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오늘은 동티모르에서 지속 가능한 농업 시스템을 만드는 퍼마틸(PERMATIL)을 창립하여 2023년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한 유제니오 레모스(Eugenio Lemos) 님을 만나기로 한 날입니다.
스님은 숙소에서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5시 30분에 아침 식사를 하고 브리즈번 공항으로 향했습니다.
브리즈번 정토회 회원들과 해외지부 지부장, 호주유럽지회장이 공항까지 스님을 마중해 주었습니다.
“모두 최선을 다한 덕분에 호주에서 강연을 잘 마쳤습니다. 덕분에 잘 머물다 갑니다. 감사합니다. 저는 동티모르에 갔다가 미 서부 지역으로 가겠습니다.”
“네, 스님 내년에도 꼭 다시 와주십시오.”
작별 인사를 하고 출국 수속을 한 후 탑승구로 향했습니다.
오전 9시 5분에 브리즈번 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오후 1시 20분에 다윈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다시 동티모르 딜리(Dili)로 향하는 비행기에 탑승했습니다. 곧 비취색 바다 너머 동티모르 섬이 보였습니다. 비행기는 1시간 15분을 비행해 현지 시각으로 오후 3시 10분에 딜리공항에 도착했습니다.
딜리 공항은 작고 아담했습니다. 기온이 뜨겁긴 했지만 아직 건기여서 많이 습하지는 않았습니다.
도착 비자를 받고 공항 밖으로 나오자 막사이사이상 수상자인 유제니오 레모스(Eugenio Lemos) 님이 반갑게 환영을 해주었습니다. 시골 농부답게 아주 편안한 모습으로 스님을 반겨 주었습니다.
“Welcome to Timor-Leste”
(동티모르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공항을 나오자 수도 딜리의 타시롤루 공원이 보였습니다. 어제 동티모르에 교황이 방문하여 전체 인구의 절반가량인 60만여 명이 공원에 모였다고 합니다. 인구의 97퍼센트 이상이 가톨릭 신자인 동티모르는 인구 대비 가톨릭 비율이 바티칸 시국에 이어 세계에서 둘째로 높은 나라입니다. 많은 인원이 모였지만 큰 사고 없이 무사히 행사를 마쳤다고 합니다.
“행사 준비하느라 바빴을 텐데 제가 오는 게 부담이 된 것 같아 죄송합니다. 제가 몇 달 전에 계획을 잡을 때 교황이 오실 줄은 전혀 예상을 못 했어요.”
“아닙니다. 우연이었지만 정말 좋은 인연이라고 생각합니다.”
공항에서 숙소까지 운전도 레모스 님이 직접 해주었습니다.
“매일 먼 거리를 이동하시는데 무척 피곤하실 것 같습니다.”
“아니요. 저는 괜찮습니다. 비행기가 더 피곤할 겁니다.”(웃음)
차를 타고 이동하며 레모스 님이 동티모르에서 퍼마틸(PERMATIL)이라는 단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동티모르는 산이 많은 산악 지대입니다. 지금은 건기입니다. 저희 단체인 퍼마틸(PERMATIL)은 동티모르 전역에서 700개의 커뮤니티를 형성하여 활동하고 있습니다. 주로 젊은 사람들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10월에는 전국에서 청소년을 위한 퍼마틸 캠프를 진행할 계획입니다. 물과 자원 관리, 농업, 수산 양식, 그리고 산림농업 분야에 대한 학습과 재미있는 활동을 합니다.”
스님도 몇 가지 질문을 했습니다.
“동티모르에서도 젊은이들이 돈을 벌기 위해 호주로 많이 가나요?”
“예, 그렇습니다. 그 문제가 국가에서 걱정하는 중요한 이슈입니다.”
“제가 여기 오기 전에 부탄을 방문했는데 부탄도 젊은이들이 돈을 벌기 위해 호주로 다 가버려서 시골에 가면 노인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티모르는 인구의 70퍼센트 이상이 35세 이하의 청년들이라는 점이 행운입니다. 그래서 퍼마틸(PERMATIL) 프로그램도 젊은이들에게 초점을 맞추어 진행하고 있습니다. 퍼마틸(PERMATIL)의 첫 번째 사업이 수원지 복원 사업입니다. 물을 저장하고 지하수를 충전하며 샘터를 재생시키기 위해 연못을 곳곳에 만들고 있습니다. 두 번째 사업은 학교 정원 만들기 사업입니다. 학생들이 야채밭을 가꾸고 음식물 쓰레기 처리, 자연적 해충 방제, 종자 선택 등의 기술을 배우는 것인데, 공립 초등학교에서 실행되고 있습니다. 모든 학교에 밭을 만들어서 살아 있는 학습장으로 만들어 가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동티모르의 많은 청년들이 유럽과 호주로 돈을 벌러 갑니다. 제가 알기로는 2천 명이 넘는 수가 한국에 가서 돈을 벌고 있습니다. 공장에서 일을 하거나, 어선을 타고 고기 잡는 일을 하거나, 주로 노동하는 일을 많이 합니다.
동티모르에서는 물 부족 현상이 매우 큰 사회 문제입니다. 여성과 아이들이 먼 거리를 걷거나 산을 오르락내리락하며 물을 구해 와야 합니다. 그래서 퍼마틸(PERMATIL)에서는 마을 주민들이 수자원을 확보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500개의 샘터를 복원했습니다.”
“농업용수뿐만 아니라 식수도 부족하다는 얘기네요.”
“네, 그렇습니다. 내년 10월에는 전 세계 청년들이 참여하는 퍼마틸 캠프를 개최할 예정입니다. 주제는 ‘물을 심고 커뮤니티를 형성하자’입니다.”
“평지는 물이 부족할 수 있지만 산악 지대에 왜 물이 부족할까요?”
“동티모르는 산악 지대이지만 주민들이 벌목을 많이 해서 샘물이 다 말라 버렸습니다. 특히 기후 변화로 인해 예전보다 강수량이 적어졌습니다. 그 결과 샘터가 점점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제가 생각해 낸 방법은 산에 땅을 파서 물을 가두어 두고 빗물을 최대한 많이 받아두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샘터가 다시 살아나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주민들이 물을 많이 흡수하는 나무들을 많이 심어서 오히려 토양이 나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물을 간직하고 토양을 좋게 하는 나무들을 많이 심는 운동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숙소에 도착했습니다.
퍼마틸(PERMATIL) 사무실 인근에 위치한 작은 모텔이었습니다. 레모스 님이 숙소까지 안내를 해주었습니다.
스님은 이번 방문을 통해 함께 이야기하고 싶은 내용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제가 당신과 대화하고 싶은 주제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기후 위기 시대에 어떻게 환경을 보전할 것인가입니다. 둘째, 어떻게 하면 빈곤을 퇴치할 것인가입니다. 마침 당신이 두 가지 주제에 대한 실험을 모두 하고 있어서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도 어떻게 하면 평화를 가져올 수 있는지 스님의 지혜를 많이 듣고 싶습니다.”
숙소에 짐을 풀고 정비 시간을 가졌습니다.
해가 저물고 저녁 7시에 레모스 님이 다시 숙소를 찾아왔습니다. 어제 교황 방문 행사의 여파로 인근에 모든 식당이 문을 닫았습니다. 그래서 숙소에서 조촐하게 음식을 주문하여 함께 저녁 식사를 하며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환경 보전과 주민 자립을 함께 실현해 나가는 운동
먼저 스님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소개했습니다.
“지난번 막사이사이상 수상식 때 만났지만 그때 충분히 듣지 못했던 이야기를 듣고자 이곳까지 왔습니다. 유제니오 레모스 님의 활동 계획을 듣고 혹시 협력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지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필요하다면 동티모르 전체를 답사해 보는 것도 가능합니다. 현재 저는 부탄의 오지 마을에서 기후 위기 시대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최소한의 소비만 하면서 살아가는 지속 가능한 개발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레모스 님도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소개했습니다.
“제가 하는 일은 마을마다 수원지를 살리는 일입니다. 주민들과 함께 자연적인 방법으로 수원지를 살리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 활동들은 근본적으로 자연을 보존하기 위함입니다. 먼저 샘의 이름부터 마을의 어떤 가족들과 전통적으로 연결되어 있는지 알아내어 마을주민과 함께 샘을 되살리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많이 봤습니다. 특히 각자의 마을을 변화시킬 수 있는 동력을 가진 젊은이들과 함께 일하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저는 현재 교육부에서도 활동하고 있는데 학교의 새로운 교과과정을 지난주부터 시작했습니다.”
두 분은 대화를 통해 서로 협력할 수 있는 부분이 무엇인지 금방 찾아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스님은 마을 개발 사업의 기준 8가지를 자세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제가 하는 마을 개발 사업은 주민들이 자립적이고 주체적으로 자신들의 삶을 개척해 나가는 데에 주력을 두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물질적으로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약간의 지원을 해주면서 주민들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스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 적고 싶은 마음입니다.”
“이미 유제니오 레모스 님이 하고 계신 일입니다. 지난 막사이사이상 시상식에서 발표하시는 내용을 듣고 공감대가 형성되어 제가 여기에 오게 된 것입니다.”
“다음에 방문하실 때는 더 많은 부분을 보여드릴 수 있도록 준비하겠습니다. 학교에 텃밭을 만들고 있는 곳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좋은 생각이네요. 제가 어린 시절에는 학교에서 텃밭을 가꿔서 수확한 농작물로 점심 급식을 했습니다. 지금은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텃밭 가꾸는 건 물론이고 청소도 안 시킵니다. 겉으로 보기에 발전한 것처럼 보일지 모르나 아이들에게 자립심을 키워주지 못합니다.”
“2015년에 학교 텃밭 프로그램을 시작했을 때 반대하는 세력이 많았습니다. 부모님도 반대하고 선생님들도 반대했습니다. 시간이 지나 텃밭을 통합 교과 과정으로 합치면서 반대하던 사람들이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텃밭을 이용해서 미술을 가르치거나, 수학의 도형을 가르치는 데 융합시키면서 왜 공부 안 시키냐고 하던 사람들의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현재 250개가 넘는 학교에 텃밭이 있는데, 이런 성과가 있기까지 수없이 워크숍을 통해 설명해야 했습니다. 이제는 여기저기서 오라고 하는 상황입니다.”
“제가 다음에 레모스 님을 부탄에 초대하겠습니다. 그 노하우를 부탄 사람들에게도 전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스님은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 유기농을 새로 개척하면서 배운 점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식량 자급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준 코로나 팬데믹
“정토회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는 대중들은 하루에 2시간씩 농사일을 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바빠도 우리가 끼니를 거르지 않듯이, 설령 시간이 부족하더라도 자연 속에서 자신이 먹을 것을 스스로 경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직업이 무엇이든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아침에 일어나서 먼저 2시간씩 농사 일을 하고 난 뒤 본업을 해야 우리의 생각이 자연으로부터 많이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집집마다 텃밭이 있어야 하고, 학교에도 텃밭이 있어야 하고, 대통령궁에도 텃밭이 있어야 합니다. 많은 농작물을 키울 수는 없더라도 최소한의 채소를 스스로 키워 먹었을 때 인간은 지나친 욕망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습니다.
농사일이 힘든 건 사실입니다. 지난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저는 일체 외출을 안 하고 농사일을 하면서 지냈습니다. 제초제와 농약을 안 쓰는 유기농을 했더니, 풀이 너무 많이 자라서 힘들었습니다.”
“코로나19 때 저와 가족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코로나19를 겪는 동안 부정적인 부분이 많았지만, 긍정적인 부분도 있어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시골에 살고 있는 저희는 도시로 갈 수 없게 되었지만, 물을 보존하고 농사를 지으면서 주변 사람들과 행복하게 지냈습니다. 오히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어려움을 많이 겪었고 도시 밖에 사는 사람들이 살아남았습니다. 농사일을 하지 않는 도시에서는 가게 문이 닫히자 음식을 구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저는 도시 외곽에 살고 있어서 운이 좋았지만, 어머니가 도시에 계셔서 음식을 가져다드리곤 했습니다.”
“제가 코로나19를 겪으면서 배운 점은, 이 세상에 꼭 해야만 하는 일은 없다는 것입니다. 오랜 기간 지속적으로 해온 일들이 코로나19로 인해 멈췄을 때 ‘아, 꼭 안 해도 되는 거구나’, ‘꼭 해야만 하는 일은 없구나’ 하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늘 바쁘던 일상을 멈추고, 시골에 내려가서 3년간 농사일을 했습니다.”
레모스 님은 자신이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전쟁과 배고픔의 아픔을 딛고 환경보전 운동을 하기까지
“제 개인사를 조금 말씀드리자면, 저는 산간 지역에서 4형제 중 둘째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목수 일을 하셨고 어머니는 가사일을 하셨습니다. 형이 일찍이 돌아가셨고, 인도네시아가 동티모르를 침략해 왔을 때 부모님은 저와 두 동생을 데리고 높은 산으로 도망쳤습니다. 1976년에 아버지가 체포당했는데 그 후로 뵙지 못했습니다. 어머니 혼자서 저희 셋을 키우셨는데 이곳저곳으로 이사를 많이 다녔습니다. 북쪽에서 남쪽으로 이동해 가며 살면서, 자연 속에서 사는 방법에 대해 많이 배웠습니다. 자연과 더불어 사는 방법을 모르면 살아남기 힘들었습니다. 제 여동생과 남동생은 너무 어렸기 때문에 숲에서 나는 음식을 잘 소화하지 못했고, 결국 도망 다니다가 죽었습니다. 그래서 현재 저와 어머니만 살아남았습니다. 어머니는 집안일을 도와주는 일거리를 하며 저를 학교에 보내주셨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 정글에 살면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자연에서 나오는 무엇이든 먹으면서 살았습니다. 지붕이 있는 쉴 곳도 따로 없었습니다. 연기가 나면 인도네시아 군인이 쫓아와서 죽임을 당하기 때문에 요리를 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때 사람들이 죽는 모습을 많이 봤습니다. 당시에 제 마음에서 자연이 마치 커다란 슈퍼마켓 같았습니다. 자연 속에서 무엇을 어떻게 먹을 수 있는지 그 원리를 발견하면 뭐든지 먹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딜리(Dili)로 오고 난 후 자연이 사람들로 인해 망가지는 모습을 보게 되었고 매우 슬펐습니다. 제가 자라는 데 도움을 줬던 자연을 보존하는 일에 헌신하고 싶습니다. 제 이야기를 젊은 세대들에게 많이 해주고 싶습니다. 저는 직접 작곡해서 노래로 이 슬픈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특히 교육을 통해 젊은 세대에게 동기부여를 하고 있습니다.”
“유제니오 레모스님에게는 고통의 기억이겠지만, 그 경험은 오늘의 당신이 있게끔 만든 좋은 학습이었습니다. 저 역시 지금의 나를 형성하는 데 있어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이 바로 시골의 자연 속에서 살았던 경험입니다. 왜냐하면 저개발 국가에서 사람들을 도울 때, 제가 어릴 때 자연 속에서 한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유제니오 레모스 님이 자랐던 환경 얘기를 들으니까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더 잘 이해가 됩니다.”
레모스 님은 내일 퍼마틸(PERMATIL)에서 일하는 활동가들을 위해 스님이 많은 이야기를 해주면 좋겠다고 요청했습니다.
“내일 저희 봉사자들과 함께 스님의 이야기도 듣고 싶습니다. 이미 말해두었기 때문에 다들 스님의 말씀을 기대하고 있을 것입니다. 특히 물에 관련된 전쟁과 평화에 대한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물이 평화를 가져오기도 하고 또 전쟁을 가져오기도 하는 것에 대해 스님의 지혜를 듣고 싶습니다.”
스님은 물의 중요성에 대해 간단히 설명한 후 내일을 기약했습니다.
“파키스탄의 인더스강 유역에 가면 과거에 농지였던 지역이 지금은 황무지로 변해있습니다. 왜냐하면 히말라야의 빙하가 많이 녹아 없어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강물의 수위가 낮아지다 보니 수로보다도 강물이 낮아져서 수로가 제 역할을 못 해 일어난 일입니다. 방글라데시는 강 수위가 낮아지니까 거꾸로 바닷물이 강으로 흘러들어오면서 염분으로 인해 농사를 못 짓게 된 상황입니다. 이렇게 물은 곧 생명과 직결됩니다. 폭우나 가뭄과 같은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도 크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기후 위기로 인한 물의 변화가 우리에게 큰 위협이 될 것입니다.
북한에서는 땔감 부족으로 산에 나무가 없어서, 비가 조금만 와도 홍수가 나거나 또 가뭄으로 큰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농산물 생산량이 줄어든 상황에서 미국과의 갈등으로 인해 무역 봉쇄까지 이어져 식량부족 현상이 심해지면서 굶어 죽는 사람이 계속 생겨나는 상황입니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밤 9시가 되었습니다.
“내일은 그냥 준비된 만큼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다음에는 좀 더 많은 시간을 내어서 차근차근 둘러보겠습니다.”
“편안히 주무십시오. 내일 뵙겠습니다.”
내일 일정에 대해 간단하게 공유한 후 대화를 마쳤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퍼머틸 활동가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고 오후에는 물 복원 현장을 답사한 후 저녁에는 레모스 님의 어머님 댁에서 이후 협력 방안에 대해 논의할 예정입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었기 때문에 어제 브리즈번에서 열린 즉문즉설 강연에서 질문자와 스님이 대화를 나눈 내용을 소개하며 글을 마칩니다.
결혼을 두 번 했지만 또 겪는 부부 갈등,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요?
“저는 두 번 결혼했습니다. 처음에 국산품으로 시작했다가 이혼 후에 수입품은 좀 다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외국인과 두 번째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일구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수입품도 11년을 쓰다 보니 민감한 성격들이 보이고 있어요. 국산품에 너무 호되게 당해서 두 번째 결혼 상대자에게는 제 기대치를 아주 낮추었습니다. ‘수입품은 설거지는 해 주는구나’ 하는 마음으로 11년 동안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나이가 들고 힘이 드는지 계속해서 불평을 늘어놓고 있습니다. 그리고 설거지조차 안 하려 듭니다. 아이들이 5살과 7살인데 ‘아이들한테 왜 설거지를 안 시키느냐’ 하고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많이 내려놓고 사는 덕분에 가끔씩 남편의 잔소리를 듣고 있을 때마다 ‘아, 오늘도 이렇게 지랄을 하십니다. 감사합니다’ 하고 생각하며 넘깁니다. 하지만 이렇게 계속 살 수 있을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요?”
“질문자의 사연이 얼마나 복잡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설거지를 안 해주는 정도만으로는 같이 못 살 수준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리고 남편이 자기 아이들한테 잔소리하는 것에 질문자가 관여할 필요도 없습니다.
남편이 5살과 7살 아이들한테 설거지를 시키려는 생각은 아이들의 장래에 좋습니다. 설거지나 방 청소를 어려서부터 배우면 커서 자립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됩니다. 사실 질문자가 그렇게 해야 되는데 질문자는 아이들을 마치 애완용 동물처럼 키우니까 남편이 그렇게 하는 거예요. 많은 사람들이 이런 소소한 문제를 시비해서 같이 못 살겠다는 결론에 도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큰 틀에서 별문제가 없으면 그냥 내 주장을 내려놓고 사는 것이 좋습니다.
집에 있는 돈을 주식이나 코인에 투자해서 다 날려버렸다, 마약을 한다, 매일 술을 먹고 행패를 피운다, 다른 여자와 바람이 나서 돌아다닌다, 이런 경우에 비하면 질문자의 남편은 그리 큰 문제가 있는 게 아니에요. 남의 눈의 티끌을 보기 시작하면 끝이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자기 눈의 대들보는 못 보고, 남의 눈의 티끌은 본다’ 하고 말씀하신 거예요. 티끌 같은 사소한 것을 자꾸 대들보인 양 과장해서 쳐다보지 마세요. 남편이 자녀들을 나무라는 것에 대해서도 간섭하지 말고 ‘너희들끼리 잘 노세요’ 하고 내버려두세요. 질문자는 그냥 ‘설거지를 큰아이가 하든 작은아이가 하든 남편이 하든 누가 하든 설거지만 하면 된다. 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일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맞습니다. 그런데 제가 남편에게 식기 세척기를 사용하라고 하는데도 그걸 사용하지 않고 자꾸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합니다.”
“어떻게 잔소리를 하는데요? 아이들한테 설거지를 시키라고 잔소리를 해요?”
“네.”
“남편의 제안은 환경적으로 아주 좋은 제안이에요. 농담이 아닙니다. 정토회는 설거지를 3단계로 해요. 물을 세 통 받아놓고 그릇에 남은 지저분한 것을 버린 후, 첫 번째 통에서 씻고, 두 번째 통에서 헹구고, 세 번째 통에서 마지막 헹굼을 해요. 그렇게 하면 100명이 먹은 식기도 다 청소할 수 있는데, 식기 세척기를 사용하면 물 소비량이 5배가 넘고 화학 세제도 많이 사용해야 합니다. 남편이 옳고 질문자가 틀렸다는 말이 아니라 다른 각도에서 보면 남편의 관점이 옳을 수도 있다는 얘기를 하는 겁니다. 질문자가 볼 때는 남편이 문제지만, 남편이 볼 때는 질문자가 물을 너무 낭비한다고 볼 수 있어요. 남편은 질문자에 대해 ‘너무 편리함만을 쫓는다’, ‘아이들에게 일을 안 시키고 혼자 다 하려고 한다’ 이런 생각이 드는 겁니다. 남편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한번 물어보세요. 다 이유가 있을 겁니다. 질문자가 자기의 생각에 빠져서 남편에게 잔소리를 하게 되는 거예요.”
“잔소리는 제가 하지 않고 남편이 제게 합니다.”
“남편의 입장에서는 잔소리를 할 수도 있겠구나, 이렇게 받아들이면 되지요. 남편이 어떻게 잔소리를 하는데요? 도저히 같이 못 살 것 같은 잔소리인지 한번 들어봅시다.”
“예를 들어 ‘아이들이 우유를 먹고 그릇을 왜 싱크대에 그대로 두었냐?’ 하고 불평해요.”
“사용했으면 그릇을 치워야지 그대로 두면 안 되죠. 남편 말이 맞네요.” (웃음)
“네, 알겠습니다.”
“질문자는 알겠다고 대답은 하지만 속으로는 ‘남편이 좀 치우면 안 되나’ 하는 반발심이 있는 거예요. 질문자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제가 미처 못 봐서 못 치웠습니다’ 하고 말하면 되지 반발할 이유는 없어요. 그러고 나서 ‘내가 미처 치우지 못하고 내버려두면, 당신이 좀 치워주면 좋겠어요’ 하고 넘어가면 됩니다. 먼저 상대의 지적을 받아들이고 난 다음에 요청을 해보세요. 10년을 같이 살아 놓고 아직도 요령을 모르겠어요? 아이들이 둘이나 있는데 남편을 또 바꾸려고 하면 힘들어져요.” (웃음)
“맞아요. 방금 스님께서 말씀하는 중에 제가 깨달은 게 있어요. 이미 가진 걸 그냥 잘 쓰는 게 현명한 선택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저처럼 출가를 하면 부모와 갈등이 생겨요. 부모가 시골에서 애지중지 키웠는데 고등학교 다니다가 절에 들어가니 부모님의 가슴이 얼마나 아프겠어요. 그것처럼 내가 선택한 인연이 아닌 사람들과도 인연을 끊기가 어려운데 내가 선택한 인연을 버리고 또 새로운 인연을 지으려는 분들을 보면 저는 참 용감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본인이 선택을 했으면 그 결과를 감수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아이들이 있기 때문에 헤어지는 문제도 그리 간단하지가 않습니다. 선택을 해놓고 자꾸 도망가려고 하면 어떡해요?
늙으면 늙을수록 남편과 맞추기가 더욱더 어려워집니다. 특히 외국인하고 살면 늙어서 헤어질 가능성이 높아요. 왜냐하면 인간에게는 회귀 본능이라는 것이 있어서 늙을수록 어릴 때의 환경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젊었을 때는 이국땅에 와서 빵 먹고 사는 데에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나이가 육십을 넘어가면 자꾸 된장찌개나 김치가 먹고 싶어져요. 남편은 거꾸로 자기 어릴 때 습관으로 복귀하려고 하죠. 젊을 때는 된장찌개를 끓여줘도 같이 잘 먹었지만, 늙으면 ‘된장 냄새 맡긴 싫다’ 하고 밥투정을 하기 시작합니다. 독일에 간호사들이 가서 외국인들과 많이 결혼해서 살았는데, 늙어서는 밥을 같이 못 먹는다는 어려움을 많이 이야기합니다. 된장찌개 먹고 싶어서 끓였는데 냄새난다고 고함을 치니까 베란다에 가서 밥을 먹어야 된다고 해요. 그래서 늙어서 이혼을 많이 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런 문제들도 서로를 이해하는 마음을 내면 잘 극복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개를 데리고 사는 이유는 개는 잔소리를 안 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여러분도 상대방에게 잔소리만 안 하면 사는 데 큰 문제가 없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