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아브라함의 기도 --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따르는 기도
창세기 12장 1-3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창세 12,1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네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너에게 보여 줄 땅으로 가거라.
2 나는 너를 큰 민족이 되게 하고, 너에게 복을 내리며, 너의 이름을 떨치게 하겠다. 그리하여 너는 복이 될 것이다.
3 너에게 축복하는 이들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를 내리겠다. 세상의 모든 종족들이 너를 통하여 복을 받을 것이다.”
아브람의 자세는 그 엄청난 일에 그저 ’분부하신 대로 길을 떠났다’고 합니다. 이것이 아브람이 보인 기도의 첫 번째 모습입니다. 이다음에 이어지는 내용에서 아브람은 하느님의 친구로 나옵니다. 하느님께서 겸손한 아브람의 모습을 보시고 그렇게 인정하신 것입니다.
3.3 기도의 올바른 자세 -- 필리피 서간의 바오로의 기도 (2,6-11)
이 부분은 인류의 구원을 위해서 인간으로 오신 그리스도 예수를 찬미하는 노래입니다.
바오로 사도가 필립비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입니다.
필리 2,6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7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여느 사람처럼 나타나
8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9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도 그분을 드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분께 주셨습니다.
10 그리하여 예수님의 이름 앞에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에 있는 자들이 다 무릎을 꿇고
11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라고 모두 고백하며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게 하셨습니다.
이 세상에 사는 사람 그 누구도 중요하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가 스스로를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면서 어떻게 그 가치를 보여줄 수 있는가! 하는 것에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바오로 사도가 믿음으로 고백하는 내용은 하느님이 인간으로 오셔서 당신을 죽음에 내어놓기까지 순종하셨다는 것이고, 그 모습을 통하여 모든 이의 존경을 받고 찬양을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 세상을 지내며 높은 사람이 되고자 합니다. 나쁜 것은 아니죠.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 방법은 우리가 어떤 것을 선택하는가에 따라서 선악의 가치도 달라질 것입니다. 자신만을 위해서, 자신의 안녕만을 위해서 움직이는 것이라면 ’악하다고 할 것도 없겠지만 선하다고 봐줄 일도 없을 것’입니다.
3.4 하느님의 사랑은 어떠한가? -- 요나의 이야기
하느님은 누구를 사랑하시는가? 어떤 사람을 사랑하시는가? 우리가 질문하고 응답을 듣고 싶어 하는 내용입니다. 구약성서 요나서를 보면, 하느님은 요나 예언자를 통해서 ’
‘이스라엘 백성이 아닌 이방인들도 사랑하신다’는 말씀을 남기십니다.
니느웨라고 하는 도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치욕을 안겨준 아시리아의 수도입니다. 거기에 살고 있던 사람들과 하느님의 피조물에 대해서 하느님은 남다른 애정을 갖고 계십니다. 또한 징벌의 말씀을 통해서 하느님이 보이시는 것은 ‘하느님의 뜻을 찾고자 하는 사람이면,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고자 하는 사람이면 그 누구도 하느님 사랑의 대상에서 제외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요나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전하러 가야 하지만, 자신의 생각을 앞세워 다른 곳으로 도망갑니다. 그랬다가 커다란 물고기(=고래?)의 뱃속에서 삼주야를 지낸 다음 처음의 그 도시로 다시 파견됩니다. 그리고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죠. 그러나 그에게는 여전히 왜곡된 심성이 남아 있었습니다. 선포한 다음, 니느웨 사람들이 구원의 길로 들어서자 뾰루퉁해져서 하느님께 항의합니다. 이렇게 자비를 보이실 하느님이 무엇 때문에 헛걸음하는 고생을 시켰냐는 것이죠. 그런 그에게 커다란 아주까리가 자라서 하루를 시원하게 지내게 해줍니다. 또 한번 탓하는 그에게 하느님은 선언하십니다. "이 니느웨에는 앞뒤를 가리지 못하는 어린이만 해도 십이만이나 되고 가축도 많이 있다. 내가 어찌 이 큰 도시를 아끼지 않겠느냐?"(요나 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