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내 마음은 저 붉고 둥근 해 넘어가기 직전
아직 빛이 남아 있는 검푸른 하늘 한 조각
돌돌 말아 속에 간직하고 싶다.
저 빛마저 사라지면
지난해보다 전깃불 두 배로 켜서 밝히는
덜 어둠으로 더 어둠을 밝히는 밤이 오리라.
허나 조금 전 신문에서 이름 글자 하나 잘못 읽고
이름 좀 제대로 달고 다녀! 내뱉은
내 속의 어둠이 더 캄캄하다.
방금 발 헛디뎌 휘청거린 저 보도블록 파인 자리도
내 속보다는 덜 파였다.'
47년 만이라는 추위를 헤치며
카페인 파낸 커피 사러 슈퍼에 가면서
누군가 촌스럽게 투덜댔다.
이번엔 파인 보도블록을 슬쩍 피하며
누군가 다독였다.
'마음보다는 그래도 눈을 믿게'
2011년 1월 16일, 일, 마냥 맑음.
서울 최저기온 영하 17.8도, 낮 영하 10도
눈 속을 한없이 걷는 것처럼 오전을 보냄.
차 등에 덮인 눈 쓸어주려 나가보니
연고처럼 살이 달라붙는 추위.
베란다 화분들에게 거실 문 좀 더 열어주고
가벼운 추위 속에서 가볍게 책을 읽음. 문득
나도 모르게 거실 마룻바닥에 깔리는
건너편 동과 동 사이 나무들의 묽은 그림자와
베란다 난들의 짙은 실루엣이 만나며 실시간으로 만드는
긴 네모꼴 묵화.
겨울 해가 건너편 동 뒤로 넘어가며 거실 빛을 거두고
조금 후 동과 동 사이를 건너가며 깔리기 시작해서
십여 분 후에는 언제 그런 게 있었냐는 듯 사라지는
그림자 무늬가 제대로 펼쳐지는 건
겨울 중에도 지금 바로 이때,
마룻바닥 한가운데에 잠시 이불처럼 덮였다 벗겨지는 묵화.
그 속에 들어가 몸을 눕혀본다.
내 몸의 넓이와 길이에 얼추 맞는다.
이곳에서 스물몇 겨울을 살아내면서
묵화 이불속에 들어온 건 이게 처음이지?
느낌과 상관없이 '따스하다'고 속삭인다.
벌레처럼 꿈틀거려본다.
지금까지 바른 느낌과 따스한 느낌 가운데 하나를 고르라면
늘 바른 느낌이 윗길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지만
이 허전한 따스함이 지금
식어가는 마음의 실핏줄들을 다시 뎁혀주는구나
집에서보다는
길에서 가고 싶다.
톨스토이처럼 한겨울 오후 여든두 살 몸에 배낭 메고
양편에 침엽수들 눈을 쓰고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눈
혼자 터벅터벅 걸어 기차역에 나가겠다가 아니라
마지막 쑥부쟁이 얼굴 몇 남은 길섶,
아치형으로 허리 휘어 흐르는 강물
가을이 아무리 깊어도
흘러가지 않고 남아 있는 뼈대
그 앞에 멎어 있는 어슬어슬 세상.
어슬어슬, 아 이게 시간의 속마음!
예수도 미륵도 매운탕집도 없는 시간 속을
캄캄해질 때까지 마냥 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