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의 수도를 왔다갔다하는데 시간이 얼마 안걸렸다고 되 있데요
(정확하게는 기억이... 아마 몇일이나 몇주일정도 인거 같음)
옛날에는 걸어다니거나 말타고 다니니깐 시간 많이 걸리잖아요
그런데 세개의 수도 왔다갔다하는게 (그당시로는)엄청나게 빠른시간내에 가능했다는건
세개의 수도가 가까이 붙어있단 말이죠
바로 세개의 수도가 모두 국경부근에 인접해 있단 겁니다
-.-
하나 더!
삼국사기의 기록에 보면 경주에 사람이 엄청나게 많이 살았더래요
그래서 왕이 높은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밥짓는 연기가 자욱한걸 보며)
저 많은 사람들이 밥지어 먹으려면 숯이 많이 필요하겠구나
이런 소리를 했다는 기록이 있대여
정확한 인구는 기억이 안나고(죄성...)
하여튼 지금 경주 크기로는 거주가 절때 안되는 인구수란 소릴 들었습니다....
우리나라에 이런쪽으로 연구하시는 분도 있단 소릴 들었습니다
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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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불사와 석굴암, 그 차이는?
펄벅의 ‘대지(大地)’라는 소설로 만든 미국영화가 있다. 미국 사람이 중국인 분장을 하고 중국인 행세를 하는, 내가 보기에는 조금 웃기는 영화였는데(소설은 재미있었다), 당시 이 영화에서 가장 볼만한 것은 역시 “메뚜기 씬”이었다. 거대한 메뚜기떼가 산과 들을 뒤덮자 한 순간에 일년 농사는 완전히 끝나버린다.
사람들이 달려나가 삽으로 두들겨 죽이고 밟고 온몸으로 뒹굴어 눌러도 오히려 메뚜기떼는 사람까지 물어뜯는다. 그 장면은 내가 국민학교 시절, 제사 시간을 기다리며 KBS 명화극장에서 본 이후로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광활한 대륙의 땅위로 검은 구름처럼 달려드는 메뚜기떼, 그 고난이 오히려 어떤 광대함의 부러움을 주는 장면이었다.
그런데, 그 메뚜기떼가 우리 나라에도 있었단다.
정말? 그래! 이번에는 위서시비가 있는 한단고기를 인용하거나 이런 저런 정황으로 추정하는 것 말고, 정확한 기록에서 근거를 댈 수 있다. 그것도 정사(正史)라고 공인받는 “삼국사기”에 있다. 신라와 백제에 메뚜기떼가 “창궐”하는 것이다. 한두번도 아니고!
물론 조선시대 기록에 우리가 메뚜기떼로 고생했다는 기록은 없다. 시대가 고대라 별 게 다 있다고 생각해보자. 그러나 멀리 2000년 전까지 가봐야 한반도의 지형과 기후는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렇게 많은 풀이 산과 들에 우거진 한반도에, 삭막한 초원지대에서 풀을 남김없이 뜯어먹으며 떼지어 새로운 먹이를 찾아 몰려다니는 “메뚜기떼”가 날아다녀? 메뚜기야 우리 나라에도 널려있지만 그네들은 절대로 떼지어 날아다니는 종은 아니다. 이건 분명히 다른 종이다.
어쩌다 한 번 중국땅에서 날라온 메뚜기떼일까? 아니다. 그것도 신라땅에 창궐하는 메뚜기떼의 기록은 여러번 나온다. 신라에 오려면 황해를 건너서 와야하는데, 메뚜기떼가 항공모함을 타지 않는한 바다를 떼지어 건넌다는 것은, 이기 무신 소리고? (텍도 없는 소리, 먼 거리를 날 수 없다) 그렇다면 하북으로 해서 요서로 해서 요하를 건너서 요동을 지나서 압록강을 건너고 청천강도 건너고 대동강도 건너고 한강도 건너고 산마루를 수십개 넘어넘어 문경새재까지 날아와야하는데, 이거 어째 좀 이상한 기분이 든다? 삼국사기에 정말 그런 말이 있나? 번역 잘못한 거 아냐?
그런데, 삼국사기를 뒤적여보면 메뚜기만 문제가 아니다. 화산이 폭발한다!
그것도 신라 수도 금성 옆에 토함산이 불기둥을 마구 토해내고 요즘 치수로 수백 미터 가량 불기둥이 치솟는다. 김부식이 돌았나? 내가 토함산을 수도 없이 갔지만 거기가 천 년 전에 화산이었다고 하면 아는 사람은 나보고 다 “미친 놈”이라고 웃을거다. 에라 이, 토함산이 어떻게 화산이냐! 옛날에는 화산이었다고? 야 이놈아, 흔적이라도 있어야 할 것이 아니냐!
용암은 커녕 용암 씨나락 까먹은 것 같은 돌멩이(현무암 류) 하나 없는 산에서 천 년 전에 화산이 폭발해서 불기둥이 치솟았다고? 정신차려라...
의문은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같은 해에 신라에는 홍수가 나고 백제에는 가뭄이 든다!
백 번 양보해서 그런 일이 있을 수도 있다고 치자. 그런데 아무리 기상이변이라고 해도 화계장터를 경계로 한 쪽은 가뭄이 들고 반대쪽은 홍수가 날 수 있는 일인가? 그것도 장마철에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당연히 의문이 생긴다. 그래서 기상대에 20년간 근무하던 정용석이라는 사람이 이 기록을 죄다 조사했다. 삼국사기에 나오는 연대기와 기상기록을 배열해보니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가능성은 두 가지다.
하나는 김부식의 실수다. 연대기와 기록을 잘못 쓰고 중국에서 있었던 일을 한반도에 있었던 일로 착각한 거다. 그러지 않고서야 어떻게 별자리 기록마저 중국대륙에서 관찰한 것과 같을 수가 있는가.
다른 하나는 삼국사기는 정확한 사실을 말하고 있다. 도대체 고대 삼국은 우리가 알고있는 한반도의 강역과는 영 인연이 없을 수도 있다. 그러길래 메뚜기도 가능하고 화산과 지진, 백제홍수와 신라가뭄도 가능하다.
독자들께서 어느 가능성을 선택하건 나는 상관하지 않겠다. 그러나 한 나라(고려)가 공식적인 역사서를 작성하는 것은 심심풀이 땅콩이나 “장난”이 아니다. 그것은 나라의 계보를 정리하고 대외적으로 체통과 위신을 세우는 것은 물론이고 그 시절의 지성의 방향과 정치의 상황을 그리는 일이기도 하다. 오죽하면 출사표까지 던지며 역사서를 편찬하겠는가. 그리고 그 시절의 최고실권자였던 김부식은 신라계 귀족이었고 왠만하면 고구려 백제의 기록을 지우려고 들었던 사람이다. 하다못해 일본서기에 나오는 연개소문의 유언이 삼국사기에는 안나온다.
그러니 이 기상기록을 왠만하면 신라땅에서 경험이 가능했던 것으로만 재구성하려고 들었을텐데, 거기엔 분명히 메뚜기떼가 날아다니고 토함산이 불을 뿜는 화산이다. 심심하면 신라의 10월에 눈이 내리고 4월에는 서리가 내린다. 이런 일이 한두번이 아니고 비일비재하다.
필요하시다면 자료로 정리해서 드릴 수도 있다.
우리는 정말 옛날부터 이곳에서 살았을까? 우리가 틀림없이 이곳에서 살았다고 믿는 2000년 전의 기록은 정말 파면 팔수록 해괴하다. 한반도와 만주가 이런 해괴한 일이 일어나는 귀신들의 땅일까? 이거야말로 경주에는 왜 궐터가 없는지 묻지 않고도 충분히 제기해야할 의문이 아닌가. 비교적 냉정한 사학자들도 이 문제는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그리고 기상학자와 천문학자의 몫으로 돌릴 뿐이다. 나는 그러고싶지는 않지만 능력이 없어서 “기상대 정년퇴직자” 정용석씨의 주장밖에 더는 알 수가 없다. 누군가 해명을 해주면 좋겠지만 주류사학계에서야 이딴 문제로 논쟁을 할리 만무하고 재야사학자들도 “실제”보다는 그 시대의 “정신”을 읽는데 골몰하고 있어서 정용석씨만 도라이 취급을 받을 뿐이다.
이렇게 우리가 알고있는 “상식”을 간단히 부수어버리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우리 고대사는 거친 삼베옷처럼 다듬을 부분이 너무 많은 상태라 “교과서”는 하루 아침에 죄다 거짓말이 되어버릴 수 있다.
전편에 밝혔듯이 구자일씨는 지리한 지리공부를 통해 대동강 유역이 고구려가 아닌 백제의 땅임을 밝히고 있다. 그 지역의 유물이 사실은 백제의 것이며 백제의 주요 강역이 지금의 압록강을 중심으로 요동 한 가운데라는 것이다. 우리가 가끔 TV를 보아 알듯이 압록강은 그 당시에 국경역할을 하기에는 규모가 작은 강이다. 물론 상류로 올라가면야 다르지만 식량난으로 시달리는 북한주민들이 맨몸으로 탈출을 시도할 정도로 작은 강줄기다. 우리가 지금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고 해서 그 선입견으로 고대사의 강역을 바라본다면 이런 부분을 슬쩍 지나치기 쉽다.
또 기록대로 지도 위에 그리면 그 끝이 한반도 황해도까지 연결되는(이게 말이나 되는가) 만리장성을, 우리는 진시왕이 지었다고 알고있지만 사실 진시왕은 오래전부터 구축해오던 성과 성을 연결하여 길게 뻗은 장성을 구축했을 뿐이며, 그 시절에 다 끝난 것도 아니어서 명나라때까지 작업을 계속한다. 그 만리장성은 북방민족의 침입을 막기 위한 것이었고, 이렇게 국력을 소모하며 “종족을 방위하는”(나라가 아니다) 성을 쌓아야할 정도로 북방세력은 강력했다. 우리가 조상이라 믿고있는 옛조선과 부여와 고구려가 모두 그 북방민족이었다.
그렇다면 우리종족들이 좀더 서쪽으로 갈 수는 없었을까? 남진길이 막히면 다른 곳으로 갈 것이 아닌가.
신라는 어떤가? 우리는 죽어라 신라와 경상도를 같은 것으로 각인시키지만 지금의 경상도는 신라가 패망한 후 밀려든 유민들의 지역촌일 수는 없을까?
당나라와 문화를 겨루던 천년 신라가 남긴 것이 경주라는 것을 나는 도저히 인정하기 힘들다. (경주출신들은 죽이려고 할테지만) 경주는 신라의 그야말로 따라지일 수도 있다. 삼국사기에는 절대로 신라의 서라벌이 경상도 경주라는 글귀가 없다. 서라벌과 금성의 면적과 규모만해도 지금의 경주로는 감당하기 힘들다. 김대성이 짓기 시작해 그가 죽은 후에 완성되었다는 석불사는 과연 토함산의 석굴암일까? 삼국사기에도 석불사를 “불을 뿜는” 토함산 기슭에 지었다는 기록은 없다. 석불사의 규모나 기능도 석굴암같은 암자는 아닌 듯하다. 이른바 누군가를 기리기 위해 만드는 사찰이란 수양을 위해 짓는 암자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더구나 석굴암의 불상은 바위를 깎아 세웠다는 석불사와 다르다. 흙산 속에 굴을 파고 돌을 세워 만든 것이다.
우리가 지금 여기 사니 우리 조상도 옛부터 여기 살았을 것이라는 생각은, 죄송하지만 틀린 생각일 가능성이 크다. 현재 지구상 많은 지역의 사람들은 원주민이 아니다.
그리고 한반도와 동아시아 고대를 연결시키는 이런 위치지정은 우습게도 일제시대에 이루어진 것이다. “니네는 모르지만 우리는 니네 역사를 알아. 여기가 거기야.”이런 식이었다.
물론 학계의 토론과 공인이라는 그럴듯한 절차를 거치기는 한다. 상당부분이 일본이 조선을 경영하는 것을 이데올로기로 보좌하기 위한 고대사 연구의 결과였다.
이렇게 생각하면 고대사의 강역은 죄다 혼돈 속으로 빠져든다. 도대체 사실은 무엇인지 점점 더 알 수 없어진다. 그러나 “정설”과 “가설”에 같은 비중을 두고 접근한다면 의외로 문제를 쉽게 풀 수도 있다.
“정설”도 정설이 되기 전에는 가설이었다. 정설에 배치되는 가설이라고 정설이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더군다나 과학법칙도 아닌 흐릿하고 아스라한 고대사의 강역문제는 “정설”이 그야말로 “현재의 편견”이고 선입견일 수도 있다.
합리적? 김유신이 강건너고 바다건너고 고개넘고 산을 넘어서 고구려군대 피해가며 어렵게 어렵게 말도 안되게 당나라 군대에 식량을 지원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합리적으로” 설명하느라 고생 안하는게 합리적인 거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