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어 / 김결
벚꽃의 정오,
마른 물고기가 비늘을 털고 있다
공림사* 목어를 만났다
등지느러미를 닮은 오색 파라솔이 바람에
파닥일 때마다 쏟아지는 꽃 비늘
야위고 헐벗은 하늘이 휑덩그렁하다
여섯이나 낳아 속이 텅 빈 목어
단청의 물기는 주름진 시간으로 말라버리고
수심을 알 수 없는 두 줄에 매달린 물고기
등 굽은 척추의 허물만 남았다
새벽이 올 때까지 편물을 짜던 당신
붉은 죽비의 손으로
꽃잎 하나에도 길을 열어 준다
벚꽃 잎 떨어져 하얀 혈해를 이룬
김해내외동행정복지센터 주차장에서
주차 관리하는 늙은 목어
만차(滿車)로 허기진 배를 채우는
공림사 여백 속의 흔들림을 닮았다
*공림사: 충청북도 괴산군 낙영산에 있는 절.
-『당신은 낡고 나는 두려워요』, 달아실, 2024.
감상 – 시인은 벚꽃이 지는 어느 날, 괴산 공림사에 왔나 보다. 공림사는 천년 수령의 느티나무가 주인 행세를 하고 있는 곳이지만 시인이 주목한 것은 목어다. 절집 종각을 찾으면 범종과 함께 목어, 운판, 법고를 나란히 볼 수 있다. 불전사물로 흔히 말한다. 부처 말씀이나 불심을 세상 속으로 퍼지게 한다는 의미 혹은 중생의 영혼을 달랜다는 의미를 담아 정해진 시간에 사물의 소리를 차례로 낸다.
목어는 물고기 모양의 나무 안을 파서 소리를 내는데 공림사 목어는 단청이 벗겨졌는지 아니면 원래 단청을 입히지 않은 것인지 화장을 하지 않는 나뭇결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시인이 목어에 주목한 이유다. 시인은 따로 숨기거나 꾸미는 일 없이 “여섯이나 낳아 속이 텅 빈 목어”로 표현함으로써 어머니 모습이 바로 연상되게끔 해준다. 어머니는 자신의 노동과 정성으로 “꽃잎 하나에도 길을 열어 준다”고 했으니 그 꽃잎 한 장은 자신일 수도 형제자매일 수도 있겠다. 또한 무수하게 떨어지는 꽃잎을 생각하면 그 마음은 식구뿐만 아니라 이웃과 자연에도 열려 있다고 봐야겠다.
시인의 시공간을 이동해서 또 다른 목어를 만난다. 이번에는 김해의 행정복지센터에서 주차 관리를 하는 늙은 목어란다. 괴산의 목어가 어머니 이미지였다면 김해의 목어는 지역에 일하는 아버지 이미지가 강하다. 공공근로든 자원봉사든 식사 때를 놓치고 일하는 고단한 모습도 없지 않다. 시인은 김해의 목어와 괴산의 목어를 연결하는 것으로 시상을 매듭짓는다. 연결고리인 “공림사 여백 속의 흔들림”은 다소 낯설다. 목어를 두드려 나는 소리가 사방으로 파장을 일으키는 것도 같고 그 파장에 닿은 시인의 가슴에도 흔들림이 있을 수도 있겠다. 그 흔들림으로 쓴 「목어」는 늙은 부모와 세상 노인의 안부를 듣고 그들의 노고와 사랑에 답하고 싶은 마음의 반향인 게다.
괴산 공림사에 가면 느티나무와 함께 목어를 찾아볼 일이고, 김해 은하사에 가면 쌍어 문양과 함께 자라가 얹혀 있다는 목어도 같이 살펴보면 좋을 것이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