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시 중동의 충청남도역사박물관 주차장 앞 벽면은 아주 재미나고
친근하게 꾸며져 어린이와 학부모를 부르는듯 했다. 미래의 세대는
역사와 문화, 체험을 어릴 때부터 자주 접하여 자연스레 몸과 마음에
베어있어야 할 것...
역사박물관은 국립공주박물관이 새 건물로 이전해 가기 전의 그 장소이다.
1971년 무령왕릉이 발견된후, 많은 유물을 전시하기 위해 이 박물관을
지었다고 한다.
역사박물관에는 전통한지공예, 천연염색, 전통놀이 체험반 등이 있어서
공주 시민들에게 활발한 역사 문화 전통체험의 장이 되어 있었다.
전통놀이 교실에서 튀어나온 어린이들이 줄넘기를 하고 있다.
이 백제 어린이들은 장치기(새끼를 막대기에 묶어 치기)할 때 입던 옷을
입고 나왔다. 나중에 알았지만 아이들은 장치기놀이와 거기서 발전한 '참고누'
'화가투' 란 놀이를 컴퓨터 게임 보다 더 재미있다고 대답했다.
의젓이 쌍육을 두는 아이들. 백제인들은 '악삭'이라 했는데, 조선시대로
넘어오면서 '쌍육'이라 불렀다. 나무를 깎은 흰말, 검은말을 빨리 넣었다가
얼른 빼내는 자가 이기는 게임이다. 혜원 신윤복의 풍속화에 나오는데,
남녀가 유별한 조선시대에, 남녀가 게임에 푹 빠질만큼 인기가 있었던 모양이다.

쌍륙삼매(雙六三昧)-혜원전신첩』종이에 옅은 색, 28.2× 35.6㎝, 간송, 국보 135호
말은 보통 검은말 16개, 흰말 16개인데 나무로 만들거나 뼈로 만들어 썼다고 한다.
주사위 두개를 굴려서 나온 숫자대로 옮기는데, 말을 어떻게 잘 옮기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 메소포타미아지방을 거쳐 바빌로니아로, 인도를 거쳐 우리나라에
전해진 놀이라니, 실크로드 교역이전일 거 같아 너무 놀랍다고 방과후 리크레이션
교사 김현미 선생이 말했다.

일제가 양반놀이를 의도적으로 없애고 천박한 놀이만 남겼는데,
쌍육놀이는 7년간 그림과 기록으로 연구하여, 3년전부터 선보이고 있다고 한다.
여자 어린이들이 두는 색갈 윷판은 저포놀이이다.
저포는 5개의 윷으로 노는데, '노 났다!' '독 썼다' 등 놀이는 없어져도
파생된 말들은 우리 말 속에 전해져 온다. 김시습의 금오신화에 '만복사 저포'라는
단편이 전해 오고 있다. 양생이란 노총각이 부처님과 저포놀이를 하며, 자신이
이기면 장가 보내달라고 떼를 쓴다고.
아이들은 2개월간 전통놀이를 배운 실력으로 진지하다
어린이 역사교육에 열정이 많은 김현미교사와 역사박물관 운영팀장.
민정희 운영팀장은 일제시대 옛 공주박물관터였던 앞마당 위치를 가르쳐주고,
그시대에 심은 왕벚꽃나무와 잣나무들, 아주 잘 자란 금송을 먼저 아르켜주었다.
나무들이 이 박물관의 역사였다.
박물관 맞은편은 지은지 100년이 넘는 유서깊은 중동성당,
박물관 옆 동산 너머엔 역시 100년 전통의 영명 중고교..이 학교는
독립운동가들을 많이 배출한 학교라 했다.
민팀장이 직접 토요일 페관한후의 역사박물관을 안내하고
잘 설명해 주었다. 56000 여점을 소장하고있으며, 600 여점을
교대 전시중이라고 한다.
-호패, 조선시대의 신분증으로 16세 이상의 남자가 차고다녔음
신분이 높은 출신은 상아, 녹각, 낮은 신분 출신은 참나무, 소나무,
잡목 등으로 만듬.
-관찰사 순력 행차 모형 기타경음악
-아메미야 히로스께, 유물 기증자
아메미야씨는 일제시대에 공주에서 얼음공장을 하던 분으로 그의
손자가 몇년전 카이스트 회의에 참석차 왔다가 이곳을 들려보고
조부의 한국 유물 컬랙션을 기증할 의사를 밝혀 청동기시대부터
조선시대 백자, 분청사기 유물까지 일괄 기증 받았다.
그리고 그의 증언으로 박물관 바로 앞의 우물터도 발굴되었다.
-국고개 우물
2009년 국고개 문화거리 사업을 추진하던 중 이 우물터가
발견되었다. 1970년대 공주박물관 축조시 지하 부분을 메우지 않고,
콘크릿 작업을 한 관계로 원형이 거의 손상되지 않은 100년 이상된
우물이다. 아메미야 히로스께의 얼음공장터이기도 하다.
역사박물관에서는 '보부상, 다시 길을 떠나다'란 테마로 온양 민속
박물관과 함께 살아있는 문화 보부상놀이 시연을 열 예정이다.
보부상 문화가 충청도지역에 가장 많이 남아있고, 그들중에는 아직도
생존해서 트럭을 몰고 장사를 하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국사시간에 배운, 죽은거나 진배없는 단어들이 살아서 나타나
이제서야 망각을 일깨울 모양이다.
첫댓글 몇 년전 갔던 것 하고는 많이 변화된 거 같네요


소중한 우리 것들
시간이 더 흘려버리는 일 없이 묻히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우리의 놀이도 있다면 발전시키고 보급시켜서 대중화 된다면 참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