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자양산
십일월 셋째 주말이었다. 토요일 이른 아침 산행을 함께 다니는 벗과 동행하려고 길을 나섰다. 전에는 합성동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만났는데 장소를 마산역 앞 동마산병원 앞으로 정했다. 우리가 가려는 행선지가 함안 산인이라 시외버스터미널에 출발해 오는 농어촌버스로 환승하기 위해서였다. 올해 십일월부터 창원시와 함안군은 인접한 생활권이라 시내버스 환승제를 도입했다.
서마산을 벗아난 농어촌버스는 신당고개에서 비탈을 내려간 도천마을을 앞두고 내렸다. 도천마을은 조선 개국과 함께 개성을 떠나 남으로 내려온 이오가 터 잡은 고려동과 가깝다. 이오는 본관이 재령인데, 본관은 미수복 지역인 황해도 재령이다. 그는 고려가 기우는데도 이성계가 새롭게 개창하는 조선 창업에 동참하지 않은 인물이었다. 고려동은 장내(墻內)에서 은둔한 담안마을이다.
도천마을은 남해고속도로가 동마산을 앞두고 한 가닥 북창원으로 분기했다가 창원터널을 지나 다시 합류하는 지점이다. 도천마을에서 빤히 바라보이는 데가 고속도로요금소고 화개지맥 남향 기슭 갈전 전원마을이 이웃이다. 고속도로가 뚫리기 전 한적한 시골이었겠으나 지금은 밤낮으로 차량이 질주하고 있다. 우리는 신당마을 저수지에서 자양산으로 가는 임도를 따라 걸을 참이었다.
근래 신당마을에서 산자락을 넘어 칠원 동암으로 가는 임도가 개설되었다. 몇 해 전 동행한 벗과 화개지맥을 따라 산등선을 넘다가 도토리를 제법 주워 내서 자이아파트로 나간 적이 있었다. 지난 추석 연휴 때는 나 혼자 산마루를 넘어 동암마을에서 장암마을을 거쳐 칠원 유원으로 나갔더랬다. 이제는 산마루에 올라 화개지맥 북향 자양산으로 가도록 뚫은 임도를 걸을 생각이었다.
비탈을 오르는 산기슭에는 무서리에도 사그라지지 않은 쑥부쟁이 꽃잎을 볼 수 있었다. 산마루에 오르니 아침 안개가 걷혀가는 골짜기가 시야에 들어왔다. 갈림길 삼거리에서 자양산으로 향해 걸었다. 작년 가을 새로이 길을 내어 외지인들은 잘 모르는 임도였다. 전에는 자양산으로 가려면 산마루에서 희미한 등산로를 따라 숲을 헤쳐 가야 했는데 이제는 임도를 따라 걸으니 수월했다.
산허리 중간쯤 이르니 동암마을에서 올라오는 길을 만나, 앞으로 계속 가니 산인 대천마을에서 올라오는 길과 합류했다. 자양산 정상부가 가까워진 임도 노변은 산수유나무가 줄지어 심겨져 자란다. 봄날에 노란 꽃이 필 때 찾으면 아름다웠겠으나 그때는 찾지 못했다. 몇 해째 가을 이맘때 오르면 붉게 읽은 산수유열매를 따 왔는데 올해는 결실이 예년에 미치지 못해 딸 게 없었다.
전망이 사방으로 탁 트인 자양산은 통신회사 송신탑이 세워져 멀리서도 보였다. 정상부에는 패르글라이딩 활공장이 있기도 했다. 차량으로도 산마루까지 오를 수 있어 레저를 즐기는 이들이 무거운 장비를 운반하기 쉬울 듯했다. 우리는 송신탑을 돌아 안인마을로 내려서는 길로 들었다. 가랑잎이 수북하게 쌓인 등산로를 걸으니 발자국을 뗄 때마다 서걱거린 자연음이 듣기 좋았다.
희미한 갈림길에서 남향으로 내려 한참 가니 안인마을이 아닌 대천마을이 나왔다. 대천마을은 군립공원 입곡저수지와 가까웠다. 문암초등학교 앞을 지나 산인산업공단에서 북향 비탈을 올라 신당마을 국도변에 닿았다. 아침에 내렸던 곳이니 원점으로 회귀한 반나절 산행이었다. 둘은 양평해장국집에 들려 맑은 술과 함께 점심을 들고 바깥으로 나오니 둘러온 산자락이 눈에 들어왔다.
주차장 모퉁이에서 벗이 뽑아온 커피를 들면서 아침나절 둘러온 산세를 바라보는데 바로 뒤에서 자동차 경적 소리에 깜짝 놀랐다. 하필 넓은 주차장을 두고 우리 뒤에 바짝 붙어 차를 세우려는 작자의 소행이었다. 썬팅을 짙게 한 차량의 운전석에서 내리는 나잇살이나 제법 든 사내에게 나는 거칠게 항의했다. 어쩌면 이렇게 몰상식할 수 있느냐고. 즐거웠던 산행의 의미가 반감되었다. 21.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