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고려 황실이 명나라를 정벌하기위해 구성한 군대의 규모를 보면
원정군 총사령관 이성계 휘하의 고려군 7만 그리고 압록강 넘어 합류하기로 한 금나라 군대 2만
그리고 북경에서 합류하기로 한 북원군 1만 이었다.
즉, 고려군대는 연합군(고려+려진+북원) 으로서
주력군인 고려7만(기병4만 보병 병참 합3만), 려진(여진= 기병2만), 북원(기황후=기병1만) 합 10만 대군이었고
당대 최신식의 무장을 갖춘 대군이었다.
당시 고려 황실의 기록에 의하면, 고려의 중국정벌군(명나라 정벌군)
압록강을 넘어 려진의 기병군과 합류하기로 했고, 북경지역에서 다시 몽고(북원)기병과 합류하기로 했었다.
당시 주원장의 명나라는 신흥 세력으로 남방쪽에 주력이 있었기때문에 고려연합군이 도달하게되면
중국의 특성상 각 성에서는 중립을 지키게 되므로 쉽게 명군을 섬멸할수있었던 상황이었다.
명나라 주원장도 이것이 가장 두려운 문제였다.
평소, 주원장에게 비밀리에 인사를 전 해 온, 이성계에게 밀명이 내려진다....이성계는 회군에 성공했다.
이러한 사실을 당시 고려인들은 아무도 몰랐다. 려진의 금나라(청나라)가 명을 정복한 후에
명나라 왕실을 접수하면서 그 비밀스런 명왕실 전래의 기록을 읽게되었던것이다... - 연사 -
물론, 이성계의 4불가론이란건 후대에 꾸며 기록한 내용이다.
고려를 연구한 학자라면 고려군대에 대해 잘 알수있다.
만약, 이성계가 4불가론을 출병전에 주장했다면 이성계 가문은 멸족을 당했을것이며
이성계 아니고도 그정도 급의 장수가 20여명이나 되었던 고려군대의 상황에서
풍부한 전쟁경험의 고려 황실과 백전노장으로서 한번도 전쟁에 패한적없는 최영 총리가
그렇게 반대하는 자에게 대군을 맡길리 없다는건
상식이라 하겠다.
지금 국사는 상식이 없다..
사진: 이성계와 이방원
출처: 한민족참역사
참고: 고려사, 연사, 삼국사기등 5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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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왕실 기록으로 본 이성개의 위화도회군 당시 상황과 4불가론의 진실
언더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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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9.07 11:26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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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돌겠네...고과 순 사진을 이성개와 방원으로 이름지으셨네요. 맞습니다. 맞아요
짱깨후손들이 위화도회군이 정당하다고...고려말에 부정부패가 극대화 되어서 혁명이 불가피했다고..근데 한마디로 거짓말임이 증명되는게 고려가 보낸 짱개 정복 원정대가 되돌아와 모든 고려지식층을 살해한 2년후에 짱개조선을 건국했다는 사실이 반증된다고 믿어져요. 객관적으로 이건 분명히 상식에 어긋난경우이고, 고려시대 많은 반란이 있었지만 이조개국은 완전히 짱개국이었으니까요. 항상 좋은글 보여주시는 옛 머더라....그분이신데 감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