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7일 주님을 따르는 길
사람은 계획하고 하느님은 섭리하신다.(잠언 16,9) 사람들이 아무리 훼방을 놓아도 하느님은 당신이 할 일을 하시고야 만다. 그 누구도, 그 어떤 것도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막을 수 없다. 밤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아침 해가 떠오르는 거처럼, 하늘에서 내려온 비가 열매를 맺지 않고서는 하늘로 그냥 돌아가지 않는 거처럼(이사 55,10-11) 하느님의 뜻은 반드시 이루어지고야 만다. 심지어 죄마저도 하느님 하시는 일을 돕는다.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같지 않고 너희 길은 내 길과 같지 않다. (주님의 말씀이다.) 하늘이 땅 위에 드높이 있듯이 내 길은 너희 길 위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 위에 드높이 있다.”(이사 55,8-9) 돼지는 몸 구조상 평생 하늘을 못 본다고 한다. 비행기에서 보면 사람은 보이지도 않고 큰 차들도 벌레들이 기어다니는 거 같다. 하느님에게 우리가 바로 그런 존재들이다. “두려워하지 마라, 벌레 같은 야곱아 구더기 같은 이스라엘아! 내가 너를 도와주리라. 주님의 말씀이다. 이스라엘의 거룩한 분이 너의 구원자이다.”(이사 41,14) 하느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을 거 같지는 않고, 이는 아마도 이사야 예언자의 고백이었을 거 같다. 그리고 그의 이런 고백을 인간 존엄 훼손이라고 비난할 사람은 없을 거다. 십자가에 달려 살해당하신 구세주 예수님을 믿는다면 말이다.
하늘나라로 가는 길은 십자가의 길이다. 그중에서 가장 빠른 길은 순교다. 순교는 죽음이 아니라 증언이다. 진리와 하느님을 증언하다가 수난과 죽임을 당함이다. 예수님이 먼저 그 길을 가셨다. 당신의 수난과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줄 알면서도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셨으니까 자살이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것은 그게 아니라 순종, 하느님께 대한 완전한 순종이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밥, 일용할 양식이 되고 싶으신 거다. 말씀으로 그리고 성체로. 예수님은 질병이나 노환으로 돌아가신 게 아니라 살해당하셨다. 우리에게 음식이 되는 식물과 동물이 그런 거처럼 말이다.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살해당하셨으니 그분이 그 즉시 하느님과 하나가 되신 건 자명하다. 사흘은 부활하시는 데 걸린 시간이 아니라 우리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는 데 걸린 시간이다.
순교는 직(直) 천당이다. 예수님 인생만 아니라 진리를 찾고 따른 사람들, 의로운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 세상에서 수난하고 불의한 죽임을 당했다. 그리고 지금도 그렇다. 베드로와 요한 사도는 예수님 때문에 최고 의회에서 매질을 당하고 쫓겨나면서 기뻐하였다. “사도들은 그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욕을 당할 수 있는 자격을 인정받았다고 기뻐하며, 최고 의회 앞에서 물러 나왔다. 사도들은 날마다 성전에서 또 이 집 저 집에서 끊임없이 가르치면서 예수님은 메시아시라고 선포하였다.”(사도 5,41) 하느님의 일을 한다고 해서 여기저기서 격려와 도움을 받는 게 아니다. 차라리 무관심이 더 편할지 모른다. 반드시 훼방꾼들이 있다. 수학 공식과 물리법칙처럼 그렇게 된다. 예수님이 이미 예고하셨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하였다는 것을 알아라. 너희가 세상에 속한다면 세상은 너희를 자기 사람으로 사랑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세상에 속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았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는 것이다.”(요한 15,18-19)
예수님, 제가 필요해서가 아니라 제가 주님을 따를 수 있게 기회를 주시려고 부르신 줄 압니다. 하늘나라의 신비를, 주님 말씀이 그때처럼 오늘도 여전히 참되다는 걸 체험하게 해주시려고 이 길로, 십자가의 길로 초대하신 줄 압니다. 오늘도 저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 뒤를 따르겠습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화나고 속상할 때, 어머니와 눈을 맞추며 더 깊은 평화를 찾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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