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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에서는 어떤 정책으로 어떻게 숲을 다시 조성할 수 있었나요? 동티모르에서도 사람들이 나무를 많이 자르고 있습니다.
스님의 활동은 퍼마틸과 비슷한 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스님은 어떻게 그렇게 훌륭한 사회 실천 활동을 하시게 되었나요?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대화를 마치고 활동가들은 동티모르 여성들이 직접 짠 천을 선물해 주었습니다.
“앞으로 꾸준히 관계를 이어나가면 좋겠습니다.”
스님은 동티모르의 수자원을 보존하는 데에 사용하라고 퍼마틸 활동가들에게 보시금을 전달했습니다.
사무실 밖으로 나가 다 함께 기념사진을 찍은 후 퍼마틸 활동이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는 현장을 가보았습니다.
딜리(Dili)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면 아일레우(Aileu) 주가 나오는데, 곳곳에서 다양한 활동들이 이뤄지고 있었습니다.
“언제 물이 가장 부족합니까?”
“지금이 건기라서 물이 가장 부족합니다. 11월 중순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차를 타고 30분 정도 이동한 후 잠시 내려서 산골짜기마다 설치한 물탱크를 살펴보았습니다. 물탱크에 대해 레모스 님이 잠시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빗물이 땅속으로 잘 스며들도록 저희가 작업을 다 해 놓아서 수원지가 다시 살아났습니다. 그 결과 저 아래에 몇 천 명의 주민들이 이 물탱크에서 나오는 물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 5년 동안 마을에서는 아무리 땅을 파도 물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땅을 파면 물이 나옵니다.”
“훌륭합니다. 그런데 집집마다 물이 나오도록 해주면 사람들이 물을 낭비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을 어떻게 조절합니까?”
“조절하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5년 전에는 물 때문에 분쟁이 많았습니다. 지금은 최소한 분쟁은 없어졌습니다. 연간 50개 내지 100개의 수원지를 복원하는 것이 퍼마틸의 목표입니다. 상류에 수원지를 만들어서 중력을 이용하여 마을로 물을 공급합니다. 전기 에너지를 사용하지 않고 자연적인 방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주민들은 가난해서 수도세를 낼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물을 가지고 주민들을 통제하려고 합니다. 저희는 주민들이 무료로 물을 사용할 수 있게 하고 있습니다.”
“수원지 하나를 복원하는 데에 비용이 얼마나 듭니까?”
“1000달러에서 2000달러 정도 듭니다.”
산골짜기마다 설치한 물탱크가 스무 개가 넘는다고 합니다. 다시 차를 타고 이동했습니다. 산등성이를 가로지르니 작년에 산사태로 무너진 도로 복구가 한창이었습니다.
면사무소에 도착하자 면장님이 스님을 반갑게 환영해 주었습니다. 마을의 식수 공급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그 현황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들었습니다.
“여기에는 마을이 세 곳 있습니다. 산 위에 있는 마을 하나는 물이 충분하지만, 산 아래에 있는 마을 두 곳은 물이 부족합니다. 도로 공사를 하면서 식수관이 끊겨서 산 아래 마을은 물 공급을 전혀 못 받고 있습니다.”
“도로 공사가 끝나고 식수관을 다시 연결하면 물 공급에 문제가 없습니까?”
“여전히 물이 부족합니다. 왜냐하면 수원지 자체에 물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무엇인가요?”
“수원지에 물이 많아지도록 해야 합니다. 퍼마틸이 하고 있는 일이 바로 그런 활동입니다. 직접 현장을 보여드리면서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이 마을에서 성공한 사례를 전 지역으로 확산하려고 준비 중입니다.”
함께 차를 타고 수원지를 가장 먼저 찾아가 보았습니다. 차로 이동 중에 레모스 님이 간식으로 마을에서 바나나를 사줘서 차에서 함께 먹었습니다.
오후 1시에 수원지에 도착했습니다. 면사무소에서 4km 떨어진 곳이었습니다. 마을에서 청년부장을 맡고 있는 아니스 님이 수원지까지 안내를 해주었습니다.
건기에도 물이 계속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스님이 청년부장에게 질문했습니다.
“건기에 이 정도의 물이 흐르면 3천 명이 먹을 수 있는 식수 공급은 충분히 가능하겠네요. 재료만 제공해 주면 마을 주민들이 공동 노동을 해서 큰 물탱크를 만들 수 있을까요? 청년부장님이 생각하기에는 어떨 것 같아요?”
“네, 가능할 것 같습니다. 마을 주민들 모두에게 물이 필요하고, 본인들에게 혜택이 돌아가기 때문에 공동 노동을 하자고 하면 모두 참여할 것 같습니다.”
퍼마틸 활동가들이 수년간 노력한 결과 수원지에 물이 많아지고 있기 때문에 물탱크만 만들면 마을 전체에 원활하게 물을 공급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다시 차를 타고 청소년 퍼마컬처 센터로 이동하여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여기서 청년들이 캠프를 했습니다. 이런 곳이 여섯 군데 있습니다.”
타로, 카사바, 고구마, 상추 겉절이, 카사바 잎 볶음, 쌀밥, 커피, 다양한 음식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모두 직접 재배한 음식들이라고 합니다.
“소박하고 건강한 식사네요.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나무 아래에서 식사를 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나서 스님이 JTS가 사업을 하는 원칙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JTS가 지원하는 원칙이 일반 NGO와는 조금 달라서 같이 하려면 이해가 좀 필요합니다. JTS는 100퍼센트 자원봉사 방식으로만 일을 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후원자들이 기부한 돈이 수혜자에게 100퍼센트 돌아가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함께 협력하는 단체도 JTS가 지원하는 돈을 인건비에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대부분의 NGO 단체들은 어떤 프로젝트를 받으면 총 지원금 중 30퍼센트 이상은 인건비로 지출하는 것이 일반적이니까요. JTS는 단순히 지원만 해주는 단체가 아니라 프로젝트를 함께 만들어가는 단체입니다. 그 의미를 담아서 단체 이름이 조인 투게더 소사이어티 (Join Together Society)입니다.
JTS가 사업을 하는 원칙
예를 들어, 필리핀 민다나오에서 학교를 지을 때는 마을 주민, 교육부, 지방관청, JTS 이렇게 네 개의 단체가 모여서 회의를 합니다. 마을 사람들은 땅을 제공하거나 노동력을 제공합니다. 지방관청은 기술자를 제공합니다. JTS의 원칙에 인건비는 지불할 수 없도록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JTS는 학교 건축에 필요한 모든 자재를 제공합니다. 가난한 마을에는 학교가 지어지면 공책, 연필 등 교육 기자재도 제공합니다. 교육부에서는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는 선생님을 파견합니다. 이렇게 네 개의 단체가 업무 협약(MOU)을 체결해서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합니다. 그러나 장애인 학교를 도시에 짓는 경우에는 마을 사람들이 참여를 할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지방 관청이 인건비를 제공합니다. 이런 방식으로 같이 협력합니다.
그것처럼 여기에서도 JTS와 함께 수원지를 건설하려면 이 물을 먹는 모든 주민들이 건설에 참여하겠다는 것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 일에 필요한 자재는 JTS가 전부 제공합니다. 현지에서 협력하는 단체인 퍼마틸에서는 프로젝트를 관리하고 감독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술자의 인건비는 지방관청이 제공해야 합니다. 물탱크를 설치하기 위해서는 전문 기술자가 필요합니다. 면사무소와 같은 지방관청이 그에 필요한 예산을 책정해서 지원해야 됩니다.
마을 사람들과 함께 공동 노동을 하다 보면 식사를 함께 해야 합니다. 그럴 때는 동네에서 조금 잘 사는 사람들이 한 끼씩 돌아가며 부담하든가, 그 동네 출신인데 도시로 나가서 돈을 버는 사람들이 기부한 돈으로 부담하든가 해야 합니다. 주민들이 그렇게 하기가 도저히 어렵다면 지방관청이 공동 노동을 할 때의 식사 경비를 예산에 책정해서 배정해야 합니다.”
“네, 가능합니다. 제 경험으로는 이런 경우에 주민들이 각자 음식을 싸와서 같이 나누어 먹습니다.”
“이렇게 주민들이 자신들이 필요한 일을 직접 나서서 하겠다고 할 때만 JTS에서 지원을 하지, 남에게 해달라고 부탁하는 것에 대해서는 JTS에서 지원하지 않습니다. 부탁을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정부에 해야 합니다. JTS는 ‘정부가 해줄 수 없을 때 계속 기다리고만 있을 것인가, 우리가 나서서 할 것인가?’ 이렇게 마을 사람들에게 묻습니다.”
“네, 마을 이장님이 주민들의 참여 의사를 전부 확인하고 약속을 받으면 됩니다.”
“맞습니다. 마을 주민들이 전부 동의했는지 서명을 받아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마을 사람들이 해보겠다고 하면 그때부터 일이 진행됩니다. 땅 속에 들어갈 파이프 길이가 몇 인치이며, 시멘트와 자갈이나 모래가 얼마나 들어갈 것이며, 물탱크의 부피와 크기는 얼마로 할 것인지, 전부 계산해서 제출하면 JTS가 그에 필요한 자재를 제공합니다.”
나무 아래에서 대화를 나눈 후 다시 답사를 이어갔습니다. 유스 퍼마컬처 센터 뒤쪽 산으로 함께 올라가 보았습니다.
레모스 님은 산을 올라가며 직접 판 구덩이를 여러 개 보여주었습니다. 빗물을 모아서 땅에 스며들도록 하기 위한 구덩이라고 합니다.
플랜팅 워터, 저희는 물을 심는 일을 합니다
“우기 때는 물이 이 구덩이에 고여 있다가 땅 속으로 흡수가 됩니다. 빗물을 최대한 붙잡아서 땅 속으로 흡수를 시키는 겁니다. 일단 물이 고이면 유실이 적습니다. 예전에는 비가 많이 와도 산에 물이 저장되지 않고 쓸려 내려가 버렸습니다. 그래서 산 곳곳에 이렇게 구덩이를 팠습니다. 빗물이 구덩이에 고여서 땅속으로 스며드니까 아래쪽 샘물에 물이 많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리 비가 많이 와도 구덩이가 넘쳐흐르지는 않나요?”
“땅으로 흡수가 되기 때문에 넘쳐흐르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이것을 ‘물을 심는다(Planting water)’고 표현합니다.”
“맞아요. 물을 심는다는 표현이 정확한 표현입니다. 건조한 지역에 가보면 구덩이를 파서 물이 고이면 그곳에 나무를 심습니다. 물의 유실이 적기 때문에 나무가 훨씬 잘 자라요.”
크기는 다양하지만 곳곳에 빗물을 모으기 위한 구덩이가 파여 있었습니다.
산을 조금 더 올라가니 포르투갈(Portugal)의 전투 기지로 사용했던 건물이 나타났습니다. 이후에는 인도네시아 군대가 다시 이곳을 점령했다고 합니다.
아직도 곳곳에 탄피가 쌓여 있었습니다. 건물에는 총알 자국도 많이 남아 있었습니다.
스님이 이곳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이곳은 처음에 포르투갈의 식민지 지배를 받았어요. 그런데 포르투갈이 물러가니까 다시 인도네시아가 이곳을 점령했어요. 독립 전쟁을 겪으면서 수십만 명이 죽었을 겁니다.”
전쟁의 아픔을 뒤로하고 다시 산을 내려왔습니다.
산을 내려오면서 스님은 레모스 님과 계속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내려오는 길에도 깊게 파 놓은 웅덩이가 많이 보였습니다.
“산 곳곳에 구덩이를 많이 파 놓은 덕분에 계곡에 물이 흐르기 시작했는데, 정부에서는 그 연관성을 믿어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과학적으로 조사를 해서 연말에 자료집을 발간하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구덩이를 팔 때 사람들에게 인건비를 주었나요?”
“인건비는 아니고 식비 개념으로 일인당 5달러씩 주었습니다. 20명이 10일 동안 땅을 파면 이만한 구덩이를 하나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면 구덩이를 하나 파는 데에 1000달러 정도 드네요. 나무를 심기 위해서 구덩이를 판다고 하면 사람들이 쉽게 동의할 수가 있는데, 계곡을 살리기 위해 구덩이를 판다고 하면 사람들이 동의하기가 어려웠을 것 같아요. 사람들을 설득하느라 레모스 님이 고생을 많이 했겠습니다.”
“맞습니다. 사람들이 제 말을 믿어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15년 동안 500개의 계곡이 살아났으니 이미 증명은 되었지요.”
“아주 잘하셨어요. 굿 아이디어!”
“작년에 유스 캠프를 여기서 했는데 400명이 5일 동안 20개의 구덩이를 팠습니다.”
산을 조금 더 내려가니 작은 식물원이 나타났습니다. 다양한 품종의 식물들을 키우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만 개의 씨앗을 뿌려서 만 그루를 심었습니다. 이 중에 절반은 지역 사회에 나눠주고, 절반은 이 산에 심으려고 합니다.”
“주로 무슨 나무를 키우고 있어요?”
“유칼립투스(Eucalyptus)입니다. 화이트와 블랙, 두 종류가 있는데 화이트는 물을 증발시켜서 땅을 건조하게 만드는 성질이 있는데, 블랙은 반대로 물을 품고 있는 성질이 있습니다. 블랙 유칼립투스를 많이 심어서 산이 물을 품고 있을 수 있도록 전체적으로 바꾸어 보려 하고 있습니다.”
다시 차를 타고 새로 지은 학교로 향했습니다. 학교에 도착하기 전에 시멘트로 된 무릎 높이의 물 저장 공간을 보여주었습니다. 물이 졸졸 흐르고 있었습니다.
“빗물을 땅속에 스며들게 하는 구덩이 덕분에 학교와 병원에 사용할 수 있는 물이 생겼습니다. 또 이 주변에 7개의 샘이 더 생겼습니다.”
레모스 님은 환하게 웃으며 이 물 덕분에 학교를 지을 수 있었다며 여러 차례 이야기했습니다. 스님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이 정도의 물을 가지고 엄청 귀하게 여기는 것을 보니 물이 정말 귀하긴 귀한가 보네요.”
학교 건물 뒤에는 텃밭이 잘 가꾸어져 있었습니다. 학생들이 퍼마컬처 수업을 하며 직접 농사를 짓는 공간입니다.
“이 텃밭에서 선생님들이 학교 정원 프로그램을 진행합니다. 학생들이 야채 밭을 가꾸고, 음식물 쓰레기 처리, 자연적인 해충 방제, 종자 선택 등의 기술을 배웁니다. 지금은 이 프로그램이 국가 공립 학교 교육 과정에 포함이 되었습니다.”
다시 차를 타고 이동하여 다른 마을에 만든 구덩이를 더 살펴보았습니다. 걸어서 산 위로 30분을 올라가니 커다란 구덩이가 나타났습니다.
“이 구덩이 덕분에 아래쪽에 샘이 두 개가 살아났습니다. 내년까지 구덩이를 두 개 더 파려고 합니다.”
“산사태의 위험은 없나요? 물이 땅 밑으로 스며들면 좋은 점도 있지만 산사태가 날 위험이 있잖아요.”
“비가 많이 와서 저 밑에 사람이 살지 않는 곳에 산사태가 일어난 적이 있습니다.”
건기여서 그런지 정말 땅이 건조했습니다. 바닥이 쩍쩍 갈라져 있는 곳이 많았습니다.
오후 4시 20분에 답사를 모두 마치고 차를 타고 숙소로 향했습니다.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스님이 두 가지 제안을 했습니다.
“첫째, JTS에서 1만 달러를 지원할 테니 프로젝트를 기획해서 시범 사업을 해보면 좋겠어요. 둘째, 청년부장 아니스 님의 마을에 수원지를 만드는 사업에 대한 제안서를 만들어서 보내주세요. JTS에서 지원을 해드리겠습니다. 앞으로 지원을 어떻게 할지는 2개의 시범 사업을 해보고 평가해서 다시 의논합시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숙소에 도착한 후 하루 종일 현장을 안내해 준 레모스 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자세히 설명해 주어서 고마워요. 저녁에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눕시다.”
해가 저물고 저녁 7시 30분에 다시 레모스 님의 어머님 댁에서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레모스 님의 아내와 퍼마틸 활동가들이 정성껏 음식을 준비해 주었습니다.
식사 후 더 많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스님은 한국 청년들은 진취성과 자주성이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며 동티모르가 갖고 있는 장점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경제 발전이 꼭 좋다고 말할 수 없는 이유
“한국 청년들은 진취성과 자주성이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취업 상담을 해주는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상황이 더욱 심각합니다. 젊은이들이 직장에 가서 정기적으로 출근하고 상사의 지시를 받는 걸 많이 힘들어한다고 해요. 심지어 출근을 아예 안 하려고 합니다. 대부분이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습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늦게 일어나서 그냥 파트타임으로 아르바이트해서 자기 용돈만 벌고, 부모 집에서 먹고 자고 합니다. 각 가정에 대부분 아이가 하나밖에 없으니 부모도 이런 모습을 그냥 내버려 둡니다. 이런 현상은 앞으로 큰 문제가 될 겁니다. 그래서 동티모르의 젊은이들이 더 행복할지도 모릅니다. 동티모르의 젊은이들은 다들 자기 나름대로 뭔가 해보려고 하는 의지가 있잖아요.”
“저희 퍼마틸 캠프에 오는 젊은이들이 특히 진취적인 것 같습니다.”
“자기 나름대로 목표가 있고 보람과 성취감을 느끼며 사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런데 지금의 학교 교육은 인간이 거대한 사회 집단의 부속품이 되어서 살아가게 합니다. 그런데 아직 동티모르에서는 젊은이들이 자기 나름대로 뭔가 계획을 세우고 성취하는 자주적인 면이 많이 있잖아요.”
레모스 님은 퍼마틸에서 진행하는 청소년 캠프가 동티모르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고 소개해 주었습니다. 2008년 이후 청소년 캠프는 전국에서 5,000명 이상의 청소년을 훈련시켰다고 합니다.
“저희 청소년 캠프에 왔던 젊은 사람들은 처음에는 편안한 캠핑에 놀러 오는 마음으로 참가합니다. 친구가 가자고 하니까 그냥 따라온 거죠. 그러나 이 캠프는 휴가가 아니고 배움의 시간이기 때문에 처음에 동의서를 작성하도록 합니다. ‘이 캠프의 규칙을 따를 것이고, 여기서 온전히 배울 것이고, 돌아가서 우리 마을에 적용할 것입니다’ 이렇게 동의서를 작성하고, 본인이 사인하고, 면장님도 사인하고, 캠핑을 진행하는 사람도 사인합니다.
아침 5시에 일어나서 다 같이 체조를 하고, 아침 먹고 8시가 되면 농사일을 시작합니다. 첫날은 다들 피곤하기 때문에 아침부터 누워 쉬려고 하는데 엄격하게 막습니다. 12시까지 할 일이 잔뜩 있고, 점심 먹고 나서 오후에 또 농사일을 하고, 오후 5시가 되면 일을 마칩니다. 조금 쉬고 저녁 6시에는 영화를 봅니다. 공연도 하고,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고, 밤 10시까지 재미있는 놀이 시간을 가집니다. 밤 10시가 되면 딱 자러 가야 하고, 다시 아침 5시에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합니다.
이틀째가 되면 젊은 사람들의 얼굴 표정이 조금씩 밝아지기 시작합니다. 나이 든 사람도 흥미로워합니다. 딱딱 마칠 수 있는 그런 일들을 주는데, 3박 4일이 지나고 캠프를 마칠 때는 모닥불도 피우고 마지막 밤을 보내는데, 서로 울면서 헤어지기 싫어합니다. 서로 보고 싶어하고 떠나는 걸 아쉬워합니다. 저도 가끔 웁니다. 이렇게 서로 연결될 수 있는 고리를 만들어서 한 가족이 되도록 만듭니다.”
스님은 퍼마틸이 일군 성과를 칭찬했습니다.
“그런 활동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저도 한국에서 젊은 시절에 그렇게 지냈습니다. 그런 경험을 토대로 민주화 운동도 하고, 지역 개발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한국은 군인도 그런 생활을 안 합니다. 군인도 훈련을 하다가 쓰러지면 장교가 책임져야 합니다. 그래서 캠프를 하는 문화가 거의 사라졌어요. 이런 모습을 보면 경제적으로 발전하는 것이 꼭 좋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나쁘다고 말할 수도 없지만 좋다고도 말할 수 없어요.”
레모스 님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희망을 가집시다. 이 상황이 더 나아지도록 우리가 희망을 만듭시다.”
희망을 이야기함과 동시에 레모스 님은 걱정도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요즘 농업 교육에 대해 걱정하고 있습니다. 농업을 배울 수 있는 고등학교도 있고, 농업을 전공할 수 있는 대학교도 있는데, 그 내용이 학생들에게 실제로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들이 고향으로 돌아가서 쓸 수 있는 내용이 아닙니다. 대규모 기업농을 위한 내용을 중심으로 가르칩니다. 유기 농법은 가르치지 않고, 화학 비료와 살충제를 쓰는 법 등을 가르칩니다. 우리의 교육 제도가 우리의 문화를 망치고 있습니다. 학생들이 고향으로 돌아가면 자신이 교육받은 것과 현실의 차이가 너무 커서 모두 고향을 떠납니다. 제가 직접 만나 본 학생들이 그랬습니다.”
스님도 레모스 님의 의견에 동의하며 말했습니다.
“학교는 경영적 관점으로 교육합니다. 한국의 종교 시설들도 경영적 관점으로 운영을 하는 곳이 많습니다. 신자의 수가 점점 줄어드는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그 수를 늘릴지에 몰두해 있습니다. 종교의 본래 목적은 사람들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는 것인데 ‘어떻게 경영해야 수입이 많이 들어올 수 있는가?’ 이런 관점으로 접근하고 있으니 종교를 믿는 사람들의 수가 더욱더 줄어듭니다. 현대 사회가 안고 있는 공통의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레모스 님은 교육을 통해 끊임없이 변화를 시도해 보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대학교도 그와 같습니다. 제가 대학생일 때도 자주적이거나 자립적인 교육을 받은 적이 없고, 회사에 취직하기 위한 교육을 받았습니다. 학생들은 졸업 후에 고향에 돌아가서 일하지 않고, 대다수가 회사에 취직하러 다녔습니다. 현명하고 창의적인 학생들은 그런 교육을 거부했지만 소수에 불과했습니다. 그때는 인도네시아가 동티모르를 강제로 점령하고 있는 시기였는데, 그때 제가 축산업을 전공했습니다. 동티모르의 현실에 맞게 지역에 적용할 수 있는 축산 교육이 아니라, 큰 목장을 운영하는 대규모 축산업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1997년부터 이런 교육에 반대하는 학생 운동을 시작했고, 유기 농업을 확산하자고 외쳤습니다. 하지만 군대가 저희를 탄압했습니다. 이런 배경 속에서 파머컬처를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1997년에 아시아에서 큰 사건들이 많았습니다. 화학 비료 가격이 급등하면서 그것에 의존하던 농부들은 농사를 그만두었습니다. 그때 저희는 대안을 제시했습니다. 인도네시아로부터 독립한 뒤에는 그걸 기반으로 파머컬처를 시작했습니다. 현재 동티모르의 대학들은 아직 그때처럼 교육하고 있습니다. 그런 교육 제도를 개선하려고 우선 2013년에 교육부에 제안하기 시작했습니다. 초등학교 교육 과정부터 시작해서 현재 중학교 교육 과정까지 개정이 되었습니다. 내년에는 고등학교까지 개정될 것 같습니다. 이렇게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모든 교육 내용이 동티모르의 현실에 맞게 변하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중학교 교육 내용을 개정할 때가 가장 힘들었습니다. 원래 중학교는 포르투갈의 교과 내용을 그대로 가져와 사용하고 있었는데, 2009년에 교육부가 교과서를 인쇄하려고 포르투갈 정부와 계약을 한 게 있어서 일이 잘 풀리지 않았습니다. 당시 교과서에 기후 변화와 관련된 내용들이 반영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면서 교육부를 설득해 나갔습니다. 예전 교과에는 예술 관련 과목은 있었지만, 문화에 대한 과목은 없었습니다. 지금은 모두 반영이 되었습니다. 음악, 춤, 전통문화, 학교 텃밭 과목에 이어 플랜팅 워터(물 심기) 과목도 넣었습니다. 그 과목까지 반영된 교육 개정안은 지난주에 정부에서 승인이 났습니다. 이제 2025년에 개정할 교육 내용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계속 시도해 보고 있습니다.”
스님은 레모스 님이 혁명을 하고 있다고 격려해 주었습니다.
동티모르의 교육 혁명을 응원합니다
“어떤 나라도 하지 못했던 일입니다. 혁명을 하신 것입니다. 한번 정한 교과서를 바꾸는 일은 매우 어렵습니다. 교과서를 바꾸면 모든 선생님이 다시 공부해야 합니다. 대학 교수도 지도 교수에게 배운 걸로 학위를 받았기 때문에 교육을 바꾸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한국도 일제 강점기 때의 흔적이 가장 많이 남은 분야가 ‘교육’과 ‘법률’입니다. 두 가지는 정말 바꾸기가 어렵습니다. 법률 용어도 쉬운 생활 용어가 아니라 일본말을 많이 사용했기 때문에 말이 굉장히 어렵고, 그걸 전공한 사람들만 이해합니다.”
“동티모르도 그렇습니다. 법률이 모두 포르투갈어로 되어 있습니다. 애국가도 포르투갈어로 부릅니다. 중학교에서는 동티모르 말인 테툼어(Tetum語)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가 수업할 때는 모든 선생님이 테툼어를 쓰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래서 새 교육 과정에는 포르투갈어와 테툼어 두 언어를 함께 사용할 예정입니다. 동티모르에 포르투갈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영향력이 아직 커서 그렇습니다.”
“정말 잘하고 계십니다. 혁명이 성공하길 바랍니다. 저도 적극 지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긴 시간 대화를 나눈 후 밤 10시가 넘어서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집을 나서는데 레모스 님의 어머님이 대문 밖으로 나와서 스님을 안아주며 말했습니다.
“이렇게 먼 길을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레모스 님은 어두운 밤길을 함께 걸으며 큰길까지 스님을 배웅해 주었습니다.
내일은 동티모르를 출발하여 한국으로 갑니다. 딜리 공항을 출발하여 인도네시아 발리 공항을 경유한 후 다시 베트남 하노이 공항을 경유하고, 장장 18시간에 걸쳐 이동한 후 다음날 아침에 인천 공항에 도착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