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선생님→ 교장선생님→ 지내리 반장님
여덟 번째 시집 "멧새가 와서 사랑처럼 울었다"
2001년 『문학세계』로 등단하여 춘천에서 활동하고 있는 조성림(45회) 시인의 여덟 번째 시집 『멧새가 와서 사랑처럼 울었다』가 달아실시선 55권으로 나왔다.
수학 교사로 40년 동안 학생들을 가르쳤고 홍천여자중학교 교장을 끝으로 정년퇴직한 조성림 시인의 현재 공식 직함은 춘천시 사북면 지내2리 3반장이다. 조성림 시인을 일러 최돈선 시인이 “시 쓰는 반장님”이라 부르는 까닭이다. 최돈선 시인은 또한 언젠가 조성림 시인과 그의 시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다.
“조성림 시인을 만나면 누구나 아름다워진다. 바람 같은 미소와 잔잔한 말씨를 어느 결엔가 닮게 된다. 손가락 끝으로 그의 시를 훑어 내리면 드르릉 소리가 나듯 아름답다. 그의 시는 소금꽃처럼 짜고 눈부시다.”
이번 시집의 표4 글을 쓴 한승태(59회) 시인은 이렇게 얘기한다.
“(조성림) 시인은 오랜 세월 수학을 가르친 선생이었다. 「호숫가 학교」라는 시부터 그의 팬이었는데 학생에게도 내게도 두고두고 즐길 별빛이었다. 별은 詩고 詩는 잘 익은 감이며, 그것이 뿜어내는 빛을 이웃과 나누는 것으로 그는 행복하다. 「천개의 별」이나 「부추꽃」 「굴참나무」 「보자기」 「심사평」 「네팔 여자」 「죽방멸치」는 고스란히 조성림을 보여준다. 그는 붉은 감을 품고 이웃과 나누려다 마침내 감빛 시가 되었다. 마음 다쳐 외롭고 분할 때에는 그를 만나면 위로가 되었다. 그의 눈동자가 뿜어내는 감빛에 분노는 금방 녹아버리기 때문이다. ‘장차 시인이 되어서도 / 시인보다도 시의 따뜻한 마음을 / 소유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심사평」)는 심사평대로 평생 따뜻한 마음을 견지한 시인, 삶이 그대로 시가 되는 것도 어렵고 시를 살아내기는 더 어렵지만, 그렇다 한들 그들 모두가 행복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그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시집의 발문을 쓴 김창균 시인은 이번 시집을 한마디로 “장소 너머, 사랑 그리고 풍화”라 정의하며 이렇게 얘기하고 있다. 간략한다.
“이 시대 예술의 대부분은 자본의 논리나 어떠한 시대적 경향 및 시류에 따라 생산되거나 소비된다. 그러나 이러한 경향에서 자유로운 사람 중 하나가 조성림이다. 과도하게 인위적이지 않고 시류나 경향에 편승하지 않는 시인! 그는 몇 년 전 교직 생활을 마치고 교외에 소박하고 아담한 집필실을 마련하여 집과 작업실을 오가며 시 쓰기에 전념하고 있다.
작년 산골 산방에
매화 두 그루를 모셔 왔는데
올 햇봄엔
햇살처럼 매화꽃이 터져
몇몇 시인과 화백을 모셨다
시인은 청매화꽃을 처음 보았다 했으나,
사실은 매실을 보았으니
매화꽃을 놓친 듯했다
꽃들이 사람을 부르니
더욱 귀한 자리 아닌가
사람도 꽃잎처럼
잠시라도
술잔에 꽃잎 띄워
한 수씩 읊고 갔으니
옛날의 풍류가 되살아오고
꽃잎이 창문에 어리어
그윽한 향기의 시간에 다다랐다
― 「매화 시회」 전문
매화가 핀 산방에 시인과 화가를 초대하여 술잔을 기울이고 시를 얘기하며 취하는 시인! 자신을 꽃잎처럼 술잔에 띄워 친구에게 권하는 풍류객! 이렇듯 그는 늘 넉넉하게 사람을 모시거나 시를 모실 줄 아는 시인이다. 이 글을 쓰는 나 또한 그 눈앞에 선한 풍경에 동참하고 싶은 마음을 감출 수 없다.”
늙는다는 것이 아름답다는 것을 보았는가
수십억 년의 늙음이
마치 무사의 머리 같다는 바위에
바다의 파도가 하루도 쉬지 않고
새기고 새긴 세월의 주름이
저토록 빛나는 것을 보았는가
― 「백령도 두무진」 부분
“늙음의 아름다움을 아는 시인, 빛나는 주름을 볼 줄 아는 시인, 이렇게 깊고 세심한 눈과 고양된 정신을 가진 시인을 만난다는 것은 참으로 그윽한 삶의 즐거움을 얻는 것이리라. (…중략…) 늙음은 무엇인가를 완성하기 위한 시작인 것이다. 그러므로 낡고 늙어가는 것은 부정할 현상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긍정해야 할 현상이다. 이제 시인을 포함한 이 땅의 나이 들어가는 예술가들은 아름답게 풍화되어야 할 때이다. 아니 아름답게 무엇인가를 시작해야 할 때이다. 우리,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아름답게 풍화되어가며 둥글게 사랑할 수 있길 이 시집을 읽으며 서로에게 빌어주자. 시인의 앞날에 지극한 사랑과 시가 깃들길 기원한다.”
40년 학생들을 가르쳤으니 이제 조성림 시인은 남은 40년(백세시대 아니던가)은 오로지 오롯이 시를 살고자 하는 사람이다. 시를 모시고자 하는 사람이다. 그는 발길이 닿는 모든 곳, 눈길이 닿는 모든 것을 이제 시로 모실 작정이다. 아예 시를 살아낼 작정이다. 이번 시집 『멧새가 와서 사랑처럼 울었다』는 그러니까 조성림 시인의 일종의 자기 다짐인 셈이겠다.
■ 조성림 시인 프로필
1955년 강원도 춘천 출생. 2001년 『문학세계』로 등단. 시집 『지상의 편지』, 『세월 정류장』, 『천안행』, 『겨울노래』, 『눈보라 속을 걸어가는 악기』, 『붉은 가슴』, 『그늘의 기원』. 시선집 『낙타를 타고 소금 바다를 건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