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동티모르 방문 일정을 마치고 한국으로 이동하는 날입니다.
스님은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7시 30분에 숙소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산책을 했습니다.
어젯밤에 유제니오 레모스(Eugenio Lemos) 님이 오늘 섬에 출장을 가는 일정이 잡혀 있어서 아침에 스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것에 대해 미리 양해를 구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는 스님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Please send my regards to Venerable Pomnyun Sunim's for his kindness to visit Timor-Leste and look forward to continuing discussion for collaboration.”
(법륜 스님께서 티모르-레스테를 방문해 주신 은혜에 대해 감사의 말씀을 전하며, 협력을 위한 지속적인 논의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레모스 님이 운전사를 보내 차를 제공해 주겠다고 했지만 스님은 사양을 하고 걸어서 산책을 하기로 했습니다.
동티모르의 수도인 딜리(Dili)는 티모르 섬의 북쪽 해안에 위치해 있습니다. 숙소에서 걸어서 20분을 나오니 곧바로 해안이 나타났습니다.
해안가를 따라 산책로가 잘 만들어져 있어서 바닷바람을 맞으며 가볍게 걸었습니다.
해안 자체가 예쁘기도 하고, 특별히 꾸며 놓은 것도 없이 소박했습니다.
한참을 걸은 후 스님은 벤치에 앉아 잠시 휴식을 했습니다. 저 멀리 에메랄드빛 바다가 무더위를 식혀 주었습니다.
스님은 이번 동티모르 방문 일정에 대한 소감을 가볍게 이야기했습니다.
“부탄뿐만 아니라 동티모르에서도 기후 위기 시대에 지속가능한 개발을 위한 새로운 모델을 하나 만들어 볼 수 있을 것 같네요. 나라 전체가 활력이 있는 데다가 레모스님과 퍼마틸 활동가들도 환경 보전에 대한 의식이 깨어있는 것을 보니까 새로운 협력 모델이 될 수 있겠다 싶어요.”
앞으로 레모스 님과 서로 연대하고 협력하는 일들이 계속 생길 것 같습니다.
16세기부터 400여 년간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아온 동티모르는 1974년 포르투갈의 식민지 포기 선언으로 1975년 11월 28일 독립선언과 함께 동티모르 민주공화국을 수립했습니다. 그러나 열흘 뒤인 12월 7일, 인도네시아 군대가 동티모르 전역을 침공하고 강제 점령하면서 독립의 꿈은 물거품이 되고 맙니다. 1999년 8월 끈질긴 저항 끝에 동티모르에서 인도네시아 군대가 철수하고, 2002년 5월 20일, 27년이 지나서야 동티모르 민주공화국은 다시 제자리를 찾았습니다. 5세기가 넘는 긴 시간 동안 자신의 땅을 여러 차례 빼앗기고 주인 행세를 하지 못했던 동티모르 사람들은 국제사회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자신의 집을 되찾았습니다. 동티모르 사람들에게 딜리는 이제 ‘평화의 도시’의 다른 이름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레모스 님의 퍼마틸(PERMATIL) 프로젝트와 JTS의 지속가능한 개발 사업이 공유와 연대를 통해 인류의 평화를 앞당기는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나갈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두 시간을 산책한 후 10시에 다시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짐을 챙겨서 11시 20분에 딜리 공항으로 이동했습니다.
공항에서 지난 이틀 동안 통역을 해준 김미선 님과 작별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통역하느라 정말 수고가 많았어요.”
김미선 님은 호주로 돌아가고, 스님은 한국으로 가기 위해 출국 수속을 하고 탑승구로 향했습니다.
가장 저렴한 저가항공을 이용하려다 보니 동티모르에서 한국까지 경유지를 두 번 거쳐 가게 되었습니다. 오후 1시 20분에 동티모르 딜리 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2시간을 비행하여 오후 2시 20분에 인도네시아 발리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발리 공항에서 3시간을 기다린 끝에 다시 오후 5시 30분에 비행기를 갈아타고 하노이 공항으로 향했습니다. 비행기는 5시간 20분을 이동하여 현지 시각으로 밤 9시 45분에 베트남 하노이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하노이 공항에서 다시 3시간 30분 동안 대기를 했습니다. 스님은 장시간의 이동 일정이 피곤했는지 공항 벤치에 누워 단잠을 잤습니다.
새벽 1시 15분에 다시 비행기를 갈아탔습니다. 하노이 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4시간 20분을 이동하여 내일 아침 7시 30분에 인천 공항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오늘은 하루 종일 먼 거리를 이동했습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었기 때문에 지난 10일 호주 브리즈번에서 열린 즉문즉설 강연에서 질문자와 스님이 대화 나눈 내용을 소개하며 글을 마칩니다.
남자친구와 화해하는 방식이 달라서 힘듭니다
“저는 만나고 있는 남자친구와 행복한 대화를 하려고 하는데, 무슨 일이 있거나 싸우면 화해하는 속도도 다르고, 서로 관점도 달라서 좀 힘듭니다. 저는 짜증이 나거나 화가 나면 일단 입을 닫고 말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조심합니다. 생각이 좀 필요한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남자친구는 침묵의 시간이 너무 답답하고 숨 막힌다는 표현을 합니다. 이 차이를 줄일 방법이 있는지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남자친구를 안 만나면 됩니다. 이것이 제일 확실한 방법이에요.”
“혹시 계속 만나고 싶으면 다른 방법은 없을까요?”
“만나고 싶으면 지금처럼 가끔 싸우면 되죠. 가끔 싸우는 것도 재미있잖아요. 어떻게 세상에 다 좋은 것만 있겠어요? 연애해서 좋은 게 있으면 서로 싸우는 나쁜 것도 있는 거죠.
여러분들이 결혼해서 싸우기도 하고, 이혼도 하고, 연애하다가 헤어지기도 하고 해야 스님도 살맛이 날 거 아니겠어요? 연애하고 결혼하는 것이 다 좋기만 하면 스님은 살 맛이 나지 않잖아요. 스님도 세상사나 가정사에 관심이 있지만 즉문즉설을 해보면 여러분이 맨날 결혼해서 못 살겠다는 얘기를 자주 하니까 ‘내가 선택을 참 잘했구나’ 하고 알게 되어 번뇌가 없어지거든요. 항상 저는 여러분을 통해서 제가 선택을 얼마나 잘했는지를 자각합니다. 그래서 이 즉문즉설은 제가 여러분들에게만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고, 여러분들도 저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즉문즉설을 하고 나서 돈을 안 받는 겁니다. 제가 일방적으로 도움만 주면 저도 돈을 좀 받으려고 했을 텐데, 즉문즉설을 통해서 저도 배우는 것이 많기 때문에 이렇게 서로 돕는 관계가 되는 거예요. (웃음)
우리는 다른 사람과 만나면 필연적으로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상대가 남자친구든, 그냥 친구든, 사업하는 동료든, 여행하는 친구든, 누구와 만나든 필연적으로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어요. 왜냐하면 모든 사람은 생김새가 조금씩 다르듯이 생각과 습관과 취미가 조금씩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는 ‘저 사람이 나하고 같겠지!’ 이런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저 사람은 나하고 다르다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낯선 사람과는 갈등이 없어요. 그냥 한번 보고 마음에 안 들면 안 만나면 되니까요. 그런데 얘기를 하다가 ‘한국 사람이네!’ 하고 공통점이 나왔어요. ‘경상도네!’ 하고 지역 공통점이 나오고, ‘우리 학교 출신이네’, ‘불교 신자네’ 이렇게 자꾸 공통점이 나옵니다. ‘너도 여행 좋아하니?’ 이렇게 공통점이 자꾸 발견되면 친해지게 됩니다. 같은 점이 5가지, 10가지, 20가지가 쌓이면 이제 그 사람에게 정이 갑니다. 그래서 친구가 되든지, 사업을 같이 하든지, 연애를 하든지 해서 가까운 사이가 됩니다.
인간의 의식은 공통점이 많을수록 ‘저 사람은 나하고 같아!’ 이렇게 자동으로 받아들입니다. 같으니까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게 되는 거예요. 나중에는 서로 같다는 것이 전제가 되어 버립니다. 그런데 같이 살아보면 결혼한 첫날부터 계속 다른 것이 발견됩니다. 음식 먹는 습관이 다르고, 화장실에서 수건을 쓰고 말려놨다 또 쓰는 사람도 있고, 한 번 쓴 수건은 세탁기에 바로 넣는 사람도 있고, 옷 던져놓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이렇게 온갖 다른 것이 계속 발견됩니다. ‘이것도 틀리네!’, ‘저것도 틀리네!’ 이렇게 다른 점이 발견되면서 스트레스가 계속 쌓여서 어느 순간에 가서는 ‘저 사람하고는 맞는 것이 하나도 없네. 성격이 너무너무 안 맞는다!’ 하면서 도저히 같이 못 살겠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이런 인간의 인식 작용 때문에 낯선 사람을 만나서 친구, 애인, 부부가 되기도 하고, 또 헤어지기도 하는 거예요. 이것이 나쁜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만나기도 하고, 헤어지기도 하는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들이 ‘만나면 헤어지면 안 된다’ 하는 전제를 하면 헤어질 수밖에 없는 삶이 고통이 되는 겁니다. 예를 들어 ‘스님이니까 여자를 만나면 안 된다’ 하는 전제를 갖고 있을 때 만남이 이루어지면 괴로움이 생기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정신작용의 원리 때문에 만났다가 헤어지기도 하고, 헤어졌다가 만나기도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 만나도 별일 아니고, 헤어져도 별일 아니에요. 또 그런 정신작용의 원리를 알게 되면 헤어질 필요도 없습니다. 또한 고향이 같고 취미가 같고 여러 가지 같은 점이 있다고 해서 같이 살아야 할 이유도 없어지게 됩니다. 같은 것은 그대로 두고, 그냥 따로 살면 되지요. 또 다른 점이 많이 발견됐다고 헤어질 이유가 없습니다. 서로 다른 상태를 그대로 두고 한집에 같이 살면 됩니다. 이렇게 헤어질 이유도 특별히 없고, 만날 이유도 특별히 없게 되면, 인간관계가 자유로워집니다.
만날 때는 ‘인종, 민족, 종교가 다른 사람과 만나면 안 된다’ 하는 전제를 하기 때문에 만나는 것이 어렵습니다. 또 헤어질 때는 ‘결혼이나 연애나 무엇을 했기 때문에 헤어지면 안 된다’ 하는 전제를 하기 때문에 헤어지는 것이 어렵습니다. 그래서 만날 때는 같다는 이유로 만나고, 헤어질 때는 다르다는 이유로 헤어지게 됩니다. 그러나 헤어지고 만나는 것 자체는 괴로움이 될 수가 없습니다. 헤어지고 싶으면 헤어지면 되고, 만나고 싶으면 만나면 됩니다. 그것이 괴로움이 되는 이유는 ‘만나면 안 된다’, ‘헤어지면 안 된다’ 이렇게 전제를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원리들을 잘 알면 조금 개선할 수가 있습니다.
도저히 같이 못 산다고 하는데, 도저히 같이 못 살 이유가 있을까요? 10년을 같이 살았는데 앞으로 5년을 더 못 살 이유가 없잖아요. 반대로 10년이나 살아봤으면 됐지 죽을 때까지 한 사람과 같이 살아야 할 이유가 특별히 있나요? 바꿔가면서 좀 살아보면 어때서요. 그것이 무슨 큰 문제예요? 그런데 ‘한 사람을 이해하는 것도 엄청나게 복잡한데,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또 그 과정을 거치는 건 귀찮다. 만나던 사람하고 계속 만나는 게 차라리 낫겠다!’ 이런 생각이 든다면 같이 살던 사람하고 계속 사는 게 낫습니다. ‘요즘 같은 세상에 굳이 한 사람하고 계속 살 거 있나? 다른 사람 하고도 한 번 살아보자!’ 이런 생각이 든다면 헤어지는 것도 큰 문제가 안 됩니다. 문제는 헤어지고 만나는 것이 아니에요.
그래서 저는 여러분들이 결혼을 하니까 축하해 달라고 하면 축하한다는 말을 안 해 줍니다. 왜냐하면 결혼이 축하할 일인지는 예단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대부분 그 결과가 축하할 일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결혼하는 날이 괴로움의 시작일 수가 있습니다. 또 헤어진다고 하는 사람에게 ‘헤어질 거면 결혼할 때 좀 신중하지 왜 그랬냐?’ 하고 물어보면 ‘제가 침착하지 못해서 사람을 제대로 안 보고 결혼을 했습니다’ 이렇게 대답합니다. 결혼할 때 그 사람의 이런저런 면모를 미처 생각지 못하고 몇 가지만 보고 결혼했다는 것을 진짜 반성했다면, 그 사람의 몇 가지 싫은 면만 보고 이혼하겠다는 것에 대해서도 좀 신중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결혼할 때와 똑같이 몇 가지가 싫다고 해서 성질을 내고 도저히 못 살겠다고 이혼을 하잖아요. 저는 누가 이혼을 하든 안 하든 그런 것에 대해서는 아무 상관을 하지 않습니다. 자연 생태계에는 이런 게 없잖아요. 이것은 다 인간의 의식이 만들어 낸 하나의 산물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제가 하고 싶은 얘기는 ‘결혼할 때 경솔했으면, 이혼할 때는 좀 신중해라’ 이런 의미인데, 사람들은 스님이 이혼하지 말라 했다고 잘못 알아듣는 경우가 많습니다. 경솔하게 이혼하고 나서 새로운 사람을 찾아보면 그만한 사람이 없어서 또 아쉬워하고 후회하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남자친구와 생기는 갈등은 당연하다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갈등이 생기는 이유는 ‘같아야 된다’ 하는 전제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너 왜 그러니?’ 하고 자꾸 묻는 이유는 내 기준에서는 남자친구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얘기예요. 그래서 갈등을 풀려면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친구가 되고 애인이 되고 결혼을 해도 습관이나 사고는 금방 바뀌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결혼을 하면 둘이 같아야 된다고 자꾸 생각합니다. 그래서 갈등이 생기는 거예요. 서로 다름을 인정해서 어느 정도 서로 공유할 것은 공유하되 나머지는 개인적으로 좀 열어놓고 살면 훨씬 자유로워집니다. 자꾸 자기식으로 나와 다른 상대를 통일하려고 하면 갈등이 커집니다. 남북이 통일한다고 저렇게 싸우듯이 자꾸 통일하려고 하니까 싸우게 되는 거예요. 너무 통일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놔둬요. 울타리를 좀 넓게 쳐서 이 범위만 안 벗어나면 개 목줄 풀어서 놔놓듯이 좀 놓아두세요. 개 목줄을 계속 잡고 다니듯이 하지 말고 ‘나가봤자 집 밖에 나가겠나? 대문만 닫아놓으면 되지!’ 하고 집안에 들어오면 목줄을 풀어주어야 합니다. 목줄을 딱 걸어 가지고 늘 기둥에다 묶어놓으려니까 개도 힘들고 사람도 힘들어지는 겁니다.”
“잘 알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내일은 인천 공항에 도착해서 서울 정토회관으로 이동하여 잠시 휴식을 한 후, 오후에는 비서실, JTS, 국제협력팀과 함께 하반기 해외 일정에 대해 회의를 하고, 저녁에는 다시 비행기를 타고 시애틀로 출국할 예정입니다. 내일부터는 북미 서부 지역에서 순회강연이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