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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불교인드라망 원문보기 글쓴이: 원명신 (92기/수안회기자단장)
2016년 2월 21일 일요일.
천일 무문관 청정결사 회향일을 하루 앞두고 무문관에는 사실상
죽비가 내려지고 저녁반 정초방생기도 순례단의 회주 큰스님
친견법회가 있던 날.
무일선원이 있는 감포도량에는 이른 아침부터 불자들이 속속
모여들기 시작하여 삼천 여 명의 불자들이 인산인해를 이루며
보기 드문 장관을 연출하고 그야말로 울굿불굿 인간꽃을 피웠다.
3년 전 큰스님을 무문관으로 보내 드리며 아쉬움이 컸던 신도님
들은 환희심 가득한 기쁨의 표정들로 오매불망 큰스님께서 나오
시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연화봉사단, 총동문 신도회 국장님들과 오백 여 명의 포교사들은
무문관에서 일출범종각까지 길게 띠를 이어서 큰스님께서 나오실
길을 열었고 가릉빈가 합창단은 천상의 화음으로 큰스님 무사회향
하심을 찬탄하였다.
약속된 시간,
잠시 정적이 흐르고 한국불교대학 대관음사 교가와 청법가를
한목소리로 부르고 북받치는 감정을 눈물로 대신하며 감동과
환희 그리고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 3년간 굳게 닫혔던 빗장이
열리고 드디어 큰스님께서 수많은 취재진들에 둘러싸여 세상
바깥으로 모습을 드러내셨다.
신도님들은 일제히 기쁨의 박수로 큰스님을 맞이했다
길게 자란 머리카락과 턱수염, 조금은 수척해지신 모습의 큰스님
께서는 곧바로 수행중 건립 완공된 일출범종각으로 향하셨다.
일출범종각위에 우뚝 나투신 큰스님께서는 제일 먼저 회향을
알리는 범종을 세 번 타종 하시고 조금은 상기된 음성으로
‘반갑습니다. 안면이 있지요?’ 라고 인사를 하신 뒤 회향 후
첫 번째 법문을 내리셨다.
큰스님께서는
향상에 속지 말고 사물을 중도관으로 봐야 하며
보리심을 가지고 하는 행은 모두가 도행이고
보리심이 없이 하는 것은 그것이 즉선이라 할지라도 다 소용이 없다고 말씀을 하셨다.
회주큰스님 3년 안거회향 첫 번째 법문
반갑습니다.
안면 있지요
제가 멀리서 종소리를 듣기만 했는데 종을 세 번 쳐보겠습니다.
회향을 알리는 범종소리 멀리퍼짐 박수로 찬탄
종각의 아래로 Tm여진 이것을 주련이라 하는데 주련을 한 번
읽어 보겠습니다.
나무아미타불 후렴소리를을 크게 외쳐주시면 되겟습니다.
~~~~
종소리가 어떤가 제가 쳐보니 종소리가 과연 종소리입니다.
제가 염불게송을 을 잊어버렸으면 어떻게 하나 했는데
염불이 되는걸 보니 참 업이 무섭다 그런 생각을 합니다.
익힌 습은 3년쯤은 아무렇게 놔둬도 그 업이 살아나는 것을
봤을 때에 업이 참으로 중요하다. 그러니까 어차피 업을 지을
것 같으면 선업을 지어야 겠구나! 그런 생각도 하게 됩니다.
아무튼 오늘 많은 분들이 동참을 하셨는데 사실은 별 할 말이
없어요.
할 말이 없는 것을 하는 것을 설법이라 그래요.
설 할 것이 없는 것을 설법하는 것.
그래서 또 살아가는 재미가 되는지도 모르지요.
여기 서 있으니까 덥네요.
제가 모자 좀 벗겠습니다.
머리가 좀 많이 길었습니다.
수염도 좀 보여 드리겠습니다.
기자분들 좀 나와 주세요. 저기 난리입니다. 난리 ~
(길게 자란 머리카락과 턱수염을 보는 순간 불자님들의
함성소리가 컸다.)
오늘 서울에서 오셨다는 분들이 있는데 서울 손들어 보세요.
서울에도 절이 많은데 여기까지 오셨네요.
그리고 연화봉사단 손들어 보세요.
그 다음에 합창단 어디 있나요?
또 어딥니까?
경산도량 손들어 보세요.
그러면 칠곡?
구미 손들어 보세요.
도량이 생긴 순서대로 얘기하고 있습니다.
포항 손들어 보세요.
영천 손들어 보세요.
머리카락이 이렇게 날리니 기분이 좀 그러네요.
아침에 참좋은요양병원 의료진에서 스님들 3년 동안에 병이
안났나 해서 검진한다 그래서 제가 나가봤더니 아이고 스님
머리카락 보니까 공부 많이 한 것 같습니다. 그래요.
그런데 이 머리카락 수염 이런데 속으면 안 됩니다.
정신 바짝 차리고 봐야지 모양에 속으면 헛공부 한 것이지요.
그래서 경에 말씀하시기로 범소유상 뭐라고 했습니까?
[개시허망.] 그렇지요.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예 즉견여래~~
맞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모든 상을 보아서 상이 아닌 줄을 보면 곧 여래를 보리라. 그랬잖아요.
음~ 말이 잘 안 될 줄 알았는데 말이 되네요.
참으로 업이 무섭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형상을 보고 정신을 잠시 놓으면 그냥 속고
맙니다.
어떤 분은 ‘스님. 그러면 형상이라든가 이런 모양은 아무것도
아닙니까?’ 그러는데 그렇다고 해서 아무것도 아닌 것도 아닙
니다.
오늘 우리 점심공양은 11시에 들어왔는데 11시 반에 공양을
딱 한 끼 먹습니다.
밥 한 끼 먹고 머리카락 기르려면 힘들어요.
수염도 밥 한 끼 먹고 기르려면 힘들어요.
제가 또 후일에 인연이 되면 말씀 드리겠지만 제가 몸에 알레
르기가 생겨서 오래 고생을 하면서 한 번 삭발을 한 적이 있었
는데 그 이후로 다시 길렀는 겁니다. 이게.
아무튼 이 모양은 아무것도 아니다 이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눈을 잘 뜨고 보면 제법이 실상이라 모든 존재 자체가 그 만큼의
그릇을 가지고 놓여져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물을 볼 때 비색비공으로 봐야 됩니다.
비색비공.
색도 아니요 그렇다고 해서 아무것도 아닌 것도 아닌 그런
도리로 봐야지 그 사실을 바로 볼 수 잇다 그말입니다.
한 번 읽어보세요.
비색비공. 비색비공.
비색비공으로 보는 것을 중도라 이렇게 말을 합니다.
중도라는 말 들어보셨습니까?
팔정도도 중도다 말합니다. 아무튼 중도로 봐야 됩니다.
중도로 본다는 것은 어떤 사물을 볼 때 단견, 한부분만 보지
아니하고
극단. 극단적으로 보지 아니하고 통찰적으로 통합적으로 종합
적으로 지혜적 안목으로 보는 것을 중도라 이렇게 말합니다.
아무튼 우리는 이 중도관이 필요합니다.
사람이나 사물이나 사건을 볼 때 중도관이 대단히 필요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도라 했잖아요? 도.
우리는 도라는 애기를 많이 합니다.
그런데 이 도라는 것이 그러면 산중에만 도가 있느냐?
또는 그러면 저 사람 사는 도심 속에서만 도가 있느냐
또는 도가 과거에는 있었고 현재는 없고 또는 현재는 있고
미래에는 없는 것이냐?
그런 것도 아닙니다. 도란 어디 있느냐?
보리심에 있다 그랬습니다.
보리심.
그래서 보리심이 있는 사람은 도가 있다!
우리가, 보리심이라 념념보리심이면 처처안락국이라~
그런 말이 잇거든요.
이 보리심을 가지고 스님 그러면 보리심이 뭡니까?
그렇게 묻는 사람이 있는데 여기는 다 엘리트 불자니까 그런
말까지는 소용이 없고 다 보리심이 있어야 된다는 생각을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그래서 보리심을 가지고 하는 행은 다 도행이 되는 것입니다.
보리심이 없이 하는 것은 그것이 즉선이라 할지라도 다 소용이
없다는 것이지요.
예를 들면 가정주부가 보리심을 가지고 공양을 짓는다면
그것이 도행이 되는 것이고 또 정치하는 분들이 보리심을 가지고
정치를 한다면 그 정치가 도행이 되는 것이고 또 의사가 보리심을
가지고 진료를 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도행이 되는 것이고 또
직장인이 보리심을 가지고 직장 생활을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도행이 되는 것입니다.
진리적 행, 도행의 가장 큰 관건은 보리심이 있느냐 없느냐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불자들은 늘 보리심을 잃지 않아야 된다는 말이지요.
그래서 오늘 제가 3년 안거 회향 처음 드리는 말씀은 첫째는 중도
관을 가지고 봐야 되고
두 번째는 보리심을 가지고 있어야 된다 했습니다.
모두 같이 한 번 해 보겠습니다.
중도.
보리심.
나는 언제나 보리심이 있는가?
언제나 나는 마음 가운데 보리심이 있는가?
그것을 절대 놓지 말아야 됩니다.
아무튼 여기까지 오신 것도 다 보리심이 있어서 오신 것이고
또 방생을 해서 공덕을 짓는 것도 다 보리심이다 이렇게 볼 수
있겠습니다.
우리는 보리심을 가지고 중도관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데 그
점을 첫 번째로 말씀을 드리고
저는 감포도량 무일선원 무문관을 중심으로 지금까지 생활을
해 왔지만 앞으로 도심에 나가서 생활 하는 것을 반 반 쯤 할
생각입니다.
지금 앞에 짓고 있는 보은전 건물이 속에 들어가 보면 큽니다.
그래서 이것을 세계명상센터로 가꿀 생각이 있고 여기에서
도심으로 왔다 갔다 하면서 도가 도심에도 있고 시골 산중에도
있다는 것을 모든 분들이 다 체험하시도록 하고 싶은 생각이
있습니다.
머리가 이렇게 길어도 오늘 밤이면 깎아야 합니다.
그대로 나갔다가는 난리입니다.
저 사람은 도교인이가? 사실은 무문관 안에서는 누가 볼 사람도
없고 또 깎지 않는다고 해서 왜 깎지 않느냐 시비 걸 사람도 없고
이것이 이렇게 길러니까 따뜻해요.
그래서 감기가 잘 안 오고 좋아요.
그래서 이 무문관생활의 특혜가 바로 머리 기르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제가 한 2년쯤 전에 삭발을 한 번 했을 때에 그것으로 붓을
만들었더니 그 붓이 얼마나 좋은지.
이것으로 오늘 저녁에 또 삭발을 잘 해서 큰 대붓을 하나 만들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인연이 되면 포교를 잘
하시는 분들에게 글을 한 폭씩 드릴까 이런 생각을 해요.
제가 여기서 듣기로는 올해는 포교가 잘 안 된답니다.
그래서 이 일을 어떡하나 말로 해서 될 일도 아니고 말로 해서
잘 안 되는 일은 글을 써서 가져 오기로 되어 있어요.
제가 글을 써서 가져온 것을 한 번 보여 드리고 또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큰스님께서는 포교라고 크게 쓰신 한 폭의 글씨를 들어 보여
주셨다.]
포교가 잘 안되면 ‘스님요 들어갔다가 빨리다시 오이소.’ 그래요.
포교가 잘 안되면 우리가 아무리 중도를 외치고 보리심을 외쳐도
우리들끼리는 살 수가 없어요.
그래도 우리하고 생각이 같은 사람들끼리 살아야지 이 세상을
불국토로 만들 수 있는 것이지요.
나는 두 명 포교 할 데가 도저히 없다 그러는 분들이 있는데 생각
을 해보니 제가 불교대학을 창건하고 26년째라 그러면 그 애가
자라서 이미 중년이 다 되었어요.
안되면 그 자식들이라도 다 데리고 오라는 거지요.
자식들이 이미 중년이 되었는데 제가 처음 강의 할 때에는
20대 30대도 많았어요.
왜냐하면 제가 그때 20대 30대였거든요.
그런데 세월이 흘러서 이쯤이 되었잖아요.
포교할 데가 없다 하면 말이 안돼요.
꼭 두 명 이상은 해야 되겠고요.
제가 첫날에 포교 얘기를 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무척 고민을
했어요.
지금 시간은 없고 다겁해서 말씀을 드렸는데 솔직히 말해서
삼년 동안에 하루 한 끼 먹고도 살았는데 포교 두 명을 왜
못해요.
하루 한 끼 먹고 사는 것 쉬운 것 같아도 어려운 일이라.
어렵지요.
여기 있는 분들 하루 한 끼 먹고 살아라 하면 3~4일 가면
하이구 나는 먹자. 먹고 보자 그런 생각을 하겠지요.
여기 선방에서는 스스로도 안 먹는 것이 있지만 밥을 줘야
먹지요.
밥을 안 주는 거니까 못 먹는 거지요.
하루 한 끼 먹고도 사는데 포교 두 명 그것 왜 못하느냐
말입니다.
제가 나가면 반드시 각 공부반마다 포교 두 명이상씩 했는가
1:1 로 물어보겠습니다.
다들 나중에 볼 때 눈 깔고 보지 말고 당당하게 포교 두 명
했습니다 라고 말 할 수 있도록 준비들을 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가 보리심을 마음 가운데에 잘 간직한다는 의미에서
관세음보살님을 열 번 부르겠습니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여기까지 오셔서 방생법회도 하시고 한 공덕으로 일년 내 내
가족들이 다 건강하시고 하시는 일들이 다 잘 되시기를
진심으로 깊이 기도 축원 드립니다.
내일 모레부터 법당에서 머리 깎고 다시 뵙겠습니다.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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