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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기록인데 이것을 제대로 분석한 글이 보이지 않고 이를 한반도의 괴물이라는 정도로 취급하고 있다. 어떤 학자들은 이를 하늘이 부여를 버리고 고구려를 선택했다는것을 상징하는 류의 기사라는 풀이를 하는 경우도 있고 실제 이런 일이 있을수 없는데 삼국사기에 옛날 괴담이 실렸다는 정도로 취급되고 있어 한번 이런 기록이 외국에도 있었는지 말의 어떤 습성때문에 이게 가능한지 거루는 숫말인지 암말인지까지 분석해본다
漢書 武帝記의 계비주에 돈황지역의 원주민들은 암말을 미끼로 유혹하여 야생말들을 포획하고 길들인다는 기록이 있다.
고사성어중 塞翁之馬의 고사를 보면 집에 키우던 암말이 집을 나갔다가 숫말 한마리를 데리고 왔는데 아주 뛰어난 준마였다는 내용이 있다.
중국 당나라때의 기록으로
안녹산의 난때 당나라측 장수 이광필과 안녹산측의 장수 사사명이 황하를 사이에 두고 대치했다.
사사명에게 준마 1000여필이 있어 매일 황하 남안으로 몰고 와 목욕시키면서 군대의 위세를 과시했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니 사사명의 군마가 모두 牡馬모마(숫말)였다. 이광필은 곧 부하들을 시켜 牝馬빈마(암말) 5백필과 망아지를 끌고 오게 했다. 그러자 사사명 진영의 숫말들이 암말과 망아지들의 울부짓는 소리를 듣고 일제히 강을 건너왔다. 이로써 이광필은 병졸하나 잃지 않고 군마 1000필을 얻을수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말의 세계사라는 책에
십자군과 이슬람군과의 전투중 있었던 일화로 이슬람군의 튀르크인과 아랍인들은 대부분 암말을 타고 있었다.
사막지대에서 말을 사육하는데는 사료가 될 목초가 부족하기 때문에 말의 숫자를 제한해야 했다. 때문에 우수한 씨숫말을 제외한 나머지 숫말은 모두 처분하고 암말만 생존의 기회를 잡은 것이다.
그에 비해 십자군들은 숫말을 주로 탔다. 중무장한 십자군의 무게를 견딜수 있는 힘을 가진 숫말을 탄것이다.
이슬람군의 암말과 십자군의 숫말.
이 대결의 국면에서 십자군의 숫말 중에는 발정이 나 아군을 버리고 적진의 암말에게 뛰어드는 말이 많았다한다.
그로 인해 십자군의 기사들이 몹시 곤란을 겪었다고 한다
헤로도투스의 역사에
페르시아의 아케메네스 왕조의 다리우스1세가 왕이 될때 다른 제후들과 누가 왕이 될것인지 논쟁하다가 밤에 말을 타고 성밖으로 나가 해가 뜰 무렵에 처음 말이 운 사람을 왕으로 추대하기로 합의했다. 그때 다리우스의 부하 오베르스가 다리우스의 말이 좋아하는 암말의 음부를 문질러 그 냄새가 묻은 천을 갖고 말옆에 가자 다리우스의 말이 흥분해서 울부짓는 바람에 다리우스가 왕으로 추대되었다는 내용이 있다.
즉 말은 니편 내편이 중요한게 아니고 발정이 나면 눈에 뵈는게 없어 숫말은 암말을 찾게 된다고 한다.
그럼 대무신왕의 말 거루는 암말일까?
새옹지마의 예를 들어봐도 암말은 숫말 한마리정도만 데리고 올수 있는듯 하다.
말의 세계사를 보면 야생말들의 습성이 나오는데 "야생말들은 100 마리 이상의 개체가 무리를 지어 느슨한 집단을 형성한다. 보통 한 집단은 성숙한 한마리의 숫컷 종마와 1~6마리의 암컷으로 이루어지는데 그들의 새끼들과 무리를 형성한다. 동종교배를 피하기 위해 암망아지들은 생후 2년이 되면 독립해서 떠나고 숫말은 암말보다 늦은 생후 3년 이후에 집단을 떠나게 된다.
4~5세쯤된 우두머리 종마가 다른 숫말을 물리치고 암컷무리를 차지하게 된다.
이동하는 동안 서열이 가장 높은 암말이 무리에서 가장 앞장서고 다른 암말들이 뒤를 따르고 새끼들은 나이순으로 암말을 따르고 맨뒤에서 이동하는 말을 지키는 것은 포식자들에게 맞서 무리를 지키는 우두머리 종마다.
이 경우 숫말중 거세마가 있을 경우는 내쫒지 않고 무리중에 있게 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삼국사기에 나오는 대무신왕의 말 거루에 대한 이야기는 진실일 가능성이 상당히 높을듯 하다. 그리고 거루는 씩씩한 숫말일테고 옥저지역에 있었다는 과하마가 아니라 북방의 유목민이 탔다는 호마일것 같다. 그래야 힘으로 다른 숫말을 제압할수 있었을테니 말이다. 일부 학자들은 이때부터 고구려의 기마능력이 크게 발전했을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말들은 싸울때 숫말은 앞발을 들고 싸우고 암말은 뒷발차기로 싸운다고 한다.
몽고인들은 말들의 이런 습성때문에 종마를 제외하곤 숫말을 모두 거세 했지만 일본에서는 숫말을 거세하는 문화가 없었다한다. 아편전쟁때 영국군들이 탈 말을 구입하려고 일본에 갔더니 거세는 야만적이고 잔인한 행위라 생각해 아예 말을 거세하지 않아 결국 영국군은 숫말을 수천필을 구매했다고 한다
경마장에서도 숫말은 발정이 나면 경주장에서 달리다가도 암말에게 덤벼들기도 한다
삼국사기에 나오는 대무신왕의 말 거루의 이야기 이 정도면 신화가 아니라 사실로 인정해야 되지 않을까? 즉 거루의 이야기는 신화가 아니고 사실일것 같다.-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