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9:52~56 / 지역감정에 사로잡힌 사마리아인들
(눅 9:52) 사자들을 앞서 보내시매 그들이 가서 예수를 위하여 준비하려고 사마리아인의 한 마을에 들어갔더니
(눅 9:53) 예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기 때문에 그들이 받아들이지 아니 하는지라
(눅 9:54) 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이를 보고 이르되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저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눅 9:55) 예수께서 돌아보시며 꾸짖으시고
(눅 9:56) 함께 다른 마을로 가시니라
52~53절 예수님은 사람들을 미리 사마리아 마을에 보내어 여행에 필요한 것을 얻고자 하였습니다. 음식과 물을 얻고 잠자리를 준비하려고 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마리아 사람들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므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당시에 사마리아 사람과 예루살렘 사람은 서로 상종치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갈릴리에 계셨으면 영접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자신들을 무시하는 예루살렘에 올라가므로 그들은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루살렘 사람과 상종치 않은 이유는 지역감정 때문입니다.
이 지역감정은 거의 6~700년 이어져 내려온 뿌리 깊은 것입니다.
bc722년에 북이스라엘이 망하고 사마리아는 혼혈족이 되고 혼합종교가 되었습니다. 유대인은 이들을 무시하였고 화가 난 사마리아 사람들은 이들과 상종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는 호남과 영남의 지역감정이 있습니다. 이것은 삼국시대부터 형성된 것입니다. 남북이 분단된 지 70년이 넘었지만, 남북한 간의 갈등의 골도 큽니다. 우리나라에 남성와 여성의 갈등, 기성세대와 신세대와 갈등, 보수와 진보의 갈등이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이런 갈등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것으로 교회 안에서 편을 가르고 서로를 배타적으로 대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는 서로 영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 안에서 편을 가르지 말고 모든 사람을 내 편으로 영접해야 합니다.
54절 사마리아 사람들이 영접하지 않자, 야고보와 요한은 불로 그들을 멸하여 심판할 것인가 물어보았습니다. 그들은 엘리야가 자신을 잡으러 온 50부장을 두 번이나 불을 내려 죽인 것처럼 죽이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경우는 엘리야와의 경우는 다릅니다. 엘리야는 자신을 죽이고자 하는 교만한 자를 자기방어적인 차원에서 죽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는 아직 십자가의 복음이 완성되지 않은 구약적인 배경에서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요한과 야고보는 예수님이 인간의 죄로 십자가를 지고자 오셨는데도 자신들이 하나님이 되어 그들을 심판하고자 하였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지 않은 것은 분명히 잘못한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심판하는 권세가 없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이신 예수님도 초림 때에는 심판하러 오시지 않았습니다.
심판은 다시 오실 예수님이 다시 오실 그때 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심판하는 일은 재림 예수님께 맡겨야 합니다.
우리는 심판을 하나님께 맡기고 영접지 않는 자들을 위해서 축복을 빌어주어야 합니다.
그들의 필요한 것을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가 목마르거나 배가 고프면 마시고 먹을 것을 주어야 합니다. 그들의 연약함과 죄를 감당해 주어야 합니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겨야 합니다. 영접하지 않는 자에게도 복을 빌어주어야 합니다. 그들이 복을 받을 자격이 없으면 그 복은 나에게 돌아올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심판은 하나님께 맡기고 모든 사람에게 복을 비는 사람입니다.
55~56절 영어 성경에는 예수님은 심판하고자 하는 그들이 하나님의 영에 속하지 않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사탄의 영에 속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세상에서 서로를 심판하는 것은 사탄이 하는 것입니다. 성령은 살리는 일을 하십니다. 성령님은 한 생명이라도 멸망에 이르지 않고 살리는 일을 하십니다.
예수님은 초림 때는 생명을 멸하러 오지 않고 구원하러 오셨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떠나서 다른 마을로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오랜 시간 무시받았기 때문에 충분히 예수님 일행을 영접하지 않을 수 있다고 이해하셨습니다. 그들도 언젠가는 예수님을 믿을 것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영접하지 않을 뿐 아니라 모욕하는 자들도 품어 주고자 하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에게 침을 뱉고 주먹으로 뺨을 치고 십자가에 못 박는 자들까지도 영접하시면서 아버지여 그들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들이 무지로 그렇게 하는 것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는 모든 죄인을 품고 영접하시고 감당하셨습니다. 그들이 변화될 것을 바라보셨습니다.
십자가의 예수님을 생각할 때 우리가 영접하지 못할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그러나 그렇게 사랑해도 그 사랑을 영접지 않는 자들이 있으면 예수님을 다시 오실 때 그들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심판은 다시 오시는 예수님께 맡겨 드려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는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하려고 힘써야 합니다. 우리를 영접지 않는 자들의 삶을 그들 편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그들이 어떻게 자랐는지 생각한다면 이해 못 할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동성애자도 이해할 수 있고 모슬림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런 상황에서 자랐다면 우리도 그랬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넓은 내면으로 모든 사람을 이해하고 복을 빌어야 합니다.
다만 그런 사람들의 죄를 따라서 행하지 말고 거룩하게 살도록 힘을 써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세상 사람들보다 더 넓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좁은 마음을 가진 사람을 좁쌀영감이라고 하지요, 넓은 마음은 하해와 같다고 합니다. 하해는 여름 바다를 말합니다. 여름 바다에는 고래부터 피라미까지 모두 다 있습니다. 바다는 넓고 깊습니다. 우리는 여름 바다 같이 넓은 마음으로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을 다 영접해야 합니다. 심판은 재림 예수님에게 맡기고 다 영접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고 믿음으로 산다면 그들을 다 우리 편으로 생각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