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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June 22nd, 2007
아침부터 비가 오려 그랬는지 밤새 어지간히도 쌀쌀하더라니.
겨우 하룻밤 묵는거라 시트 렌탈도 없이 스카프와 조그만 담요를 온 몸에 칭칭감고
새우잠 자듯 잔 탓에 몸은 찌뿌둥하고 허리는 욱신욱신. +_+
짐 싸고 이동하고 짐 풀고, 다시 짐 싸고 이동하고 짐 풀기가 반복되던 생활도 오늘로 마지막이다.
파리에서만 무려 네번째이자 마지막이 될 호스텔로 이동했다.
요전, 나에게 홍수가 났다며 물을 먹였던, 매운 해물탕 국물에 말아먹어도 모자랄 "그"놈의 호스텔.
어젯밤 맥주 두 캔을 내리 들이키고 바로 뻗어버렸더니
역하게 올라오는 맥주의 뒷 맛이 가히 끔찍스럽다.
고깟 두 캔에 쉽게 나가 떨어질 김양이 아닌데 여행의 끝에 다다라 몸이 지칠대로 지쳤는지
아침까지 해롱해롱한 이 상태는 어쩔건데..?
날은 꾸리꾸리하고 먹구름은 잔뜩 끼어있고 여행할 기운이 똑 떨어졌다.
이런 날엔 푹신한 쇼파에 폭-쳐박혀 책 한 권들고 씨름하는 게 상책인데,
거기에 향긋한 헤즐넛 커피도 있어주면 고맙고, 초코 쿠키까지 있어주면 더더욱 고맙고,
창 밖으로 비까지 내려주면 금상첨화.
하지만 여긴 파리, 나는 시간이 정해진 여행자.
그러므로 또 다시 길을 나선다.
오늘은 편히 쉬고만 싶은 맘을 고려해 나머지 공부하듯 아직 가보지 않은 곳들 중에
몇 군데만을 골라 무리하지 않고 여유있게 둘러보기로 한다.
트윅스 초콜렛의 달콤함에 취해 도착한 곳은 마들렌사원.
나폴레옹에 의해 지어졌다는 사실만이 다를 뿐, 여느 성당들과 다를바 없는 성당인데도
코린트식 기둥으로 신전의 외관을 한 모습이 왠지 독특한 풍미를 풍겨내고 있었다.
조인성과 신민아가 열연했던 영화, "마들렌"에선 마들렌이 빵 이름이었던 것 같은데;;
여하튼 마들렌은 마리아 막달레나의 프랑스식 이름이란다.
이른 아침, 어두컴컴하고 사람들도 별로 없는 성당 안으로 들어서자
마리아 막달레나의 놀라울 정도로 온화한 승천상이 나를 맞는다.
맨 앞자리에 털석 앉아 홀린 듯 넋을 잃고 한참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왠지 처진 기운이 다시 쌩쌩해지는 기분.
마들렌사원을 나오자마자 마구마구 쏟아붓기 시작하는 비.
안그래도 우울하고 적적한데 파리의 날씨마저 나를 제대로 돋구어댄다.
그래서 의도치않게 도착한 오페라하우스.
내부까지 들어가 볼 거 있나..? 싶었는데 비는 그칠 생각도 않지,
워낙에 드세게 내리치는 비때문에 우산은 이미 무용지물이고,
뭐 오늘은 딱히 하고 싶은 일도 없거니와 또 수중엔 돈도 있겠다, 누이좋고 매부좋고 그냥 입장~
여행의 의미가 참 많이도 변질됐다, 김민영.-_ -;;
그나저나 저기 저~ 황금 하프를 하늘 높이 치켜 든 청동상이 바로 그 유명한 아폴로구낫. 흠흠.
티켓을 끊는데 남자 직원이 한마디 보탠다.
"티켓 파는거야 저는 뭐 상관은 없지만 오늘은 공연 리허설로 인해서 중앙홀 관람이 불가해요.
그래도 괜찮으시겠어요?"
순간 아차, 싶었지만 뭐 달리 방법이 있나, 입구에서 쪼그려 앉아 죽치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괜찮아요, 주세요~" ^-^;;
화려한 대리석으로 꾸며진 중앙계단을
뒤로 한 1미터는 족히 끌리는 비단결 드레스를 입고 등장해 주어야 하는건데.
지금 나의 방파점퍼며 크로스백은 영~ -_ -ㅋ
하아- 현실과 이상 사이의 벽이 이렇게도 두터울 수 있는 것이냐ㅠ
"여기가 저희 집 복도에요. 호호호호~"
... 라고 말할 날은 과연 도래하기나 하는 걸까.
저에겐 꿈이 하나 있습니다.
이런 서재 한번 가져보는 것이 평생의 제 소원입니다.
책만 보면 환장할 것처럼 눈이 팍 하고 도는 이 특이성질은 여기서도 유감없이 발휘되고 말았다.
그렇다고 다 읽는것도 아니면서;;
원대한 꿈 하나를 가슴에 올곧게 품었던 마틴 루터 킹도 결국엔 꿈을 이뤘는데
김양, 너도 절대 기죽지 말고 꿈을 향해 전진하여라!
에헷? 개방을 안한다던 중앙홀이 열려있었다.
이~야! 호화롭기로는 다른 공연시설은 저리가라 한다더니 역시나;;
입이 쩍 벌어지고 다물어지지 않아 한참을 고생했다.
으리번쩍한 금빛 난간들은 정말 금일까..?? -_ -?? 나, 떼어갈래~~
조명이 아웃된 상태로 컴컴해 도무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중앙홀
문이 열렸다며 신나서 들어온 사람들은 에잇, 뭐야, 어둡자나, 하고 바로 나가버렸지만
나는 난간에 걸터앉아 시간에 구애받지않고
눈을 잠시 붙인 상태 그대로 중앙홀의 공기에 완연히 취해있었더랬다.
잠시 후 조명이 켜지는 소리가 들렸다.
기다리는 자에게 복이 있다, 하더이니 오늘 리허설을 앞둔 공연의 막은 물론
하마터면 놓쳐버렸을 환상적인 천장화를 볼 수 있었다.
마르크 샤갈의 "꿈의 꽃다발"
드골 정부 문화부 장관이었던 앙드레 말로의 제안으로 샤갈에 의해 제작된 천장화.
앙드레 말로와 관련되어 있기도 했지만
책에서 처음 샤갈의 살아있는 듯 생생한 색채처리에 매료되어 기회가 된다면 꼭 보고 싶던 참이었다.
모차르트나 바그너, 차이코프스키 등 유명한 작곡가들의 오페라와 발레를 소재로
그들의 위대함을 찬양하는 헌정작을 이렇게 멋지게 구현시켜 놓았으니
명실상부한 예술가로서의 입지를 단단히 굳힐 수 있는 것도 당연.
러시아화가로 중간중간 에펠탑이나 오페라하우스 등을 그려넣은 것 또한
프랑스를 배려한 그의 인간적인 재치가 묻어나는 것 같아 그림을 보는 또 하나의 재미로 다가온다.
붉은 색과 금색이 주를 이루는 중앙홀 내부에 휘황찬란한 색채들이 어우러져
그야말로 꿈의 꽃다발을 오롯이 피워내고 있었다.
"자, 이제 다들 나가주시죠."
쫓겨나듯 아쉬움을 가득 안고 종종 걸음으로 나와 오페라하우스 내부를 한바퀴 삥~둘러보고
다시 돌아온 중앙홀, 문 밖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대거 몰려있다?!
무슨 재미난 볼거리라도 있나 사람들을 따라 빼꼼히 고개를 내밀었더니
문에 달린 창을 통해 리허설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다.
아- 좋다, 멋있고 웅장하고 화려한 것이.
이런 곳에서 공연 한번 보면 소원이 없겠다 싶다.
그 생각부터 시작해 그러려면 최소한 외국에서 살아야하고,
그렇다면 파리나 런던이 좋겠지..? 란 생각까지 미치다가
차라리 내가 공연을 하는 것도 괜찮겠군까지. -_ -;;
아이고, 민영아, 적당히 혀라~잉?!
18세기 초에 세워진 건물들에 둘러싸인 방돔광장
44미터 높이의 청동탑은 나폴레옹의 오스텔리츠 전투 승전을 기념해
전리품이었던 1,200개이 대포를 녹여 만든 것이라고.
파리 어딜가나 나폴레옹, 나폴레옹, 나폴레옹, 어디든 관련되지 않은 곳이 없으니
땅딸막한 장군님의 위력이 가히 대단하긴 했는가보다.
기분이 좋아졌다, 오랑주리 미술관이나 가볼까?
그래서 얻은 판타지한 루소의 그림 티켓!
지금까지 받은 미술관 티켓들 중에 가장 맘에 들어! ^ㅁ ^♡
한 때 예술가의 후원자이자 중개인으로 명명을 떨쳤던 폴 기욤의 수집작을 모아 놓은 곳인데
규모도 그리 크지 않고 부담없이 산책하듯 둘러볼 수 있어 생각보다 너무 좋다.
우선 지하 1층에는 르느와르, 세잔, 피카소, 모딜리아니, 앙리 마티스 등을 포함한
20세기의 유명화가들의 작품이 잔뜩 전시 되있는데 그 시대에 이런 뛰어난 안목을 갖고
수많은 예술가들을 후원함과 동시에 작품을 수집까지 했던 폴 기욤이란 사람, 정말이지 대단하다 싶다.
책에서도 쉽게 보지 못했던 유명화가들의 알려지지 않은 작품들까지
실제로 접하는 자리였던 만큼이나 뜻깊은 시간이었다.
문제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는 사실.
클로드 모네의 "수련"이 남아 있었다!!
지상의 두 개의 큰 전시실 안에 네 면의 벽을 가득 채우며 걸려 있었던 "수련"을 맞닥뜨리자마자
금방이라도 건드리면 울음샘이 터져버릴 것 같은 상태에 있던 나를 톡"하고 건드려
끝내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다.
왠만하면 슬픈 영화를 봐도 지독하다 싶을 정도로 결코 눈물 한 방울 보이지 않는 나인데
요즘 집을 떠나 있어서 그런지 감정이 부쩍 말랑말랑 해졌는가보다.
바보같이 눈물이나 질질짜고.. 쳇.
터져버린 눈물샘은 끝도 없이 멈추질 않고 계속계속 흘러내렸다.
전혀 예상치도 못한 갑작스런 감정 반응에 스스로 놀라하면서도
"수련"을 통해 전해져 오는 감동의 전율에 몸을 바르르 떨지 않을 수가 없었다.
완전히 나를 사로잡고도 모자라 감정의 샘을 톡하니 찔러버린 클로드 모네,
이번 유럽여행에서 가장 맘에 들었던 작품 하나를 꼽으라 한다면 당당히 "수련"이라 말하겠다.
루브르를 포기하고, 오르세까지 못본다해도 "수련"만 본다면 그걸로도 만족할 수 있겠다.
남은 저녁은 루브르로!
월요일에 보지 못한 프랑스 회화전시실을 둘러보기 위함이었다.
"수련"을 보고 와서인지는 몰라도 무얼 봐도 감정이 무덤덤하고 밍밍하기까지.
뭐 이래, 단무지 빠진 김밥에 소세지 빠진 부대찌게요, 치즈가 빠진 와인 한 잔이로다.
이로써 "수련"은 회화감상에 있어 강한 내성을 불어넣은 것이 확실함이 입증됐다.
9시 25분 폐관시간을 향해가는 시각.
회화전시실을 둘러보고 시간이 남아 조각작품들을 둘러보던 차
앗! 저기 계단에 뭔 흐리멀건한 사람들이 저렇게도 몰려있대??
호기심에 계단을 따라 내려왔더니, 웬걸, 트릭이었다. -_ -;;
시계로 얼굴을 가리고 있으니까 진짠지 가짠지 분간이 안가잖아효!!
대체 누가 만들었는지 아이디어 한번 기막히다.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걸까.
혹시 하루 24시간으로 모자란, 늘 시간에 바삐 쫓겨사는 인간군상들을 나타내는 건 아닐까.
넌 나에게 있어 1시간짜리 친구,
당신은 큰 맘 먹고 30분정도 할애해줄 수 있는 사람,
그대는 내 하루를 다 주어도 모자란 사람, 등등
우리는 이미 삶에서 인간 대 인간과의 관계를 시간이란 잣대로 분류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사람이란 건, 그저 감정 대 감정으로 만나면 그만인 것을
나조차도 이런 시간의 늪에 점점 빠져들어 무감각해지는 것 같아 순간 섬칫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시계얼굴의 인간들 맞은 편에 약간은 힘겨워보이는 마이크 맨이 보였다.
고대 그리스신화나 로마신화의 주인공들이 동서남북으로 늘어선 이 곳에
청바지에 남색 티셔츠를 달랑 걸친 캐쥬얼 룩에 스포츠머리를 한 이 남자의 모습이
어울리는 듯 어울리지 않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하면서도
루브르의 재치에는 넘어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는 거.
어딜가나 흔히 볼 수 있는 인터뷰 현장같기도 하고.
동시대의 작품만을 한데 모아 어느정도 정제된 분위기에서 작품 전시를 하는 박물관에서
현대의 미술작품을 함께 전시해, 그것도 전시 그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닌
또 다른 새로운 의미와 재미를 관람객에게 제공해 준다는 점에서 꽤나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변화의 주도는 항상 이렇게 새로움에 대한 도전에서 비롯되는 것이지, 아암.
내일은 어떤 새로움에 대한 도전을 감행해 볼까나?
0시 20분, 두명의 룸메이트들이 자고 있다.
얼른 일기를 대충 마무리 짓고 조명을 꺼주어야지.
밖은 여전히 비가 내리고 으슬으슬 추운 공기로 가득차 있다.
호오- 따뜻한 담요가 나를 간절히도 부르는 이 밤!
첫댓글 이야 오페라 하우스 사진으로 이렇게 생생하게 보는거 첨인데요.. 끝장나게 멋있네요. 저도 가게 되면 관람을 해야될까봐요.ㅎ
오페라 하우스 관람만이 아닌 공연관람까지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ㅎㅁㅎ;;
와우~~ 저도 작년 12월에 오페라하우스 가르니에 중앙홀의 "꿈의 꽃다발" 을 보고는 그만... 제 사진은 좀 흔들렸는데... anne 님의 사진은 선명하네요. 멋져요!
꿈의 꽃다발, 정말이지 환상 그 자체더라구요,, 그쵸??
극장안이 예뻐서 비공개 개인 홈피에 퍼가요~
제가 더 영광이네요~^-^
아, 저 오페라 하우스는 정말. 화려함의 극치군요. 저 샹들리에라니요! 오페라의 유령의 한장면이 생각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