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라 맛집을 찾아서
어제 소설을 넘긴 십일월 하순 화요일이다. 순환하는 절기는 본격적인 겨울로 드는 길목에 들었다. 동이 트지 않은 새벽에 들녘을 두르는 산책은 거르지 않아 목도리를 두르고 장갑을 꼈더니 한기를 느끼지 못했다. 두꺼운 잠바까지 걸치고 모직 헌팅캡을 썼더랬다. 올해 들어 아침 기온은 가장 낮게 내려갔다. 빙점 아래로 내려가지 않고 바람이 세차게 불지 않아 추위를 덜 느꼈다.
화요일 일과를 끝내고 교정을 나서니 짧아진 해는 서녘으로 기우는 즈음이었다. 연사 들판과 연초천 천변을 거니는 산책을 하려다가 행선지를 바꾸었다. 연사삼거리로 나가 구조라로 가는 22번 시내버스를 탔다. 연사에서 해금강이나 남부면으로는 바로 가는 버스가 없어 고현으로 나가 갈아타 번거로웠다. 지세포나 구조라는 환승을 하지 않고도 갈 수 있어 일과 후 다녀올 수 있었다.
일전에 젊은 날 밀양 근무할 적부터 교류가 있는 학부모로부터 문자가 왔다. 내가 거제에서 교직 말년을 보내고 있음을 알고 있어 다음 달 지인들과 거제를 찾을 거라면서 맛집 추천 요청이 있었는데 아직 회신을 주지 못했다. 내가 들린 횟집은 드물뿐더러 딱히 소개할 식당이 없어서다. 풍문이긴 하지만 거제 식당은 가성비가 비싸고, 불친절하고, 거기다가 맛까지 없다고 들었다.
겨울 들머리라 퇴근 이후 해가 짧아 금방 어두워져 갯가 산책이 어려워도 구조라까지 진출함에는 저물녘 바닷바람을 쐬고 소박한 저녁 식사를 한 끼 때우기 위해서였다. 지난 주말 와실로 들면서 주중에 먹을 반찬을 준비해 올 여건이 못 되었다. 관광지 식당에서는 단체 손님까지는 아니라도 일행이 서넛은 되어야 반겨주지 홀로 찾는 이는 푸대접을 감수해야 함은 내 경험칙이다.
거제에서 외지인에 추천해주고 싶은 식당이 드물긴 해도 바다를 접한 지리적 환경만은 인정한다. 어디를 가나 바다로 탁 트인 풍광과 함께 선도가 좋은 활어나 어패류는 다른 곳과 비교우위에 있다. 앞으로 연사와실에 머물 날이 얼마 남지 않아 갯가 바람을 쐬러 나가 저녁을 한 끼 해결할 심산으로 구조라로 향했다. 시내버스는 옥포에서 아주를 거쳐 장승포를 돌아 지세포로 갔다.
지세포는 일운면 소재지인데 근래 아파트단지가 들어서고 리조트가 생겨 구조라와 함께 뜨는 해양 관광지다. 대우조선소 인근인 장승포와도 가까워 쾌적한 주거지로 각광 받았다. 지세포에서 와현을 돌아가면 구조라다. 그간 구조라 샛바람 소리 길을 따라 구조라성과 수정봉 전망대는 여러 차례 올랐다. 이번에는 거기까지 오르지 않고 포구를 서성이다 저녁이나 먹고 돌아갈 셈이다.
버스가 구조라 수정마을 종점에 닿으니 날이 저물어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물결이 일렁이는 포구에는 조업을 나가지 않은 어선들이 닻을 내려 있었다. 외도로 떠나는 유람선 터미널은 문이 닫혀 불이 꺼진 채였다. 포구 건너편 서이말등대로 가는 산등선 아래 와현과 저구마을에는 불빛이 비쳤다. 선창에서 서성이다 불이 켜진 식당을 몇 군데 둘러보고 어판장횟집으로 찾아 들었다.
대형 연회석이 펼쳐진 넓은 홀에서 창가 자리를 차지하고 차림표를 봤다. 날씨도 춥거니와 국물이 좋을 듯해 해물탕이나 갈치조림을 시켜보려 해도 혼자서는 여건이 녹녹지 않았다. 나머지 선택지는 회덮밥이나 멍게나 성게비빔밥 정도였다. 주인장에게 반주와 함께 들 수 있는 식사로 뭐가 좋을까 여쭈니 물회를 시켜 드십사고 했다. 그는 밑반찬을 내오면서 맑은 술을 한 병 가져왔다.
옆 테이블에서 술을 들던 두 사내는 먼저 일어났다. 그들은 수정봉 전망대 탐방로를 보수하는 관계자들이었다. 물회에 든 횟감은 밀치인 듯했다. 육수는 냉면처럼 살짝 얼려 나와 고명으로 얹힌 가루 김을 섞어 비비니 녹으면서 물이 생겼다. 밥공기를 비우면서 맑은 술은 한 병으로 모자라 한 병 더 시켰다. 자리서 일어나면서 횟집 명함을 한 장 받아놓았다. 언제 쓰일 날이 있으려나. 21.1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