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째듯한 달’ 보듯이 크고 환한 마음으로
출처 국민일보 : https://www.kmib.co.kr/article/view.asp?arcid=1739420275&code=11171315&cp=nv
신미나 시인 겸 웹툰작가
“육보름으로 넘어서는 밤은 집집이 안간으로 사랑으로 웃간에도 맏웃간에도 누방(다락방)에도 허청(헛간)에도 고방(광)에도 부엌에도 대문간에도 외양간에도 모두 째듯하니 불을 켜놓고 복을 맞이하는 밤입니다.” 정월대보름을 맞이하며 백석의 산문 몇 줄을 옮겨 본다. ‘째듯하다’라는 단어가 생소하여 뜻을 찾아보니, ‘빛이 선명하고 뚜렷하다’라는 형용사란다.
한 해의 첫 보름달이 뜨는 날에는 ‘째듯한 달’ 보듯이 크고 환한 마음으로 소망을 빌어 본다. 정월대보름은 참 신비롭고 귀여운 풍속이다. 대보름에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센다는 속설이며, 아침에 눈 뜨자마자 “내 더위 사라”고 농하며 더위팔기를 하니까 말이다. 몇 가지 유년의 기억도 푸근히 떠오른다.
정월대보름 아침이면 아버지가 분유 깡통에 깡! 깡! 못을 치는 소리로 소란했다. 구멍 난 깡통에 긴 철사줄로 손잡이를 달고, 그 안에 소나무 조각이나 오래 태울 것을 넣었다. 불깡통은 그렇게 완성되었다. 아이들과 불깡통을 휘휘 돌리며 놀다 보면, 콧구멍에 그을음이 까맣게 묻어났다. 옷이며 머리카락에도 불내가 뱄다.
어른들은 달집을 높이 태우며 술과 음식을 나누고, 나는 친구들과 이집 저집 몰려다니며 복밥을 얻어먹으러 다녔다. 밤늦게 쏘다녀도 혼나지 않는 날이었다. 친구 엄마는 귀찮은 내색 없이 오밤중에 찾아온 아이들에게 밥상을 차려 주셨다. 아이들은 고사리와 호박고지, 오곡밥 따위를 들기름에 잰 김에 싸서 먹었다. 달게 밥그릇을 비우는 친구들과 달리, 나는 위가 약한 편이라 많이 먹지 못했다. 하지만 불깡통을 빙빙 돌리다 보면 어느 결에 체기가 가셨다. 빨리 돌릴수록 불길이 거세졌다.
그날의 하이라이트는 불깡통을 던지는 것이었다. 호를 그리며 다리 아래로 떨어지는 불깡통은 유성처럼 찬란했다. 불깡통은 크게 한숨을 쉬듯, 푸시식 소릴 내며 꺼졌다. 마치 우리들의 생처럼 환하고 짧았다.
신미나 시인 겸 웹툰작가
빛명상
토끼이소? 토끼이소!
“그들을 살려 주십시오. 그들은 아무 죄도 없습니다.”
대구의 호텔업계의 신화가 된 화재사건
대구 로얄호텔에서 근무할 때의 일이다.
어느 화창한 일요일 이었다. 나는 일요 미사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성당문을 나섰다. 가을 이어서 성당의 뜰과 거리에는 코스모스가 한들거리고 있었다. 서늘한 바람에 코스모스가 고갯짓을 했다. 나는 꽃들에 흠뻑 정신을 놓으면서 우주의 섭리를 떠올렸다.
이제 머지않아 길고 긴 동면에 들어갈 생명들을 환소이라도 하듯 파스텔 이미지로 곱게 피어오른 코스모스, 그것은 마치 우주마음이 품은 서정의 시상이 기교 없이 깃들여진 한 편의 시 같기도 했다. 나는 걷다 말고 한참을 서서 길거리에 피어난 코스모스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때 지나가던 택시 한 대가 내 앞에 멈춰 섰다. 아마도 길가에 우두커니 서 있는 나를 승객으로 생각한 모양이었다. 어떻게 할까 짧게 망설이던 나는 조금 더 그곳에 머물기로 했다. 잠시 더 꽃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안 탄다는 말을 하려는데, 그러나 나의 발길은 의지와는 무관하게 택시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마치 최면에 걸린 것처럼 그렇게 발 따로 마음 따로 노는 것이다. 거역할 수 없는 힘 같은 것이 분명하게 느껴졌다. 흔히 우주의 마음이 올 때 그러한 것처럼.
“어디로 모실까요?”
택시 기사가 물었다.
“로얄호텔로 갑시다.”
무심결에 내 입에서 흘러나온 말이다. 그러나 나는 아차 싶었다.
“참! 오늘은 일요일이지.”
나는 정신을 차리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나도 모르게 쓴 웃음이 흘러나왔다. 매일 아침 택시에 올라타며 ‘로얄호텔로 갑시다’ 하던 출근길의 습관이 있어 엉겁결에 그렇게 말해버린 것이다.
힐끔 앞쪽의 눈치를 보니 기사는 앞만 응시하며 운전에 열중할 뿐이었다. 괜스레 기사에게 싫은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다. 이왕내친 김에 그냥 들러보리라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래, 가서 한번 둘러보고나 오지 뭐….’
일요일 같은 때 불시에 나가 직원들의 근무 상태를 점검해보고 격려해 주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쉬는 날 호텔의 돌아가는 모습을 눈으로 확인해본 지도 꽤 된 것 같았다. 돌아오는 길에 직원들과 식사라도 같이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느긋하게 마음을 먹고 시트 속에 몸을 묻었다.
호텔 주차장에는 평일 보다 많은 차들이 주차되어 있었고, 로비에도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다. 먼저 커피솝으로 들어가 봤다. 그야말로 빈자리가 없었다. 꽉 들어찬 홀 안에는 족히 50쌍은 돼 보이는 선남선녀들이 앉아 있었다. 때가 때인지라 휴일을 이용해 선들을 보는 모양이었다.
커피숍을 나와 호텔 이곳 저곳을 계속 둘러보았다. 그때 뒤쪽에서 누군가 다급하게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직원 하나가 혼비백산한 얼굴로 달려오고 있었다. 그 직원은 나를 발견하고는 소리쳤다.
“지배인님! 토끼이소!”
토끼이소? 도망가라는 말이었다. 나는 화들짝 놀랐다. 무슨 일이 터진 게 분명했다.
“왜? 무슨일인데?”
그러나 직원은 어디로 내뺐는지 벌써 내 눈앞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몹시 불안했다. 사고가 난 건 틀림없는데, 어디서 났는지 무슨 사고인지 전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사방을 둘러봐도 이상한 징후가 잡히는 곳은 없었다. 그래서 마음은 점점 더 불안해졌다. 가만히 서 있을 수가 없었다. 나는 프론트로 뛰었다. 그러나 프론트도 이미 비어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
나는 사태의 내용을 파악하지 못해 안정부정하며 프론트 앞을 서성거리고 있었다. 그때 게단 위쪽에서 도어맨 하나가 뛰어내려 왔다.
“지배인님! 토끼이소!”
도어맨도 똑같이 소리치더니 내가 어떻게 제지하기도 전에 바람처럼 사라져버렸다. 그 뒤를 이어 몇 명의 직원들이 우루루 달려 내려오면서 역시 똑같은 소리만 했다.
“토끼이소! 토끼이소, 지배인님!”
밸맨도 교환원도 아예 내 얼굴은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 마치 정신 나간 개떼들처럼 내 말은 듣지도 않고 도망가기에 바빴다. 이놈도 토끼이소, 저놈도 토끼이소, 온통 토끼이소 뿐이었다. 뒤따라 내려오던 스카이라운지 주임만이 그나마 내 손을 잡아주면서 정중하게 ‘토끼이소’ 했을 뿐이다. 그도 좌우 설명없이 쏜살같이 줄행랑을 놓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도무지 상황을 파악할 길이 없었다.
손님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평온하게 일을 보고 있는데 직원들이 홍수에 쥐 빠져 나가듯 솔솔 빠져 나가는 것을 보니 화가 치밀었다. 무슨 사단이 벌어졌다면 손님들부터 대피시켜야 하는데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그때 기관실 책임자가 지하 계단을 뛰어 올라 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 사람 역시 정신이 나간 모습이었다.
“지배인님! 토끼이소!”
화가 치민 나는 역시 이말만 남기고 도망가려는 기관실 책임자의 팔을 꽉 붙들었다.
“대체 무슨 일이데 이렇게 다들 얼빠진 모습들이에요?”
“지금은 말씀을 드릴 시간이 없심더. 우옜든 지금은 토끼고 나서….”
“무슨 일이에욧?”
나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정말 한심스러워 미칠 지경이었다.
“부, 부, 불이라예! 보일러실에 불이 났심더!”
“뭐라구?”
큰일 이었다. 보일러실이라면 커피숍 바로 아래에 위치하고 있었다. 지금 카피숍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앉아 있는가? 보일러실의 대형 보일러가 폭발한다면 엄청난 인명 피해가 생길 것은 뻔한 일이었다. 그런데 직원들은 그 폭발이 무서워 정신없이 제 몸부터 빼기 바빴던 것이다.
“지배인님, 빨리 토끼….”
“시끄러워요! 잔말 말고 날 따라와요.”
“어델 가실라꼬예? 이제 곧 보일러가 폭발할낍니더. 시간이 없어예.”
“시끄럽다니까요! 당신들 저기 손님들이 보이지도 않아요? 가서 불을 꺼야 할 것 아니에요? 게다가 당신은 보일러실 책임자가 아니오? 그런 사람이 자기만 살겠다고 이럴 수 있는 거요? 따라와요! 죽어도 불에 타 죽읍시다.”
나는 119에 화재신고를 한 뒤 뒤로 내빼려는 기관실 책임자의 팔목을 힘껏 붙들고 보일러실로 달려 내려갔다. 달려가면서도 내 머리 속에는 커피숍 가득 웃고 있던 사람들의 모습이 지워지지 않았다. 객실이나 다른 곳에 있는 사람들은 보일러가 폭발한대도 어느 정도의 시간을 가지고 대처할 수 있지만 커피숍은 사정이 달랐다. 폭발과 함께 모든 것이 그대로 끝나는 것이다. 때문에 대피시키고 움직일 시간도 없었다.
“그들을 살려주십시오. 그들은 아무 죄가 없습니다.”
나는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무고한 생명들의 안전을 빌었다.
지하실로 내려가니 매캐한 연기와 함께 열기가 훅 느껴졌다. 그러나 다행이도 불은 아직 보일러실 밖으로 번지지 않고 있었다. 보일러실 문 쪽으로 붉은 화마가 혀를 내미는 것이 보였다. 소방대가 도착하기 전까지 불길이 더 번지는 것을 막아야 했다.
“가서 소화기를 있는 대로 가져와요!”
나는 기관실 책임자에게 소리를 질렀다. 책임자는 소화기를 네댓개 가져다 놓더니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대로 토낀 것이다. 소화기를 들고 보일러실 문 쪽으로 접근해 갔다. 보일러는 불길 속에 파묻혀 아예 보이지도 않았다. 나는 소화기의 안전핀을 뽑고 불길에다 뿌리며 동시에 우주의 마음을 간절히 불렀다.
갑자기 맹렬히 타오르던 불길이 주춤해졌다. 아무리 소화기를 뿌렸다지만 보일러실 가득 넘실거리던 불길이 너무 쉽게 풀이 죽어갔다. 더구나 그 방은 유류가 잔뜩 적재되어 있었다. 그렇게 쉽게 불길을 잡을 수 있으리라고는 기대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순간 나는 우주의 마음을 느꼈다. 그것은 틀림없는 초광력(超光力)의 효력이었다. 그러면서 아예 마음을 바꿔먹었다. 이참에 불길을 모두 잡아버리기로 했다. 생각이 그렇게 돌아서자 두려움도 없어졌다. 나는 불길 속으로 뛰어들며 미친 듯이 소화기를 뿜어댔다.
그렇게 사투를 벌인지 20여 분쯤, 불길이 완전히 사그라졌다. 나 혼자서 그 큰 불길을 막아낸 것이다. 불을 끄고 나서도 나는 한참을 그대로 멍하니 서 있었다. 어린애 장난도 아니고 정말 믿어지지 않았다. 소방대가 도착했다.
“누가 장난 전화를 했나보군요. 저흰 아무 일도 없습니다.”
나는 출동한 소방대원들에게 차를 한 잔씩 대접하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돌려보냈다. 미안한 마음도 들었지만 그 편이 나았다. 그리고 직원들을 소집했다.
“저도 전화만 받고… 곧 폭발한다고 그러기에….”
직원들의 말은 한결 같았다. 위험하다는 전화만 받고 대피를 했다는 것이다. 아마 보일러실 관계자 중 하나가 교환에게 화재 사실을 알리자 그것이 직원들 사이에서 비상 연락망처럼 돈 모양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손님들만 버려두고 밸맨부터 교환원까지 몽땅 빠져 나갈 수가 있는 것인지….
지금도 그때의 화재사건은 대구의 호텔 업계에서 신화처럼 떠돌고 있다.
행복을 주는 남자
초판 1쇄 인쇄일 2002년 6월 07일
초판 1쇄 발행일 2002년 6월 20일 P. 65-71
첫댓글 감사합니다.
귀한문장 차분하게 살펴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운영진님 빛과함께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초광력의 위력을 느끼게하는 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현존의 빛과함께 하신
초광력의 힘! 귀한 글 마음에
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초광력으로 큰 사고를 막을 수 있었던 이야기,
빛의 힘에 무한 공경과 감사를 올립니다 .
감사합니다 .
정말 감사하고 감동인 빛역사
사건입니다. 감사합니다.
신화같은 ' 토끼이소. 토끼이소'
학회장님께서 불길속으로 뛰어든 이야기 .
빛의 위력을 실감합니다. 감사합니다
로얄호텔 화재사건 아찔합니다.
감사합니다.
빛역사이야기 감사합니다.
우주마음의 뜻이 담긴 일요일 호텔 출근, 그리고 위급한 상황...최고의 선택을 하신 학회장님께 감사와 존경의 마음 올립니다.
보름달처럼 크고 환한 마음으로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초를 다투는 아주 위험한 순간에 무고한 생명들을 구하기 위해 무서운 화마 속으로 걸어 들어가시는
학회장님의 순수하고 아름다운 마음에 깊은 감동과 함께 소중한 교훈을 얻습니다. 감사합니다.
초광력의 힘,
언제 읽어도 감동입니다.
빛역사 이야기,
감사합니다.
감사 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대단한 희생정신입니다.
감동의빛의글 감사드립니다
현존의 빛안에 있음이 축복입니다.
"그들을 살려주십시오." 학회장님의 간절한 마음이 전해져 울컥합니다.
우주마음과 학회장님께 공경과 감사를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우주마음이 주시는 끌림이 신기합니다. 화마로 부터 귀한 생명을 살리신 학회장님 공경합니다.
폭발직전의 보일러실 화재가 우주마음의배려로...빛책속의 귀한글 감사합니다^&^
귀한글 감사합니다. 우주마음과 학회장님께 공경과 감사의 마음을 올립니다
귀한 글 감사합니다.
"그들을 살려주십시오.
그들은 아무 죄가 없습니다."
마음이 울컥합니다...
우주마음님 학회장님
감사합니다♡
귀한글 감사합니다
뜨거운 열기의 화마속에서 소화기를 뿜어대는 학회장님의 필사적인 사투.. 빛의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ㆍ
귀한 빛 의 글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귀한 빛이야기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가슴이 콩당거리는 대구 로얄호텔 보일러실 화재사건,
수 많은 인명을 살려주신 우주마음과 위험을 무릅쓰고 화재를 진압하신
학회장님께 무한한 감사와 공경의 마음 가득 올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