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진교리: 전례생활
전례생활에 대하여
서론
오늘은 견진교리를 하는 다섯 번째 날입니다. 지난 4번째까지 저는 여러분들에게 성사에 대해서, 기도에 대해서, 성경에 대해서, 신앙생활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제가 여러분들에게 여러 가지를 말씀드리기는 했습니다만, 말씀드린 것을 자랑하는 것은 아닙니다. 더 중요한 것은 여러분들이 그것을 어떻게 알아들었으며, 앞으로 여러분의 생활에 그것을 어떤 방법과 모습으로 드러낼 것이냐의 문제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했던 것은 조금 준비해서 한 것이었습니다. 이런 일처럼 사람이 조금만 준비하면 다른 사람들 앞에 서서 이야기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 준비해서 말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그것을 삶으로 보이는 모습입니다.
우리는 신앙인입니다. 우리가 생활로 드러내려고 할 때 인간의 힘만으로는 부족한 것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당연한 이유는 인간의 입장에서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완벽하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어떻게 해야하겠습니까? 사람의 바램은 저만치 앞서가고 하느님의 뜻을 따라서 완벽하게 하고 싶기는 한데, 내 힘은 부족하고 어떤 방법을 찾아야 하겠습니까?
1. 해결을 위한 말씀 한 가지 : 약은 집사의 비유 (루카 16,1-8)
루카 16,1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도 말씀하셨다. “어떤 부자가 집사를 두었는데, 이 집사가 자기의 재산을 낭비한다는 말을 듣고,
2 그를 불러 말하였다. ‘자네 소문이 들리는데 무슨 소린가? 집사 일을 청산하게. 자네는 더 이상 집사 노릇을 할 수 없네.’
3 그러자 집사는 속으로 말하였다. ‘주인이 내게서 집사 자리를 빼앗으려고 하니 어떻게 하지? 땅을 파자니 힘에 부치고 빌어먹자니 창피한 노릇이다.
4 옳지, 이렇게 하자. 내가 집사 자리에서 밀려나면 사람들이 나를 저희 집으로 맞아들이게 해야지.’
5 그래서 그는 주인에게 빚진 사람들을 하나씩 불러 첫 사람에게 물었다. ‘내 주인에게 얼마를 빚졌소?’
6 그가 ‘기름 백 항아리요.’ 하자, 집사가 그에게 ‘당신의 빚 문서를 받으시오. 그리고 얼른 앉아 쉰이라고 적으시오.’ 하고 말하였다.
7 이어서 다른 사람에게 ‘당신은 얼마를 빚졌소?’ 하고 물었다. 그가 ‘밀 백 섬이오.’ 하자, 집사가 그에게 ‘당신의 빚 문서를 받아 여든이라고 적으시오.’ 하고 말하였다.
8 주인은 그 불의한 집사를 칭찬하였다. 그가 영리하게 대처하였기 때문이다. 사실 이 세상의 자녀들이 저희끼리 거래하는 데에는 빛의 자녀들보다 영리하다.”
약은 집사의 비유 이야기를 함께 읽으셨습니다. 자신의 호구지책(糊口之策:먹고사는 방책)에 위협이 다가오면 사람의 행동은 빨라집니다. 생명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이 비유 이야기를 통하여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들려주시고자 하는 내용은 무엇이겠습니까? 위에서 제가 시작으로 질문한 내용<사람이 갖는 욕심만큼이나 하느님의 뜻을 올바로 따라 살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에 대한 답이 여기에 나와 있습니다.
자신의 재산을 축낸 집사를 부자인 주인은 칭찬합니다. 우리는 신앙인으로서 우리의 생명을 하느님에게서 선물로 받은 사람으로 살고 있습니다. 한번 주어진 선물이 어떤 방법으로 사용되고 있는지 무관심하거나 간섭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인간의 사회에서 통하는 일이고, 하느님은 당신이 베푼 선물이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 관심을 갖습니다. 교회에서 그렇게 가르칩니다. 이 소리는 하느님께서 할 일 없어서, 시간이 남아서 그렇게 하신다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우리가 받은 선물이 중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세상일 들 가운데는 간단한 것에 진리가 담겨있는 것이 많습니다. 많다고 자신할 수 없다면 어느 정도는 그렇게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처음 질문한 것의 답은 발버둥치는 것이고, 삶에서 성실하게 사는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2. 신앙인으로 발버둥치고 성실하게 산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발버둥친다는 말을 들으면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하십니까? 몇 년 전에 누군가가 저에게 물은 것에 대한 응답으로 제가 한 답입니다. 그 어떤 친구는 제게 어떤 생각과 자세로 사제생활을 하는가? 하고 물었습니다. 그때 저는 언제나 답할 말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기에, 한참을 생각하다가 그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제 삶을 돌아보니 그것이 오히려 더 정확한 표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발버둥친다는 표현을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예전에 대학입학 학력고사가 있었을 때, 체력장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수학능력 시험으로 바뀌었으니 그 내용에는 어떻게 변함이 생겼는가는 모르겠습니다. 남자의 경우에는 철봉에 매달려 한 번이라도 더 턱걸이를 하려고 애를 쓰고, 여자의 경우에는 그 철봉에 오래 매달려 있으려고 애쓰는 모습, 떨어지지 않고 한 번이라도 더 하려고 온몸을 비틀어대고 마지막 안간힘을 다 쓰는 것 그것이 발버둥치는 모습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고, 사제로 살아가면서 그런 삶의 자세를 지녀야 하겠다고 여러 차례 다짐했습니다. 같은 입장에서 제가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은 간단합니다.
이 말을 달리 표현하면, 전례에 능동적으로 참여한다는 것입니다. 한 가지, 한 가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 격언에도 있듯이, ’첫술에 배부르랴?’ 하는 말처럼, 전례에 참여하는 방법이라는 것이 한 가지만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견진성사라고 하는 네 글자로 지칭되는 이 교육을 위해서도 여러분은 오늘까지 이것을 읽으셔야 했고, 오늘도 힘들지만 읽으셔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이 이야기를 듣는 본인의 자세는 어떻다고 생각하십니까? 기쁨에 넘칠 것까지야 없겠지만, 이 견진교리 시간이 기다려지는 분들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만일 그러하다면, 저도 여러분들에게 재미없게 교리를 말하는 탓도 있겠지만, 우리의 신앙이 마음 설레는 삶의 기쁨으로 이끌어주지 못하고 있다는 판단도 할 수 있는 것이고, 또 한편으로는 여러분들이 갖는 마음 자세도 고쳐 잡아야 할 요소가 있다는 소리이기도 합니다.
사람은 항상 재미있고 즐겁게 살려고 합니다. 요즘의 텔레비젼과 영화들이 그것을 보여줍니다.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재미있고 즐겁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나는 그 뜻을 어떻게 알아듣고 있으며, 어떤 방법을 통하여 그것을 얻으려고 하는가? 재미있고 즐거운 것은 흔히 가볍습니다. 가볍다는 것은 당장에는 우리의 엉덩이가 바닥에 붙어있지 못하도록 들썩거리게 하지만, 우리의 생활에 지속적으로 좋은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는 이야기도 됩니다. "허허......" 하고 웃고 지낼 수 있는 것은 되겠지만, 오래도록 남아서 내 생활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못 된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