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칭 죽음’ 떠올릴 여유 없다면… 1년에 한 번 유언장 써보세요 / 문진수
매년 35만명이 넘는 사람이 세상을 등진다. 베이비붐 세대가 고령층에 진입하면서 사망자 수는 계속 증가할 전망이다. 사람이 온다는 것이 어마어마한 일이듯, 사람이 간다는 건 하나의 우주가 소멸하는 거대한 슬픔이다. 생의 첫 순간이 축복으로 가득해야 하는 것처럼, 마지막 순간도 아름답고 숭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화장률(火葬率)은 약 94%다.(2025년 10월 사망자 기준) 대다수 유족이 망자의 시신을 태운 후, 유골을 묘지나 시설에 안치하거나 자연으로 돌려보낸다. 나라에서는 국토 잠식과 환경 훼손을 막기 위해 자연장을 권장하고 있다. 자연장(自然葬)이란 화장한 유골을 나무, 화초, 잔디 아래나 인근에 묻는 걸 말한다. 바다에 유골을 뿌리는 해양장(海洋葬)을 선택하는 사례도 늘어나는 추세다.
마지막을 어떻게 맞을 것인가
우리는 매일 죽음을 접하면서도 죽음을 정면으로 응시하지 않으려 한다. 왜 그럴까. 경험해 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죽은 자는 죽음 이후를 알려주지 않으므로 삶의 종착점 너머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알 도리가 없다. 내세(來世)를 갈망하며 믿음에 의지하려는 것도 이 두려움과 공포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일 것이다.
죽음은 늘 이인칭이거나 삼인칭으로 다가온다. 죽음이라는 자연현상을 회피하고 부정하려는 심리가 작동하다 보니 일인칭 죽음을 상상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자신을 죽음의 당사자로 놓고 바라보면, 여러 단상이 머리에 떠오른다. 어디서 죽음을 맞을 것인가, 어디에 묻힐 것인가, 무엇을 남길 것인가. 가족과 친구들에게 어떤 유언을 전할 것인가.
고독사를 세상에서 가장 슬픈 죽음이라고 하지만 보통 사람들도 별반 차이가 없는 것 같다. 우리나라 사람 10명 중 9명은 병원이나 요양시설 침상에서, 약에 취하거나 생명 유지 장치에 의지한 채로 삶을 마감한다. 죽음을 예비(豫備)하긴 어렵지만, 사랑하는 이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지도 못하고 병실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한다는 건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무의미한 생명 연장을 거부하겠다는 의향서(정식 명칭은 사전연명 의료의향서다!)를 작성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시한부 진단을 받게 되면 연명치료를 포기하고 스위스행 비행기 표를 편도(片道)로 끊겠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존엄한 죽음을 맞기 위한 자기 결정권 즉 ‘생의 마지막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라는 화두는 우리 모두의 관심사다.
죽음을 떠올려야 하는 이유
유언(遺言)의 사전적 정의는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다. 언제 죽을지를 안다면 미리 준비하지 않아도 무방하지만, 그런 신공(神功)을 가진 사람은 없다. 따라서 숨이 붙어 있을 때 마련하는 게 좋다. 가장 이상적인 접근법은 1년에 한 번 유언장을 작성하는 것이다. 꼭 1년 주기일 필요는 없다. 정기적으로 유언장을 갱신(更新)하면 된다.
내가 만난 5060세대 중 건강 상태와 무관하게, 가족 혹은 친지에게 남길 말을 문서로 작성해 둔 사람은 드물었다. 아직 그럴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거나, 죽음을 직시하는 일이 불편하게 느껴지는 등의 이유가 깔려있을 것이다. 재산 상속과 관련된 유언은 법적 요건에 맞춰 진행하면 되지만, 삶을 정리하는 말과 글을 남기는 건 그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살기도 버거운데 죽음을 생각할 겨를이 있냐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우리가 죽음을 떠올려야 하는 이유는 오늘을 가치 있게 살기 위해서다. 메멘토 모리(memento-mori), 즉 죽음을 기억하고 살아가라는 말은 생명의 유한함을 직시할 때 삶의 우선순위가 명확해져서 군더더기를 버리고 본질에 집중할 수 있고, 충실한 삶을 살 수 있다는 뜻이다.
모든 생명은 ‘죽음을 산다’
우주에는 약 1000억 개의 은하가 존재하고 각각의 은하에는 평균 1000억 개의 별이 있다고 한다.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거대한 우주에서 지구는 먼지보다 작은 별이다. 지구의 나이는 약 46억 살이고, 이 행성에 최초의 생명체가 등장한 건 38억 년 ∼43억 년 전으로 추정된다. 인류는 약 6백만 년 전에 유인원과 분리된 후 여러 단계를 거쳐 진화했고, 문명이 시작된 건 1만 년 전이다.
이를 우주력(宇宙歷)으로 계산하면, 1월1일 0시 0분 0초에 우주가 형성되었다고 할 때 지구가 탄생한 건 9월6일이고, 인류의 조상이 출현한 건 12월31일 23시 52분이며,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시점은 12월31일 23시 59분 59초라고 볼 수 있다(1980, 칼 세이건). ‘창백한 푸른 별’ 지구에서 2026년을 사는 우리는 얼마나 미미하며, 얼마나 경이로운 존재인가.
물리학자 김상욱은 ‘우주의 대부분은 죽어 있고 생명은 아주 드문 현상’이라고 말한다. 우주 전체로 보면 죽음이 일반적이고 살아서 숨 쉬는 건 몹시 이상한 상태라는 것이다. 우주는 죽음으로 충만하고 삶은 희귀하다는 것. 생명체의 죽음은 매우 자연스러운 흐름이라는 사실은 우리에게 허락된 잠시 잠깐의 삶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알려준다.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 있다. 죽음은 끝임과 동시에 시작이다. 생명 활동은 삶과 죽음의 이중주다. ‘죽음을 산다’라는 모순된 역설이 성립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선택할 길은 하나다. 죽음을 곁에 두고 사는 것. 언젠가 자연으로 돌아갈 날이 오겠지만, 그때까지 각자에게 주어진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는 것이리라. 삶을 죽도록 사랑하는 것이다.
문진수 작가
수정 2026-03-16 09:05 등록 2026-03-1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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