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니아의 명예살인과 혈연복수, 카눈]
알바니아를 둘러싼 가장 기묘한 풍경 중 하나는 ‘명예’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폭력이다.
흔히 “명예살인”이라고 부르지만, 사실 알바니아에서 더 뿌리 깊게 자리한 것은 피의 복수(gjakmarrja)이다. 이는 가문의 명예를 회복한다는 논리로 가해자 혹은 그 친족에게 되갚음을 하는 관습이다.
그 근거는 15세기 무렵부터 구전돼 내려온 레케 두카지니의 카눈(Kanun of Lekë Dukagjini)이라는 관습법에서 찾을 수 있다. 카눈은 환대(besa)와 명예(nderi)를 핵심 가치로 삼으면서도, ‘머리에는 머리(koka për kokë)’라는 보복 원칙을 명문화했다.
공산정권 시기에는 억눌렸지만, 1990년대 체제 전환의 혼란기 북부 산악지방에서 다시 부활했다.
카눈 속 명예 규범은 양가적이다. 원칙적으로 여성은 보복 대상에서 제외되었으나, 동시에 간통이나 순결과 같은 문제에서 여성에 대한 차별적 폭력을 정당화하는 조항이 존재했다. 이 때문에 전통적 의미의 혈연복수는 주로 남성들 간의 살해로 나타났지만, 때때로 여성에게까지 “가문의 수치”라는 논리가 덧씌워졌다.
2004년 아버지가 딸을 살해한 그로샤 마르틴차나이 사건은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알바니아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이러한 전통은 사회 전반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다. 복수의 대상이 될까 두려워 집 밖을 나서지 못하는 자가은둔(ngujim) 현상이 대표적이다. 2018년에는 국내 591가구, 해외 이주까지 합치면 총 704가구가 혈연분쟁 상태라는 추정치가 제시됐다. 특히 슈코더·레자 등 북부 지역에서 빈번했다.
국가는 이를 제도적으로 제어하려 했다. 2013년 알바니아 형법은 혈연복수 살해(제78/a조)를 무기징역까지 선고할 수 있는 가중처벌 대상으로 규정했고, 복수 선동이나 협박도 범죄화했다(제83/a조). 경찰은 분쟁 가정 데이터베이스를 운용하며 2021년 기준 75가구, 159명(아동 25명 포함)이 은둔 생활을 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또한 2006년 제정된 가정폭력 전담법은 2018·2020년 개정을 거치며 강화되었고, 알바니아는 이스탄불 협약을 이행하면서 여성 보호 체계를 국제적 기준에 맞추려 하고 있다.
그 효과는 통계로도 드러난다. 유엔 인권위원회가 2025년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23년 혈연복수 관련 살인은 3건, 2024년에는 0건으로 보고됐다. 물론 실제 규모에 대한 추정치에는 편차가 있지만, 전반적 감소세는 분명하다.
한편 여성 대상 살해, 즉 페미사이드에 대해서도 국가적 감시가 시작됐다. 유엔여성(UN Women)은 2023년 알바니아의 페미사이드율이 인구 10만 명당 0.84명이라고 발표했고, 2024년에는 인권옴부즈만 산하에 페미사이드 관측소가 설치됐다.
오늘날 알바니아에서 전통적 의미의 ‘명예살인’은 드문 편이지만, 가정 내 폭력이나 친밀한 관계에서의 살해는 여전히 사회적 과제로 남아 있다. 또한 혈연복수는 감소 추세임에도, 여전히 북부 지역의 특정 가문들에서는 ‘명예’가 폭력의 언어로 작동한다.-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