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9:49~51 / 넓은 포용력을 가지신 예수님
(눅 9:49) 요한이 여짜오되 주여 어떤 사람이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와 함께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
(눅 9:50) 예수께서 이르시되 금하지 말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너희를 위하는 자니라 하시니라
(눅 9:51)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우리 예수님 믿는 사람들이 마음이 세상 사람들보다 더 넓을까요? 좁을까요?
당연히 넓었으면 좋겠죠? 그런데 실상은 세상 사람들보다 더 좁다는 말을 듣습니다. 판사들이 기독교인들끼리의 재판을 하지 않으려고 한답니다.
이들은 화해할 수 있는 일도 화해를 하지 않고 끝까지 싸운다고 합니다.
마음이 좁은 사람을 흔히 좁쌀영감이라고 합니다. 좁쌀 크리스천이 많다는 말입니다.
물론 우리 크리스천은 진리를 위해서 목숨을 내걸고 싸워야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 진리 아닌 이해관계 때문에 목숨을 걸고 끝까지 싸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크리스천들이 마음이 좁다는 말을 듣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마음은 그렇지 않으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제자들의 넓은 포용력을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49~50절 어떤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냈습니다.
그는 예수님 이름의 권세를 믿고 행하며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진실한 성도요 능력 있는 목자입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을 따르지는 않았습니다. 제자의 공동체에는 속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왜 예수님을 따르지 않았을까요?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 그는 전임사역자가 아니라 평신도로 살기 때문에 예수님을 따르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이 그를 전임사역자로 부르지 않으셨지만, 그는 평신도로서 예수님의 제자답게 살고 있었습니다.
둘째는 예수님은 좋지만, 예수님의 제자 중에 싫어하는 사람이 있어서 따르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마태 같은 세리나 가룟유다와 같은 이기적인 자나 시몬과 같은 열혈당원이 싫어서 예수님의 제자 공동체에 속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제자 공동체에 속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아주 제자답게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제자 요한은 그가 우리를 따르지 않아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가 귀신을 쫓는 것을 금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요한은 제자 공동체에 대한 자긍심이 매우 컸습니다.
그러나 자긍심이 지나쳐서 독선적이고 배타적인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귀신 쫓는 것을 제자 공동체에 속한 자신들만의 할 수 있는 특권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는 예수님 중심이 아니라 자기 모임 중심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요한에게 그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 쫓는 것을 금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일하면서 제자 공동체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누구든지 제자들 편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믿는 자의 편이라는 것은 적극 지지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첫째 예수님을 중심으로 해야 합니다. 사람 중심의 모임이 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자신의 모임에 대한 자긍심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런 자긍심이 지나쳐서 자신의 모임만이 최고이고 다른 모임에 속한 사람은 형편없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다른 모임에 속한 사람도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본질적인 것에 충실하다면 그 외에 것에 대해서는 포용력을 가져야 합니다.
이단이 아니라면 다른 교단, 선교단체도 우리 편이라는 것을 알고 포용해야 합니다.
교단도 다양합니다. 순복음은 성령을 구하고 방언을 중시합니다.
장로교도 교단에 따라서 다릅니다. 고신 측에는 주일날은 절대 공부하지 않습니다.
합동 측은 하나님에 대한 절대성을 가진 보수층입니다.
통합 측은 예수님 안에서 세상에 대한 이해가 깊습니다.
침례교회는 성경을 강조하고 평신도를 중시하고 여러 형식에 대해서 자유롭습니다. 감리교는 성령 충만과 현실 참여를 강조합니다.
우리 성결교회는 감리교회와 같이 성령 충만을 강조하면서 4중 복음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이런 것은 본질적인 것이 아닙니다. 본질적인 것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것입니다. 이들 모든 교단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우리 교회를 반대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다 우리 편입니다. 이들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이 한 가지를 중시한다면 서로 다른 모든 것에 대해서 서로 존중해야 합니다.
우리만 옳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본질을 가지고 있고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다면 그들이 우리를 지지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둘째는 제자들은 자신들만이 귀신 쫓는 것을 독점하고자 하는 것을 버려야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행하는 것에 대해서 누구나 할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신부들이 성경을 독점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래서 자신들만이 성경을 읽고 가르치고자 히브리어, 헬라어 성경을 자국어로 번역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또 신부들은 자신들만이 제사장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예수를 믿는 모든 사람들이 제사장이라고 합니다.
종교개혁의 핵심은 만인 사제주의입니다.
51절 예수님은 죽으심과 부활 승천하여 하늘나라에 갈 것을 아셨습니다.
예수님이 이것을 아시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시기로 굳게 결심하였습니다. 십자가에 죽으시고자 굳게 결심하셨습니다.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승천할 날이 가까운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이 가까이 올수록 십자가를 벗으려고 합니다. 좀더 편히 쉬고자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죽음이 가까울수록 십자가를 지고자 굳게 결심해야 합니다.
요즘에 백세시대를 바라보면 노년의 준비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돈을 준비해야 한다고 합니다. 건강을 잘 관리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돈이 있고 건강해도 비참한 것은 노년이 되어도 할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노년이 가까이 올수록 새로운 할 일을 만들어야 합니다.
질 수 있는 십자가가 있어야 합니다.
성경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년을 맞이한 사람은 야곱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는 나이가 늙을수록 성령이 충만해졌고 할 일이 있었습니다.
노년에 애굽에 가서 바로를 축복해 주고, 열두 아들을 축복하고, 두 손자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축복해 주었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가르쳤습니다.
우리는 나이가 들고 신앙의 연륜이 많아질수록 더욱 성령이 충만하여 나에게 맡기신 일을 깨닫고 그것을 끝까지 완수해야 합니다.
그 사람이 가장 멋진 노년을 맞이하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그런 사람이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