 무왕의 아들 당숙우가 분봉 받은 진나라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으며 당숙우 때부터 정공 때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초세가(楚世家): 축융의 자손이라는 웅역이 분봉 받은 초나라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으며 웅역 때부터 부추 때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월왕구천세가(越王句踐世家): 하나라 소강의 서자 무여가 분봉 받은 월나라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으며 무여 때부터 무강 때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정세가(鄭世家): 주선왕의 이복동생 정환공이 분봉 받은 정나라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으며 환공 때부터 강공 때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조세가(趙世家): 비염의 차남의 후예 열후가 분봉 받은 나라로 숙대 때부터 왕 천, 대왕 가 형제 때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조, 위, 한나라는 유력한 세 가문이 진(晉)나라를 삼등분하면서 탄생한 나라다.
위세가(魏世家): 필나라의 후예였던 필만의 후예 문후가 분봉 받은 나라로 필만 때부터 왕 가 때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한세가(韓世家): 진(晉)나라의 방계 후손 경후가 분봉 받은 나라로 경후 때부터 왕 안 때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전경중완세가(田敬仲完世家)
강태공이 분봉 받은 제나라의 마지막 군주 강공을 폐위한 태공 전화 이후의 제나라, 일명 전제의 기록으로 진경중완 때부터 마지막 왕 건 때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죽서기년》과 비교하면 중간에 누락된 군주가 하나 있다.
공자세가(孔子世家): 말 그대로 공자의 일대기. 제후가 아닌 공자를 세가에 기록함으로서 사마천의 공자에 대한 생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기록이다.
진섭세가(陳渉世家): 진 이세황제 때 진승·오광의 난을 일으킨 진승과 오광의 일대기. 정식 왕조로 인정받지 못하고 반란군의 수괴로 끝난 진승을 세가에 기록하여 사마천이 진승의 난을 역사적으로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이다.
외척세가(外戚世家): 여기의 '외척'은 한나라의 외척들을 의미한다. 한고조부터 한무제까지의 한나라 역대 황후와 황후의 친척들에 대한 기록.
초원왕세가(楚元王世家)
한고조 유방의 아우인 초원왕 유교와 그 후손의 전기 유교는 사기에 '고조와 어머니가 같은 동생'이라고 적혀 있으나, 《한서》에는 유방의 이복동생으로 기록되어 있다. 저소손이 마무리했으나 그 부분은 한서와 달라 잘못 보충된 것으로 여긴다.
형연세가(荊燕世家): 유방의 친척인 형왕 유가, 연왕 유택과 그 후손의 전기. 유가는 유방의 사촌형이지만 《사기》에는 어느 유파에 속해 있는지 알 수 없다고 적혀 있다.
제도혜왕세가(齊悼惠王世家): 유방의 서장자 제도혜왕 유비(劉肥)와 그 후손들의 전기.
소상국세가(蕭相國世家): 소하와 그 후손에 대한 전기.
조상국세가(曹相國世家): 조참과 그 후손에 대한 전기.
유후세가(留侯世家): 장량과 그 후손에 대한 전기.
진승상세가(陳丞相世家): 진평과 그 후손에 대한 전기.
강후주발세가(絳侯周勃世家): 주발과 그 후손에 대한 전기. 다른 고제의 공신들과는 달리 주발의 둘째아들 주아부의 비중도 만만찮게 높다.
양효왕세가(梁孝王世家): 한문제의 아들인 양효왕 유무와 그 형제들과 후손의 전기.
오종세가(五宗世家): 한경제의 아들들 중 제후국 왕에 봉해진 이들의 전기. 제목이 오종(五宗)인 것은 이 세가에 등장하는 경제의 아들들이 각각 다섯 어머니에게서 나왔기 때문이다. 경제의 다섯 부인은 율희, 정희, 가부인, 당희, 왕부인 아후.
삼왕세가(三王世家): 한무제의 아들들 중 제후국 왕에 봉해진 이들에 대한 전기이긴 한데, 사실 이 세가는 사마천이 살았던 시대의 황제의 교지, 공문이나 상소, 책봉문 등을 그대로 옮겨 붙여 놓았다.
열전(列傳)
천하에 공명을 떨친 인물들에 대한 기록. 한족이 아닌 타민족의 역사도 광범위로 다루고 있으며, 다양한 직업을 가진 수많은 인물들이 총망라되어 있다.
한문학의 산문 갈래인 전 문학의 시초이기도 하다. 후대의 실전(實傳), 가전(假傳), 탁전(託傳) 등은 물론, 전책(傳冊)이라 불리던 조선 후기, 인물 중심의 소설 (한글 소설 포함) 등도 계보를 따져보면 사마천의 열전이 원조라는 이야기이다.
백이열전(伯夷列傳)
주문왕의 은나라 정벌을 반대하며 수양산에서 고사리를 캐먹다 숨진 고죽국 왕자 백이와 숙제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나 실제 중심이 되는 부분은 백이와 숙제가 화를 입고 악인이 복락을 누리는 세태를 통해 천도의 정당성 여부를 논한 뒤, 기록을 통해 후세에 전달하는 것이 자신의 소명임을 밝히는 내용이다. 그런 고로 열전의 서문 같은 성격이 짙다.
관안열전(管晏列傳): 제환공의 재상 관중과, 제경공의 재상 안영의 일대기.
노자한비열전(老子韓非列傳): 도가의 노자와 장자, 형명학의 신불해, 법가의 한비자를 다룬 열전. 그래서 <노장신한열전>이라고도 한다.
사마양저열전(司馬穰苴列傳): 제경공 시대의 장군 사마양저의 일대기.
손자오기열전(孫子吳起列傳): 《손자병법》으로 유명한 손무와 그의 후손인 전국시대의 손빈, 그리고 오기를 다룬 열전.
오자서열전(伍子胥列傳): 오자서를 다룬 열전. 그러나 후반에 초평왕의 손자인 백공(白公) 웅승(熊勝)에 대한 기록도 있다.
중니제자열전(仲尼弟子列傳): 공자 제자들의 열전. 안회, 자로, 자공 등등에 대한 기록이다. 이름이 언급된 제자는 총 72명.
상군열전(商君列傳): 상앙의 일대기.
소진열전(蘇秦列傳): 합종책으로 유명한 소진의 일대기.
장의열전(張儀列傳): 연횡책으로 유명한 장의의 일대기. 소진 다음에 장의가 활약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고 열전의 순서도 이를 반영했지만 실제로는 반대였다는 사실이 훗날 밝혀졌다.
저리자감무열전(樗里子甘茂列傳): 진나라의 첫 승상이었던 저리질과 감무, 감무의 손자 감라를 다룬 열전.
양후열전(穰侯列傳): 진소왕의 어머니 선태후(宣太后)의 남동생 양후 위염(魏冉)의 일대기.
백기왕전열전(白起王翦列傳): 백기와 왕전의 일대기.
맹자순경열전(孟子荀卿列傳): 유가의 맹자, 순자를 비롯하여 음양가의 추연, 명가의 순우곤, 신도, 환연, 접자, 전병, 추석, 공손룡, 묵가의 묵자 등 전국시대 제자백가의 일대기.
맹상군열전(孟嘗君列傳): 제의 맹상군 전문의 일대기. 그의 식객 풍환도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평원군우경열전(平原君虞卿列傳): 조의 평원군 조승과 유세객 우경의 일대기.
위공자열전(魏公子列傳): 위의 신릉군 위무기의 일대기. 한고조 유방이 그를 존경해서인지 '위공자'로 따로 높여 부른 것으로 보인다.
춘신군열전(春申君列傳): 초의 춘신군 황헐의 일대기.
범수채택열전(范睢蔡澤列傳): 진나라의 재상 범수와 그의 유세객 채택의 일대기.
악의열전(樂毅列傳): 악의를 비롯하여 그의 조상 악양과 악의의 아들 악간, 악승 등 악씨 가문의 열전.
염파인상여열전(廉頗藺相如列傳): 염파와 인상여를 중심으로, 진나라에 대항하여 전국 후기에 활약했던 조사, 이목 등 조나라 명장들의 열전.
전단열전(田單列傳): 화우지진으로 악의를 무찌른 전단의 열전.
노중련추양열전(魯仲連鄒陽列傳): 유세객 노중련과 추양의 열전.
굴원가생열전(屈原賈生列傳): 초나라의 충신 굴원과 효문제 시기의 젊은 박사 가의의 이야기.
여불위열전(呂不韋列傳): 일개 볼모였던 자초를 왕으로 만든 거상 여불위의 일대기.
자객열전(刺客列傳): 여기 등장하는 자객은 모두 다섯 명으로 조말, 전저, 예양, 섭정, 형가.
이사열전(李斯列傳): 진시황의 승상 이사의 일대기를 이사를 중심으로 진의 흥망성쇠가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몽염열전(蒙恬列傳): 몽염을 비롯하며 할아버지 몽오, 아버지 몽무, 동생 몽의까지 기록되어 있다.
장이진여열전(張耳陳餘列傳): 두 사람의 행적이 겹쳐서인지 따로 전을 나누지 않고 한꺼번에 하나의 전으로 뭉쳐서 서술한다.
위표팽월열전(魏豹彭越列傳)
경포열전(鯨布列傳)
회음후열전(淮陰侯列傳): 한삼걸 중 한 사람으로 《초한지》의 주역인 한신의 열전. 젊은 한신의 굴욕과 토사구팽까지의 일대기가 기록되어 있다.
한신노관열전(韓信盧綰列傳): 이 열전의 한신은 '한왕 신'이다.
전담열전(田儋列傳): 초한쟁패기 제나라에서 일어난 전씨 일족 관련 기록. 전담이 장한과의 전투에서 빨리 전사한 관계로 전영과 전횡을 다룬 부분이 더 많다.
번역등관열전(樊酈滕灌列傳)
장승상열전(張丞相列傳): 한나라 초기의 재상 장창(張蒼)이 주인공이지만, 장창의 어사대부 승진 직후에 전임 어사대부 주창, 조요, 임오, 조줄(조참의 아들)의 기록이 삽입되고(그래서 주인공 이야기가 갑자기 실종되는 구조가 된다) 장창의 은퇴 후에는 후임 승상인 신도가의 일대기로 마무리된다. 저소손이 사기 집필 이후의 승상들인 차천추, 위현, 위상, 병길, 황패, 위현성, 광형의 일대기를 덧붙였다.
역생육가열전(酈生陸賈列傳)
부근괴성열전(傅靳蒯成列傳): 유방의 장수였던 부관, 근흡, 괴성후 주설의 전기.
유경숙손통열전(劉敬叔孫通列傳)
계포난포열전(季布欒布列傳)
원앙조조열전(袁盎晁錯列傳)
장석지풍당열전(張釋之馮唐列傳): 한문제의 법관 장석지와, 문제에게 '명장을 거느릴 능력이 없다.'라고 직언한 풍당의 열전.
만석장숙열전(萬石張叔列傳): 한문제, 한경제 때 고관으로 본인과 네 아들이 모두 이천석의 녹봉을 받아 만석군이라 불린 석분(石奮)과, 한경제 시절 고관을 지낸 위관, 직불의, 주문, 장숙의 열전.
전숙열전(田叔列傳): 한문제, 한경제 때 관료 전숙과 그 아들 전인, 한무제때 관료이자 사마천의 절친이었던 임안의 열전.
편작창공열전(扁鵲倉公列傳): 춘추시대 때의 명의로 편작이라 불렸던 진월인과, 한문제 시기의 명의인 창공 순우의의 전기.
오왕비열전(吳王濞列傳): 오왕 유비는 유방의 형인 유중의 아들로 오초7국의 난의 주동자이다
위기무안후열전(魏其武安侯列傳): 한문제의 황후인 두황후의 사촌 위기후 두영과 한경제 황후의 동모동생인 무안후 전분의 전기.
한장유열전(韓長孺列傳): 한무제 때의 관료인 한안국의 전기로 한안국의 자가 '장유'이다.
이장군열전(李將軍列傳): 명궁으로 유명한 이광의 열전. 그 유명한 '복숭아와 오얏나무는 말이 없으나, 그 밑에는 저절로 길이 생긴다'라는 말이 여기에서 나왔다.
흉노열전(匈奴列傳): 흉노가 주역이긴 하지만 중항열의 행적도 여기에 전한다. 사마천이 직접 썼는지에 의문이 드는 내용들이 있다. 사기의 마지막 사건인 흉노의 연연산 전투가 수록되어 있다.
위장군표기열전(衛將軍驃騎列傳): 한무제 때의 명장인 위청과 곽거병이 주인공. 그리고 그들 휘하에서 활약한 장수들의 약전도 실려 있다.
평진후주보열전(平津侯主父列傳): 한무제 때의 재상인 공손홍과 유학자인 주보언의 전기.
남월열전(南越列傳): 조타가 세운 남월의 역사를 기록한 열전이다. 이 열전의 찬론은 사마천이 아니라 후세가 위작하였다는 것이 판명되었다.
동월열전(東越列傳): 옛 월나라 땅에 세워진 민월의 역사를 기록한 열전.
조선열전(朝鮮列傳): 여기서 말하는 조선은 당연히 고조선으로 특히 '위만조선'을 지칭한다.
서남이열전(西南夷列傳): 이른바 '촉' 지역 남부 및 남만 방면 이민족에 대한 정벌기의 성격이 강하다.
사마상여열전(司馬相如列傳): 한무제 때 유명한 문인인 사마상여의 열전.
회남형산열전(淮南衡山列傳)
한고조의 서자인 회남여왕 유장과 유장의 장남 회남왕 유안, 삼남 형산왕 유사의 전기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황족처럼 보여 이들을 열전에 올릴 까닭이 있나 싶지만, 세 사람 모두 각기 다른 역모 사건으로 주살되었다.
순리열전(循吏列傳): 덕망 있는 관리에 대한 열전으로 혹리열전과 대조를 이룬다.
급정열전(汲鄭列傳): 무제 때의 현명한 신하들인 급암, 정당시의 열전.
유림열전(儒林列傳): 한대의 유학자들에 대한 열전. 오경을 중심으로 그와 관련된 유생들을 다룬다.
혹리열전(酷吏列傳): 가혹한 관리들의 열전으로 순리열전과 대조를 이룬다.
대완열전(大苑列傳): 장건의 서역 원정으로부터 시작된 실크로드 개척과 대완국 토벌에 대해 기술했다. 전한 시대 어느 순간에 사라졌다가 《한서》 편찬 직전에 누군가가 사기의 다른 내용을 짜깁기해서 복원했다는 의혹이 있다.
유협열전(遊俠列傳)
유협은 요즘으로 치면 조직폭력배, 좀 순화해도(?) 건달패들인데, 단순한 폭력배에 대한 기술이 아니라 나름대로 의리와 품격이 있다고 당대에 인정받은 주가, 전중, 극맹, 곽해 등 이른바 협객이라 평가받을 만한 이들의 일화를 기술하고 있다.
영행열전(佞幸列傳) : 황제에게 아부하여 총애를 누린 사람들의 열전.
골계열전(滑稽列傳) : 유머를 이용해 군주에게 직언한 사람들의 열전. 순우곤과 동방삭이 여기 실려 있다.
일자열전(日者列傳) : 아래 귀책열전 항목 참조.
귀책열전(龜策列傳)
일자열전, 귀책열전 모두 점치는 사람들에 대한 열전인데, 일자는 태양을 관찰하여 점을 치는 사람이고, 귀책은 거북점을 말한다. 망실된 것을 저소손이 보충한 것으로 보인다. 현전하는 일자열전에는 사마계주라는 사람의 행적이 쓰여 있다. 귀책열전에는 인물의 행적이 없어 인물의 행적을 담는 열전으로서는 특이하며, 정치 비판적 성격이 드러난다는 점도 특이한 점이다. 다만, 사마천의 원본은 실전되어 지금 전해지는 내용은 저소손이 다시 쓴 것.
화식열전(貨殖列傳)
돈을 벌어 크게 성공한 이들의 성공 스토리. 월나라 재상 범려가 말년에 관직을 버리고 '치이자피', '도주공' 등으로 불리며 갑부가 된 일화가 바로 여기에서 소개된다.
중국 각지의 경제나 특산물에 대해서도 논하고 있다. 화식열전을 따로 쓴 것은, 돈이 없어 궁형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사마천의 개인사가 반영된 것으로 보기도 한다.
태사공자서(太史公自序)
사마천의 집안 내력과 사기를 쓸 때까지의 삶을 담고 있다. 사기의 맨 마지막 편이지만, 사기 각 편의 서술 의도 역시 담고 있어 사실은 사기 전체의 머리말이자 해제에 해당한다. 한마디로 사기의 끝이자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편. 참고로 항목 맨 위에 있는 사마천의 말은 바로 태사공자서 맨 마지막에 있는 말로, 사기 전체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문장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