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탄강
강원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을 꼽으라고 하면 저는 주저없이 철원을 이야기하곤 합니다. 그곳엔 유네스코 세계 지질공원으로 지정된 멋진 풍경이 있거든요.
한탄강(漢灘江)은 궁예가 왕건의 쿠데타 당시에 도망가던 중 이 강을 건너다 한탄했다는 것에서 유래를 찾기도 하지만 이는 잘못 알려진 상식입니다. 한은 순수 우리말로 '크다'라는 뜻이고 탄은 灘으로 여울을 의미하니 "큰 여울이 있는 강"이라는 해석이 옳습니다.
궁예는 태봉국을 세우면서 이곳에 도읍 정합니다. 지리학자들은 철원이 도읍지로서 효용가치가 떨어진다고 주장합니다. 수도는 국가 기본 조직이 있는 곳이기에 필연적으로 많은 인구가 모일 수밖에 없고 대규모 물자를 운송할 수 있는 수운(水運)이 중요한 것인데 한탄강은 배가 다닐 수 없어 활용성이 매우 낮기 때문입니다.
서울의 한강, 평양의 대동강, 개성의 예성강, 경주의 형산강, 부여의 백마강 등 수도가 있었던 곳은 물길이 매우 발달한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철원은 수송로 역할을 해야 할 한탄강이 수심이 낮고 수량이 적어 그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으니 물가는 폭등하고 민심은 흉흉하여 쿠데타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북한의 평강에서 발원하여 철원 연천을 거쳐 임진강과 합류하여 한강으로 흐르는 한탄강은 천혜의 아름다움을 품고 있습니다. 굳이 인간이 만들어 놓은 은하수 다리나 물 윗길, 잔도 길이 아니더라도 한탄강은 충분히 멋진 곳이거든요.
한탄강은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유일한 협곡입니다. 고석정을 끼고 유유히 흐르는 강 양안엔 현무암으로 이루어진 기암괴석이 즐비하고 천년 세월이 깎아 놓은 부드러운 바위의 곡선과, 굽이쳐 흐르며 소와 폭포를 만든 물줄기를 보면 마치 외국의 유명한 관광지에 와 있는 착각을 할 정도입니다.
한여름 시원한 물줄기를 타고 래프팅하다 보면 양안에 펼쳐진 자연경관에 입을 다물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최근 한탄강은 오염과 개발로 인해 많은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의 터전과 역사가 있는 곳, 강을 지키는 일은 우리의 미래를 지키는 것임을 깨달을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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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복> 님의 글입니다.
1998년 3월에 철원여고에 부임해서 철원고등학교를 거쳐 2006년 9월에 교감 발령받아 횡성 청일중학교에 가기까지 8년 반. 청일중학교 교감자리가 없어져 철원중학교로 임지를 옮긴게 2008년 3월. 철원중학교에서 교장 강습을 받아 양구 용하중에 발령받은게 2011년 9월이니 3년 반. 도합 12년을 철원에 근무했고, 한탄강 래프팅, 주상절리길 트래킹. 한탄강 협곡에 걸쳐있는 한탄강CC에서 공친게 수도 없었지만, 우리나라에서 유일하다는 협곡이라는데도 좋은 줄 모르고 지냈었네요.
뭘 했었나? 백마고지에 간게 수차례. 민통선 안에 사는 학생의 가정방문을 핑계로 민통선 안에 들어간 것도 수차례. 남북철책선 바로 밑의 메기매운탕 집에 간 것도 수차례. 하지만, 철원 풍광은 별로 기억에 남지 않고 학생들과의 추억은 생생하니 별 수 없이 훈장인가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