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7년 3 월에....
寶海/ 유 희 민
(제1장)
* 코피리 *
* 코피리 *
"때 밀고 한증탕으로 와라이."
아침에 함께 막걸리 해장술과 그리고 뼛국으로 속을 채우고
쌍식이 형님과 나는 예전에 한번 갔던 사우나로 갔다.
간단히 샤워를 마친 쌍씩이 형님은 또 때밀이를 불러 온몸을 마사지하고
그리고 나에게 마사지하기를 권하고 한증탕으로 가면서 한 말 이였다.
"예."
간단히 대답하고 나도 온몸을 때밀이 에게 맡겼다.
예전에 단 한 번의 경험으로도 이제 두 번 박수를 치면
몸의 자세를 바꿔주는 여유를 부릴 수 있었다.
몸에서 나는 때를 벗겨 내는것 보다 온몸을 주물러 주는 마사지 효과는 좋았다.
몸 구석구석을 만지고 난후 간단한 샤워로 몸을 씻고 한증탕에 들어갔다.
쌍식이 형님은 여전히 몸에 문신이 새겨진 건장한 청년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었다.
그리고 내가 아는 또 한사람, 예전에 그림을 얻어 갔던 택시 기사도 그곳에 있었다.
나를 보고 아는 체를 했다. 그걸 보고 있던 쌍식이 형님이 그 택시 기사를 보고 말했다.
"아야 대가리… 니는 앞으로 저 친구를 잘 모셔야 할것이다.
나중에 이야기 할것인디 인자 니도 택시 그만 몰고 나하고 일하러 서울로 올라가자."
"성님…그것이 뭔소리다요?"
"운전을 해도 서울에서 하자 그말이다. 그것은 나중에 내가 설명 할 것이고…
인사부터 드려라. 앞으로 사장님 이라고 부르믄 된다."
택시 기사는 나를 보고 정식으로 인사를 했다.
"김 대석입니다. 성님이 대가리 대가리 해 싼디…
이름이 대석이라 맨날 돌대가리 돌대가리 하요.
그냥 대석 이라고 불러 주쇼."
"예 안 우상 입니다."
그리고 쌍식이 형님이 나를 손짓으로 불렀다.
옆에 앉으란 신호다. 내가 걸어가서 쌍식이 형님 옆에 앉자
대석 이라는 택시 기사가 엉거주춤 우리 옆으로 왔다.
"아야.. 우상아이… 저놈이 무식하긴 해도 젊어서부터 지금 까지 평생 유도로 다진 몸이다.
그라고 저새끼가 운전대를 잡으믄 고속도로고 어디고 지 앞에 다른차가 가는 꼴을 못 본다.
지 앞에 가는 차를 추월해서 가야 직성이 풀리는 놈이다.
운전 하나는 기가 막히게 허는 놈이다. 내가 저놈은 델꼬 올라가야 쓰겄다.
그라고 저놈이 평생 내 개인 비서 멩키로 엉켜 다녔응께…
내 눈치도 빨리 알아채고 한께 내 비서 멩키고 쓸란다.
요새도 겁나게 다이야 쥬브 땡김서 운동을 한께 용도가 다양한 놈이제."
"형님 편하실 데로 멤버는 구성 하세요."
옆에 서 있던 대석이라는 친구는 눈만 멀뚱멀뚱 뜨고 우리의 이야기를 들었다.
"아야 대가리. 니는 며칠 있다 나랑 서울 갈 채비나 하고 있어라.
인자 본격적으로 일 한번 해보자.
그라고 니는 나하고 일 할라믄 옛날 멩키로 머리는 상고머리로 이쁘게 단장 해라이.
그라고 금방 인사 한 사람이 사장인께 잘 알아서 모시고…"
"성님 뭔일이요?"
"내가 니한테 뭔 소리를 하겄냐?
또 어디 가가꼬 씨부리지 말고 걍 서울 갈 준비만 하고 자빠져 있거라이.
또 어디 가가꼬 씰데 없는 소리 허지 말고…"
"연장도 챙기까라?"
"염병할놈… 어디 전쟁 하러 가냐? 다구지게 운동해야 한께…
도복이나 챙겨 놔라. 서울 가서도 운동은 계속 해야 헌께…
그라고 아그들 니가 맡아서 기술을 많이 갈챠 줘야 할랑 갑다.
더 묻지 말고 찌그러 져라이."
"알았소… "
뭐가 좋은지 계속 싱글벙글 했다.
그리고 그는 인사를 하고 한증막 밖으로 나갔다.
"우상아이… 나중에 니 서울 가고 나믄 곧바로 나도 따라서 올라 갈란다.
내가 본께 7월에 가동할라믄 시간이 없다.
멤버는 한 열흘이믄 구성이 된디 다른 준비는 니가 좀 해 줘야 쓰겄다.
우선 올라가자마자 승합차 2대 하고 승용차 1대를 준비 해 주라.
원래 경호라는 것이 4명이 근접 경호를 하고
나머지는 전방, 후방으로 나눠서 3팀으로 구성이 된께
이동하고 할라믄 차가 석대는 있어야 할랑 갑다.
내가 굳이 승용차를 1대 해 주라는 것은 V. I. P 바로 뒤에 경호차가 따라 가야 헌디
승합차가 뒤에 따라 갈수는 없응께…
그래서 승용차가 필요 하다… 그것도 고급스러운 차믄 더 좋다.
그건 알아서 준비 해 주고… 숙소는 인원 구성 봐서 정하기로 하자…
선거철 6개월 동안은 집에 들여 보낼수 없응께…
아마 숙식을 같이 해야 헐것이다.
그라고 선거 끝나믄… 그때는 형편 봐서 출, 퇴근을 하고…"
"언제 경호를 해 보셨어요?"
"예전에… 건달밥 먹을때… 그런 이야기할라믄 길다.
그런거는 차분히 이야기 하고.. 그라고 아까 그 대석이가…대가리…
그놈이 지금 상무관 사범이다… 좀 무식해서 그란디 저놈이 아그들 교육을 좀 시켜야 된다…
왜그냐 하믄… 저놈은 그래도 상대를 제압 하는 기술을 알거든…
소란스럽지 않게 그리고 간단히 관절만 꺽어서
상대를 바닥에 눕히는 기술을 저놈이 많이 안께…
지금 멤버를 새로 짜믄 그놈들은 유도나 태권도를 무슨 싸움 기술 정도로 알고 있는 놈들인디…
그래도 대학에서 기본기는 있는 친구들 이라 한 달만 바짝 교육 시키믄 될거그만…"
벌써 쌍식이 형님은 경호 회사에 대한 밑그림을 그려 둔듯 했다.
벌써 인원과 대원들의 동선(動線)을 파악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라고… 니 나한티… 한 가지만 약속해라…
선거가 끝나도 회사가 유지 될 수 있게 신경을 좀 써 주라.
나 혼자몸 같으믄 거서 시마이 해도 된디…
선거 끝났다고 식구들 째져야 한다믄 내 얼굴이 안 선다…그래서 허는 소리다."
"예 그건 걱정 하지 마세요. 형님… 올림픽 기간 중에 얼마나 외국에서 손님들이 많이 옵니까?
국빈들은 정부에서 처리 하지만 각종 스포츠 스타들,
그리고 세계적인 연예인들은 이제 형님이 다 처리 하셔야 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나도 결코 내 몰라라 하지는 않을 테니까 걱정 하지 마세요."
"그라고… 오늘은 코피리 형님 한번 보자…
전번에 내가 살짝 이야기 했드만…
당사자 오믄 이야기 하자고 그래서 이야기 하다 말아 브렀다…
니하고 직접 이야기해야 쓰것다고 그라드라…
저녁때 같이 식사나 하자…코피리 형님 하고…"
이야기를 퍼트리고 다니면 '내가 땅에 파묻어 버리겠다던' 그 비밀스런
코피리와 달중이를 오늘밤에 만나게 해 주겠다는 것 이였다.
"달중이도 옵니까?"
"아니제… 달중이는 절대 안온다… 코피리 형님이 달중이 대리인인께… "
"약속이 되어 있습니까? 만나기로."
"아니여… 일년 내 같은 자리에서 영업을 한께… 거 가가꼬 모셔 가야제…
나는 그 양반을 좀 안께 내가 선배 대접을 하는디…
일반 사람은 그냥 불상한 맹인 악사로만 생각하제…
그라고 눈먼 봉사라도 여자가 있어가꼬… 옆에서 꼬추가루를 많이 뿌리는 갑드만…
근디… 기타하고 엠프하고… 이런거 옮길라믄 혼자 못한께 옆에 따라 뎅기는 여자가 있기는 있는디…
뭐 그렇게 알캉달캉 해 보이지는 않고…"
"달중이도 부를수 없을까요?"
"그것은 코피리를 만난 다음에 이야기고…
그랑께 코피리 형님이 주선을 해 주믄 만날수 있다 그 말이여.
어디 시내 다방 같은데 앉아 있으믄 달중이를 볼수는 있는디…
그런데서 말 붙여 봤자 말 상대를 안해 븐께… 그것이 쪼까 어렵다고 봐야제…"
"그래도 형님이 목포 계실때 아니면 더 만나기가 힘들 것 같은데…나중에 서울로 올라오시면… "
"아니여… 내가 서울 있어도 아그들 시켜가꼬 코피리 형님 한티 연락 하믄 되고…
그라고 회사 꾸려 나감서도 그 일은 또 별도로 내가 신경 쓸랑께 너무 걱정 하지는 말어…
그 그림의 가치가 어느 정도 인지는 몰라도…
국가적인 일 같으믄 나도 한몫해야 겄다는 의무감도 있고 헌께…
내가 요새 니 만나가꼬 별 희한한 짓을 다 한다만 그래도 그런 것들이
그렇게 나쁜 짓은 아닌것 같은께…"
당장의 경호회사 일도 신경을 쓰고 있었지만 쌍식이 형님은
내가 어떤 것에 더 비중을 두고 신경 쓰고 있는지를 알고 있는 듯 했다.
사실 나는 경호 회사 같은 거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이였다.
이 일이 기삼이가 생각해낸 발상이기 때문에 필경은 그림을 되찾아 오는데
필요한 조직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 기삼이나 나에게는 이런 회사를 설립할 이유가 되었다.
그리고 그 그림을 훔쳐 와야만 하는 일이라면 쌍식이 형님이 말한
이 시대 최고의 대도(大盜)라는 달중이가 필요 했다.
일본이 아니라 지옥 깊숙한 금고에 있더라도 기필코 찾아야만 하는 일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럼 저녁때 몇 시쯤 …"
"코피리가… 밤에 장사를 하는디… 한 8시쯤에 가서 같이 식사나 하자고 보채 봐야제.
그전에는 한참 장사 할 때라 가자고 그래도 가지도 않을 거고…
안되믄 일당 준다고 그라고 끌고 가야제… 근디… 내가 가자고 그라믄 가기는 갈것이여… "
"영업장소가 어딘데요?"
"저그… 목포 극장 뒷길 쪽… 콜롬반 제과점에서 쭉- 내려가는 길인디…
거그 가믄 기타치고 있을거여…"
"코피리는 코로 피리를 연주해서 코피리 아닙니까?기타도 치나요?"
"코로 피리를 연주하기도 하고… 그라고 기타도 치고 헌디…
그것이 피리로 안 되는 음악도 있는 갑드만…
어떤 거는 코로 피리를 불고 어떤 거는 기타를 치는 것 보믄… 궁금 하믄 오늘 한번 봐봐…."
"예 한번 보고 싶네요…"
"인자 엔간히 땀도 뽑았응께… 나가자이…"
쌍식이 형님의 움직임으로 한증탕을 나와서 간단한 샤워로 목욕을 끝냈다.
탈의실 에는 택시 기사 인 대석이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쌍식이 형님이 그를 보고 한마디 했다.
"대가리… 니는 또 뭐가 궁금해서 안가고 나를 기다리고 있냐?"
"내가 평생 형님 딱까리 아니요. 형님 나오믄 모셔다 줄라고 버티고 있었소."
"지랄 허네… 작것이 한번 움직여 보자 그란께 또 몸이 근질근질 해서 그라제…
내가 니 속을 모르겄냐? 나도 니를 평생 달고 다니는디?"
"ㅎㅎㅎ 나도 궁금 헌께 그라요. 뭔일 할랑가 몰라도 이참에는 성님이 지데로 움직일것 같은께…
쪼깐 흥분 되가꼬…."
"씰데없는 생각 말고… 나는 상관 없응께... 우석이나 찿아 가꼬 이분 한티 델다 줘라.
그라고 우상아이… 니가 여그는 아는 사람이 없은께…
우석이랑 시간좀 보내고 있다가 밤에 나랑 다시 만나자이…
대가리… 니는 우석이 찿아가꼬 여그 콜롬반 제과점 있제?
앞에 빵집… 그리 좀 델다 줘라…
우석이 찾으믄 서울에서 기자 아저씨가 찾는다고 그라믄 뭔 소리인지 알고 따라 나올 것이다.
델다 줘라이…"
"예… 내가 그놈이 가는 데를 안께… 금방 찿아가꼬 델다 줄라."
"그래라… 너무 오래 안 걸리게 빨리 찾아 와라이…
그라고 가는 길에 나좀 가게에 떨챠 주고 가믄 된다."
하기는 우석이가 궁금하기도 했다.
나는 그가 그림을 빨리 잘 그리는 그의 천재성 때문에 좋았을 뿐이다.
예술가답게 항상 가난하고 그리고 그런 형편에도 그렇게 인상이 나쁘지 않아서 좋았고,
그리고 술 몇 잔에 자신의 작품을 선뜻 내 보인 심성이 그냥 좋았을 뿐 이였다.
그리고 지금은 딱히 할일도 없었다.
다방이 아닌 제과점 에서 기다리는 게 좀 나이에 어울리지 않았지만
쌍식이 형님이 시키는 대로 콜롬반 제과점 이라는 곳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제과점에 앉자마자 나는 따뜻한 우유와 그리고 신문을 가져 오라고 주문했다.
아직은 학생들이 몰려올 시간은 어니였던지 홀 안은 좀 조용한 편 이였다.
그리고 가져온 신문을 펼쳐 봤다.
보기 드물게 신문에 대서특필 된 게 있었다.
검찰이 압수한 <노동자 철학>등 좌경 이념서적 출판사 대표 5명이 구속되고
이 출판사사무실 등에서 이 출판사가 발행한 이념서적 6종 5백76부와 지형 및 출판원고를 압수하고
문공부와 경찰에 통보 배포된 서적을 회수 했다는 내용을 사진과 함께 실었다.
노동 운동과 민주화 투쟁이 각각 따로 전개 되는가 싶더니
이제 그것마저도 하나의 쟁점으로 부각 되어 어쩌면 정부가 원하지 않던
이슈가 하나의 꼭짓점을 향해서 가는 것 같았다.
이러다 노동자들이 직접 반정부 시위에 참여 하는 날에는
정부 여당으로서는 그 불을 진화하기가 힘들 것 같은 형국 이였지만
여전히 언론은 ‘어쩌다 이룩한 대한민국의 흑자 경제를 해치는
무모한 노동자들의 혹세무민’ 이라고 국민을 흔들고 있었다.
선거철 마다 대두 되는 북괴의 남침 위협은 63빌딩이 허리 까지 잠긴다는
금강산댐의 수폭(水爆) 위험이 허위로 알려 지면서 더 이상 써먹을 수 없는 이슈가 되어 버렸고
야당의 정국 주도가 국가의 혼란을 초래 할 수 있다고 대 놓고
군사정권의 정권 연장을 획책 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었다.
서울의 마들 평야(상계동) 철거 작업에 많은 사람들이
울부짖는 장면은 T.V 에 단신으로 처리 되었을 뿐
신문의 어디 에도 그런 기사는 없었다.
신문은 배창호 감독의 영화 '기쁜우리 젊은날' 에서 주연을 했던
황신혜의 프로필로연애면의 한 구석을 장식 했고
그 영화에 대한 평(評)이 장황하게 적혀져 있을 뿐 이였다.
신문은 독자들의 알권리를 제대로 전달하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시대가 1987년의 봄 이였다.
신문의 구석구석을 다 뒤지고 있을 때 우석이가 안으로 들어 왔다.
"왔소? 나는 사장님 이라고 그래서 누군가 했소. 기자 양반 이였그만…"
아마 대석이가 나를 사장으로 벌써 떠벌리고 다니는 모양 이였다.
딱히 그 말도 틀렸다 할 수 없겠지만 아직은 좀 어색한 호칭이다.
"아- 예. 쌍식이 형님께 볼일이 있어서 왔다가… 시간이 많이 남아서… "
"그래도 올 때 마다 불러준께 무쟈게 고맙소."
"그래 그동안 어떻게 지내 셨어요?"
"자살하기 일보 직전에 쌍식이 형님이 살려 줍디다…
요새는 극장 간판 몇 군데 돌아 뎅김서 그리고 있소.
내가 손이 빨라가꼬 간판을 쉽게 쉽세 그린께 급할 때는
다른 극장 에서도 부르믄 가서 후딱 그려 주고 그라요.
그라고 전번에 사기죄로 고소한 그놈 하고도 일이 잘 풀려서 해결 했고…
인자 술 쪼깐씩 묵고 정신 차리믄 되는디…
그래도 밤 되믄 사는 꼬라지가 서글퍼서 또 술 한 잔 해블고 그라요."
"그래도 좋아 졌다니 다행 입니다."
"내가 하두 사는 꼬라지가 괘씸해서 엊그제 점쟁이한테 갔는디…
올해부터 풀리기 시작해서 내년에는 미국 갈 거라고 그랍디다.
내가 그 말 한마디에 용기를 얻어 가꼬 부지런히 빨빨 거리고 뎅기요."
"미국에 사시는 식구들 하고는 연락은 하세요?"
"가끔 내가 전화를 허긴 허는디…
아 동생들도 그렇고 엄니도 그렇고 그냥 미국으로 들어 오라고는 해 싸도…
내가 빈손에 가기가 깝깝해서 여작 버티고 있소…
되든 안되든 내년쯤에는 한번 생각해 봐야 쓸랑갑소…손에 쥔게 없어도 가긴 가야 쓴디.."
"점집에도 가세요?"
"하도 깝깝해서 재미 삼아서 한번 가봤소…
근디 점쟁이가… '7년 가뭄에 단비를 만난 듯 귀인(貴人)을 만난다.'
그랍디다… 내가 남농 선생 밑에서 수학 하다 산통 깨븐 뒤로 희망도 없이 살고 있는디…
그래도 그런 소리 듣고 난께 그래도 쬐끔 위안이 됩디다.
점쟁이 말 같으믄 내년에 미국 간다고 그랑께… 희망을 가져 봐야제…"
"요새는 간판 말고는 다른 그림은 안 그리세요?
그래도 그냥 썩히기는 아까운 솜씨라고 하던데…."
"인자 살살 또 그리고 있소.
영감 살아 있을 때는 항상 국전 심사위원 으로 위촉이 되논께
내가 그림을 내도 당선을 안 시켜 줄것 같애서 출품도 안했는디…
인자 그분도 기력이 쇠해져서 심사위원 에도 못 가신다고 한께…
인자 그림을 출품해 볼라고 그라요.
국전도 요새는 부정이 많아서 실력만 가꼬는 안된다 그라는디…
환쟁이들 끼리 보믄 그래도 어느게 좋은 그림 인지는 딱- 보믄 안께…
그라고 내 이름을 아는 사람들은 내 그림을 보고 입선 안시켜 주믄 그놈은 인간도 아니제…
ㅎㅎㅎ 웃기는 건 내가 그림을 그려 주었던 놈들이 거 심사 위원으로 앉아 있는거 보믄…
그랑께 내가 그림을 출품 하믄 걍 곱게는 못 넘어 갈 것이요… 그라고 나도 자신 있고…"
역시 우석이는 극장 간판이나 그리고 있을 그런 위인은 아니었다.
다만 스승에 대한 예의나 체면 때문에 스승이 심사위원으로 있는 동안
한 번도 출품을 하지 않았던 것뿐이었다.
이제 그 남농 허건 선생이 몸이 불편해서 심사위원에서 빠져 있다는 소리를 듣고
다시 붓을 잡고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올해를 넘기기 힘들 것 같다고 이야기하는 대목에서는
다소 처연한 표정 까지 지었다.
진정으로 그는 남농 선생을 사랑 하고 존경 했던 것 같았다.
역시 우석이는 그답게 순진하고 착한 구석이 있었다.
"문병이라도 한번 다녀오시지요."
"갔제라… 갔는디… 누워서 눈만 멀뚱멀뚱 쳐다 보다 와브렀소…
내 손을 지긋이 잡드만 뭔 말인가 할라다가… 그냥 눈을 감아 븝디다.
그 양반이 평소에 뭐라 그랬냐믄…. '내가 그림을 그려서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림을 남발 했다는 평도 있다.
그러나 번 돈을 무덤으로 가져가는 것이 아니다.
어디에 쓸 것인가 생각하니까 절로 벌어들일 뿐이다.
아직도 할일이 태산 같다.
좋은 그림을 남기겠다는 욕심 이지만 내 마음대로 되는가?
훗날 뒷사람이 몇 편의 걸작만 가려준다면 작가로서 후회는 없다.
나는 그림 그리는 일이 즐거워서 살아 왔을 뿐이다.
지금도 내 건강은 그림을 그려서 그래서 유지되고 있다' 그랬단 말이요…
근디 내가 가슴이 아픈 거는 그분도 그림을 남발 했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 모양인디…
나까지 또 위작을 찍어 냈응께… 그분 뵐 낯짝이 안섭디다…
그래서 또 가슴이 아프드만요…"
"많이 불편 하신 모양이죠?"
"인자 진짜 갈 때가 다 된것 같습디다. 식구들도 준비를 한다고 그랑께…
그분 소원이 좋은 회당(會堂)같은거 지어가꼬…
그림 하고 수석을 한군데 몰아 놓고 여러 사람들 볼 수 있게 하는거 였는디…
자석들이 착해 놔서… 그렇게 할꺼그만…."
우석 이라는 이 젊은 화가는 자기 스승에 대한 많은 것을 알고 있지만
스승에게 보다는 다른 사람에게 인정을 받지 못함을
모두 자기가 스승을 배신한 탓으로 돌리고 있었다.
만약 남농 선생이 한번 이라도 자기의 뒤를 이을 후계자로 지목을 해 주었다면
지금의 우석이는 극장에서 간판을 그리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걸 알고 있는 우석이도 자기 자책에 대한 뼈아픈 자신의 오류를 반성 하고 있는 듯 했고
스승에 대한 미련과 아쉬움을 오랫동안 나에게 피력 했다.
같이 점심 식사를 하자는 나의 제의에 그는 극장일 때문에 가봐야 한다고 그랬다.
그리고 밤에 시간이 나면 술 한 잔 대접 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밤에 시간 나믄 꼭 연락 주쇼이?.
쏘주 한잔은 대접 하고 싶어서 그라요.
그래도 올때 마다 불러 주는디 내가 인사는 해야 쓰겄소."
시원스럽게 이야기를 하고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를 보내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700호실에 전화를 했다.
여전히 한 중사는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첫댓글 건강에 유의하시고.... 쿨 한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행복한날되세요......^^