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콩나물을 찾아서
김창욱 음악에세이
쪽수 256쪽
판형 135*200
ISBN 978-89-98079-72-7 03810
가격 18,000원
발행일 2023년 5월 10일
책 소개
악보 속 콩나물을 연주하는 멋지고 애달픈 음악가의 삶
그 유쾌하고 궁핍한 진짜 일상을 그리다
부산의 음악평론가 김창욱의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음악비평 에세이. 웅장하고 우아한 클래식 음악 공연. 말쑥하고 멋들어진 정장을 차려입고 무대를 장악하는 음악가. 그러나 무대 밑 지역 음악가의 현실은 팍팍하기만 하다. 부산의 음악평론가 김창욱은 자신을 포함한 클래식 음악 종사자들의 일화들을 풀어놓으며 이러한 현실을 진솔하게 전한다. 이렇다 할 클래식 음악 전문 공연장도 없고, 예술과 금전을 결부시키는 것이 암묵적으로 금기시되는 분위기 때문에 발생하는 웃지 못할 해프닝, 빚을 내면서 오케스트라를 이어가는 동료 음악가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콩나물 그려진 악보를 소중한 듯 껴안으며 무대로 향한다. 무대 밑의 애달픈 일상과 무대 위의 박수갈채 사이에서 그들이 사랑하는 음악과 음악의 길이 펼쳐진다.
국도 못 끓이는 콩나물 대가리가 뭐 그리 대수라고!
공연 전 악보를 잃어버렸다는 것을 깨달은 음악단장이 급하게 악보를 찾아 헤맨다. 공중전화 부스에 놔두고 왔나? 퍼뜩 생각이 든 단장은 청소 아줌마를 찾는다. 구원처럼 만난 청소 아줌마에게 다급하게 악보의 행방을 묻는 단장. 청소 아줌마는 “콩나물 그림 말잉교?” 하고 답한다. 주섬주섬 꺼내 든 악보 뭉치를 낚아채 부리나케 뛰어가는 단장의 어깨너머로 청소 아줌마가 외친다. “국도 못 끓이는 콩나물 대가리가 뭐 그리 대수라고!”
저자는 유쾌한 문장 속에 음악가의 고달픈 현실과 음악에의 사랑을 담는다. 「잃어버린 콩나물을 찾아서」는 이러한 특징이 잘 담겨 있는 에피소드로, 널리 알려진 비유인 콩나물 음표와 악보를 소중하게 안고 뛰어가는 음악가, 그런 그를 이해하지 못하는 청소 아줌마의 일화가 재미있고 애달프게 느껴지는 챕터이다.
콩나물 에피소드를 비롯하여, 악단이 악당으로 변해버린 사연, 성악가의 실수에 관객이 외친 한마디, 아버지 합창단의 일화 등 무대 위와 아래에서 음악가들이 겪은 에피소드가 흥미롭게 펼쳐진다. 더불어 오케스트라를 유지하기 위해 몇십 년간 자신의 통장 하나 개설하지 못한 악장, 생업과 악단의 생활을 번갈아 반복하며 음악을 이어나가는 콘트라베이스 연주자, 부조리에 맞서는 시간강사 작곡가 등 동료 음악가들이 걸어가는 고달프고 다양한 음악의 길을 풀어놓는다.
나를 적시고 간 노래, 에세이적 비평의 시작
오늘날 음악비평은 지나치게 딱딱하고 규범적이어서 수용자 대중과의 적극적인 소통과 공감이 즐겨 이루어지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이에, 저자는 <잃어버린 콩나물을 찾아서>를 통해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에세이적 비평, 혹은 비평적 에세이를 선보이고, 이전과 다른 음악비평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보고자 한다. _<서문> 중에서
저자는 음악가의 생활과 일화뿐 아니라 자신이 공감하고 영향을 받은 노래들의 단상을 엮었다. 1970년도 유행했던 CM송 <부라보콘>을 들으며 큰형이 처음 사주었던 아이스크림 속 도회지의 맛을 느끼고, 군생활을 하는 동안 절대 부르지 않았던 <점이>를 들으며 마음 따뜻했던 군대 선임을 떠올린다.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노래들 속에서 저자는 엄밀하고 딱딱한 음악 비평에서 벗어나 보다 개인적이고 말랑말랑한 에세이적 비평을 시도한다. 그러면서도 청중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 내지 못하는 음악회의 ‘여전한’ 형식과 내용을 날카롭게 꼬집으며, 변화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건전한 음악문화의 모색을 촉구한다.
음악가들의 삶과 일화, 노래와 음악문화에 대한 단상이 담긴 김창욱의 음악에세이는 새로운 음악의 지평을 열며 독자를 음악의 세계로 끌어들인다.
연관 키워드
#음악에세이 #음악가 #클래식 #예술 #비평집 #교향악단 #부산 #에세이
책 속으로
p.41~42
의기양양한 지휘자는 짐짓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가능한 멋진 포즈로 지휘를 시작했다. 오케스트라의 풍부한 음향이 장내를 가득 메웠고, 청중은 귀를 쫑긋 세워 음악에 침묵했다. 그때였다. 무대 아래에 옹기종기 앉아 있던 몇몇 가운데 하나가 갑자기 일어나서 소리쳤다.
“지휘자 양반, 제발 그 다리 좀 치워 주시오!”
그는 단상의 지휘자 다리 사이로 연주 모습을 구경하던 관객이었다. 자신의 눈앞에서 지휘자 다리가 자꾸만 왔다 갔다 하는 통에 구경거리에 차마 몰두하지 못하겠다는 것이었다. 기실 그 관객은 음악을 듣기보다 현악기 주자의 활 켜는 솜씨를 더 보고 싶었으리라.
p.113
지체 높은 분들이 대거 자리했던 터에, 그것은 여느 음악회와는 달리 자연스럽지 못했고, 분위기 또한 적잖이 경직되어 있었다. 아버지 단원들이 차례로 무대에 등장하고 있는데, 객석에서 별안간 “앗, 우리 아버지닷!” 하며 일곱 살쯤으로 보이는 꼬마 하나가 일어나 소리쳤다. 순간 여기저기서 새하얀 웃음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긴장된 객석의 분위기가 일순 누그러지면서 음악회도 차츰 무르익어 갔다. 무대 위에서 노래하는 아버지를 지켜본 그 아이는 아버지와의 소중한 추억은 물론, 차마 잊을 수 없는 또 하나의 문화를 경험한 셈이다.
아버지합창단은 아마추어 합창단이다. 그러나 오히려 아마추어이기 때문에 직업합창단이나 전문적인 프로합창단이 못 하는 것을 할 수 있는 경우도 많다.
p.219
그날 큰형은 어린 동생들에게 부라보콘을 하나씩 사 주었다. 촌에서는 뭉툭한 모양의 아이스케키밖에 없는데, 이리도 요상하게 생긴 얼음과자가 다 있다니. 난생처음 먹어보는 것이기도 하려니와 난생처음 느껴보는 맛이기도 했다. 우리는 희디흰 아이스콘 입자를 입술에 묻혀 가며 먹었다. 아껴 가며 핥았다. 부드럽고 달콤한 부라보콘은 여지껏 촌에서 먹던 아이스케키와는 가위 비견될 수 없었다.
저자 소개
김창욱(金昌旭)
1966년 부산 강서 출생
동아대학교 대학원 음악문화학과 졸업(음악학박사)
한국연구재단(한국학술진흥재단 후신) 신진연구인력지원사업 대상자 선정
부산광역시사편찬위원회, 부산발전연구원, 5·18기념재단 공모논문 선정
한국음악사학회 신인논문상 수상
부산음악협회 부산음악상 수상
경성대, 계명대, 동아대, 동의대, 부경대 강사
한국연구재단 등재학술지 『음악과민족』(음악과현실 전신) 편집팀장
부산예술단체총연합회 『예술부산』 편집위원
국제신문·부산일보 객원평론가
부산광역시의회 정책연구위원(문화·관광분야)
현재, 전문예술단체 음악풍경 대표
저작으로 『부산음악의 지평』, 『나는 이렇게 들었다』, 『청중의 발견』, 『홍난파 음악연구』(대한민국 학술원 우수학술도서) 등이 있음
kcw660924@daum.net
목차
서문
제1장 일기
생활의 즐거움
유치원에서
휴가 안 가세요
49재에 가서
살맛
통 큰 큰형님
20년 후
이런 음악회
놀토음악회
수상쩍은 일기
찾아가는 음악회
성철이라는 사람
제2장 음악의 날개
지휘자 양반, 다리 좀 치워주시오!
인기 악기와 비인기 악기
악당의 출현
목사님의 금일봉
잃어버린 ‘콩나물’을 찾아서
성악가의 실수
묘약의 효과
그날 밤, 그 방에서 무슨 일이
한 자유예술가를 추억함
어떤 야외음악회
산새, ‘응새’되어 날다
어느 시간강사 이야기
어느 대학교수 이야기
어느 콘트라베이스 연주자
어느 레슨선생 이야기
어느 악장 이야기
어느 합창단 이야기
어느 음악교사 이야기
오페라에서 생긴 일
어느 음악학자 이야기
어느 악기제작자 이야기
청중의 풍경
어느 성악가의 술이야기
어느 기타리스트 이야기
어느 지휘자 이야기
어느 만학도 이야기
제3장 나를 적시고 간 노래들
나이도 어린데
예써, 아이 캔 부기
저 타는 불길을 보라
플랜더스의 개
소녀의 기도
명태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
점이
에버그린
서른 즈음에
검은 장갑
사랑의 서약
오! 거룩한 밤
귀에 익은 그대 음성
티벳 자비송
은발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부라보콘
즐거운 나의 집
졸업식 노래
편지
원티드
나 홀로 길을 가네
오빠는 풍각쟁이야
사쿠라
그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