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장승포 해안로
십일월 셋째 일요일은 아침나절부터 부산으로 가야 했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반듯하게 성장해 직장 생활을 잘하는 조카 결혼식이 도심 호텔에서 있어서였다. 코로나 와중에 일곱 형제자매와 여러 조카들이 모였고 손자들을 만나 반가웠다. 예식을 마치고 뷔페에서 생선회를 안주로 맑은 술을 몇 잔 들었다. 이후 창원으로 복귀할 겨를이 없어 가덕도 형님의 차에 동승해 거제로 향했다.
퇴직 후 가덕도에서 전원생활을 보내는 작은형님은 칠순인데도 텃밭 농사를 지었다. 작은형님은 식장으로 오던 길 올가을 수확한 고구마와 호박을 트렁크에 가득 실어와 형제들에게 나누기도 했다. 점심 식후 시내를 벗어나 거가대교를 앞둔 성북 나들목에서 형님의 차에서 내려 연초로 가는 2000번 버스를 탔다. 주말이면 카풀 지기의 차로 다녔던 거가대교를 대중교통으로 건넜다.
연사 와실로 드니 평일 퇴근 시간보다 일러 틈이 나서 옷차림을 바꾸어 산책을 나섰다. 연사삼거리로 나가 능포로 가는 10번 버스를 탔다. 옥포를 거쳐 아주를 돌아가니 대우조선소 정문이었다. 거리에는 일요일이라 회색 작업복을 입은 조선소 근로자들은 볼 수 없었다. 두모고개를 넘은 장승포수협 앞에서 내려 포구 수변공원으로 나가니 포장마차에는 야간 영업을 준비하는 때였다.
때로는 포구엔 닻을 내린 어선들이 여러 척 묶여 있었는데 조업을 나섰는지 텅 비어 있었다. 지심도로 떠나는 연락선도 해상 운항 중인지 보이지 않았다. 이른 아침이면 생선 경매로 왁자했을 수협 공판장은 썰렁했다. 포구 바깥 해안로로 오르니 오후의 하늘엔 낮은 구름이 드리워 바다 특유의 쪽빛은 볼 수 없었다. 포구 건너편 거제대학이 위치한 기미산은 늦가을 단풍색이 완연했다.
포구 바깥 바다에는 지심도가 악어가 누운 등처럼 보였다. 물살을 가르고 다가오는 배가 지심도로 오가는 여객선인 듯했다. 산책로에서 바라보인 해상에는 조업 중인 어선과 낚싯배들이 더러 보였다. 가로수로 심겨진 벚나무는 낙엽이 모두 져 나목인 채 겨울을 날 채비를 마쳐 놓았다. 아스팔트로 포장된 옥수동으로 가는 산책로에는 차량이 다니질 않아 공해나 소음에서 자유로웠다.
구름이 낀 늦은 오후여서인지 해상에 뜬 배들이 불을 켠 채 운항하거나 조업했다. 어선만이 아닌 덩치가 큰 배들은 가스 운반선과 같은 특수 선박인 듯했다. 장승포 앞 탁 트인 대한해협은 여러 배들이 진해 신항만으로 드나드는 길목이다. 거대한 컨테이너 운반선은 섬이 움직여 가는 듯하기도 했다. 산책객이 없는 전망대에서 바다에 뜬 배들을 바라보다 산언덕 모롱이를 돌아갔다.
옥수동으로 내려서는 갈림길에 이르니 날은 어두워져 가로등에 불이 켜졌다. 내친 김에 옥수동으로 가질 않고 양지암 조각공원으로 들어섰다. 여러 차례 거닐었던 산책로였는지라 어둠이 내린 저녁에도 걸어본 적이 있어 지형지물은 낯설지 않았다. 신항만으로 드나드는 바다는 여전히 불빛이 비쳤다. 조각품이 세워진 산등선에 서니 저만치 능포 주택지와 수변공원도 불빛이 환했다.
산등선을 따라 더 나가면 양지암 등대에 이른다만 보안등이 없는 곳이라 나아가질 않고 능포 포구로 내려섰다. 포구 동편 방파제 바깥 해상에는 교각을 세워 낚시공원으로 조성되어 있었다. 엊그제 시월 보름이 지난 열이레 달이 솟을 법한데 구름에 가려 보이질 않았다. 낚시꾼들은 어둠 속에서도 조명을 밝혀 고기를 낚느라고 집중해도 낚시 문외한인 나에겐 관심 사항이 못 되었다.
능포 버스 종 가까이 두어 차례 들린 분식집에 불이 켜져 있어 들어가 봤다. 재작년 처음 들렸을 땐 몸이 아파 병원에 입원 치료를 앞둔 주인 아낙이었다. 불편했던 몸은 다 나은 듯한데 코로나라 자영업자들이 힘들게 버틴 날들이었지 싶었다. 맥주를 한 병 따 비우면서 국수를 시켜 먹었다. 늦은 시간 와실로 들어 저녁을 지어 먹으려니 서글픈 생각이 들어 끼니를 간단히 해결했다. 21.1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