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5일 진리를 따라
진리는 바람 같다. 자유롭게 이곳저곳으로 날아다닌다. 고대에는 바람이 어디에서 와 어디로 불어가는 줄 몰랐지만, 지금은 안다. 바람은 제 멋대로가 아니라 정해진 곳으로, 자연의 법칙에 따라 불어간다. 그러고 보면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요한 8,32)라는 예수님 말씀은 창조주 하느님 뜻에 자신을 맞추고 순종할 때 진정으로 자유롭다는 뜻이겠다.
바람을 상자에 가둘 수 없는 거처럼 진리도 사람의 작은 머리와 가슴으로 다 이해할 수 없다. 이해한 거 같으면 그 이상이다. 언제나 그렇다. 진리와 완전히 하나가 될 때까지 이 숨바꼭질 같은 여행은 계속될 거다. 한 형제가 하느님은 장난꾸러기 같다고 했다. 이것 같으면 그게 아니고, 여기인가 싶으면 거기가 아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이 말한 거처럼 내가 그것을 다 이해했다면 그 존재는 하느님이 아니다. 하느님은 이해가 아니라 순종과 사랑의 대상이다.
건물에 아주 작은 틈만 있어도 물이 새들어와 곤란해지는 거처럼 바람도 마찬가지다. 작은 틈만 있으면 바람이 들어와 방 안 공기를 바꾸어 놓는다. 문밖에서 서성거리는 예수님처럼 진리는 내 주변에 늘 있으면서 내 안으로 들어와 내 마음을 차지하려고 한다. “그러므로 열성을 다하고 회개하여라. 보라, 내가 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목소리를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의 집에 들어가 그와 함께 먹고 그 사람도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묵시 3,19-20)
진리는 갇혀 있을 수 없다. 대사제가 사도들을 공영 감옥에 단단히 가두었어도 그들은 그 감옥에서 나와 성전에서 계속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탈옥해서 도망친 게 아니다. 그리고 그들이 탈옥한 게 아니라 주님의 천사가 밤에 그들을 감옥에서 데려내 왔다.(사도 5,19) 아무런 항법장치도 없이 저 멀리 수천 킬로 떨어진 곳으로 날아가는 철새들의 무리가 신비롭지만, 정작 그들은 그런 나를 두고 웃을 거 같다. 그저 열심히 날갯짓만 하면 그곳에 다다르게 돼 있다고 내게 말할 거 같다. 내가 지금 묵상하고 기도하고 실천하는 이 모든 게 진리이고 진리와 하나 되는 길, 완전히 자유로워지는 길이다. 잘하고 못하고는 중요하지 않다. 성공하지 못해도 괜찮다. 진리라는 바람이 나를 이끌어가게 하겠다고 결심하고, 그 결심과 실천으로 하느님이 기뻐하시기를 바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죄인인 우리는 그 이상 할 수 없을 거다.
예수님, 하느님이 저희를 너무 사랑하셔서 주님을 보내주셨음을 압니다. 저희를 심판하고 벌주시려는 게 아니라 구원하시려고 그러시는 줄 믿습니다. 제가 잘한 게 뭐 있다고 무슨 보상을 바라겠습니까? 주님 덕분에 감히 하느님 앞에 서는 상상을 하며 지냅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이 이콘으로 무서운 하느님은 없어지고 친구 같고 엄마 같은 하느님이 제게 다가오십니다. 아멘.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