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6일 저 위에 있는 것
‘어른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는데, 하느님 말씀을 들으면 떡은커녕 매를 맞게 되는 거 같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증언한 사도들은 감옥에 갇히고 죽임을 당하게 됐다. 가깝게는 우리 순교 선조들이 그랬고, 성인들은 죽임은 아니지만 하느님 뜻에 헌신하느라 하나같이 순교라고 불릴만하게 참 많이 수고했다.
순교자들과 성인들은 그런 화를 얼마든지 피할 수 있었다. 배교하고 하느님 말씀을 따르지 않으면 됐다. 그러나 그들은 그럴 수 없었다. 순교사에서 보면 배교한 게 너무 고통스러워 다시 돌아와 순교의 칼을 맞거나 젖먹이 때문에 배교했다가도 그를 이웃에게 맡기고 돌아와 순교했다. 동정 부부도 있다. 세속적인 생각으로는 도저히 이해될 수 없는 일들이다. 그들은 세상에서 이방인이었다.
“위에서 오시는 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신다. 땅에서 난 사람은 땅에 속하고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는데, 하늘에서 오시는 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신다.”(요한 3,31) 하늘에서 오신 분이 하느님과 하늘나라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것은 특별하거나 신기한 게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람이 바라는 것, 서로 사랑하고 평화롭게 사는 길이다. 직접 목격하거나 매체를 통해서 알게 된 감동적이고 왠지 자신을 부끄럽게 만드는 그런 일들이다. 진실은 말하는 사람도 그것을 듣는 사람도 고통스럽게 한다고 하는데, 진리는 우리에게 인생 전체나 목숨을 담보로 하게 만든다.
하느님과 모세에게 대들었다가 불 뱀에게 물려 죽게 된 이스라엘이 나무에 매단 구리 뱀을 쳐다보기만 하면 살았다. 이제 우리는 십자가의 주님을 보기만 하면, 그분의 희생이 우리 죄를 없애기 위한 것이라고 믿기만 하면 우리는 죄를 용서받고 하느님 앞에 설 수 있게 됐다. 너무 쉽고 너무 좋아서 믿기 어려운 증언이다. “아드님을 믿는 이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그러나 아드님께 순종하지 않는 자는 생명을 보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진노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르게 된다.”(요한 3,36) 죄를 좋아하는 사람 없지만 죄짓지 않는 사람 없다. 자신의 죄를 지우고 싶지 않은 사람 없고, 스스로 죄를 지울 수 있는 사람도 없다. 죄를 없애는 그 길이 바로 예수님이다. 그분을 믿지 않으면 하느님의 진노만 남는다. 믿지 않아서 하느님이 진노하시는 게 아니라 그 길 말고 다른 길은 없다는 뜻이고, 믿지 않으면 자신의 죄에 대한 후회와 괴로움 그리고 벌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 죽을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예수님, 주님은 이 세상에서 영원한 이방인이셨습니다. 주님은 위의 것을 말씀하시고 사람들은 땅의 것에만 관심 있으니 주님 말씀을 알아 듣기는커녕 들리지도 않았을 겁니다. 저는 이제 성령 안에서 새로 태어났으니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합니다. 땅에 있는 것은 생각하지 않겠습니다.(콜로 3,1-2)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이 이콘을 통해서 하늘나라를 들여다보며 제 영혼이 그곳을 더 그리워하게 도와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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