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영 칼럼]
임종석은 이분 영정에 무릎꿇고 사죄해도 용서받기 힘들다
북한 지옥 탈출 귀환 국군포로, 이제 13분만 남았다
손해배상금 지급 거절 경문협은 역사의 죄인
▲ 북한 김정은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승소한
탈북 국군포로 고 한재복 씨가 2020년 7월 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을 박선영 사단법인 물망초 이사장,
변호인단과 함께 손을 잡고 나서고 있다. ⓒ정상윤 기자
"내가 북한과 김정은 이겼는데..."
“돈 몇 푼이 중요하오?
내가 북한과 김정은을 이겼다는 게 중요하지.
고맙소, 정말 고맙소.
이제 나는 여한이 없소.”
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한데...
그래서 더 죄스럽고 송구한데...
의사가 2월은 견디실 거라고 해서,
그 안에 뭐라도 더 해보려 했는데...
떠나셨다.
한재복 어르신.탈북 국군포로.
귀환국군용사회장.
그 어떤 직함으로 불러도
가슴이 저리고 죄송스러운,
그 어르신께서 2월 8일 떠나셨다.
봄도 오기 전에.
잊혀지고 버려진 국군포로
올해 90세.
6·25가 터지자 17살 나이에 친구들과 함께 자진 입대했다.
훈련도 없이 배치된 수색대에서 성탄절 직후 포로가 됐다.
그리곤 70살이 되도록 내무성 건설대와 탄광에서
강제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휴전소식을 접한 국군포로 장교들이
오후 교양시간(세뇌교육시간)에
"휴전이 됐다던데, 그러면 우리를
조국으로 보내줘야 하지 않느냐?"라고 말하자
인민군들이 국군포로들을 전부 밭으로 집합시켰다.
줄지어 앉은 포로들은 수 백 명이 족히 되어 보였다.
인민군 간부가
좁은 나무 상자 위에 올라서서 말했다.
“맞다.
전쟁은 멎었다.
우리는 조국대해방을 완성하진 못 했지만,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휴전에 들어갔다.
여러분 가운데 남조선으로 돌아갈 사람이 있으면
자리에서 일어서라”
그러자 주로 장교들이 일어서기 시작했고,
그 순간 인민군 간부가 일어서는 사람들을 향해
총을 쏘기 시작했다.
피가 튀고 사람들이 넘어졌다.
고함소리와 총소리, 비명소리가 뒤범벅이 됐다.
허공을 향해 총을 몇 방 더 쏜 간부가 말했다.
“더 있나?
남조선 갈 사람 더 있으면 또 일어나라”
그렇게 서 너 번 반복되던 총소리가 멎고,
그 간부는 말했다.
“더 없나?
그러면 여러분은 전부
여기에 다 원해서 남은 자들이다.
이의 있나?”
사방은 쥐 죽은 듯이 조용했고,
사람들은 너나 없이 생각했단다.
국군은 약해서 우리를 구하러 오지 못 하겠지만,
미군은, UN군은 우리를 구하러 곧 올 거라고.
그때까지는 악착같이 살아남아야 한다고.
그러나 날이 가고 달이 가고 해가 가고,
강산이 너 댓 번은 바뀌었다.
검덕광산 등 아오지 탄광촌에서
탄을 캐다캐다 흰 눈동자만 하얗게 보일 정도가 돼도,
국군은 커녕 미군도 UN군도 나타나지 않았다.
이제 겨우 13분.
탈북해 오신 국군포로분들은 딱 13분만
이 땅에 생존해 계신다.
북한 탄광지역에는 200여 분
살아계실 것으로 추산되지만,
그분들도 모두 90이 넘으신 고령이시다.
그분들은 국군포로에 대한
우리 나라와 우리 사회의 무관심 속에
나라가 날로 종북좌파로 기우는 것을 보시며,
당신들이 북한에서 보고 겪은 일들을
각급 학교나 직장 등에 가서
증언이라도 하고 싶다고 하셨다.
하지만, 그 또한 이런저런 장애물에 가로막혀
뜻을 이루지 못했다.
김정은 상대 손해배상 소송에서 승소헀지만,
종북주사파 본산 전대협 의장 출신 임종석의
궤변에 좌절하다...
"이게 나라냐?"는 이럴 때 해야할 말
버려고 잊혀졌지만,
그래도 그분들은 영웅들이다.
그분들은 용기를 내어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으로
북한과 김정은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걸어
5년 만에 승소하는,새로운 역사를 일궈 냈다.
그러나,
북한으로 갈 돈을 한 손에 틀어 쥐고 있는
경문협(이사장: 임종석)이 끝내 지급을 거부했다.
결국 한재복 어르신은 돈 한 푼 손에 쥐지 못 하고
빈손으로 이승을 떠나셨다.
북한의 조선중앙TV 등이 보도한 동영상을
대한민국 언론 등이 사용한 저작권료.
경문협이 그 돈을 꼬박꼬박 거둬들여,
대한민국 법원에 공탁해 놓은 돈이
25억 원 이상 쌓여있다.
하지만, 경문협은 그 돈이
김정은 돈이 아니라고 우기고 나섰다.
그 바람에 국군포로 어르신들은
원안 소송에서는 이기고
경문협을 상대로 한 추심재판에서는 지는
기구한 역사를 쓰다 돌아가셨다.
대한민국 헌법도, 민법도, 국제법도
대한민국에서는 무용지물이다.
더구나 대법원장부터 우리법연구회가
장악하고 있는 사법부에서는,
아주 기본적인 법원칙조차 작동되지 않는다.
법학교수 출신인 내가 이런 현실 속에서 애면글면하자,
어르신이 내 손을 잡으며 말씀하셨다.
“내 억울한 청춘을 단 돈 몇 천 만 원으로
환원할 수 있겠느냐만은,
그 나쁜 놈들을 이렇게라도 세상에 알렸으니 됐소.
이시장님, 너무 속 끓이지 마소.
건강 상하오.
물망초와 이사장님 덕에 우리가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기쁘고 감사하오.
우리는 다 살았지만,
이사장님은 앞으로도 할 일이 많지 않소”
탄광에서 삽으로 얻어맞아 생긴
얼굴의 상처를 찡그리며
오히려 나를 위로하시던 그런 어르신,
한재복 어르신.
현충원 비석 아래 흙 속에서 영면하고 싶다던,
그런 고인의 마지막 소원조차 이뤄지지 않고...
"저희 모두가 죄인입니다"
그 어르신을 위해 내가 이 땅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또 있겠는가?
당신이 그토록 원하시던
국립현충원, 반 평짜리 땅에 모시고 싶건만,
그 또한 여의치 않은 이 기막힌 현실을
내 어이 그 분 영정 앞에
사실대로 고할 수 있겠는가?
죄송합니다, 어르신.
면목이 없습니다.
제가, 저희가 모두 죄인입니다, 어르신...
박선영 사단법인 물망초 이사장(18대 국회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