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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절 주일설교. 복음의 시작이라 (마가복음 1장 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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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 22장 21절은 어떻게 끝날까요? 라고 질문 하면 대부분이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라는 소위, ‘마라나타(Our Lord come)’라는 구절을 대답합니다. 이 구절은 22장 20절 말씀 이구요, 마지막 절인 21절은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이라고 끝을 맺습니다.
22장 22절, “2222-둘둘둘둘” 이렇게 짝을 맞추고 끝났으면 좋겠는데, 21절로 끝나는 것을 두고 제가 언젠가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그날이 22절이 채워지는 날이라고, 그래서 한 구절을 남겨두었다고 제 마음대로 해석해서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실상, 성경의 절을 나눈 것도 사람들이 편리하기 위해서 나누어 놓은 것이라서, 성경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절에 대한 큰 의미는 없습니다. 다만 예수님은 반드시 세상의 심판자로 이 땅에 오신다는 것을 마지막 절에 담아서 생각하시면 나름대로 좋은 유익한 묵상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성경은 마지막 절은 이렇게 끝나는데, 처음 시작하는 창세기 1장 1절은 말씀은 무엇입니까?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 하시니라”(창 1:1) 아멘. 이 구절을 모르시는 분은 없으실 겁니다. 왜 제가 요한 계시록과 창세기를 말씀 드린 것이냐 하면, 모든 것에는 시작과 끝이 있다는 것을 말씀 드리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스스로에 대해서 말씀 하시기를,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계 22:13)고 하셨습니다. 짧게는 한 인간의 태어남과 죽음에서부터, 길게는 세상이 창조와 멸망(심판)을 주관 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시라는 것이 성경이 증언하는 진리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다 믿고 있습니다.
오늘 마가복음 1장 1절에 “시작”(헬, 아르케)이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이 단어는 창세기 1장 1절의 “태초에”(히–베레쉬트, 70인역-아르케)라는 말과 같은 단어입니다. 요한복음 1장 1절은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라고 시작하고, 요한 일서 1장 1절에서는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이라고 시작하는데, 이 두 곳에서 “태초”라고 번역된 단어 역시, 마가복음 1장 1절의 “시작”이라는 단어와 같은 단어입니다. 그렇다면, 마가복음에서 “시작”이라고 선언한 이 사건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천지창조의 능력으로, 상상하지 못하는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는 광대한 선언의 말씀입니다.
이러한 엄청난 새로운 시작의 중심에 “복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복음의 주인공인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기 예수로 이 땅에 오신 시간부터 이 위대한 여정이 시작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복음이 시작된 새로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죄로 인해 심판 받고 영원한 형벌을 받아야 하는 소망 없는 옛 시대가 아닌, 죄 사함과 구원의 은혜를 받아 천국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는 그리스도의 시대, 구원자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대림절은 교회력으로 한 해가 시작되는 시점입니다. 대림절은 복음의 주인공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간절하게 고대하며 성탄절 까지 4주 동안 기도하며 경건하게 지내는 절기입니다. 지금까지도 열심히 살아오셨지만, 오늘 대림절 첫 날부터 내 자신도 새로운 각오와 다짐으로 다시 시작한다는 출발점이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이 오시기를 간절하게 기다리는 가운데, 육체가 강건하여 지고, 의욕이 살아나고, 기쁨과 평안이 우리 안에 새롭게 채워지는, 새 창조의 역사, 새 시작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축복하고, 축원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복음의 시작을 알리는 첫 번째 인물은 세례 요한 이었습니다. 성경에서 무언가 처음 시작하는 사람은 매우 특별한 사람입니다. 인류의 조상 아담도,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이스라엘을 첫 번째 지도자 모세도, 하나님 나라의 왕가의 기틀을 세운 다윗도, 신약의 첫 순교자 빌립 집사도, 이방인을 위해 택함을 받은 사도 바울도, 모두 다 성경의대표적인 위인들입니다. 세례 요한의 아버지는 제사장인 사가랴 였고, 어머니는 엘리사벳 이었는데, 엘리사벳은 예수님의 어머니인 마리아와는 사촌(외사촌) 지간의 친척인 것으로 추측을 합니다. 요한은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출생 하였는데, 잉태하기 전에 천사가가 사가랴 제사장에게 나타나 요한이 출생할 것을 이렇게 예고합니다.
“13.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15. ~그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독한 술을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16.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그들의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라 17. 그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먼저 와서~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준비하리라” 아멘.
오늘 말씀 2~3절에 나오는 것과 같이, 이미 800여 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가 “주의 길을 예비하는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을 것”(사 40:3)임을 예언 했는데, 그 인물이 세례 요한이라는 것을 천사가 확인해 주고 있습니다. 천사의 계시대로 세례 요한은 광야에서 먹고 자면서 사람들에게 말씀을 외치고, 세례를 주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나중에 예수님께서도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것이 “이사람(요한)에 대한 말씀 이니라”(마 11:10)라고 확인해 주셨고, 말라기에서(말 4:4-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예언한 것도,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마 11:14)라고도 확실하게 증언해 주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이 요한의 인물을 평가 하시면서,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마 11:11)라고 하셨습니다. 어마 어마한 칭찬이죠. 아니 최고의 극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렇게 요한은 참으로 특별한 인물이었습니다. 경건한 신앙의 가정에서, 천사의 수태고지를 받고, 모태로부터 성령 충만함을 받아, 성경에 예언대로 “주의 길을 예비하는”선지자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젊은 나이에 순교를 당하는 짧은 인생을 살았지만, 그는 예수님으로부터 대단한 평가를 받은 위대한 신앙인으로 기록 되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많은 말씀을 남긴 인물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가 남긴 말씀들은 우리가 평생 지녀야 할 믿음의 말씀들입니다. 세례 요한이 남긴 말씀들을 바탕으로 우리 00교회 모든 성도가 대림절을 보내는 가운데 은혜의 말씀으로 잘 간직하시고, 이 말씀대로 실천하는데 최선을 다하며 기다림의 시간을 잘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첫째로 세례 요한은, “죄 사함을 받는 회개함으로 나아로라”고 외쳤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데이트 약속을 하고 만남을 가지기전에 해야 할 일들이 있습니다. 몸도 깨끗하게 씻고, 맘에 드는 옷도 입고, 머리도 잘 손질하고, 향수도 뿌려는 등 몸 단장을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사람이 사람을 만날 때는 이렇게 준비 하지만,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날 때는 가장 중요한 준비가 “회개”하는 일입니다. 죄를 몸에 담고서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날 수가 없습니다. 죄를 진정으로 회개함이 없고서는 하나님과의 만남 자체가 성사 되지 않습니다. 회대하지 않으면 약속을 잡아 주시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아무리 치장하고 나가도 그 자리에 하나님은 나오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사전 작업은 회개하며 기도하는 일 이어야 합니다. 세례요한이 광야에서 “회개하라! 죄 사함을 받으러 하나님께 나아오라” 라고 외치자 많은 사람이 그 소리를 듣고 나와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반드시 그 사람을 물로 씻어 주듯 깨끗하게 하여 주십니다. 또한 씻김을 받은 자에게는 영광스러운 만남의 기회를 허락 하십니다. 대림절은 기다리는 시간이고, 기다림 뒤에는 성탄절에 예수님을 만나는 것으로 아름답게 종결되어야 합니다. 만남이 없는 기다림은 헛수고일 뿐입니다
얼마 전에 끝난 “동백꽃 필 무렵” 이라는 드라마가 있죠. 저는 고작 몇 십분 본 것이 전부이기에 제목과 주인공 정도만 아는 정도입니다. ‘동백’이 주인공 이름이라는 것도 함 찬 후에야 알았습니다. 그런데 종영 후에 드라마에 대한 후기가 있어 좀 읽어 보았습니다. 스토리의 전반적인 내용과 주옥같은 대사들, 그리고 여러 가지 댓글들을 읽어 보다가, 드라마가 참 인간미가 넘치는, 그야말로 사람 냄새 풀풀 나는, 찐한 사랑 냄새가 훈훈한 이야기였음을 보았습니다. 사람이 느끼는 감정은 비슷하기에 괜히 시청률이 좋았던 것이 아니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과 우리의 만남 속에서는 드라마가 보여준 훈훈한 사랑의 열기보다 수십, 수백 배의 뜨거운 열기가 피어오르게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찾아오십니다. 그 찾아오시는 분이 무려 창조주이시며 전지전능하시며 유일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신께서 직접 우리를 찾아오시는 그날, 그리고 감격적인 만남이 이루어지는 그 날이, 우리에게는 꽃이 피는 행복이 시간이 되는 것입니다.
그 뜨거운 사랑과 행복감을 느끼기 위해서는, 진정으로 회개해야 합니다. 2천 년 전에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회개하라고 외쳤던 세례 요한의 소리를 기억하시고, 이 번 대림절 기간에는 하루에 한 번씩 잠들기 전에 꼭 회개의 기도를 드리십시오. 온 마음을 집중하여 기도하시면서 생각나는 모든 잘못을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시기를 바랍니다. 00교회 모든 성도가 죄 사함을 받는 회개에 열심을 내심으로 대림절 기간을 보내셔서, 꽃이 활짝 피는 것과 같은 행복하고, 기쁜 성탄절을 맞이하실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둘째로 세례 요한은, “자족하며, 절제하고, 인내하는” 모범을 보여 주었습니다.
6절을 보시면,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더라”라고 하였습니다. 6절은 요한의 의복과 먹거리를 표현 한 것이지만, 실상은 죽음을 각오한 삶과의 투쟁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광야에서 생활하며 살아남는 것은 하루하루가 기적입니다. 생존에 필요한 기본적인 물, 음식, 옷, 잠자리,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었습니다. 유대 광야는 연간 강수량이 100~150ml 정도로 아주 적었습니다. 식수로 쓸 수 있는 물이 극히 부족했습니다. 일교차가 심해서 낮에는 40도 이상의 온도로 올라갔다가 밤이 되면 영하로 떨어지는 극심한 추위 때문에, 사람은커녕 동, 식물들도 살아남기 어려운 극한의 환경입니다.
세례요한이 이런 척박한 광야에서 지낼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요한은 광야에서 생명을 오직 하나님께 맡기고, 자신의 목숨을 돌보는 것보다,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을 다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무조건 순종하는 세례 요한을 보시고,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도 굶어 죽지 않고, 얼어 죽지 않고, 사나운 동물에게 잡아먹히지 않도록 보호해 주셨습니다. 세례 요한이 받은 가장 큰 복중의 복은 매일 같이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비록 삶은 누구보다도 고달팠지만, 그 마음은 누구보다고 평안하고 소망으로 가득했습니다.
우리는 대림절을 보내면서 세례 요한의 광야의 모습을 보고 배워야 합니다. 그가 행하였던 순종의 모습을 보면서 너무 잘 먹고, 너무 따뜻한 집에서, 너무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지내는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가 가졌던 최소한의 생활 도구와 먹거리들을 기억하면서, 우리 자신들이 적어도 예수님을 기다리는 대림절 기간만이라도, 자족하며, 절제하고, 인내하는 모습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연말에 여러 가지 모임, 행사, 그리고 만남 들이 있을 수밖에 없지만, 스스로 절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먹거리, 즐길 거리가 풍성하지만 자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짜증나고, 잘 안 풀리고, 부딪치는 일이 일어도 인내하고 참아낼 수 있어야 합니다.
생명까지 걸고 광야에서 홀로 지내면서 하나님만 바라며, 하나님 만나는 것을 가장 큰 기쁨으로 여겼던 세례 요한의 발걸음을 따라, 00교회의 모든 성도들이 오직 예수님께 나의 언행심사를 맡기고, 만남의 영광을 누리는 일에 초점을 맞추고, 절제하며, 자족하며, 인내하며 대림절 기간을 잘 견뎌내실 수 잇기를 축복합니다.
셋째로 세례 요한은, “성령 세례를 받으라” 고 알려 주었습니다.
8절에서 세례 요한은 자신은 물로 세례를 주지만, 내 뒤에 오시는 분(예수님)은 성령으로 세례를 베풀어 주신다고 선포했습니다. 성령 세례를 받는 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① 성령이 알게 하심으로 기록되고, 선포 되어지는 말씀들이 진리임이 깨달아지고, ② 성령이 감동 주심으로 내 안에 믿음이 생성이 되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으로 예수님이 나의 구원자이심을 고백하고, ③ 성령이 내 안에 오셨음을 확신하여 성령으로 거듭나는(중생) 경험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현상들은 일시에 일어나며, 나의 자의적인 뜻이 아닌 강권적인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이루어집니다. 성령이 오시는 그 순간에 죄 사함과 구원의 은혜가 선물로 주어집니다. 이러한 강력한 성령 체험을 한 사람은, 내 안에 거룩한 성령이 계심이 확인이 되고, 검증 되어가는 여러 가지 신앙 체험 들을 통해서, 한 단계 한 단계 믿음이 성장해 나가게 됩니다.
예수님 믿고 그리스도인이 되어, 교회 다니며 신앙생활 하는 모든 과정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령이 아니고서는 믿음과 관련한 어떤 감동이나 깨우침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배드릴 때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라고 하는 이유는, 내가 예배자 이가는 하지만, 예배를 잘 드리고 말씀을 잘 듣고 알게 하시는 것은 성령이 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곧 예배의 주체가 내가 아닌 성령이 주도하는 예배가 되어야 진실로 성공하는 예배를 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이미 이러한 사실을 다 알고 있고, 성령으로 예배하고, 성령으로 살아가고, 성령으로 변화되어 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 당시에 이스라엘 나라는 거의 빼앗긴 수준으로 로마에 점령당하여 무력에 의한 강압적인 통치를 받고 있었고, 각종 세금을 거두어 가는 착취 때문에 삶의 형편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나라의 지도자나, 종교 지도자들은 백성들의 고달픔은 생각하지 않고 자신들의 부와 명예를 지키느라 어려운 처지의 백성들 전혀 돌보지 않았습니다. 요한이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는 그 분을 언급한 것은 고달프고 지친 백서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성령이 오심을 사모하고, 확신하고, 기대하는 믿음을 주기 위함 이었습니다. 성령이 오시기만 하면, 나라의 문제, 배고픔의 문제, 죄의 문제, 차별의 문제 등, 모든 문제들이 일시에 해결 받을 수 있음을 심어 주었습니다. 절망 가운데 희망을 주는 것이 성령의 역사하는 능력입니다.
실제로 성령이 우리 안에 충만하게 오시면 상처 난 마음이 위로 받을 수 있고, 얽히고 풀기 힘든 인생의 모든 문제들을 상담 받을 수 있고,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을 얻을 수 있고, 낙심과 포기를 물리치고 삶의 새 소망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성령이 이렇게 역사하신 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믿는 자에게, 기다리는 자에게, 사모하는 자에게 성령은 지체 없이 찾아오시는 은혜를 허락하여 주십니다. 무엇보다도 강력한 성령의 능력은, 우리가 하나님 앞으로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는 만남의 통로로 인도해 가시다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성령의 세례를 받으라, 외쳤던 것을 믿고, 희망을 가지고 끝까지 기다렸던 사람들은 이후에 성령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게 되었습니다.
성령이 오심을 기대하는 것은 희망과 소망을 새롭게 하는 긍정의 노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00교회 모든 성도들은 대림절 한 주 기간 동안, 내 안에 오직 거룩한 성령이 충만하게 임하여 주시기를 간절기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정해진 시간 안에, 나와 가족과, 교회 모든 성도들에게 성령이 충만하게 임하신다는 굳은 믿음과 소망 가운데, 대림절 기간을 거룩하고 경건하게 보내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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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에게 회개 할 수 있는 마음과, 절제 할 수 있는 마음과, 성령을 사모하는 소망의 마음을 채워 주시니 감사합니다. 대림절 기간 동안 거룩과 경건함으로, 간절히 기도하며 복음을 맞이할 준비를 잘 해 나가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참소 망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첫댓글 은혜의 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