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오는 이유 / 김규태
눈이 오는 이유를 묻거든,
떨고 있는 겨울나무들이
순백의 잠사옷을 입고 싶어서라고,
눈이 오는 이유를 묻거든,
산과 깊은 계곡의 기복을
메워주기 위한 평등주의 때문이라고,
다시 눈이 오는 이유를 묻거든,
그늘진 시궁치에 사는 빈자를 위해
하느님이 희고 따뜻한 손길을 내린 때문이라고,
그래도 눈이 오는 이유를 묻거든,
사악한 자들의 어둔 가슴을 밝히려는
흰 꽃의 수많은 등이 되기 위해서라고,
눈이 덮이는 이유, 그것은
너와 나의 심저에 싹 트고 있는 맹종의
검은 씨앗과 차가운 역사의 들녘을
적시는 표백행위라고,
그러고도 눈이 오는 이유를 되묻는다면,
더 대답할 길이 없다.
『들개의 노래』, 빛남, 1993.
감상 - 김규태 시인(1934〜2016)은 대구에서 나고 부산에서 자랐다. 국제신문 기자로 오래 있었고 신군부 주도하의 언론통폐합 시절, 부산일보에 적을 두었다가 다시 고향인 국제신문 논설주간으로 재직했던 언론인이기도 하다.
김규태 시인이 쓴 「눈이 오는 이유」을 읽으니 인의예지를 알아야 사람이라는 맹자 말씀이 떠오른다. 인(仁)은 측은지심(惻隱之心)을 갖는 것인데 떨고 있는 나무에게 잠사옷을 입히는 마음이 그러하다. “그늘진 시궁치에 사는 빈자”를 위해 내미는 손길 또한 따스하다.
의(義)는 자신의 잘못을 부끄러워할 줄 알고, 남의 잘못을 미워할 줄도 아는 수오지심(羞惡之心)을 갖는 거라고 한다. 너나 할 것 없이 우려되는 “맹종의 검은 씨앗”을 깨닫는 데서 부끄러움이 시작될 것이고, 그런 마음으로부터 “사악한 자들의 어둔 가슴을 밝히려는”는 수고와 실천도 마다하지 않게 될 것이다.
“혁명이 있던 어느 해 4월의 울부짖음과/ 그 뒤 분노가 있던 어느 해의 6월의 함성이/ 즐비하게 바닥에 스며든 거리”(「어떤 투신」 중)를 지나온 김규태 시인은 자신과 주변인을 “투신에서 겨우 살아남은 육신의 한쪽 모퉁이”로 인식하기도 했다. 하지만, 유신 반대 기사 작성 등 정작 목소리를 낼 때는 주저하지 않았던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눈이 오는 이유」의 내용을 다시 꿰자면, 시인 자신이 꿈꾸는 것들을 하늘의 눈이 대신 해주는 장면을 그린 것으로 볼 수 있겠다. 인의(仁義)의 정신과 함께 단연 돋보이는 것은 평등주의다. 산과 계곡에 가득 찬 눈으로 인해 이제 세상은 높은 곳도 없고 낮은 곳도 없다. 하염없이 내리는 눈만 전경화되고 쓸데없이 불필요한 것들은 자취를 감추는 것이다. 이처럼 시인이 짐짓 그랬으면 하는 눈(雪)의 의지는 세상의 차별과 차별 의식을 메꾸어 주는 데 있다.
마지막 연을 짚으니, 눈이 오는 이유에 대해서 시인은 더 대답할 마음이 없어 보인다. 웬만큼 할 말을 했다는 것인데 눈이 오는 이유에 ‘내가 기다려서 그렇다’는 말도 보태고 싶긴 하다.
시 이야기 끝에 산문 이야기도 하나 보탤 게 있다. 시인의 이력 중 국제신문에 2006년부터 1년간 연재된 ‘시인 김규태의 인간기행 <1>〜<55>’ 편이 특히나 흥미롭다. 부산 경남 일대를 연고로 했던 지역 예술가들의 삶과 예술을 조명한 글이다.
시인 김규태의 인간기행 <1>에서는 유치환의 마지막 날의 행방을 좇고 있다. 유치환이 예총지부장으로 당선되고 그 얼마 후 광복동 모란다방에 모인 인사들은 동광시장 안 짬보집(부산데파트 자리)으로 옮겨 술을 마신다. 전에 없이 미세한 동작으로 어깨춤까지 추던 유치환은 수정동 자택으로 가기 위해 중앙로를 건너다 버스에 치여 사망한다.
연재의 끝인 <55>는 작곡가 이상근 편이다. 이상근 작곡가는 ‘새야 새야’를 1947년에 작곡한 인물이다. 동학혁명의 장군 전봉준을 두고 불린 민요를 합창곡으로 편곡한 것이다. 청마 유치환을 좋아하여 그의 노래에 곡을 많이 입혔다.
그 밖에도 김규태 시인과 직간접적으로 알고 지낸 많은 문인, 예술가들의 발자취를 더듬을 수 있다. 동시 「꼬까신」의 주인공인 최계락 아동문학가는 국제신문에 먼저 몸담았다가 김규태가 입사할 수 있도록 도운 인연이 있다. 딸 다섯에 아들 하나를 건사해야 하는 어려운 처지에도 최계락은 동료 문인에게 술 잘 사는 사람으로 통했다.
1951년 부산 광복동 스타다방에서 유서를 써 놓고 음독자살한 전봉래 시인, 1972년 의문의 화재로 목숨을 앗긴 김민부 시인, 1983년 부산발 서울행 열차를 탄 것으로 행방불명된 이현우 시인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롭게 읽힌다.
연재 기사는 『시인 김규태의 인간기행- 그 사람들』(2009)이란 단행본으로 묶여 나왔지만 도서관 소장 자료엔 검색되지 않는다. 연재 신문 기사가 검색되어 내용을 찾아 읽을 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 해야겠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